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춘객 차량들 왜 4㎞ 줄설까…서산 백년 고택 ‘수선화의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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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방가옥. 낯선 이름의 시골집이 올봄 SNS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유기방가옥은 충남 서산에 자리한 백 년 묵은 고택이다. ‘충남 30경(景)’은커녕 ‘서산 9경’에도 들지 않은 곳인데, 전국에서 몰려온 상춘객으로 북새통이다. 이유는 하나. 고택 들어앉은 산자락을 노랗게 물들인 수선화 덕분이다. 천상의 화원 같은 풍경으로 명성을 얻긴 했지만, 이 집의 자세한 내막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2021년 봄 SNS를 도배한 사진 이면의 사연이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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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침했던 대나무숲이 꽃밭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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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방가옥은 유기방(73)씨가 사는 집이다. 유기(鍮器)그릇을 만드는 방(房)으로 착각하는 사람도 있다는데, 유기방가옥은 유기와 전혀 관계가 없다. 고택은 1919년에 지었다. 2005년 충남 민속문화재 제23호로 지정됐는데, 전국적 관심을 끈 건 비교적 최근 일이다. 물론 수선화 때문이다.
인근 가좌리에서 벼농사를 짓던 유씨는 약 23년 전 종갓집인 이곳에서 살기 시작했다. 장자가 아니었지만, 집안 어른의 신망을 얻어 종갓집에 들어올 수 있었다. 어른의 믿음처럼 그는 종가집을 아끼며 여태 고향을 지키고 있다. 23년 전 집에 들어올 때 마당에 피어 있던 수선화 몇 송이가 유씨의 눈에 들어왔다. 방긋 웃는 아이 얼굴 같으면서도 자신처럼 생명력이 강해 마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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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산에 유독 대나무가 많았는데 골칫거리였어요. 뿌리가 담을 헐기도 하고, 소나무를 고사시키기도 했죠. 대나무의 음침한 기운도 영 싫더라고요. 그래서 닥치는 대로 베고 그 자리에 수선화를 심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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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를 졸업하고 농사만 지은 그가 조경과 원예를 알 리 없었다. 오직 수선화만 심었다. 농사하듯 1년 내내 수선화를 돌보고 증식하는 데 골몰했다. 어느새 수선화밭이 고택 주변을 환하게 밝히더니 야산 전체로 번졌다. 약 8만2000㎡(2만5000평) 부지 중에 6만6000㎡(2만평)가 꽃으로 덮였다.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드라마 ‘직장의 신(2013)’과 ‘미스터 선사인(2018)’ 촬영지로 알려지면서 서산뿐 아니라 전국에서 사람들이 찾아들었다. 2018년 봄부터 고택 보존과 수선화 관리를 위해 입장료(5000원)를 받기 시작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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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선화가 힘내라고 합창하는 것 같아.”
유기방가옥은 수선화가 피기 시작할 때부터 한 달 남짓 입장객을 받는다. 올봄은 개화가 빨라 3월 12일 개방했다. 이달 말까지 문을 열어둘 참이다. 수선화가 만개한 요즘은 평일에도 주차장에 차 대기가 쉽지 않다. 주말에는 방문객이 1만 명이 넘고, 자동차로 약 4㎞ 거리인 서산IC부터 길이 막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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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도 마찬가지였다. 인파를 헤치고 고택을 구경했다. 유씨 말마따나 유기방가옥은 청와대나 강릉 선교장이 부럽지 않은 명당이었다. 솔숲이 아늑하게 집을 감싸 안았고 남쪽으로 시야가 탁 트였다. 수백 년 역사를 자랑하는 나무도 많았다. 317년 전 제주도에서 옮겨다 심은 비자나무, 수령 400년에 달하는 감나무가 묘한 기운을 내뿜었다.
주인공은 역시 수선화였다. 집에 들어설 때부터 농밀한 꽃향기가 코를 찔렀다. 꽃 모양 때문인지 지상에서 수천만 개 별이 반짝이는 것 같았다. 수선화를 보며 수채화를 그리던 오영숙(59)씨는 “한국에서 이렇게 멋진 꽃 군락지는 보지 못했다”며 “그림을 그리며 천천히 풍경을 음미하니 더 감격스럽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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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많은 사람이 찾으니 마냥 좋을 것 같지만 유씨는 시름이 깊다. 갑작스레 늘어난 인파를 감당하기엔 주차난이 심각한 까닭이다. 화장실도 부족하다. 사람들이 사진 찍느라 꽃을 짓밟는 모습을 볼 때면 가슴이 쓰리단다. 그런데도 유씨는 수선화 얘기를 할 때만큼은 해맑은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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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처럼, 황금처럼 수선화를 아꼈더니 이제는 내가 저들에게 위로를 받아요. 어떨 때는 날 보고 합창하는 것 같아요. ‘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 왜 그런 노래 있잖아요.”
서산=글·사진 최승표 기자 spcho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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