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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드]by 중앙일보

하루 50명만 맛볼 수 있는 미역국…외국인도 줄서는 밥집

미역국 하나로 모두의 마음 사로잡은 신동훈 셰프의 ‘오일제’


미역국·간장·김치·젓갈의 백반 한 상

20대부터 90대까지 가족 손님 많아

매주 단 한 팀을 위한 생일 차림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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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듯 다양한 가게들이 늘어선 서울 용산구 삼각지역 골목. 작은 나무문을 열고 들어서면 구수한 밥 내음과 더불어 청아한 새소리가 손님을 반긴다. 가게에 들어서자마자 느껴지는 것은 차분함과 고요함 그리고 햇살 같은 포근함이다. 마치 정신없이 바쁜 도심에서 벗어나 잠시 다른 세상에 온 듯한 느낌마저 드는 이곳은 미역국 하나로 모두의 마음을 사로잡은 밥집 ‘오일제’다.


이탈리안 셰프 출신 신동훈(40)대표가 지난해 3월 문을 연 오일제는 이미 아는 사람들은 다 아는, 그리고 ‘나만 알고 싶은’ 미역국 맛집으로 통한다. 좌석은 단 12석, 하루에 판매하는 미역국은 50그릇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오일제는 매일 오전 10시와 11시 30분, 오후 12시 30분과 1시 30분 네 차례에 걸쳐 직접 가마솥으로 밥을 지어 손님에게 내어놓는다. 한정된 좌석에 한해 예약을 받는데, 미처 예약하지 못한 고객들이 가게 문을 열기 전부터 줄을 서서 기다리는 오픈런이 일상이다. 이러한 순항 비결은 음식의 퀄리티에 대해서는 절대 타협하지 않는 신 셰프의 신념이다. 미역국으로 유명한 부산 기장에 가서 2주간 하루 5끼 미역국만 먹고, 완벽한 미역 손질을 위해 6개월간 연구를 거듭했다.


그렇게 탄생한 오일제의 음식은 어떨까. 이곳은 신동훈 셰프 홀로 운영하는 업장으로, 모든 요리가 그의 손을 거친다. 단일 메뉴로 미역국만 선보이는 오일제는 젓갈과 김치 그리고 밥과 간장 외에 별다른 반찬이 없어 백반집의 한 상에 비해 단출한 편에 속한다. 하지만 각 메뉴를 자세하게 하나씩 뜯어보면 그 무엇 하나 셰프의 공력이 들어가지 않은 것이 없다. 미역국에 들어간 재료만 보아도 그러하다. 신동훈 셰프는 10년 전부터 자신이 직접 먹어왔던 전라도 거금도의 초사리 미역만을 사용해 미역국을 만든다. 3~4월에 자라는 어린 미역으로 그해 시장에 처음으로 들어오는 초사리 미역은 무척이나 부드러우면서도 진하고 깊은 감칠맛을 자랑하는 만큼 귀하기로 유명하다.

미역국·반찬까지 정성을 담고 엄선한 재료로 만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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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이 미역은 신동훈 셰프가 직접 배합해 만든 숙성 간장에 찍어 먹을 때 그 감칠맛이 배가된다. 간장에 찍는 순간 해조류가 가진 특유의 기분 좋은 풍미와 감칠맛이 입과 코를 가득 채우고 달큰 짭짜름한 소스가 입맛을 돋운다. 경기도의 한우농장에서 공수해 온 사골 육수 역시 일품이다. 느끼한 맛 없이 깊이 있는 담백함은 국을 먹는 마지막 순간까지 잔잔하게 혀끝에 맴돌며 여운을 남긴다. 여기에 오일제 미역국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들깻가루도 고소함과 구수함을 한껏 끌어올린다. 전라도 강진의 청정 지역에서 재배된 들깨의 껍질 벗기고 살짝 볶아 만든 들깻가루는 미역국의 식감을 올려주는 것은 물론 사골 위에 맛의 레이어를 한층 더 하며 복합적인 풍미를 끌어낸다.


