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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무례함에 맞서는 류호정 "악플 모아 전시회 여는 건 어떨까요?"

21대 국회 최연소 국회의원 류호정

"권력 없는 이들 위해 기꺼이 '퍼포먼스' 하겠다"

'대장동 국감' 만드는 거대 양당 향해서는

"저런 게 바로 민생에 아무 도움 안 되는 쇼"

혼자 '자기 검열'하며 괴로워하는 여성들에게

"'같은 생각하는 이들 이렇게 많다' 위로하고파"

한국일보

국회의원 류호정은 여성들에게 설명을 덜 요구하는 사회를 만들고 싶다. '왜 결혼 안 했니' ''왜 애 안 낳니' '화장을 왜 안 하니' '치마를 입었니, 안 입었니' 이런 질문들에 대해 여성들이 굳이 설명을 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 말이다. 그는 이번 '여자를 돕는 여자들(여.돕.여)' 인터뷰를 통해 '내 생각이 틀렸나' 혼자 고민하며 외로워하고 있는 여성들에게 '아니다,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있다. 그리고 우리가 바꿀 수 있다'라는 메시지를 던지고 싶다고 말했다. 한지은 인턴기자

'의원님 혼자 가실 겁니다.' 인터뷰 일정을 앞두고, 류호정 정의당 의원 보좌관으로부터 한 통의 메시지를 받았다. 아무리 탈권위적인 정치인이라 해도 정말 국회의원이 혼자 올까. 게다가 약속 장소는 국회가 있는 여의도가 아닌, 한강 건너였다. 통상 국회의원들이 국회에서 도보 10분도 걸리지 않는 식당을 찾을 때도 수행비서를 대동해 번쩍번쩍한 세단을 타고 이동하는 것을 감안하면 색다른 모습이다.


'똑똑똑' 노크 소리. 그의 인기척이었다. 문을 여니 청색 점프수트를 입고 노란색 클러치를 손에 든 류 의원이 정말로 혼자 웃으며 서 있었다. 국정감사가 끝난 직후라 의원실 직원 대부분은 휴가를 가고, 일부는 감사원장 인사청문회를 준비하느라 혼자 왔단다. 이날 류 의원은 인터뷰 장소까지는 택시를 타고 왔고, 아침에는 자택이 있는 경기 성남시 분당에서 국회까지 지하철을 타고 출근했다. "직원들은 사무실에서 일을 하는 게 낫죠." 어깨를 으쓱하며 그가 덧붙였다.


2021년 한국 사회에서 가장 논쟁적이고, 비난을 한몸에 받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간의 공격을 꿋꿋하게 에너지로 변환해내는 정치인이 있다면 '류호정(29)'이 아닐까. '평균 연령 55세, 80% 이상 남성, 3명 중 1명이 SKY 출신'이라는 특성으로 기득권화된 국회 안에서 그는 끊임없이 균열을 만들어 내고 있다. 빨간 원피스를 입고 등원하며, '어이' '야'라는 연소자에 대한 무례한 호명을 되받아치며, 가지지 못한 이들을 대신해 어떤 코스튬플레이도 감당하면서 말이다.


한국일보

류 의원이 왼쪽에 찬 스마트워치. 한쪽은 무지개색 스트랩, 다른 한쪽은 노란색 스트랩을 엮었다. 각각 성소수자와 정의당을 상징한다. 한지은 인턴기자

류 의원은 스스로 '퍼포먼스 정치인'임을 부정하지 않는다. 작은 정당의 한계를 뚫기 위한 전략이기도 하지만, 국회의 시선이 닿지 않는 이들의 삶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자신의 일이라는 소명 때문이다. 그가 왼쪽 손목에 착용한 짝짝이 색깔 스마트워치가 눈에 띄었다. 한쪽은 '성소수자 친화'를 의미하는 무지개색, 또 다른 쪽은 정의당의 상징인 노란색 스트랩을 맞춰 엮었다. 노동자, 청년, 여성, 성소수자 등 공론장에서 쉽게 배제되는 이들을 위해 직접 상징이 되어 드러내겠다는 마음으로 읽혔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은 국회를 '대장동 국감'의 무대로 만들었다. 심지어 그다지 관련 없는 상임위에서도 일정 지연을 위한 피켓팅은 계속됐다. 참다 못한 류 의원은 산자위 국감 도중 태블릿에 '일합시다'라는 문구를 적어 내걸었다. 기성 여론이 손쉽게 ‘쇼하는 정치인’이라 규정한 류 의원은 이렇게 되묻는다. “저런 게 바로 쇼 아닌가요. 민생에 아무 도움도 안 되는 쇼.”


