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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빛 광부의샘, 철분 품은 황금폭포…운탄고도 173㎞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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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이 모이는 동네 ‘모운동’에 가다

지난달 28일 오후 강원 영월군 김삿갓면 주문2리 ‘구름이 모이는 동네’라는 뜻의 모운동(暮雲洞)마을. 30여 명의 관광객이 마을 입구 ‘운탄고도(運炭高道) 마을호텔’ 앞에서 트레킹 준비를 하고 있었다.


운탄고도 3길을 걷기 위해 모운동을 찾은 이들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이후 줄곧 방역 최일선인 강원도 각 시·군 보건소에서 근무해 온 공무원이다. 이들은 이날 ‘치유의 걷기’ 길을 시작으로 29일엔 해발 1330m ‘만항재’와 ‘도롱이 연못’이 있는 운탄고도 5길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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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8일 오후 강원 영월군 김삿갓면 주문2리 ‘구름이 모이는 동네’라는 뜻의 모운동(暮雲洞)마을. ‘광부의 길’을 따라 ‘옥동광업소’ 쪽으로 가면 ‘동발제작소’가 나온다. 박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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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8일 오후 강원 영월군 김삿갓면 주문2리 모운동 ‘광부의 길’을 따라가다 보면 나오는 ‘옥동광업소’ 갱도 입구. 박진호 기자

스트레스 해소와 치유 길 ‘운탄고도’

임상미 강원도인재개발원 주무관은 “3년이란 시간 동안 방역 최일선에서 고생한 이들의 스트레스 해소와 치유를 위해 운탄고도 걷기 프로그램을 마련했다”며 “잠시나마 근무지에서 벗어나는 것만으로도 편안함을 느끼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해발 700m가 넘는 고지대에 있는 모운동은 사방이 높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마을이다. 지금은 30여 가구 50여 명의 주민이 사는 작은 마을이지만 망경대산의 ‘옥동광업소’가 문을 닫기 전인 1980년대 후반까진 1만 명이 넘는 광부 가족이 살던 번성한 마을이었다.


당시엔 병원은 물론 극장과 당구장·미장원·세탁소 등 없는 게 없는 시끌벅적한 동네였다고 한다. 모운동에서 60년 넘게 살아온 김두하(81·여)씨는 “예전엔 학교를 오전·오후반으로 나눠가는 2부제를 했을 정도”라며 “시내에 없는 물건이나 상점도 여기에는 다 있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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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8일 오후 강원 영월군 김삿갓면 주문2리 모운동 ‘광부의 길’을 따라가다 보면 나오는 ‘광부의 샘’. 과거 광부들은 이 연못에 동전을 던지며 안전을 빌었다고 한다. 박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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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8일 찾은 강원 영월군 김삿갓면 주문2리 모운동 마을 입구에 있는 쉼터. 박진호 기자

모운동 배경의 ‘소설’ 운탄고도의 시작

이날 모운동에선 운탄고도를 스토리텔링 한 김도연 작가도 우연히 만났다. 김 작가는 1979년 석탄 산업이 호황을 이루던 모운동을 배경으로 한 소설 『마가리 극장』의 저자다. 트레킹에 나선 김 작가는 “몇 년 전 우연히 이 마을에 오게 됐는데 동네가 너무 예뻐서 (소재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예전에 이 마을에 극장이 있었는데 춘천·강릉보다 먼저 서울에서 필름을 가져와 상영했다”며 “이 동네에 살던 광부 자식들이 극장에 다니던 이야기를 쓰고 운탄고도 스토리텔링에도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처럼 사람들이 운탄고도 3길 시작지인 모운동으로 모여드는 건 이곳부터 실제 석탄을 나르던 흔적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상 모운동이 운탄고도의 시작지인 셈이다.


