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아이러니…보수를 찔렀던 칼잡이, 보수의 아이콘 됐다
윤석열 검찰총장 [연합뉴스] |
현직 권력기관장인 윤석열(60·사법연수원 23기) 검찰총장이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 조사에서 조사 대상에 포함되자마자 10%대 지지율로 단숨에 야권 주자 1위에 올라섰다. 취임 당시 ‘코드‧보은 인사’라고 윤 총장을 비판하던 야권의 가장 유력한 차기 대선 후보가 된 역설이 빚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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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 취임 때 “코드‧보은 인사”라던 野
지난해 8월 시작한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수사 전까지만 해도 윤 총장은 ‘文의 사람’으로 손꼽혔다. 그로부터 2개월 전, 검찰총장 내정 때 자유한국당(현 미래통합당)은 “적폐 수사에 대한 ‘보은 인사’”라는 비판을 쏟아냈다.
야권과의 악연은 2013년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사건 수사가 시작이다. 이 수사 자체가 박근혜 정부의 정통성을 뒤흔드는 ‘불법 대선 의혹’이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윤 총장이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떨치게 된 계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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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특별수사팀장이던 그는 같은 해 10월 서울고검 국정감사에서 “수사 과정에서 외압을 받은 적이 있다”는 폭탄 발언을 했다. 검찰 수뇌부가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게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하는 것을 반대했음을 당사자 면전에서 폭로한 것이다.
“저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윤 총장의 발언도 두고두고 화제가 됐다. 당시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트위터에 이를 인용했다.
반면 여당이던 새누리당(현 미래통합당)은 이를 ‘항명’, ‘하극상’이라며 비판했다. 결국 윤 총장은 검찰 지휘부에 보고를 누락했다는 등의 이유로 정직 1개월의 징계를 받고, 2014년부터 3년 가까이 지방을 떠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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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박근혜·양승태 모두 尹
반전은 적폐수사로 찾아왔다. 박근혜 정부 국정 농단 수사와 사법농단 수사를 거치며 윤 총장에 대한 칭송은 신화로 발전했다. 헌정 역사상 처음으로 전직 대법원장을 법정에 넘기고, 이명박(MB) 전 대통령의 뇌물‧횡령 사건까지 파헤치면서 보수 정당을 사실상 존폐의 기로로 내몬 성과를 거뒀다는 얘기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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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공로를 인정 받아 윤 총장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서울중앙지검장과 검찰총장으로 발탁됐다. 야권을 정조준한 수사로 재기에 성공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민경욱 자유한국당 대변인은 이를 두고 “윤석열은 야권 인사들을 향한 강압적 수사와 압수수색 등으로 ‘문재인 사람’임을 몸소 보여줬다”고 맹비난했다.
현 상황은 정반대다. 윤 총장이 단숨에 유력 주자로 떠오른 건 추미애 법무부 장관을 비롯한 여권 인사들의 ‘윤석열 때리기’ 영향으로 풀이된다. 여권의 계속된 ‘윤석열 끌어내리기’가 되레 윤 총장의 존재감을 부각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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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주자…尹, 호재일까 악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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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두고 검찰 안팎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한 현직 검사는 “‘야권 1위’는 윤 총장을 다시 한 번 ‘정치세력’으로 낙인찍는 것”이라며 “공익을 수호하는 검찰총장과 대선 후보는 함께 갈 수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법조계 인사는 “야권 1위라지만 지지율은 10% 안팎”이라며 “되레 ‘법과 원칙’을 강조하는 윤 총장의 입지를 옹색하게 만들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실제 윤 총장은 지난 1월 세계일보의 차기 대통령 적합도 조사에서 2위에 오르자 “여론조사 후보에서 빼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 총장은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지난해 4월 양정철 민주연구원장과 만났다는 보도가 나오자 “양 원장으로부터 총선 출마를 권유받았지만 거절했다”는 취지로 해명한 바 있다.
김수민 기자 kim.sumin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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