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광기의 보라색, 이젠 핫한 음식 컬러라고?
[식탐]
코로나19 이후 ‘퍼플 푸드’ 관심 커져
신체·정신건강 좋은 안토시아닌 주목
“치유의 색이자 대담한 MZ 선호 색상”
[123RF] |
사악한 마법사의 옷, 우울하거나 외로운 미망인 혹은 광기 어린 예술가들의 색. 모두 보라색을 터부시했던 과거 동서양의 모습이다.
하지만 현재 보라색의 위상은 다르다.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보이그룹 BTS의 상징색으로 전 세계에 퍼지더니, 몇 년 전부터는 푸드 컬러 트렌드로 떠올랐다.
미국 색채연구소 팬톤사가 ‘2022년 컬러’로 보라색 ‘베리 페리(Very Peri)’를 선정한 가운데 식품 시장에서도 보라색이 트렌드 컬러로 주목받고 있다. 지난해 덴마크 천연색소 업체 오테라(Oterra)가 식품 시장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긴 색상도 ‘연보라’였다. 미국 캘리포니아에 있는 향료업체 티하세가와 유에스에이(T.Hasegawa USA) 역시 보라색 트렌드를 주목하며 우베(Ube·자색 참마)를 ‘2024 올해의 맛’으로 선정했다.
색 전문 글로벌 업체들이 ‘픽(PICK·선택)’한 보라색 식품은 생각보다 종류가 다양하다. 우베를 비롯해 자색 고구마, 가지, 자색 당근, 적양파, 자색 감자, 적양배추, 라벤더, 비트, 포도, 블루베리, 아로니아, 무화과 등이 있다. 색감별로 식품을 나눈 ‘컬러 푸드’ 중 ‘퍼플 푸드(Purple Food)’에 해당한다.
에밀 파지라(Emil Fazira) 유로모니터 인터내셔널 아시아푸드 매니저는 “지난 몇 년간 보라색처럼 선명하고 채도가 높은 색상은 새로운 식품을 경험하려는 소비자에게 중요한 역할을 했다”며 “자색 참마나 자색 고구마로 만든 감자칩 형태의 스낵이 여러 국가에서 출시됐다”고 분석했다. 그는 필리핀 ‘오쏘헬시(OSH!)’와 말레이시아 ‘미스터포테이토(Mister Potato)’의 스낵, 그리고 싱가포르 ‘빅타소이(Vitasoy)’의 음료를 그 예로 들었다.
자색 참마·자색 고구마를 이용한 스낵과 음료 [각 사 홈페이지 캡처] |
퍼플 푸드 트렌드는 코로나19 확산 후 두드러졌다. 건강이 강조되며 퍼플 푸드의 영양소가 더욱 주목받게 됐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보라색은 식물 색소 성분인 파이토케미컬 중 안토시아닌이 내는 천연색이다. 안토시아닌이 심혈관질환, 당뇨, 뇌졸중 예방에 이로운 성분으로 각광받으며 퍼플 푸드의 인기도 올라가기 시작했다.
안토시아닌은 정신 건강에 좋은 성분으로도 관심받고 있다. 에밀 파지라 매니저는 “최근 음식으로 감정을 조절하고 일상 속 행복을 찾는 트렌드가 떠오르고 있다”며 “안토시아닌이 영양소 기능과 색감을 통해 심리적 만족감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해 국제학술지 ‘영양소’에 실린 연구에 따르면 12주간 안토시아닌을 충분히 섭취한 중년층들은 우울 증상이 이전보다 줄었다. 연구진은 안토시아닌이 정서 치유와 안정을 돕는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영양소 기능뿐만 아니라 시각적으로도 보라색은 안정감을 주는 색으로 알려져 있다. 신재현 강남푸른정신건강의학과 원장은 “색이 정서에 미치는 영향은 개인마다 다를 수 있으나, 보통 보라색은 창의성이나 안정감과 관련된다”며 “자신에게 편안함과 안정감을 주는 색채를 찾는 것이 정서 안정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보라색을 내는 ‘퍼플 푸드’가 푸드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다. [123RF] |
색채심리학에서는 보라색을 심신이 피로할 때 찾게 되는 ‘치유의 색’으로 설명한다. 보라색의 ‘치유 효과’는 식품 업계에서 특히 ‘연보라’로 자주 사용되고 있다. 라벤더가 대표적이다. 지난 몇 년간 라벤더는 음료와 칵테일, 아이스크림 등에서 눈에 띄게 활용됐다.
또 다른 배경으로는 코로나19 확산 후 더욱 활성화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영향이 꼽힌다. 보라색은 SNS에서 시선을 사로잡는 색이다. 특히 브로콜리, 시금치 등의 녹색 재료와 함께 놓으면 ‘보색 대비’로 더욱 시선을 끈다. 에밀 파지라 매니저는 “식품의 매력적인 색상은 새로운 음식을 SNS에 공유하려는 이들을 끌어당기는 요소”라고 말했다.
이런 보라색이 인공 색소가 아닌 ‘천연 색소’라는 점도 중요하다. 티하세가와 유에스에이는 2024년 트렌드 보고서를 통해 “SNS에서 인공 색상 대신 천연식품의 자연스러운 색상이 인기를 끌고 있는데, 특히 보라색은 매력적으로 다가가기 쉽다”고 분석했다. 이어 “보라색은 Z세대 성향에 어울리는 색으로, Z세대는 대담한 색상과 건강한 성분의 식품에 관심이 높다”고 덧붙였다.
헤럴드경제=육성연 기자 gorgeou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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