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렁출렁 3.6㎞' 벼랑끝 잔도길···한국의 그랜드캐니언이 떴다
강원도 철원 한탄강 주상절리길이 11월 18일 개장했다.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의 절경을 감상하며 걷는 길이다. |
군청 홈페이지에 접속하면 포탄 사격과 전차포 훈련 안내문부터 보이는 고장이 강원도 철원이다. 유명 식당을 가도 손님 3분의 1은 군복을 입고 있다. 대표 관광지 목록에는 제2땅굴, 백마고지 전적비 같은 군사 유적지가 허다하다. 휴전선 접경 최전방, 병영 생활의 추억 같은 말부터 떠오르는 철원이 요새 달라졌다. 말 그대로 ‘대박’ 관광 아이템이 등장했다. 바로 한탄강 주상절리길이다. ‘한국의 그랜드 캐니언’으로 불리는 한탄강 협곡에 잔도를 설치해 빼어난 자연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9일 한탄강을 다녀왔다.
유네스코도 인정한 절경
한탄강은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이다. 2015년 환경부가 한탄강 일대 1165㎢를 국가지질공원으로 지정한 지 5년 만인 2020년 유네스코도 세계적인 지질 명소로 인정했다. 화산과 하천 지형이 공존하는 희귀한 자연이어서 강 곳곳이 이미 문화재로 지정돼 있었다. 대교천 현무암 협곡(2004년 천연기념물 제436호), 비둘기낭폭포(2012년 천연기념물 제436호)가 대표적이다.
주상절리길은 3.6km에 이른다. 곳곳에 멋들어진 바위 풍광이 숨어 있다. 강 건너편은 경기도 포천시다. |
세계지질공원은 강원도 철원, 경기도 연천·포천에 걸쳐 있다. 지질 명소 26개도 세 지역에 고루 분포한다. 한탄강 지질공원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절경을 만나고 싶다면 철원으로 가야 한다. 11월 18일 개통한 주상절리길 때문이다. 순담계곡부터 드르니마을까지 3.6㎞에 이르는 협곡에 잔도(棧道)와 전망대 등을 설치해 길을 만들었다. 50~60m 높이 절벽의 30~40m 위치에 잔도를 설치했다. 충북 단양과 전북 순창에도 잔도가 있지만, 길이와 높이는 한탄강이 압도한다. 이미 입소문이 돌아 12월 14일 기준 9만5000명이 넘게 다녀갔다.
그런데 궁금하다. 환경 보호를 중시하는 유네스코가 왜 세계적인 지질 명소에 잔도 설치를 허용했을까? 알고 보니 ‘세계유산’과 달리 ‘지질공원’은 관광지 개발에 관여하지 않는다. 도리어 많은 사람이 방문해 지질 명소를 구경하도록 어느 정도의 개발은 권장한단다. 철원군 건설도시과 이형준 주무관은 “주상절리길은 2015년부터 준비한 사업이었다”며 “일반인이 전혀 볼 수 없던 비경을 잔도를 걸으며 보도록 한 것을 유네스코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고 말했다.
출렁출렁 13개 잔교, 스릴 만끽
9일 오후 순담계곡 매표소 주차장은 인산인해였다. 입구로 들어서자마자 아찔한 잔도길이 시작됐다. 54만~12만 년 전에 화산활동으로 빚어진 절경이 펼쳐졌다. 약 300~400m를 걸으니 '순담스카이 전망대'가 나왔다. 벼랑에 바투 붙어 있던 보행로가 여기서는 협곡 안쪽으로 들어간다. 스릴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다. 신나서 기념사진을 찍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난간을 부여잡고 비명을 지르는 이도 있었다.
