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명숙이 콕콕 집었다. 관광객은 모르는 서귀포 비밀의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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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 아직 이런 풍경이 남아있을 줄 상상도 못했다. 문자 그대로 비경이었다. 기가 막힌 건, 이젠 제법 안다고 믿었던 서귀포 시내에, 그러니까 하루에도 수만 명이 어깨 부딪히는 서귀포 도심에 한라산 깊은 골에서나 만날 법한 풍광이 여태 꽁꽁 숨어있다는 사실이었다. 이 천혜의 비경이 도심공원이라는 설명에 차라리 맥이 풀렸다. 몰랐다. 서귀포는 비밀 공원의 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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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올레 서명숙(62) 이사장이 『서귀포를 아시나요』(마음의숲)를 펴냈다. 서귀포 여자 서명숙의 서귀포 스토리라 할 수 있는데, 서귀포의 시크릿 가든이 책 곳곳에서 툭툭 등장한다. 어쩌면 은근한, 아니 노골적인 자랑이었다. 동네 사람만 아는 비밀 공원이 보석처럼 박혀 있어 아침에도 저녁에도 어슬렁댄다는 고백이 자랑 아니면 무엇일까.
책은 어릴 적 추억을 담은 여느 고향 이야기처럼 포근하다. 숫기없는 소녀 ‘맹숙이’의 일기를 들춰보는 것 같다. 이를테면 평생 고향을 그리워하다 돌아간 인민군 탈영병 아버지의 사연은 서 이사장이 처음 털어놓은 가족사다. 하나 여행기자의 눈길이 멈춘 건, 전 세계를 걷고 다니는 여자 서명숙이 들려주는 제 고향의 공원 자랑이었다.
서명숙 이사장과 서귀포의 시크릿 가든을 찾아다녔다. 책에 나오는 공원 5개를 걸어서 돌아봤다. 제주올레 여행자센터에서 시작해 시계 반대방향으로 서귀포 도심을 한 바퀴 돌며 공원을 탐방했다. 3시간이 넘게 걸렸고, 거리는 10㎞를 웃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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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부터 말해야겠다. 지금의 서귀포는 제주도의 절반이다. 서귀포시는 백록담 남쪽을 아우르는 행정지명이다. 애초의 서귀포는 달랐다. 소녀 맹숙이의 서귀포는 남(南)으로 난 작은 포구마을이었다. 왼쪽으로는 삼매봉 아래 외돌개에서 오른쪽으로는 소남머리 지나 정방폭포까지가 서귀포 사람이 기억하는 본래의 서귀포다. 소녀 맹숙이에게도 이 바깥은 다른 세상이었다.
제주올레 여행자센터에서 나와 5분 만에 걸매생태공원을 만났다. 제주올레 7-1코스를 걸을 때 지났던 도심공원이다. 한라산이 훤히 내다보이는 조망이 압권이다. 걸매생태공원에서 서홍천을 따라 내려가니 칠십리시공원이 이어졌다. 제주도를 노래한 시비(詩碑)가 서 있는 문학공원인데, 이 공원도 천하의 전망을 자랑한다. 서홍천이 바다로 떨어지는 물길이 바로 천지연폭포다. 관광객은 폭포 아래에서 올려다보지만, 서귀포 사람은 폭포 위에서 내려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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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십리시공원에서 내려오면 아담한 포구마을이 나타난다. 이 항구가 서귀포다. 너무 작아서 서귀포라는 이름이 되레 어색하다. 서명숙은 연근해 어선만 들고 나는 선착장에 앉아 옛 이야기를 들려줬다.
“서귀포에도 ‘세월호 사건’이 있었어. 1970년 12월 10일 부산으로 떠난 남영호가 여수 앞바다에서 침몰했어. 그때 323명이 못 돌아왔어. 내 친구 해란이 엄마는 그 배를 탔고, 우리 엄마는 탈 뻔했다가 안 탔고. 남영호가 바로 여기에서 나갔어. 지금도 생생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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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는 비극의 섬이다. 절경마다 눈물이 배어 있다. 맹숙이가 친구들과 멱감던 자구리공원을 지나면 소남머리다. 정방폭포가 내려다보이는 이 해안절벽에서 수백 명이 처형당했다. 4ㆍ3사건 때 벌어졌던 참극이다.
서복불로초공원에서 옆길로 샜다. 자동차 달리는 다리 아래로 수로가 이어졌다. 주위가 갑자기 조용해졌다. 왜가리 노니는 개울 양옆으로 수풀이 우거졌다. 말 그대로 시크릿 가든이었다. 서귀포의 다른 공원들은 스쳐 지나가기라도 했는데, 이 비경은 처음이었다. 서 이사장이 “정모시공원이야. 책에서 뺄까 잠깐 고민했던 나만의 아지트”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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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 여자 서명숙이 “서귀포를 아시느냐?” 물어왔다. 제법 안다고 여겼는데, 아니었다. 서귀포 구석구석에 들어앉은 공원을 돌아다니다 이 비밀 같은 도시에서는 길을 잃어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제주=손민호 기자 ploves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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