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에서 환경과 돈을 캐내는 착한 디자이너
“의협심을 가지고 환경을 위해서 일을 시작했을 거라고 기대하는 분이 많아요. 그러면야 좋겠지만 솔직하게 말해서 어려서부터 있던 개인적인 취향으로 시작했어요. 그래서 잘 되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롱런하고 있지 않나 싶어요. 환경을 위해 북극곰을 살리고 말겠다는 거창한 이유로 시작했으면 프로젝트가 그냥 끝났을 것 같아요.”
‘환경을 생각하는 회사’, ‘북극곰을 살리기 위해 노력하는 회사’, ‘업사이클링 사업을 하는 회사’. 이렇게 소개하면 질색 하는 회사가 있다. 그저(Just) 디자인 회사고 싶다는 져스트 프로젝트(JUST PROJECT)다. 테이블 빼고는 다 주워왔다는 충무로 사무실에서 이영연(38) 디자이너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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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영연이라고 하고, 져스트 프로젝트를 8년 차 운영하고 있습니다.”
- 져스트 프로젝트는 뭘 하는 곳인가요
“져스트 프로젝트는 쓰레기를 주제로 콘텐츠를 만들거나 전시 기획·자문을 하는 곳입니다. 쓰레기를 이용해서 제품을 기획하고 연구하는 일도 합니다. 예를 들어 과자봉지·빨대·플라스틱·샘플 원단 같은 재료로 컵받침이나 가방 등 생활용품을 만들어요. 어떻게 하면 쓰레기를 매력적으로 보이게 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디자인 회사예요. 저희에게 쓰레기는 보물같은 존재거든요”
이영연 대표는 2014년 사업을 시작하기 전 광고디자인회사, 문구디자인회사 등을 다녔다. 디자인을 전공하진 않았다. 미술대학 입시를 오랫동안 준비하다가 떨어지고, 이상한 객기와 반항심이 발동해 대학을 안 갔다. ‘이렇게 외워서 그리는 그림으로 대학을 가서 내가 뭘 배우겠나. 나는 진짜 예술을 할거야. 빨리 돈을 벌어서 유학을 가야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피땀 흘려 번 돈으로 유학 가기가 아까웠다. 계속 돈을 벌기로 했다. 20살부터 사회 생활을 시작해 20대 중후반에 있던 회사에서 직급이 실장이었다.
- 디자인 회사에 다니다가 그만 두고 사업을 시작했는데, 새로운 도전이 겁나진 않았나요
“2003년에 다닌 첫 직장이 이 근처였어요. 현장으로 ‘가서 뭐 보고 와라, 가져 와라’하는 심부름을 많이 다녔어요. 이 동네 사장님들이 엄청 세고, 처음 가면 얘기도 잘 안 들어주려고 하거든요. 제가 어리고 여성이라서 더 했어요. 처음엔 힘들었는데 자연스럽게 제품이 만들어지는 과정까지 체득할 수 있었어요.
사회 초년생 땐 학교에 안 간 걸 후회했는데 지금은 아니에요. 현장을 다니면서 학교에서 못 배우는 걸 많이 배웠어요. 예를 들어 학교에서는 시각 디자인이 그래픽 작업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현장에서 인쇄·제작·후가공·현장 감리 같은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결과물이 나와요. 현장에서 사람들과 부딪히면서 배운 덕분에 제 일을 시작할 때 두려움 같은 건 없었어요.”
- 쓰레기로 작업을 시작한 계기가 궁금해요
“디자인 회사에서 경력을 쌓으면서 반복적인 일이 늘어났어요. 일을 하면서 만족감을 못 느꼈어요. 내가 뭘 하면 더 즐겁고, 가치있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까 고민하는데 청사진이 그려지지 않더라고요. 또 혼자서 일을 하면 어느 정도까지 해낼 수 있을지 의문이 생겨 슬럼프에 빠졌어요. 조직에 있으면 주어진 일만 하니까 내가 가진 능력 전체를 가늠할 수 없잖아요. 이런 저런 생각에 방황을 했어요. 아예 새로운 커리어를 쌓아도 늦지 않은 나이니까 업종을 바꿔야 하나까지 고민했어요.”