매일 시간에 맞춰 가마솥으로 짓고 있는 밥 또한 오일제의 시작이자 끝과 같다. 갓 도정한 고시히카리 쌀만 사용하는 만큼, 깨끗하면서도 투명한 동시에 탱글탱글하게 터질 듯이 윤기를 머금은 밥은 부드러운 맛을 자랑한다. 씹을수록 쌀 특유의 단맛이 올라오는데, 짭짤한 젓갈이나 함께 나오는 갓김치와 먹으면 그야말로 밥도둑이 따로 없다. 여기에 셰프의 조언대로 밥이 반쯤 남았을 때 미역국에 말아 먹으면 한층 더 진한 고소함을 느낄 수 있다. 이는 들깨 외에 셰프가 넣은 ‘비밀 재료’ 덕분. 밥을 말았을 때의 염도와 농도까지 계산해 음식을 내어놓는 신 셰프의 디테일과 치밀함은 음식 곳곳에서 맛으로 느낄 수 있다.


볶은 메밀을 올려 고소함까지 느낄 수 있는 젓갈도 천일염 산지로 유명한 전라도 곰소 지역의 것을 고집한다. 풍부한 감칠맛과 기분 좋은 염도는 미역국과 찰떡궁합이다. 마치 물김치처럼 깔끔한 맛이 인상적인 배추김치와 씹는 식감과 특유의 풍미가 매력적인 갓김치 역시 갓 지은 밥과 먹어도, 미역국과 먹어도 뛰어난 밸런스를 보여준다. 이처럼 오일제는 작은 반찬 하나조차 허투루 내어놓지 않고 진정성을 꾹꾹 눌러 담아 손님에게 감동을 선사한다.


미역국이 한국인의 ‘소울푸드’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대중적인 음식인 만큼, 식당을 찾는 손님은 20대부터 90대까지 세대와 성별을 막론하고 다양하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가족 단위 고객이 많다는 것이다. 딸이 어머니를 모시고 오고, 어머니가 다시금 이곳에 어머니를 모시고 오거나 자신의 친구들과 모임을 하는 경우도 많다고. 새롭고 트렌디한 것을 추구하기보다 미역국 하나, 본질에 집중하면 반드시 가게를 찾아올 것이라는 신 셰프의 예상이 그대로 적중한 것이다.

‘한국적 정서를 느낄 수 있는 곳’으로 외국인에게도 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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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일제는 들깨와 사골로 고소한 풍미를 내는 미역국과 가마솥밥만 판다. 특히 솥밥은 갓 도정한 쌀로 하루 네 번 지어 구수한 향과 밥알이 탱글탱글하게 살아있다. [사진 김성현]

미역국의 매력에 빠진 건 한국인만이 아니다. 한국 고객만큼 일본인 손님도 많다. 가게를 열고 일주일이 지났을 때 한 일본인 고객이 온 이후 일본인 커뮤니티에서 ‘한국적인 정서를 느낄 수 있는 곳’으로 올리면서, 입소문이 났고 이를 계기로 오일제는 유명 잡지 마담 피가로 재팬(madame FIGARO japan)에 소개됐다. 당시 서울을 대표하는 맛집 20곳 중 한 곳으로 선정됐고, 이후 일본인 손님이 더욱 늘어났다. 최근엔 대만과 중국, 유럽과 북미권 관광객도 늘었다.


현재 오일제에서는 매주 금요일 단 한 팀만을 위한 생일상 차림상도 선보이고 있다. 미역국을 기본으로 잡채와 갈비찜, 샐러드 등 생일을 맞이한 이를 축하하기 위한 귀한 한 상이 내어진다. 예약 성공을 위해서라면 50:1의 치열한 경쟁률을 뚫어야 하지만, 구성원 전원이 오일제 생일상으로 생일을 축하하는 가족까지 있을 정도로 만족도는 높다.


김성현 푸드 칼럼니스트 cook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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