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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시간 사냥당했다는 관객에게 '사냥의 시간' 감독 답하길…

영화 ‘사냥의 시간’ 윤성현 감독

넷플릭스로 190개국 동시 공개

내러티브 위주 한국영화 탈피

"떡밥 말고 감정 따라 봐주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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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 영화지만 애초 시작점은 시나리오 쓸 당시(2016년) 젊은 친구들이 한국사회를 지옥에 빗댄 것이었어요. 젊은 세대의 박탈감, 그런 에너지에 영향 받았죠. 주변 동생, 친구들, 저 또한 많이 힘들었고요. 그런 감정들을 진짜 지옥으로 형상화해 보여주고 싶었죠.”


23일 영화 ‘사냥의 시간’을 넷플릭스를 통해 190여 개국에 동시 공개한 윤성현(38) 감독의 말이다. 27일 화상 인터뷰로 만난 그는 “190개국에 동시 공개한다는 게 기쁘지만 엄청나게 떨렸다“고 털어놨다.


영화의 배경은 경제가 파탄난 근미래 한국. 교도소에서 갓 출소한 준석(이제훈)은 친구들(안재홍‧최우식‧박정민)과 마지막 한탕 범죄에 나섰다가 인간 사냥꾼 한(박해수)과 목숨 건 추격전에 휘말린다.



"내 시간이 사냥당했다" 후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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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조선’과 디스토피아 세계관을 결합한 총제작비 100억원대 대작으로 올 2월 베를린영화제에 초청되며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공개 뒤 반응은 엇갈린다. “못 보던 한국영화다” “긴장감 넘친다”는 호평과 “배우들 호연에 비해 이야기가 부실하다”는 비판이 나뉜다. 공감 얻은 후기 중엔 “내 시간이 사냥당했다”는 것도 있다. 지루했단 얘기다.


이에 윤 감독은 아쉬움을 표했다. “한국영화는 너무 내러티브 중심이어서 ‘사냥의 시간’ 같은 영화를 택했다”면서 “해외에선 워낙 그런 영화가 많다. 얼마 전 개봉한 ‘1917’도 내러티브 없이 그냥 목적지를 향해 도착하고 끝인 영화다. 한국에서도 해보고 싶어 도전했지만, 한국영화는 바라보는 시선이 다른 것 같다”고 토로했다.


이어 “순간순간 반전이나 떡밥을 회수하는 식의 영화가 아니다”며 “아이들 시점 중심으로 이야기를 짰는데 그 너머 이야기를 해주길 바라는 시선으로 보면 지루할 수 있다. 이들이 살아남길 응원하는 마음으로, 가능한 휴대폰 아닌 큰 화면에서 사운드 빵빵하게 들으면서 감정이 흘러가는 대로 봐달라”고 부탁했다.



영화만이 할 수 있는 것 고민했죠


그는 “영화만이 할 수 있는 게 뭘까”란 고민에서 출발했다고 설명했다. “대사나 배우 말고 영화 분위기, 본질에 초점을 맞춘 영화를 만들어보면 어떨까 했다. 음향, 음악, 이미지 여러 요소를 극대화할 수 있는 장르를 택했다”고 했다.


그에겐 10년 만의 두 번째 영화다. 2010년 독립영화 ‘파수꾼’으로 부산국제영화제 뉴커런츠상(신인감독상)을 차지하며 차세대 감독으로 주목받았지만 이후 준비하던 사이버펑크 대작이 투자 문제로 중단되며 상업 데뷔가 늦어졌다. 이번 영화는 ‘파수꾼’ 주역 이제훈‧박정민까지 다시 뭉쳐 절치부심했다.


■ 윤성현 감독이 말하는 캐스팅 비화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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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훈‧박정민은…“‘파수꾼’ 이후 꼭 같이 하고팠다. 언제가 되느냐의 문제였다. 특히 이제훈은 전작에서 너무 좋은 호흡을 보여줘서 더는 놀랄 게 없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파수꾼’이 진정성에 접근한 연기라면 ‘사냥의 시간’은 불안에 떨고 놀라야 하는 기술적인 연기가 많이 필요했는데 그런 부분을 굉장히 잘 준비해왔다.”


Q : 근미래로 설정한 이유는.


A : “근미래 자체보다 우화적인 공간으로 표현되길 바랐다. 절대 이 영화가 SF라 생각하진 않았다. 팀 버튼 영화의 시대상이 불분명한 상상 속 공간처럼 접근했고 거기에 디스토피아적인 비주얼을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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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왜 하필 경제가 파탄 난 사회를 구상했나.


A : “어떤 지옥을 만들거냐 했을 때 남미에 갔던 게 떠올랐다. 화폐가치가 폭락해서 물 한 병을 사는 데 돈다발을 줘야 했다. 저 멀리 총소리가 들려오고, 범죄가 당연시되는 지옥 같은 분위기에도 다들 웃고 떠들면서 사는 게 놀라웠다. 그런 경험과 내가 자라면서 겪은 IMF 외환위기의 기억을 우화적인 세계관에 결합했다.”



'파수꾼'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았죠


영화의 불안정한 청년들, 음울한 사회상은 전작 ‘파수꾼’과 이어진다. ‘파수꾼’은 어느 고등학생의 자살 사건을 둘러싼 세 친구의 우정 이면을 들췄다.


