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이런 목조주택은 없었다...에너지 절감하는 수퍼-E주택"

'5-Star'인증 인천 논현동 주택

누나와 동생네 가족 "따로 또같이"

설계 시공까지 첨단, 단열효과 극대

중앙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중앙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아직도 사람들이 목조주택이라고 하면 옛날 통나무집만 떠올리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직접 와서 보고는 다들 다시 꼭 물어봅니다. 이게 목조주택 맞냐고요."


인천시 남동구 논현동에 최근 동생 부부네와 나란히 집을 짓고 이사한 김란주(54)씨의 말이다. 김씨는 "10여 년 전부터 아파트를 떠나 주택에서 살아보는 꿈을 꾸었지만 내가 직접 그 꿈을 실현하게 될 줄은 못했다"며 "남동생이 제게 '간절히 원하면 이뤄진다는 말이 맞았다'고 말했다"며 웃었다.


김씨 가족과 그의 동생 가족은 최근 국내에서 매우 특별한 주택의 소유자가 됐다. 그 집이 목조 주택이어서가 아니다. 해외에서 18~19층 규모의 목조 고층빌딩이 지어지고 있는 시대에 목조 주택을 지었다고 해서 놀랄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에너지 절감에 방점을 찍은 친환경 주택이라는 점에선 얘기가 좀 달라진다. 국내서 '고단열·고기밀'의 품질(캐나다우드 '수퍼-E', 한국목조건축협회 '5 Star')을 인증받은 주택으로 열 손가락 안에 든다. 더구나 두 집이 벽을 맞댄 듀플렉스(Duplex) 구조로 이 인증을 받은 것은 처음이다. 목조주택의 최첨단 진화 모델인 셈이다.



'친환경 주택'이 목표였다


건축가 강승희(노바건축 대표)소장에게 설계를 의뢰한 김씨는 집 지을 땅을 구입했을 때부터 집을 콘크리트가 아니라 나무로 짓겠다는 의지가 확고했다. "지난 10년간 집짓기에 대한 다양한 책을 읽으며 정보를 모아왔다"는 그는 "아파트는 어쩔 수 없었지만 내가 살 집만큼은 환경 호르몬이 없는 집으로 짓고 싶었다. 국내에서 목조주택 작업 경험이 풍부한 건축가를 수소문하다가 강 소장을 만났다"고 말했다.


강 소장의 목조건축 경력은 18년. 그는 건축가 주대관(건축가·도시문화연구소 대표)소장이 2002년부터 농촌 지역의 노인주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추진한 농촌 집짓기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목조주택 작업을 해왔다. 그러나 이번 주택은 건축가인 그에게도 남다른 도전이었다. 20년 가까이 축적해온 목조 설계 노하우를 집대성한 것은 물론 설계부터 시공까지 엄격하게 유럽식 '패시브하우스( Passivhaus)'와 견줄 만큼 에너지 효율과 공기의 질, 내구성을 높여 공식기관에서 인증받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벽을 맞댄 두 채의 '다른 집'

중앙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중앙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20대 남매를 둔 누나 가족과 취학을 앞둔 쌍둥이 형제를 둔 남동생 가족이 돈을 합쳐 한국주택공사(LH)에서 분양받은 땅은 300㎡(약 90평)규모. 이들은 각자 살던 시흥의 아파트를 처분하는 대신에 이곳에 벽을 맞댄 두 건물을 짓기로 했다.


두 집 건축면적(바닥 면적)을 합쳐 127㎡(38평). 1~2층을 모두 합친 연면적이 약 198㎡(60평)이다. 20대 자녀를 둔 누나 가족이 1층 면적이 20평이 채 안 되는 '작은 절반'을 택했고, 어린아이가 있는 동생네 가족이 '더 넓은 절반'을 차지했다. 두 집의 구조는 가족들의 요구에 따라 완전히 다르게 설계됐다. 누나네 가족은 "1층에 부부 침실과 부엌과 거실을, 2층에 자녀들의 방을 만들었다. 반면 동생네 가족은 1층은 넓게 부엌과 거실만 두고, 2층에 부부 침실과 아이들의 방을 만들었다. 설계를 맡은 강 소장은 "보통 아파트의 천장고는 2.3m이지만 이 집은 2.7m로 설계해 비록 면적은 작아도 공간감이 넓게 느껴지도록 설계했다"면서 "그 밖에도 2층에 제2 거실(누나네), 3층에 다락방과 통창 욕실(동생네) 등 각기 개성에 따라 가족들이 요청한 공간이 만들어졌다"고 덧붙였다.


완벽한 두 집으로 설계됐지만, 이들에겐 특별한 공유 공간도 생겼다. 바로 마당과 2층의 테라스 공간이다. 김씨는 "이제 날이 따뜻해지면 이곳에서 바비큐도 하고 정원도 가꿔볼 계획"이라고 밝혔다.

중앙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중앙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첨단 목구조 기술 어디까지 왔나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이 주택을 첨단화에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은 바로 다름 아닌 집 구조를 지탱한 자재, 즉 나무다. 나무가 철근과 콘크리트와 견줄 만큼 단단한 구조재로 쓰인 것이다. 강 소장은 "내진 성능 강화를 위해 최근 북미 목구조에서 개발한 목재(중판내력벽·Mid-Ply Wall)을 썼다"면서 "국내에서는 아직 생소한 공법이지만 공학적으로 벽체의 하중을 분산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한다."고 설명했다.


