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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처]by 중앙일보

둘이 합쳐 177살, 65년차 일본 노부부의 동화같은 슬로라이프

6일 개봉 다큐멘터리 '인생 후르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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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인생 후르츠'. [사진 엣나인필름]

성냥갑 같은 아파트 단지 한복판에 작은 공원 같은 집이 있다. 둘이 합쳐 177살, 백발 성성한 부부가 손수 일군 숲이 단층 통나무집을 에워싸듯 우거졌다.


‘작약, 미인이려나?’ ‘죽순아, 안녕!’ 심어둔 걸 혹여 잊을까 곳곳에 꽂은 나무푯말엔 이런 문구와 함께 노부부의 모습이 귀여운 만화로 그려져 있다. 꼼꼼하고 다정한 남편 솜씨다. 결혼 65년차 부부지만 여전히 로맨티스트다.


이는 6일 개봉하는 다큐멘터리 ‘인생 후르츠’ 한 장면. 이런 동화 같은 삶의 주인공은 일본의 건축가 츠바타 슈이치씨와 아내 히데코씨다. 영화가 촬영된 2014년 각각 90세와 87세. 이 부부의 슬로라이프엔 시골살이를 꿈꿔본 이라면 닮고 싶은 장면이 가득하다. 일본에선 지난해 개봉, 20여 만 관객을 모았다. 재관람이 이어지며 1년 넘게 장기 상영하는 극장까지 생겼다.







"인생은 오래 살수록 아름답다"


연출을 맡은 후시하라 켄시 감독 말이다. 방송국 보도국 출신인 그는 2014년부터 2년간 부부의 일상을 촬영해 90분짜리 영화로 농축해냈다. 원래 TV용이었지만, 입소문에 힘입어 개봉까지 하게 됐다. 일본 국민 배우 키키 키린의 친근한 내레이션도 한몫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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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해도 괜찮다. 차근차근, 천천히"

텃밭 일은 하루 1시간, 오후 2시간은 낮잠 자는 게 부부의 일과. 남는 시간엔 해묵은 장지를 갈고, 두 딸과 이웃에 나눠줄 요리를 만든다. 아보카도를 닮은 과육을 쓱쓱 벗겨내 호두알을 모으고, 갓 딴 체리를 모아 잼을 졸인다. 내일 해도 괜찮다는 생각으로 슬슬해야 마음이 편하단다. 각자 잘할 수 있는 것부터 조금씩, 차근차근 시간을 모아 천천히 해나간다.

산새가 쉬어가는 정원엔 부부의 철학이 담겼다. 패전 후 폐허가 된 일본에서 슈이치씨는 집 짓는 일에 뛰어들었다. 도쿄대를 나와 1955년 일본주택공단에 들어간 그는 나고야 교외의 시골 마을 고조지에 뉴타운 도시계획을 맡게 된다. 자연친화적인 설계로 상까지 받았지만, 토목계 반발로 고조지엔 결국 대규모 주택단지가 들어선다. 남아있던 자연조차 사라져버렸다. 밀어버린 땅을 다시 산으로 돌려놓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고조지를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는 고민 끝에 그가 내린 답이 지금의 집이었다.


“남편은 집집마다 작게라도 숲을 만들면 커다란 숲속에 들어가 있는 기분이 들 거라더군요. (중략) 하나코(손녀) 세대에게 좀 더 좋은 흙을 물려줘야죠.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장소를 전해주는 것은 중요하니까요.” 히데코씨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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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금슬 비결 "좋은 일이니까 하세요"

혼자보다 함께한 세월이 더 많은 부부는 살면서 닮아갔다. 슈이치씨가 대학 시절 요트부원들과 잘 곳이 없어 신세를 진 200년 전통 양조장 집 딸이 지금의 아내였다. 삼베 바지에 짚신을 신은 자유로운 남자에게 히데코씨는 한눈에 반했다. 엄격한 가풍 속에 자란 히데코씨가 “무슨 말이든 마음대로 할 수 있게 된 것이 결혼하고부터”란다. “남편에게 이거 해도 될까 물어보면 언제든 ‘그건 좋은 일이니까 하세요’라고 말하니까요. 이후론 점점 내 스스로 행동할 수 있게 됐죠.”

어느 날 슈이치씨는 평생의 꿈을 이룰 기회를 얻는다. 자연과 벗하는 이상적인 건축설계를 의뢰받은 것이다. 이 일에 대가 없이 응할 만큼 기뻐했던 그는, 그러나 다큐멘터리 촬영 도중 잠든 듯 세상을 떠난다. 여느 때처럼 밭일을 하고 잠시 눈을 붙였던 차였다. 떠난 그를 대신해, 영화는 그가 진심을 다했던 마지막 설계가 어떤 결실을 맺는지를 똑똑히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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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 연금 300만원 온도차 있지만…

영화엔 생전 슈이치씨가 받은 한 달 연금 액수가 나온다. 32만 엔, 우리 돈으론 300여만 원이다. 한국의 일반적인 은퇴생활과 현실적인 온도차가 있다. 그럼에도 그들의 말에 귀 기울이게 되는 건 부부가 가꿔온 이런 삶의 철학 때문이다. 부부의 이야기는 책으로도 나왔다. 두 사람이 함께 쓴 『내일도 따뜻한 햇살에서』 『밭일 1시간, 낮잠 2시간』이 국내에도 출간돼있다.

“좀 더 맛있는 걸 해줬다면 좋았을 텐데…, 그런 생각을 하죠. 외롭기보단 가끔 덧없다 느껴져요. 혼자서 몇 년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히데코씨의 말이다. 홀로 새로운 계절을 맞은 그는 텃밭에 남편이 모아두고 떠난 낙엽을 뿌린다.


“바람이 불면 낙엽이 떨어진다. 낙엽이 떨어지면 땅이 비옥해진다. 땅이 비옥해지면 열매가 여문다. 차근차근, 천천히.” 키키 키린의 내레이션이 있는 그대로 와 닿는 결말이다.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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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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