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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후손이 약자인 세상 바꾸고 싶다”

『독립운동 맞습니다』 작가 정상규

군대시절 의열단 후손 만나 관심

“알고 보니 대부분 어렵게 살아”

서훈 받지 못한 열사 32명 조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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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이 됐을 때 가장 먼저 빛을 봐야 하는 분들이 아직도 제대로 조명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아직 서훈조차 받지 못한 독립운동가 32명을 조명하는 책 『독립운동 맞습니다』(아틀리에북스)를 펴낸 정상규(32) 작가는 “결코 사회적 약자여서는 안되는 독립운동가 혹은 후손들이 사회적 약자로 살아가고 있는 세상을 바꾸고 싶다”고 말했다.


13일 서울 순화동 중앙일보에서 만난 그는 “독립운동을 한 경력이 분명히 자료로 남아있지만, 사회 이념과 정치적 문제로 인해 아직 공적을 인정받지 못한 이들이 많다”며 “책을 쓰기 위해 만난 독립운동가의 후손 500여 명 중 70~80%가 기초생활수급자로 어려운 삶을 살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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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등장하는 32명의 사연은 절절하다. 영화 ‘밀정’에서 공유가 연기한 김우진의 모델이 된 김시현(1883~1966)은 ‘황옥경부사건’(1923)으로 알려진 의열단 폭탄 반입 의거에 참여했으며, 독립운동에 투신해 수없이 감옥을 들락날락했던 인물이다. 평생을 독립을 위해 희생했지만 말년에는 극빈자에게 주는 무상배급 밀가루로 연명하다 불우하게 숨졌다. 그는 1952년 이승만 암살 미수 사건에 가담한 전과로 ‘3년 이상 징역이나 금고 형을 받은 자는 포상 받을 수 없다’라는 보훈법 규정에 묶여 지금까지 서훈을 받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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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란이 많은 인물인 김원봉(1898~ 1958)의 이야기도 나온다. 김원봉은 일제 강점기 의열단장, 민족혁명당 총서기, 조선의용대 대장, 대한민국 임시정부 군무부장으로 활동했다. 독립운동사의 핵심 인물이었지만, 1948년 월북했다는 이유로 남한에 남아 있는 그의 가족이 한국전쟁 중 학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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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가려졌던 여성 독립운동가들도 조명한다. 안중근 의사의 여동생으로 오빠의 독립운동을 도왔던 안성녀(1881~1954)가 대표적이다. 그는 북간도·블라디보스토크 등에서 독립운동가들과 함께 생활하며 그들에게 숙식을 제공하고 옷을 바느질해줬으며, 때로는 중요한 문서를 보관하고 넘겨주는 일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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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밖에 조선의용군의 ‘백마 탄 여장군’으로 명성을 날렸던 김명시(1907~1949), ‘한국애국부인회’ 부위원장을 맡아 평생 독립운동과 여성운동을 멈추지 않았던 양귀념(1893~1976), 1913년 최초의 여성 독립운동 단체 ‘송죽회’를 조직한 안맥결(1901~1976) 등도 다뤘다. 이들 모두 아직까지 독립운동가로 서훈이 인정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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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면옥 [사진 아틀리에북스]

잘 알려지지 않은 독립운동가 홍면옥(1884~?)도 등장한다. 그는 경기도 화성시 송산에서 벌어졌던 3·1 독립운동의 중심에 있었던 인물이다. 평범한 농민이었던 그는 1919년 송산면 면사무소 근처에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군중을 동원했다. 일제에 체포돼 징역 8년 10개월 형을 살고 나온 뒤로는 송산면에서 서당을 열어 한글과 애국가를 가르쳤다. 하지만 1949년 갑자기 실종됐고, 월북을 의심받아 그의 가족들은 경찰과 우익 단체로부터 모진 고문을 당했다. 당시 당한 고문으로 몸이 불편했던 그의 아들들은 연좌제가 두려워 긴 세월을 침묵하며 살았고, 독립운동 서훈은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책을 쓴 정 작가는 원래 미국 오리건 대학에서 수학과 경제를 공부한 경제학도였다. 아버지의 병환 소식을 듣고 2013년 미국 영주권 취득 기회를 버리고 귀국, 공군장교로 자원입대하면서 그의 인생이 바뀌었다. 의열단 후손과 함께 군 복무를 하게 되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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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만난 독립운동가 후손들이 자신의 조상에 대해 자랑스럽게 이야기하지 못하고, 위축돼 있고 두려워하는 모습을 봤습니다. 알고 보니 좌익계열의 활동을 했던 의열단 후손이었습니다. 미국은 전쟁 영웅에 대한 예우가 엄청난데, 우리나라는 보훈이라는 영역 안에서도 차별·사각 지대가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사회적 약자로 살아가는 이들을 돕고 싶다는 생각이 절실하게 들었습니다.”


그가 처음으로 한 일은 자비를 들여 ‘독립운동가’ 애플리캐이션(앱)을 만든 것이다. 2015년 출시한 이 앱은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 독립운동가 186명을 선정해 사진 자료와 업적을 정리해 알려준다. 앱을 깔면 독립운동가들이 서거한 날에 핸드폰 문자 알람이 오도록 했다. 정 작가는 “우리가 그 분들을 일상생활 속에서 자연스레 기억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앱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그동안 그는 독립운동가들을 재조명한 『잊혀진 영웅들, 독립운동가』(2017)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을 지원한 기업인들의 사례를 모은 『잃어버린 영웅들』(2018) 등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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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독립운동가들에 대해 예우를 다하지 않고 기억하지 않는다면 국가가 안보 위협에 빠졌을 때, 누가 그들처럼 목숨을 걸고 우리와 우리 가족과 나라를 위해 싸우겠냐”며 “주변국이 역사를 왜곡하고 사과를 하지 않는 상황 속에서 우리가 관심을 갖지 않으면 후대에 왜곡된 역사가 사실로 전달될까 두렵다”고 말했다.


정아람 기자 a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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