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사나이' 김영권 "호날두의 등 어시스트요? '될놈될'이래요"
기적의 사나이라 불리는 김영권이 오른 팔뚝에 키스하는 세리머니를 재현했다. 4년 전 러시아월드컵 ‘카잔의 기적’에 이어 카타르월드컵 ‘도하의 기적’도 그의 발끝에서 시작됐다. 전민규 기자 |
“기적의 사나이요? 생각하지도 못한 별명이라서 너무 좋고 감사해요.”
14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중앙일보에서 만난 축구대표팀 중앙 수비수 김영권(32·울산 현대)이 웃으며 말했다.
‘기적의 사나이’란 별명처럼, 2018년 러시아월드컵 독일전 ‘카잔의 기적’에 이어 2022년 카타르월드컵 ‘도하의 기적’도 그의 발끝에서 시작됐다. 김영권은 지난 3일 포르투갈전 전반 27분 동점골을 터트려 2-1 역전승의 신호탄을 쐈다. 이강인(마요르카)의 코너킥이 크리스티아누 호날두(포르투갈)의 등에 맞고 떨어지자, 공을 끝까지 주시한 김영권이 슬라이딩하며 왼발 발리슛으로 골망을 흔들었다.
김영권은 “친동생과 친구들이 ‘골 장면 때 왜 니가 거기 있냐’고 하더라. 포르투갈이 라인을 올려서 빈 공간이 보여 들어갔다. 호날두 선수 등에 맞고 제 앞에 딱 떨어졌다. 사실 호날두 등에 맞은 건 경기 후 영상을 보고 알았다. 운이 좋았고, 옆에서 뛰는 (김)진수가 ‘진짜 될 사람은 된다. 될놈될’이라고 농담했다”며 웃었다.
한국 네티즌들은 호날두가 한반도에 도움을 줬다며 ‘한반두’라 부르고 주민등록증 합성사진까지 만들었다. 김영권은 “호날두가 혼잣말을 했는데, 우리 대표팀 코치진이 포르투갈 사람이라서 욕하는 뉘앙스였다. 네티즌들이 만든 것도 재미있게 봤다”고 했다.
이강인의 코너킥이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등에 맞고 골문 앞에 떨어져 김영권의 동점골 '어시스트'가 되고 있다. 연합뉴스 |
4년 전 러시아월드컵 독일전 후반 추가시간 코너킥이 토니 크로스(레알 마드리드) 발 맞고 흐르자 김영권이 문전에서 차 넣었다. ‘토니 크로스와 호날두 패스(?)를 받아 월드컵에서 골을 넣은 선수’라는 말에 김영권은 “우연치 않게 세계 최고 축구선수들한테 어시스트 아닌 어시스트를 받았다”며 웃었다.
김영권은 러시아월드컵 당시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1위 독일을 무너뜨린 선제골을 터트렸고 손흥민(토트넘)이 폭풍질주로 추가골을 터트렸는데, 4년 뒤 포르투갈전에서 비슷한 장면이 연출됐다. 김영권은 “흥민이가 이번에는 득점 대신 (황)희찬이의 골을 어시스트한 건 다르지만, 상황이 비슷해 신기했다”고 했다.
‘까방권(까임방지권·잘못해도 용서받을 수 있는 권리)’을 4년 만에 또 획득했다고 하자 김영권은 “(까방권) 2장이면 은퇴할 때까지는 충분히 쓸 수 있겠다”며 웃었다.
김영권은 한국축구가 절망스러운 순간마다 기적을 연출했다. 김영권은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고3때 주말에 막노동을 나가 일당 7만원(수수료 떼고 6만3000원)을 받았고 그 돈을 모아 축구화를 샀다. 김영권은 “그때 힘듦이 저를 더 강하게 만들었다. 부모님이 힘들어 하시는 걸 보고 싶지 않았고, 제가 성공에 가깝게 다가서지 못하면 가족을 지킬 수 없다는 생각에 이 악물고 축구를 했다. 가족의 힘이 컸다”고 했다.
포르투갈전에서 동점골을 터트린 김영권은 팔뚝에 입을 맞추는 세리머니를 펼쳤다. 연합뉴스 |
김영권 오른 팔뚝에는 프랑스어로 ‘항상 가슴 속에 새기고 다니겠다’는 글귀와 함께 아내 이름과 첫째딸 영문명(Sejin P & Baby Ria) 타투가 새겨져 있다. 전민규 기자 |
김영권은 4년 전 독일전처럼 이번에도 오른 팔뚝에 키스하는 세리머니를 펼쳤다. 팔뚝에는 프랑스어로 ‘항상 가슴 속에 새기고 다니겠다’는 글귀와 함께 아내 이름과 첫째딸 영문명(Sejin P & Baby Ria) 타투가 새겨져 있다. 김영권은 “딸 리아와 미리 약속했던 세리머니였다. 자기 이름이 새겨져 있어 좋아했다”고 했다. 딸 리아(7), 아들 리현(5), 리재(2) 삼남매를 둔 김영권은 “리현이가 왼발잡이고 아빠를 제치고 골도 넣는다. 본인이 원하면 축구를 한번 시켜보고 싶다”고 했다.
김영권은 8년 전 브라질월드컵에서 조별리그 탈락을 막지 못해 ‘자동문’이라는 오명을 들었고 당시 귀국길에 엿 세례를 받았다. 이번 귀국 때는 환영 인파가 몰리자 휴대폰 사진으로 찍었다는 김영권은 “지난 2번의 월드컵 땐 꾸중을 들었는데 이번에 환대를 받았다. 처음이자 마지막일 수 있어서 이 순간을 남기고 싶었다”고 했다.