■ 윤성현 감독이 말하는 캐스팅 비화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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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홍‧최우식은…“안재홍은 영화 ‘족구왕’ ‘1999, 면회’를 추천받아 보고 낙점했다. 테이크마다 전혀 다른 연기로 선택의 여지를 주는 폭넓음, 여유에 감탄했다. 최우식은 2011년 영화제에서 우연히 본 단편 ‘에튀드, 솔로’ 속 자질과 얼굴이 좋아서 이후 지켜보다 함께하게 됐다. 본능적이고 직관적인 배우다. 몰입해서 예측 못 한 연기를 하는데 본인은 기억조차 못 한다. 그런데 그 연기가 너무나 정당하다.”



Q : 이번에 이제훈‧박정민이 연기한 준석과 상수는 ‘파수꾼’ 속 캐릭터와 연결되는 인상도 든다.


A : “‘파수꾼’은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았다. 같은 배우지만, 캐릭터는 다르다. ‘파수꾼’은 현실적인 사회 드라마고, ‘사냥의 시간’은 액션과 서스펜스 중심의 판타지가 있는 장르 영화다. 접근 방식, 캐릭터적 깊이가 애초에 다르다. 가령 ‘파수꾼’의 기태가 남들의 시선을 통해 자기 존재 의미를 찾는, 공격적이고 위악적으로 보이지만 유리알처럼 깨지기 쉬운 인간 내면의 유약함을 포착한 인물이라면, 준석은 목표가 뚜렷하고 마초적이다. 불안정하지 않고 강인하다.”


Q : 이번 영화 순제작비(90억원)가 전작(5000만원)의 180배에 달한다. 어디에 가장 많이 투자했나.


A : “주변 감독들이 독립영화는 감독이 모든 걸 다해야 하지만, 상업영화는 전문 인력에게 맡길 수 있는 영역이 많아서 훨씬 쉽다고 하던데 나는 아니었다. ‘파수꾼’보다 10배 힘들었고 50배 더 뛰어다녔다. 시대배경이 모호하고 일반 상업영화와 다른 접근법이다 보니 미술‧조명‧촬영‧소품까지 ‘그림’으로 어떻게 나올지 독립영화처럼 신경써야 했다. 게다가 이런 장르영화를 만들기엔 예산이 턱없이 부족했다. 컴퓨터그래픽(CG)‧미술이 어마어마했기 때문이다. 실제 공간 그대로 찍은 경우가 거의 없다.”



프라이머리 음악감독 데뷔 배경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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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감독이 영화에서 가장 공들인 건 사운드다. 사운드 각각의 리듬, 호흡이 하나로 어우러지도록 조율했다. 총격 소리가 중심이 됐다. 그는 “군대 훈련소 가서 총을 처음 쏴보고 영화로 듣던 거랑 너무 달라 충격이었다”면서 “총알이 철판에 박혔을 때랑 나무나 콘크리트에 박힐 때 나는 소리가 다르다. ‘탕’ 소리로 퉁쳐서 표현하지 말고 총기의 질감을 실감 나게 최대한 살리려 했다”고 했다.


‘사냥의 시간’은 뮤지션 프라이머리가 처음 음악감독에 도전한 영화로도 화제가 됐다. 윤 감독은 “프라이머리가 재즈‧알앤비‧힙합‧일렉‧록 등 스펙트럼이 넓다. 꼭 한번 같이 영화를 해보고 싶어 먼저 제안했다”면서 “한스 짐머 등 할리우드의 내로라하는 음악감독 중 대중음악가 출신이 많은데 프라이머리도 영화음악이 처음인데도 힙합‧앰비언스 등 장르 구분 없이 광범위하게 같이 잘 만들어갔다”고 했다.


■ 윤성현 감독이 말하는 캐스팅 비화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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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수는…“영화 ‘소수의견’ 단역 때 인상적이어서 출연한 대학로 연극을 많이 찾아봤다. 이번 영화의 ‘한’은 저희끼리 만든 전사가 방대한데, (극 중 설명이 아니라) 얼굴 속에 그만의 슬픔, 역사로 묻어나길 바랐다. 그 페이소스를 만들어온 것만으로 놀라웠다.”



OTT 부담 적지만, 호응 정확히 몰라 답답


그러나 극장용으로 작업한 입체 사운드는 극장에서 들을 수 없게 됐다. 지난 2월로 예정했던 극장 개봉이 코로나19 확산으로 연기됐다가 아예 온라인 스트리밍(OTT) 직행을 결정하면서다. 지난달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 독점 공개한다고 발표했지만, 투자‧배급사와 기존 해외 배급을 진행해온 해외세일즈사 간의 공방으로 그마저도 일정이 밀렸다가 양측이 협의에 이르면서 23일 베일을 벗었다. 극장용 영상과 사운드를 넷플릭스용으로 재작업하는 과정에는 윤 감독이 직접 참여하진 않았다.


우여곡절 속에 “속상하고 안타까웠다”는 그는 ”잘 얘기해서 공개하게 된 게 다행이고 기쁘다“며 웃었다. 첫 상업영화를 극장 개봉 못한 아쉬움을 묻자 장단점을 들었다. ”개인적으론 극장에서 보여줘도 (좋겠지만)…. 근데 상황(코로나19)이 워낙 안 좋으니까요. 극장 개봉했다면 (흥행에 대한) 부담도 컸을 것 같아요. OTT는 그런 스트레스는 덜하지만, 어느 정도 호응해주시는지 정확히 알 수 없어 답답함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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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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