순담계곡 쪽 입구에서 걷다보면 만나는 풍광이다. 절벽 위쪽에는 한탄강CC 골프장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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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길이 주상절리길에는 '잔교'가 13개 있다. 다리 대부분이 조금씩 출렁거려 제법 스릴이 느껴진다. 13개 다리의 이름은 주변 지질에 따라 붙였다. 이를테면 '돌개구멍교' 옆에는 원통 모양의 구멍이 난 바위가 있었고, '수평절리교' 건너편에는 가로로 깨진 바위가 켜켜이 쌓여 있었다. 임정호 한탄강 지질공원 해설사는 "주상절리길은 스릴만 즐길 게 아니라 자연의 경이로움을 느끼는 길"이라고 말했다.
한탄강 주상절리길에서도 가장 스릴 넘치는 순담 스카이 전망대. |
한탄강에는 궁예(869~918)와 관련된 지명이 많다. 이를테면 '드르니마을'은 궁예가 쿠데타를 일으킨 왕건으로부터 도망가면서 '들른' 마을이란다. 말을 타고 드르니마을로 가던 궁예가 빠졌던 소(瀟)를 '말등소'라고 한다. 말이 너무 힘들어 대변을 봤다 해서 '말똥소'라고도 한다. 말등소 물빛은 유독 진한 에메랄드빛이었다.
물위 걸으며 감상하는 주상절리
한탄강 주상절리길 입구는 두 개다. 순담 게이트와 드르니 게이트. 스릴 넘치는 잔도가 많은 순담계곡 쪽이 훨씬 인기가 높다. 잔교 몇 개와 스카이 전망대만 보고 발길을 돌리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이왕이면 3.6㎞를 다 걷길 권한다. 다채로운 지질 풍경이 드르니 쪽에 더 많기 때문이다. 드르니쉼터에서 만난 윤순기(66)씨는 "나뭇잎이 다 진 겨울, 주상절리가 또렷하게 보여서 좋았다"고 말했다.
주상절리가 수직으로 갈라진 바위라면 수평절리는 가로 모양으로 갈라진 바위다. |
협곡의 웅장한 풍광을 감상하는 방법이 하나 더 있다. 물 위를 걸으며 지질 명소를 둘러볼 수 있다. 철원군은 2017년부터 한탄강 일부 구간에 부교를 띄워 8㎞에 이르는 '물윗길'을 조성했다. 이전까지는 물이 꽁꽁 어는 한겨울에만 얼음 트레킹으로 강을 걸을 수 있었다. 그러나 철원군이 남다른 발상을 했다. 10월에 부교를 설치했다가 3월에 거두기로 하면서 한 해 중 절반은 물 위를 걸을 수 있게 됐다. 태봉대교부터 순담계곡까지 걸으며 송대소, 고석정 같은 유네스코 지질 명소를 가까이서 볼 수 있다.
해 질 녘 은하수교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철원평야와 한탄강. 강물 위에 떠 있는 부교가 '물윗길'이다. |
2020년 10월에는 송대소 인근에 180m 길이 '은하수교'가 생겼다. 요새 유행하는 출렁다리는 아니다. 갈말읍 상사리 쪽 전망대에 올라가면 너른 철원 평야와 그 틈에 푹 꺼진 한탄강 풍광이 장쾌하게 펼쳐진다. 억겁의 세월 전, 용암이 땅을 뒤덮고 강물이 바위를 깎아낸 장면이 되살아난 것 같았다.
■ 여행정보
한탄강 주상절리길 입장료는 어른 1만원이다. 입장권을 사면 5000원짜리 철원사랑상품권을 준다. 자가용을 가져간다면 드르니 게이트나 순담 게이트 쪽에 차를 세워두고 반대편까지 걸은 뒤 택시를 타고 되돌아가면 편하다. 한탄강 물윗길 입장료도 1만원이다. 역시 5000원짜리 철원사랑상품권을 준다. 한탄강을 구경한 뒤에는 막국수 한 그릇 먹으면 좋다. 60년 역사를 자랑하는 '철원막국수'가 주상절리길에서 가깝다. 막국수 8000원.
철원막국수
철원=글·사진 최승표 기자 spcho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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