브라질과의 16강전은 그의 A매치 100번째 경기였다. 2010년 8월 나이지리아전에서 A매치 데뷔전을 치른 뒤 한국 선수 중 15번째로 ‘센추리 클럽’에 가입했다. 골대 안까지 몸을 던졌지만 1-4 패배를 막지는 못했다. 김영권은 “세계 1위 팀과 100번째 경기하는 건 영광스러웠지만 결과가 아쉬웠다. 나이와 경험도 쌓인 네이마르는 그냥 공 차는게 다르더라”고 했다. ‘브라질의 댄스 세리머니’에 대해 “상대편 입장에서 기분이 좋지는 않았지만, 세리머니도 축구의 일부이며 브라질 선수들의 문화라면 받아 들여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김영권(오른쪽)과 벤투 감독. 뉴스1 |
파울루 벤투(포르투갈) 한국 감독은 아버지처럼 선수들을 챙겨 ‘벤버지’라 불린다. 특히 가나와의 2차전(2-3패) 막판 코너킥을 차지 않았는데 주심이 경기를 끝내자 김영권이 목에 핏대를 세우며 항의했다. 주심이 주머니에서 카드를 꺼내려는 찰나에 벤투 감독이 달려와 항의하다가 퇴장 당했다. 김영권의 퇴장을 막기 위한 선수 보호차원에서 벤투 감독이 대신 퇴장 당했다는 추측도 나왔다.
김영권은 “코너킥을 주지 않고 끝내는 게 말이 안된다고 생각해 따졌다. 가나전에서 옐로 카드를 한 장 받은 상황이었다. 감독님이 찰나에 내가 경고 받은 걸 기억하고 있었다면 대단한 거 아닌가. 만약 내가 퇴장 당했다면 포르투갈전 동점골도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한국-포르투갈전 기념 머플러를 든 김영권. 전민규 기자 |
김영권은 포르투갈전 하프타임 일화도 전했다. 포르투갈전 전반이 1-1로 끝났고 한국은 무조건 이겨야 되는 상황이었다. 김영권은 “최대한 골문에 가깝게 붙이는 롱킥이 나올 수도 있었다. 하지만 감독님은 ‘결과보다 중요한 건 4년간 우리가 준비한 플레이를 하는 것이다. 롱킥으로 쓸데없는 시간을 보내지 말자’고 냉정하게 말했다. 덕분에 선수들도 침착하게 임할 수 있었다”고 했다.
김영권은 “벤투 감독님은 브라질과 최종전 뿐만 아니라 청와대 만찬 후 마지막 만남까지 2~3번 눈물을 보이셨다. 선수들 몇 명도 울었다. 펠리페 코엘류 수비 코치가 ‘오랜시간을 함께한 벤투 감독은 절대 안 우는데 이번에 우는 걸 처음 봤다’고 했다. 감독님 첫인상은 딱딱하게 보였다. 한국인이 정이 많은데 아무래도 감독님도 정이 든 것 같다. 어젯밤 출국 때 눈물을 훔치시는 모습을 보니 나도 울컥했다”고 했다.
이어 김영권은 “4년간 힘들 때 모든 총대를 메고 선수 대신 꽁지 내리지 않고 앞장섰다. 모든 게 선수 편이었고, 한국 선수들이 최고의 선수가 될 수 있다는 걸 알려주셨다”고 했다. 지난 9월 벤투 감독이 월드컵이 끝난 뒤 퇴진하는 걸 알았는데도 선수들이 혼신의 힘을 다해 뛴 이유다.
축구대표팀 수비수 김영권. 전민규 기자 |
김영권은 “지난 2차례 월드컵은 압박감과 부담감과 싸웠지만, 이번에는 월드컵도 이렇게 재미있게 할 수 있구나 느꼈다. 덕분에 우리가 원하는 축구가 나왔다”고 했다. 이어 “선수 대다수가 헛구역질을 하고 경기 후 밥도 잘 못 먹었다. 무릎이 까졌는데 응급처치도 안 받았다. (황)인범이는 머리를 꿰맬 정도는 아니었지만 붕대를 벗어 던지고 뛰었고, (손)흥민이도 안면보호마스크를 써서 답답하고 뼈가 잘 붙지도 않은 상황에서도 뛰었다. ‘이렇게까지 했는데 16강에 못가면 말이 안되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차기 사령탑에 대해 김영권은 “4년 간 한 감독님 체제로 가는 것도 중요한 부분 중 하나다. 선수들과 맞추려면 시간이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김영권과 아내, 삼남매. 김영권 인스타그램 |
1990년생 32세 김영권은 2026년 북중미 월드컵까지 뛸 수 있을까. 수비수 최진철이 35세에 2006년 독일월드컵을 뛴 사례가 있다.
김영권은 “목표와 다짐들은 높으면 높을수록 좋은 거다. 요즘 시대는 선수 생명이 길어졌다. 4년간 몸관리를 잘해서 도전할 수 있다면 도전해보고 싶다. 아이들에게 아빠가 계속해서 축구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도 크다. 물론 몸이 안 좋으면 못 가는거다. 기량이 떨어졌는데 억지로 욕심을 내지는 않을 것”이라며 “리그와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해봤지만 아시안컵은 2015년 준우승이 최고 성적이다. 아시안컵 우승을 한다면 선수생활에 후회가 남지 않을 것 같다”고 했다.
박린 기자 rpark7@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