이영연 대표는 슬럼프가 심했던 2014년 좋아하는 쓰레기를 가지고 6개월동안 재밌는 걸 해보자는 생각으로 일을 시작했다. 과자 비닐봉지로 가방 샘플을 만들어 주변에 의견을 구하러 다녔다. 그 때 활기가 생기면서 슬럼프를 극복했다. 약속한 시간이 다가올 수록 더 해보고 싶단 생각에 회사를 그만 두고 나왔다.
“멋모르고, 회사라는 그늘이 안전한 지 모르고 사막으로 뛰어든거죠. 그래도 시기를 6개월로 정해놔서 그런지 밤을 새도 힘든 줄 모르고 재밌게 작업했어요. 현장 경험이 있어서 저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구체적으로 실현하기 위해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할지 잘 알고 있었어요. 알고 있는 방법을 동원해 계속 연구하고 실험했죠.”
- 쓰레기를 보고, 디자이너로서 어떤 생각을 하나요
“저는 디자이너로서 아슬아슬한 경계에 있다고 생각해요. 져스트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나서 저를 ‘디자이너’라고 소개하지만, 기획하는 단계에 더 비중을 두는 편이에요. 자본주의 시장이 제품 잘 만들고, 사진 잘 찍고, 마케팅 잘해서 많이 판매하는 쪽에 집중하는 것과는 반대죠.
버려진 소재를 발견했을 때, 결과물이 근사한 모습이 아닐지라도 쓰레기를 어떻게 해야 다른 기능을 가진 물건으로 치환할 수 있을지 고민해요. 결과물을 봤을 때 ‘이게 이렇게 쓰일 수 있구나’, ‘그냥 버리지 않아도 되겠구나’하는 사람들 반응이 흥미롭고 재밌어요.
물론 저도 한편으로 필요성을 떠나 심미적으로 예쁜 걸 만들고 싶은 욕구도 있어요. 지금처럼 하지 않고 잘 팔릴 수 있는 제품을 만들어서 여러 기업에 ‘디자인은 우리가 이미 끝냈으니 이런 재료로 이렇게 만들기만 하세요’라고 영업하면 돼요. 근데 져스트 프로젝트라는 디자인 회사를 운영하는 디자이너로서 이 욕구와 첨예하게 계속 부딪혀요. 저렇게 해서 그저 제품을 많이 만들어 내면 좋은건가 싶기도 하고요.
이 두 가지 욕구와 싸우는게 피로도가 굉장히 높아요. 하지만 가장 중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해서 기획 단계에서 계속 싸우는 중이에요. 두 욕구 사이에서 져스트 프로젝트를 유지하고 있어요.”
- 국내에서 그린 디자이너로 유명한 국민대학교 윤호섭 명예교수에게 영향을 받았다고 들었는데 그 연장선인건가요
“‘디자이너는 사회적·환경적 책임이 있다’는 윤 교수님 생각에 깊게 빠져있을 때가 있었는데, 지금 그 정도는 아니에요. 그게 아무리 좋은 의미라고 할지라도 상대방에게 강요하면 폭력이라고 생각해요. 누군가는 기능이나 용도보다는 심미적인 걸 중요하게 생각하는 디자이너도 있을테죠.
디자이너에게 어떤 책임을 있다고 생각하기 시작하면 예술이 없어져야 맞아요. 그리고 그러면 인간은 거의 모든 행위를 하지 말아야 해요. 예를 들어 필름 사진도 과정에서 유해물질이 발생하잖아요. 내가 뭔가를 만드는 게 맞나 고민이 들 때, 예전에 했던 세미나에서 자주 오간 이야기를 생각해요. 삽 들고 산에 가서 거름이 될 게 아니면, 바다에 빠져서 물고기 밥이 되지 않을거면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게 뭔지 생각해보자고요.
앞에서 말한 내적 갈등이 있지만 책임감에 짓눌리지 않고, 즐겁게 일을 하고 싶어요. 그렇다고 완전히 배제할 순 없으니 계속 그 사이를 외줄타기처럼 가는 거예요. 이쪽도 보고, 저쪽도 보고, 떨어지기도 하지만 다시 올라가는거죠.”
