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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드]by 중앙일보

고소한 향이 봄 입맛 돋우네…요즘 뜬다는 '들기름 막국수'

메밀면·소면·카펠리니에 들기름 듬뿍

막국수 노포부터 고급 파인 다이닝까지

친숙한 집밥 메뉴로 젊은 층에 인기

마무리 조연에서 주연된 들기름의 힘


물 국수 먹을까, 비빔국수 먹을까. 짜장면과 짬뽕 사이 갈등 못지않은 고민인데 요즘엔 한 가지 메뉴가 더 추가됐다. 바로 ‘들기름 국수’다. 특히 툭툭 끊기는 투박한 메밀 면에 고소한 들기름을 듬뿍 넣고 김 가루와 참깨를 섞은 ‘들기름 막국수’가 인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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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기름 막국수의 대표주자는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에 자리한 ‘고기리막국수’다. 2012년 5월 문을 연 이 집에는 메뉴판엔 없는 숨겨진 메뉴가 있는데, 바로 들기름 막국수다. 통메밀을 직접 제분해서 메밀 향을 고스란히 잡은 면에 신선한 들기름을 듬뿍 뿌리고 발효 간장을 더했다. 바싹 구운 향긋한 광천 김을 부숴 내리고, 금방 구워 고소한 향의 참깨도 듬뿍. 젓가락으로 부드럽게 비벼 한 입 물면 지그시 눌려 씹히는 구수한 메밀 면 사이로 들기름의 쌉싸름한 맛이 올라온다. 이곳의 김윤정 대표는 “막국수 집 준비하며 잘 한다는 집 100여 군데를 돌았지만 강원도에서 할아버지·할머니들이 직접 뽑은 막국수가 제일 맛있었다”며 “금방 내린 메밀 면에 김이랑 참깨만 섞었는데도 너무 맛있어서 들기름 막국수를 개발하게 됐다”고 했다.


김 대표 말대로 맵고 단 소스의 도드라지는 존재감 때문에 메밀 맛이 제대로 느껴지지 않는 비빔면과 달리 들기름 막국수는 들기름과 메밀 면, 김과 참깨 등등의 재료들이 각각 본연의 향과 맛을 내면서도 조화롭게 어우러져 오묘한 맛을 낸다. 메뉴판에도 적지 않고 주방 식구들과 ‘집밥’ 먹듯 해먹은 국수를 단골손님들에게 조금씩 내놓다가 2016년 한 방송 프로그램에 소개되면서 전국구 인기 메뉴로 떠올랐다. 지금도 메뉴판에는 없지만 이 집에서 가장 잘 나가는 메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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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기름 막국수의 인기는 점점 높아지고 있다. 서울 강남의 식당 ‘백운봉막국수’ ‘청류벽’ ‘서관면옥’, 경기도 광명의 ‘정인면옥평양냉면’과 과천의 ‘선바위메밀장터’ 등도 들기름 막국수 맛집으로 통한다.


고급 음식을 내는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에서도 들기름과 국수의 조합을 찾아볼 수 있다. 미쉐린2스타를 받은 모던한식 레스토랑 ‘권숙수’의 장수 메뉴 중 하나가 들기름에 버무린 ‘민들레 국수’다. 권숙수의 권우중 셰프가 과거 운영하던 한식당 ‘이스트 빌리지’ 시절부터 벌써 햇수로 10년째 되는 메뉴인데, 흰 민들레가 맛있는 봄‧여름이면 이 국수를 맛보러 단골손님이 몰린다고 한다. 이곳에선 들기름 국수에 소면이나 메밀 면이 아닌, 서양 파스타 면의 한 종류인 엔젤 헤어 파스타 면(카펠리니)을 사용한다. 잘 삶은 면에 들기름·막걸리 식초·매실청·까나리 액젓 등으로 만든 소스를 더한 뒤 흰 민들레 무침을 올려서 낸다. 씁쓸한 맛이 강한 흰 민들레는 고소하고 감칠맛 나는 들기름과 어우러져 익숙하면서도 묘한 맛을 낸다. 권 셰프는 “집에서 어머니가 들기름으로 간을 한 민들레 무침을 자주 만들어주셨는데 주로 면이나 밥에 올려 먹었던 기억이 나서 잘 불지 않는 얇은 파스타 면에 접목했다”며 “들기름은 풍미가 진해서 그만큼 강한 향을 내는 재료와 함께 썼을 때 더 매력적”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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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기름 국수는 심심한 듯 소박하지만, 자꾸만 입맛을 다시게 만든다는 점에서 집밥 메뉴와 닮았다. 역시나 고기리 막국수의 김 대표, 권숙수의 권우중 셰프도 집밥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했다.


