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 "다 널 위해서야" 엄마 말이 이렇게 무서울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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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현예슬의 만만한 리뷰(97) 영화 ‘런’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으니 주의하세요!)
2년 전 여름 개봉 첫 주 주말 2위로 출발해 2주간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한 영화가 있었습니다. 제작비 88만 달러로 만든 이 저예산 영화는 흥미로운 스토리와 연출방식으로 80배가 넘는 수익을 올리며 흥행을 올렸는데요. 놀랄만한 일은 이 수익의 3분의 1 이상이 무려 한국에서 나왔다고 하죠.
이 영화는 바로 ‘서치’ 입니다. 컴퓨터 화면과 방송 장면, 영상 통화 화면 등 디지털 기기의 화면으로만 구성된 신선한 연출 방식과 실종된 딸을 찾는 미스터리한 스토리로 한국팬의 마음을 사로잡았는데요.
이렇게 첫 장편 데뷔작에서 흥행과 작품성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은 감독 아니쉬 차간디가 이번에 새로운 영화를 들고 나왔다는 말에 어떤 작품일까 궁금해졌습니다. 스릴러 장르라는 말에 살짝 고민이 됐지만, 이 영화의 번역가 황석희 씨가 SNS에 “잔인하고 무서운 정도는 ‘서치’ 수준”이라고 올린 글을 보고 당장 예매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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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첫 장면부터 흘러나오는 음악 때문에 안 그래도 쫄보인 저를 더 쫄게 만들었습니다. 어두운 화면에 긴장감 넘치는 배경음악, 느낌상 뭔가 무서운 게 등장할 것만 같아 홀로 귀를 틀어막은 가운데 엄마 다이앤(사라 폴슨 분)이 딸 클로이(키에라 앨런 분)를 출산하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태어날 때부터 평생 약을 먹어야 하는 질환과 걷지 못하는 장애를 가진 클로이는 휠체어에 의지하며 엄마 다이앤과 함께 외딴집에 살고 있습니다. 불편한 몸 때문에 정상적인 학교생활을 할 수 없었지만 홈스쿨링을 통해 공부할 수 있었고 이제 대학 입학까지 눈에 앞두고 있죠.
이건 모두 엄마의 사랑과 헌신이었습니다. 매일 수십 개의 약을 챙기고 혈당 때문에 음식도 가려 먹여야 하며 과목별로 시간표를 짜 교육하는 것 역시 모두 다이앤이 엄마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이 덕분에 클로이가 자신의 신체적인 한계에 좌절하지 않고 영민하고 바르게 자랄 수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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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평범한 일상을 보내던 어느 날 클로이는 시장에서 장 보고 돌아온 엄마의 쇼핑백을 확인합니다. 혈당조절 때문에 못 먹던 초콜릿을 몰래 먹기 위해 몇 개 빼내려고 하는데요. 뒤적이던 순간 하나의 약병을 발견하게 됩니다. 엄마의 이름이 써진 약병에 든 초록색 캡슐 형태의 알약. 혹시 엄마에게 내가 모르는 병이 있을까 싶었지만 일단 지은 죄가 있어 모르는 척 넘어갑니다.
그날 저녁 식사 후, 엄마가 자신의 손에 쥐여준 약을 보니 낮에 본 그 약이 들어있었습니다. 이상하다 생각한 클로이는 엄마에게 낮에 있었던 일을 고백하며 엄마의 이름이 써진 약병에서 그 약을 봤다고 하니 잘못 본 거라며 잡아떼는데요. 그러다 사실은 자신의 이름으로 대신 처방을 받았다는 말로 얼버무립니다.
엄마가 하는 말이기에 믿고 약을 입에 털어 넣었던 클로이는 시간이 갈수록 커지는 의심에 직접 확인에 나서는데요. 드러나는 진실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넌 내가 필요해. 이건 다 널 위해서야”라는 엄마 말의 의미가 새삼 다르게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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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의 인터뷰 영상을 보면 “영화는 90분 동안 계속해서 긴장하게 해요. 좌석에 자국이 남을 정도로 땀이 나거나 90분 동안 숨을 쉬지 못했다는 사람도 있었어요. 그게 바로 저희의 의도였어요”라고 말하는데요. 이 말처럼 영화를 보면 90분의 시간이 정말 짧게 느껴집니다.
내가 ‘스릴러’ 장르를 싫어하는 이유가 이 영화에도 고스란히 담겨 있었는데, 영화를 본 지 일주일이 지난 지금 N차 관람을 생각할 만큼 처음엔 긴장하느라 보지 못했던 ‘떡밥’을 회수하러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닌’ 이 영화는 한숨 돌릴 때쯤 등장하는 반전에 다시 숨을 크게 들이쉬게 되는데요. 관객의 입소문을 타 ‘서치’에 이어 흥행 가도를 달릴지(충분히 그럴 것 같지만) 궁금해집니다.
■ 런
영화 '런' 포스터. |
감독: 아니쉬 차간티
각본: 아니쉬 차간티, 세브 오해니언
출연: 사라 폴슨, 키에라 앨런
음악: 토린 보로데일
장르: 미스터리, 스릴러
상영시간: 90분
등급: 15세 관람가
개봉일: 2020년 11월 20일
중앙일보 뉴스제작1팀 hyeon.yese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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