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의 총영사관 폐쇄령, 中은 기밀문서부터 태웠다 '휴스턴 쇼크'
창밖 문서 투척, 소방관 진입 막아
현지 언론 “기밀 태우다 불난 듯”
미, 중국 외교관 스파이 활동 의심
NYT “중국 당원 방미 금지도 검토”
미국 휴스턴의 중국 총영사관 안에서 21일 직원들이 서류를 불태우고 있는 모습을 미국 현지 방송이 보도했다. [사진 KPRC2 화면 캡처] |
미국이 22일 휴스턴 주재 중국 총영사관 폐쇄 요청의 이유로 댄 건 ‘미국의 지식재산권과 국민의 개인정보 보호’였다. 후폭풍을 모를 리 없는 미국이 주재 공관 폐쇄라는 전례를 찾기 힘든 조치를 취한 건 중국이 조직적으로 이를 침해하는 행위를 했다는 증거를 이미 확보했기 때문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미 뉴욕타임스(NYT)는 이번 사안을 두고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 내 중국 외교관, 언론 등에 대한 고삐를 죄기 위해 취하는 일련의 조치 중 가장 최근에 나온 것”이라고 해석했다. 미국은 이미 지난해부터 미국 내 중국 외교관들에게 모든 면담을 국무부에 보고하라고 관련 규정을 개정했다. NYT는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 공산당원과 가족들의 미국 여행을 금지하는 방안도 검토 중인데, 2억7000만 명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도 전했다.
미국이 이처럼 국제사회에서 금기시되는 외교관에 대한 공격적 조치를 연이어 취하는 데는 미국 민간인과 민간 기업을 대상으로 한 첩보전에까지 중국 정부가 관여하고 있다는 인식 때문으로 보인다. 정부의 지시를 받은 중국 외교관들이 사실상 스파이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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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넘어간 정보, 미국인 감시에 사용”
지난 12일 폭스뉴스에 출연한 피터 나바로 미 백악관 무역제조업정책국장도 중국 소셜미디어 앱인 위챗과 틱톡 사용 금지를 시사하며 비슷한 취지의 주장을 했다. 그는 “즐겁게 앱을 이용하는 동안 정보가 중국 군과 공산당으로 흘러 들어간다. 이 앱들은 (미국인) 협박에 쓸 개인정보를 훔치는 데 쓰이고, 사업상 기밀과 지식재산권을 훔치는 데도 쓰인다”고 말했다. 또 “최악은 (중국 정부가) 이런 정보들을 미국인을 감시하고 추적하는 데 쓰고, 미국인과 우리 대통령을 대상으로 한 정보전(information warfare)에 활용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성한 고려대 국제대학원장은 “중국은 그간 해킹이나 거짓 정보를 활용한 여론전 등을 통해 전쟁도, 평화도 아닌 상태를 유지하며 미국과 경쟁하는 회색지대 전략(gray zone strategy)을 구사해 왔다. 미국이 이런 중국의 오래된 전략적 관행에 쐐기를 박으려는 첫 번째 조치를 취한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이 이미 ‘스모킹 건’을 확보했을 가능성도 주목된다. 통상 외교관이 간첩 행위에 연루되면 추방한 뒤 외교상 기피인물(persona non grata)로 지정하는데, 공관을 통째로 닫은 건 그 정도 수준이 아니라는 뜻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우정엽 세종연구소 미국연구센터장은 “개인의 추방으로 그치지 않은 것은 그 이상으로 중국 정부가 직접적·조직적으로 개입했다는 방증일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 내 여러 중국 공관 중 휴스턴을 타깃으로 한 데 대해서는 “휴스턴 총영사관의 직원들이 특별히 문제가 되는 행위에 가담했을 가능성도 있고, 영사관 직원으로 등록은 돼 있지만 주업무는 다른 일이었다는 증거를 확보했을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휴스턴은 미국의 대표적 기술 도시로, 의학과 제약 분야 연구가 활발하게 이뤄진다. 미 항공우주국(NASA) 존슨우주센터도 휴스턴에 있다.
“대선 앞둔 미국, 더 강한 조치 취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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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사스는 보수층 유권자가 많은 전통적인 공화당의 텃밭이기도 하다. 하지만 대선이 채 4개월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최근 텍사스의 코로나19 감염자가 늘어나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이 하락세라 트럼프 진영은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이번 조치가 향후 미·중 관계에 미칠 파장은 쉽게 예측하기 어렵다. 김성한 원장은 “의미를 과소평가할 수 없는 강수가 나온 것은 맞지만, 11월 대선을 앞두고 중국을 타깃으로 하는 미국의 더 강한 대응들이 나올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양국 관계의 변곡점으로까지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우정엽 센터장은 “관건은 양국 지도자들이 결단해 풀 수 있는, 즉 정치적으로 만회할 수 있는 공간을 어느 정도 남겨 두느냐인데 이번 조치는 그런 공간을 상당히 좁혀 놓는 것이라 향후 문제를 풀기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당장은 중국의 맞대응 수위가 확전으로 갈지 여부에 직접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로이터통신은 중국이 우한 주재 미국 총영사관을 폐쇄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보도했다.
중국 인터넷상에서는 연초 코로나19 사태로 철수했던 주우한 미국 총영사관 인력들이 최근 중국에 재입국하려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라는 설도 돌았다. 중국이 감염 여부 조사를 이유로 미국 외교관들의 유전자 정보를 수집하려 해 미국이 거부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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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스턴의 중국 총영사관은 폐쇄를 통보받은 후 곧바로 기밀문서를 없애는 작업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이날 저녁 총영사관에서 화재가 발생해 소방대가 출동했으나 중국 측의 거부로 내부에 진입하지 못했다. 현지 방송들은 총영사관 건물에서 창문 밖으로 종이를 던지는 중국 직원들과 총영사관 안에 놓인 여러 개의 통에서 뭔가가 타고 있는 모습을 보도했다. 현지 언론들은 총영사관 직원들이 퇴거에 앞서 기밀문서를 태우다가 불이 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베이징=유상철 특파원, 서울=유지혜 국제외교안보에디터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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