- 제작에 필요한 재료는 어디서 구하나요
“쓰레기 집하장에 정기적으로 가요. 고정적으로 가는 곳도 두세 군데 정도 있고, 지방에 출장이 있으면 가까운 쓰레기장이나 집하장을 꼭 찾아가요. 재작년인가는 제철 쓰레기라는 주제로 포스터를 만든 적이 있어요. 계절별로, 날씨별로 혹은 이사철 같은 시기별로 집하장에 가면 나오는 쓰레기가 다른 걸 볼 수 있어요. 이런 데서 영감을 얻어요.
요즘에는 생산하는 공장에 많이 다녀요. 생산 과정에서 나오는 폐기물이 어마어마하거든요. 이 폐기물이 생기지 않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지, 원재료를 바꿔서 폐기물이 생기더라도 덜 해롭게 할 수는 없을지 이런 걸 고민해요. 이 폐기물이 불가피하게 지속적으로 나온다고 했을 때 이걸 가지고 뭘 할 수 있을까 고민해요. 생산 공장에서 나온 쓰레기는 일상생활에서 버려진 게 비교적 위생적이라 세척 단계를 거치지 않는 장점도 있어요.”
- 기업이나 기관에서 제품 제작이나 작업을 의뢰하는 경우가 많다고요. 추구하는 방향이 다른 일이 들어오면 어떻게 하나요
“2017년 쓰레기 대란 이후 사회 전반적으로 업사이클링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어요. 버려진 걸로 제품을 만드는 업체도 많이 생겼어요. 소비자 의식도 바뀌어서 업사이클링 제품을 사면 좋은 소비라고 하고요. 근데 저는 쓰레기를 활용한 제품 가지수가 늘어나는 게 좋은 건지는 잘 모르겠어요.
대부분 기업이나 기관에서 ‘요즘 이런 거 만드니까 우리도 이런 거 만들자’는 식으로 의뢰가 와요. 환경 관련 사업을 하면서 기업 이미지를 개선하는 걸 그린워싱이라고 하는데, 겉으로만 지속가능성에 앞장 선다고 보여주고 싶은거죠. 제가 씁쓸하게 느끼는 부분이에요. 뭘 만드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폐기물이 안 나오게 할 수 있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폐기물을 가지고 제품 하나를 만드는데 그치지 않고, 이걸 둘러싸고 있는 이야기가 기승전결이 맞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가 보기엔 그들 사업이 당위성이 없고 납득이 안 가서 계속 설득을 하죠. 해달라는 대로 해주면 돈을 훨씬 더 많이 벌 수도 있을텐데, 이런 설득 과정이 없으면 움직여지질 않아요.
저희가 다루는 소재는 많은데, 실제 제품이 얼마 없는 것도 그런 이유예요. 저는 제품 가지수를 늘리기 보다 굳이 만들자면 비교적 더 쓸모있는 걸 만들고 싶어요. 한 가지 소재를 어떻게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는지에 대한 좋은 예시를 보여주는 식으로요.”
- 최근에 그런 설득을 거친 작업이 있나요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에서 코로나19로 팬데믹을 선언한 상황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쓰레기를 이용해 만들기 워크숍을 진행해달라고 의뢰가 왔어요. 저흰 쓰레기 문제도, 팬데믹도 다 과잉으로부터 시작한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적어도 우리가 기획하는 워크숍에서는 뭔가를 만드는 걸 하고 싶지 않다고 했어요. 결국 글쓰기 워크숍을 진행했어요.”
워크숍 제목은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쓰레기를 남긴다’였다. 제목만 보면 사람이 죽어서 쓰레기만 남기는 몹쓸 존재라고 해석할 수도 있지만, 누군가 죽고 나면 그 사람을 둘러쌌던 모든 물건이 쓰레기로 남는다는 데서 착안했다. 주변에 있는 물건이 내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곰곰히 생각해보자는 취지로 기획했다. 이 대표는 참여자가 자신을 둘러싼 물건이 가진 의미를 곱씹어보는 경험을 하면 함부로 사고, 버리는 일을 안하지 않을까 하는 간접적인 메시지도 전달하고 싶었다.
“워크숍에 참여한 사람이 자신이 죽었다고 가정하고 유품으로 사연이 담긴 물건을 가지고 오게 했어요. 예를 들어 누군가는 다 쓴 펜 한 자루를 남길 수도 있어요. 펜 한 자루에 담긴 사연이 있어서 나한테는 소중할 수도 있는 거잖아요. 다른 참여자에게는 그 사람이 남긴 물건과 사연을 보고 추도문을 써달라고 했어요.