‘광부의 길’을 따라 ‘옥동광업소’ 쪽으로 가면 ‘동발제작소’가 나온다. 동발은 갱도가 무너지지 않게 받치는 나무기둥을 말한다. 현재 뼈대만 남아 있는 동발제작소는 마치 고대 유적지에 온 듯한 착각을 느끼게 한다. 또 바로 옆 ‘광부의 샘’에 햇빛이 들자 연못의 빛깔이 푸른색으로 변하면서 신비로움마저 느껴졌다. 과거 광부들은 이 연못에 동전을 던지며 안전을 빌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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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8일 찾은 강원 영월군 김삿갓면 주문2리 모운동 마을 입구에 있는 마을지도. 박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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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8일 찾은 강원 영월군 김삿갓면 주문2리 모운동 주민들이 마을을 찾는 이들에게 판매할 음식을 정하기 위해 모여 있는 모습. 현재 이 마을엔 음식점이 없다. 박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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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정선군 사북읍 운탄고도 5길에 있는 도롱이 연못. 이 연못은 주변 갱도 때문에 지반이 가라앉으면서 생성됐다. 사진 정선군

철분 많은 용출수 폭포 ‘황금색’으로 변해

연못을 지나 계속 걷다 보면 ‘휴식’이라는 제목의 광부 조각상이 나온다. 이어 인근에 있는 전망대에 오르면 황금색 물줄기가 떨어지는 황금폭포를 볼 수 있다. 폐광된 옥동광업소에서 나오는 용출수로 인해 만들어진 폭포인데 철분이 많아 황금색을 띠면서 황금폭포라는 이름이 붙었다. 용출수가 흐르는 곳에 있는 돌의 색은 전부 황금색이다.


황금폭포 전망대에서 내려온 뒤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옥동광업소 목욕탕과 갱도가 나온다. 갱도 길이는 2.1㎞로 산 반대쪽까지 관통돼 있다. 갱도 내부에 샘이 있어 끊임없이 물이 흘러나온다. 이 물은 700m 떨어진 황금폭포까지 이어진다.


해발 1088m 망경대산은 영월군 중동면과 하동면이 경계다. 정상에 오르면 남쪽으로 무릉계곡과 마대산 줄기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또 멀리 선달산에서 소백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도 훤히 보이는 등 사방으로 영월의 전경을 감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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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8일 오후 강원 영월군 김삿갓면 주문2리 모운동 마을 ‘운탄고도 마을호텔’ 앞에서 30여 명의 관광객이 트레킹 준비를 하고 있었다. 박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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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정선군 사북읍 운탄고도 5길에 있는 도롱이 연못. 이 연못은 주변 갱도 때문에 지반이 가라앉으면서 생성됐다. 사진 강원도관광재단

‘운탄고도1330’ 1일 정식개통

이처럼 모운동이 국내 석탄산업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곳이다 보니 운탄고도 정식개통 행사도 이곳에서 열린다. 강원도관광재단은 1일 ‘운탄고도1330’ 정식개통을 기념해 모운동에서 출발하는 ‘운탄고도1330 느리게 걷기 행사’를 연다. 참가자들은 모운동에서 영월 석항 삼거리까지 약 12.8㎞를 걷는다. 행사는 9일까지 이어진다.


운탄고도1330은 영월군·정선군·태백시·삼척시 등 폐광지역 시·군 4곳을 잇는 길이다. 이름 뒤에 1330이 붙은 건 전체 코스 중 가장 높은 곳인 정선 만항재의 높이가 ‘1330m’여서다. 영월 청령포에서 시작된 길은 삼척 소망의 탑까지 9개 길로 나뉘어 있다. 총 길이만 173㎞에 달한다. 모든 코스를 걸어서 이동하면 8박 9일이나 걸린다.


운탄고도따라 걷다 보면 다양한 명소가 나온다. 영월 청령포에서 각동리로 이어지는 15.6㎞ 운탄고도 1길은 성찰과 여유, 이해와 치유의 트레킹 코스다. 열일곱 살 어린 나이로 비운의 생을 마감한 단종의 넋이 서린 청령포에서 시작해 동강을 따라가다 보면 4억년 전 자연의 신비를 고스란히 간직한 고씨동굴에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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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정선군 사북읍 운탄고도 5길 모습. 이 길은 과거 광부들이 캔 석탄을 나르던 길이다. 사진 강원도관광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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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정선군 사북읍 운탄고도 5길의 풍경. 이 길은 과거 광부들이 캔 석탄을 나르던 길이다. 사진 강원도관광재단

운탄고도 총 길이 173㎞, ‘8박 9일’ 걸려

운탄고도 2길은 방랑으로 평생을 살았던 김삿갓과 함께 걷는 길이다. 모운동까지 18.8㎞ 코스다. 늘보마을과 포도마을을 지나 와인 향기가 풍기는 예밀촌에서 한숨을 돌린 뒤 가파른 길을 오르면 모운동이 나온다. 운탄고도 3길은 모운동에서 정선 예미역으로 가는 16.83㎞ 코스다.