짓는 과정도 독특했다. 이 주택은 건물의 벽체와 지붕, 바닥 등의 구조체를 공장에서 패널 형태로 만들어 공사 현장에서 결합하는 방식으로 지어졌다. 이른바 '레디 메이드'다. 시공을 맡은 홍규택(나무이야기 대표) 소장은 "구조체를 공장에서 제작해와 현장에서 공사 시간을 크게 줄일 수 있었다"면서 "정확성을 높이기 위해선 무엇보다도 건축설계와 구조 설계 등 제작 도면이 치밀하게 만들어져야 했다"고 강조했다.


강 소장은 " 지난 20년간 공학목재가 크게 진화했는데도 불구하고 아직도 국내에선 목조 건축물이 불과 물에 약할 것이라는 선입견이 팽배하다"면서 "무엇보다 목조건축에 대한 정확한 정보와 연구가 시급하다. 지금 해외에선 초고층 목조빌딩에 도전하고 있는데 목조건축의 전통을 자랑하는 한국에선 정작 많은 사람들이 '목조=통나무집'이라는 낡은 프레임에 갇혀 있다"고 아쉬워했다.



해외는 지금 '초고층 목조빌딩' 도전 중

중앙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중앙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중앙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국내에선 목조 건축이 주로 '단독 주택'에 한정돼 있는 반면 해외에선 목구조로 고층 빌딩 짓기가 한창이다. 나무(wood)와 고층빌딩(skyscraper)를 결합해 '우드스크레이퍼( woodscraper)'란 신조어가 생겨났을 정도다. 목조 건축이야말로 미래 건축의 혁신적 대안이라고 주장하는 건축가들도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이들의 이런 믿음을 뒷받침하고 있는 것은 테크놀로지의 눈부신 발전이다. 캐나다·노르웨이 등지에서 첨단 기술로 생산해낸 목재(CLT와 글루램 등)가 콘크리트와 강철을 대체할 만큼 충분히 강하고, 생산에 드는 에너지가 적어 오히려 콘크리트보다 '친환경' '미래형' 소재로 가장 적합하다는 주장이다.


세계적으로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해 탄소 발자국(Carbon Footprint)을 줄이려는 노력이 한창인데, 목재야말로 탄소 발자국을 줄이는데 가장 적합한 건축 재료라는 것이다. 탄소 발자국은 기업, 국가 등이 상품을 생산하고 소비하는 전체 과정을 통해 발생시키는 이산화탄소의 총량을 뜻한다. 목재는 콘크리트보다 훨씬 적은 양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


지난달 스웨덴 스톡홀름에선 1시간 거리의 지역에 8.5층 높이의 아파트 건물이 완공됐다. 최근 주민들의 입주가 시작된 이 건물은 스웨덴에서 가장 높은 목조빌딩으로, 스웨덴의 유명 건축설계사무소 C. F. 뮐러 아키텍츠(C. F. Møller Architects)가 설계했다.


C. F. 뮐러 아키텍츠는 목조 빌딩 건설에 주력해온 설계사무소다. 지난 2014년 34층짜리 목조 고층 아파트를 짓겠다고 발표해 세계에서 화제를 모은 바 있다. 건축 전문매체 아키데일리(Archidaily)는 "이 목조 아파트의 모든 벽, 빔, 발코니, 승강기. 그리고 계단실은 모두 대표적인 공학목재인 CLT( cross-laminated timber)로 만들어져 있다"면서 "글루램(glulam)등의 첨단 소재를 사용해 추가 마감재 없이도 에너지 효율성을 높일 수 있었다"고 전했다.


현재까지 지어진 목조 건축물 중 세계에서 가장 가장 높은 빌딩은 노르웨에 있다. 중부 소도시인 브루문달 인근에 세워진 건물 '미에스토르네'로 280피트(85m)높이, 18층 규모다. 그 안에 72개의 호텔 객실과 식당, 사무실, 33개의 아파트 등이 있다.


1년 전 노르웨이 미에스로트네가 지어지기 전까지 세계 초고층 기록을 쥐고 있었던 것은 캐나다의 벤쿠버 UBC(브리티시 컬럼비아 대학)의 학생 기숙사 '브룩 커먼스(Brock Commons Tallwood House)'였다. 캐나다의 액턴 오스트리 아키텍츠( Acton Ostry Architects)가 설계하고 2017년 완공된 이 건물은 높이 53m, 18층 규모다.


일본도 목조 고층 빌딩 건축에 도전장을 던진 상태다. 2018년 일본 목재 회사 수미토모 목재(Sumitomo Forestry)는 2041년 회사 창립 350주년을 기념하며 세계에서 가장 높은 목조 고층 빌딩을 짓겠다고 발표했다. 이른바 'W350'라 이름붙인 이 고층 빌딩은 70층 규모로 높이 350m에 달할 계획이다. 이 빌딩은 철골과 목재로 만든 기둥과 보가 있는 구조(브레이스 튜브)를 사용하며, 대각선 철제 버팀목으로 보완되는 하이브리드 구조로 지어질 예정이다.


국내에도 목조 건축을 연구하는 건축가들이 있다. 한국에서 가장 높은 목조 건물은 지난해 4월 준공된 경북 영지 가흥택지에 자리한 산림청 국립산림과학원의 한그린 목조관이다. 지하 1층 지상 5층 규모로 높이는 19.2m다. 이 건물에는 2시간 내화(耐火) 조건을 갖추기 위해 25㎝가 넘은 두꺼운 합판 형태의 재료와 접합기술 등 건축기술이 적용됐다.


이은주 기자 julee@joongang.co.kr


중앙일보 '홈페이지' / '페이스북' 친구추가


이슈를 쉽게 정리해주는 '썰리'


ⓒ중앙일보(https://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늘의 실시간
BEST
joongang
채널명
중앙일보
소개글
신뢰할 수 있는 뉴스,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