최근 젊은 층의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는 서울 중구 을지로의 선술집 ‘보석’에도 집밥에서 착안한 들기름 국수 메뉴 ‘들기름 낙지젓 카펠리니’가 있다. 지난해 4월 문을 연 신상 점포지만 을지로 특유의 독특한 분위기와 제철 식재료를 맛깔나게 조리한다는 입소문 덕분에 성업 중인 인기 맛집이다. 이곳의 이진규 대표는 “안주 위주의 술집이라 부족한 식사 메뉴를 고민하던 차에 집에서 메밀국수나 소면에 들기름·간장·김 가루를 넣고 먹던 메뉴가 떠올랐다”고 했다. 그 자체로는 너무 단순해서 들깨랑 잘 어울리는 깻잎을 들기름에 무쳐 올리고, 부족한 간을 더하기 위해 낙지젓을 추가했다. 소면을 매번 삶기엔 주방이 협소해, 잘 불지 않고 밀가루 냄새가 덜 나는 카펠리니 면을 활용했다. 이탈리아식 소면에 한식 재료를 조합한 것으로 맛은 집밥처럼 소박하지만, 의외의 조합이 신선해 인기 메뉴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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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남쪽 지방에서 잘 자라는 참깨와 달리 추운 지방의 들판이나 산기슭에서 자라는 들깨는 토속적인 느낌의 식재료다. 이런 들기름에 면을 무쳐 내는 들기름 국수는 아주 단순하고 소박한 음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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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5월에는 예능 프로그램 ‘미운 우리 새끼’(SBS)에서 방송인 이상민이 들기름 국수를 ’외할머니가 해주던 국수“라며 소개해 화제가 됐다. 찬물에 헹군 삶은 소면에 들기름과 깻잎, 김가루를 넣고 비며 만든 간단한 음식이다. 사진 방송 화면 캡처

최근엔 이런 소박한 들기름 국수를 화려하게 담아내는 것을 특징으로 하는 집도 생겼다. 아보카도를 넣은 햄버거로 히트를 한 수제 버거 집 ‘다운타우너’ 이준범 대표가 최근 서울 도산공원 인근에 낸 한식집 ‘호족반’의 ‘들기름 메밀면’이다. 메밀국수에 신선한 들기름과 비법 간장으로 간을 한 뒤,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파스타를 꾸밀 때처럼 넓은 접시에 담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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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기름 국수의 인기 비결은 역시 고소한 들기름 자체의 힘이다. 프리미엄 참기름·들기름 제조업체 ‘쿠엔즈버킷’의 박정용 대표는 “은은하면서도 깊은 향미를 내는 들기름은 연어·가재 등 해산물과도 잘 어울리고, 한국의 소면이나 메밀 면뿐 아니라 파스타 면에도 두루 어울린다”며 “최근 뉴욕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에서도 들기름을 활용하는 곳이 늘어나고 있다”고 했다.


레스토랑 가이드 ‘다이어리 알’의 이윤화 대표는 들기름 국수의 인기를 “집밥의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친숙함”이라며 “여기에 어떤 식재료를 더하느냐에 따라 다양한 재료 본연의 맛을 즐길 수 있다는 장점도 한몫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음식을 마무리할 때 한두 방울 넣는 참기름이나 들기름이 조연 아닌 주연이 됐다”며 “좋은 기름을 찾아서 골라 먹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로 식재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각 재료의 맛을 살린 단순하지만 조화로운 들기름 국수가 주목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유지연 기자 yoo.jiyo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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