참여자들이 생판 모르는 사람에게 추도문을 써주는 게 묘한 경험이라고 했어요. 그런데 신기하게 대부분 마치 오래 사귄 친구가 써 준 추도문 같다고 소감을 말했어요. 별 것 아닐 수 있는 물건이 자신을 상징할 수도 있다는 걸 깨닫는 워크숍이었어요.“
- 그 밖에 기억에 남는 작업이 있나요
“2017년 광주 디자인 비엔날레에 초대 받은 적이 있어요. '미래들'이란 주제 아래 지속가능성을 이야기하는 전시를 해야 했어요. ‘재료 상점’이란 관객 참여형 전시를 기획했어요. 멀지 않은 미래에 쓰레기를 일반적인 소재로 구입하고 사용한다고 전제했어요. 전시 형식으로 취해서 그렇지 저희가 하는 작업의 축소판이에요. 저희가 쓰레기를 길 가다 줍고, 쓰레기장이나 공장에서 구하듯이 사람들이 쓰레기를 상점에서 산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했어요.
전시장에 대형 문구점처럼 재료를 나열하고 관람객이 필요한 제품과 수량을 골라 사가는 방식으로 운영했어요. 관객이 무슨 전시냐고 물어보면, 뭐 만드는 게 아니라 필요한 거 사가는 거라고 응대했어요. 일종의 퍼포먼스로 친절하게 안내하지 않고, 무심한 종업원처럼 행동했어요. 2019년에도 비슷한 작업으로 배경을 뷔페로 바꿔서 한 전시도 있어요. 실제로 뷔페에 온 느낌을 주려고 집기까지 렌탈을 했어요. 사람들이 집게로 어떤 쓰레기를 고를지 심각하게 고민했어요. 두 작업에서 모두 아무도 흔히 보는 버려진 쓰레기라고 인식하지 않고, 진지하게 쓰레기를 고르는 모습이 흥미로웠어요.”
- 앞으로의 계획은 뭔가요
“8년 동안 작업을 하면서 결과가 모두 만족스러운 건 아니지만 지금까지 고집스럽게 해봄직한 건 다 해본 것 같아요. 연차가 올라갈 수록 아무도 부여해주진 않았지만 책임감이 생겼어요. 쓰레기를 활용한 제품을 만들어 파는 회사가 늘어나는 상황에 다음 단계로 뭘 해야할지 고민하고 있어요. 현재 방식과 다르게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당연히 했어야 하는 걸 이제 고민하는거죠.
저희에게 2017년 광주 디자인 비엔날레 전시가 기점이에요. 누구에게나 특별한 분야가 아니었으면 좋겠거든요. 쓰레기가 일반적인 소재로 쓰였으면 좋겠고, 저희가 하는 행위도 일상적으로 보면 좋겠어요. 개인이 지대한 관심을 갖고 검색해서 특별한 전시나 워크숍에 참여해야 접할 수 있는게 아니라 어딜 가나 필요한 쓰레기를, 재료를 구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그리고 그걸로 스스로 뭔가 제작할 수도 있으면 좋겠어요. 접근을 쉽게 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고 싶은 바람이 있어서 올해나 내년 상반기 안에는 제대로 진행해보려고 하고 있어요.
그리고 한가지 더 있어요. 2018년에 만들었던 계간지를 다시 내고 싶어요. 1호만 나와서 전설의 단행본처럼 남아있는 잡지예요. 언론에서 저희를 북극곰을 살리려고 하는 회사, 환경을 생각하는 회사라고 프레임을 씌우는 게 싫어서 시작한 일이에요. 저희는 실제로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이미지가 거창하게 비춰지는 게 부담스러웠어요.
그래서 우리가 생각하는 쓰레기가 뭔지, 뭘 하려고 하는지 우리 입으로 말하려고 책을 냈어요. 이전에 글을 써보거나 책을 만들어 본 적도 없이 맨 땅에 헤딩을 한 거였는데 져스트 프로젝트 작업 중에 제일 재밌었어요. 다음 호수가 바로 나왔으면 모르겠는데 시간이 지날 수록 사람들이 인식하는 정도나 쟁점이 급격하게 달라져서 멈췄어요. 올해 2호를 내는 게 꿈이에요.”
글 CCBB 박규빈 인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