운탄고도 4길은 정선 예미역에서 정선 화절령을 잇는 28.76㎞ 코스로 여전히 운탄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전지현과 차태현이 주연한 영화 ‘엽기적인 그녀’의 ‘엽기소나무’가 있는 새비재 정상 ‘타임캡슐공원’에서 두위봉을 거쳐 종착지인 화절령에 이르는 길은 트레킹의 재미를 한껏 느낄 수 있다.


화절령에서 함백산 만항재까지 15.7㎞ 운탄고도 5길은 광부와 광부 아내의 높고 애틋한 사랑의 길이다. 광부를 남편으로 둔 아내들의 애타는 마음이 담겨 있는 도롱이 연못과 캄캄한 막장으로 들어가는 갱도의 입구인 ‘1177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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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정선군 사북읍 운탄고도 5길에 있는 1177갱 입구. 사진 정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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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삼척시 도계읍 운탄고도 7길에 있는 미인폭포. 이 폭포의 길이는 약 30m로 장대한 물기둥과 물안개를 감상할 수 있다. 사진 삼척시

사냥꾼들 멧돼지 잡아 구워 먹던 ‘지지리골’

운탄고도 6길은 함백산에서 태백 산업전사위령탑으로 이어지는 16.77㎞ 코스다. 사냥꾼들이 멧돼지를 잡은 뒤 돌을 달궈 구워 먹던 지지리골 자작나무 숲을 지나 산에서 내려가면 한때 번성했던 탄광촌인 상장동 벽화마을이 모습을 드러낸다.


운탄고도 7길은 산업전사위령탑에서 시작해 통리를 거쳐 삼척 도계역(18.63㎞)으로 이어진다. 통리역은 예로부터 태백지역에서 내륙과 바다의 산물이 만나는 곳이었다. 통리역으로 가는 길은 경사가 너무 심해 기차가 멈춰야만 했다. 승객들은 걸어서 고갯길을 오르내렸고 화물열차는 쇠밧줄로 한 량씩 끌어서 올리거나 내려보냈다고 한다.


7길에선 ‘미인폭포’를 감상할 수 있다. 미인폭포는 미국의 그랜드캐니언과 지질학적 특성이 비슷해 한국의 그랜드캐니언이라 불리는 통리 협곡 내에 위치한 폭포다. 석회질 성분으로 인해 물빛이 신비롭고 이국적인 비취색이다. 폭포 길이는 약 30m로 장대한 물기둥과 물안개를 감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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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삼척시에 있는 새천년도로는 운탄고도의 마지막인 9길에 있다. 동해를 품은 새천년도로를 걷다 보면 새천년의 소망을 담아 2000년에 건립한 소망의 탑이 나온다. 사진 삼척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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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롭고 이국적인 비취색 ‘미인폭포’

운탄고도 8길은 삼척 도계역과 신기역 16.94㎞를 연결한다. 아직도 검은 석탄가루가 날리는 도계역 까막동네를 지나면 지금은 폐역이 된 고사리역, 마차리역을 볼 수 있다.


고사리역에서 하고사리역으로 가는 산자락에 ‘늑구리 은행나무’가 있다. 1986년에 강원도 기념물로 지정된 이 나무는 수령이 약 1500년으로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은행나무다.


운탄고도 마지막 9길은 삼척 신기역에서 새천년도로 소망의 탑(25.15㎞)으로 이어진다. 동해를 품은 새천년도로를 걷다 보면 새천년의 소망을 담아 2000년에 건립한 소망의 탑이 나온다. 소망의 탑은 운탄고도의 최종 종착지다.


영월ㆍ정선=박진호 기자 park.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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