거대 양당의 ‘대장동 쇼’는 날카롭게 비판하면서도, 대변되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서는 기꺼이 ‘쇼’를 감당하겠다는 류 의원을 지난달 서울 용산구의 한 스튜디오에서 만났다.


1. "언젠가 악플을 모아 전시회를 열고 싶어요"

한국일보

아무리 정치인이라고 해도, '뭘 해도 욕을 먹는' 현실이 늘 기꺼운 것은 아닐 터. 스스로 '주목도'가 높은 것 같다고 판단하는 류 의원은 주목도를 활용해서 대변하고자 하는 분들의 목소리를 대변할 기회로 삼을 수도 있어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한다고 말했다. 한지은 인턴기자

-지난여름 안산 선수가 헤어스타일로 인한 사상 검증 공격을 받을 때, 자신의 쇼트커트 시절 사진을 올려 응원했었죠. 지금 머리가 조금 길었어요. 다시 시원하게 밀 생각은 없나요.


"쇼트커트가 확실히 편하긴 하죠. 안 그래도 요즘에 너무 갑갑해서 확 밀어버릴까 싶을 때가 있어요. 그런데 지역구(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했지만 지난해 12월 분당에 자신의 지역사무실을 개소했다)에서 어르신들이 성별을 물어 보는 등 불필요한 커뮤니케이션이 발생하더라고요. 그래서 좀 길러봤어요."


-'여.돕.여(여자를 돕는 여자들)' 기획 취지에 미뤄 보아 자신을 평가하자면요.


"초대해주셔서 영광이었어요. '내가 다른 분들보다는 좀 재밌어서 그런가?' 생각도 들었고요. (웃음)"


-'여성 청년 정치인'이라는 수사가 늘 이름 앞에 붙죠.


"중년 남성 정치인을 인터뷰할 때 '중년 남성 정치인으로서 무엇을 하실 겁니까' 묻지 않잖아요. 그들은 그냥 정치인이고, 국회의원이고, 개별적인 권한을 갖고 본인이 가진 소신으로 정치를 해 나가는데 꼭 저는 ‘청년 정치인으로서, 여성 정치인으로서 뭐 할 거냐’라는 질문을 받아요."


-'여성 정치인' '청년 정치인' 말고 ‘정치인 류호정’으로서 뭘 하고 싶은가요.


"중년 남성 의원들이 부동산 이야기 하고, 경제, 외교 등 각종 분야에 대해 말하듯 저도 그냥 정치인으로서 활동을 해야 하지 않을까요. 여성ㆍ청년 의제만 하라고 저를 (유권자가) 국회에 보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제가 좀 덜 낯선 존재가 되면 어떤 수식어가 안 붙지 않겠어요? 그냥 정치인 류호정."


-의정 활동을 하면서 가장 우선순위로 두는 것은 뭔가요.


"정의당은 노동자, 일하는 시민을 위한 정당이에요. 최근에는 일을 하지만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라고 불리지 않는 분들이 너무 많이 생겼어요. 프리랜서나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시는 분 등을 위해 활동하고 싶어요. 예를 들어 기후위기 때문에 재생에너지를 늘리면 막연히 깨끗한 세상에 살게 돼 좋겠다는 생각을 하잖아요. 그런데 화력발전소를 폐쇄하면 비정규직 하청 노동자들은 어떻게 될 것이냐는 문제가 남아요. 그들의 고용 안정에 대해 누군가는 목소리를 내는, 그런 일을 하고 있습니다."


민주노총 화섬식품노조 선전홍보부장 출신인 그의 인식은 노동 계급의 토대 위에 단단히 서 있지만, 최근 진보 진영 내 일부가 그를 바라보는 시선은 복잡하다. 김종철 전 대표가 성추행으로 제명되는 과정에서 마땅히 이뤄져야 했던 가해자에 대한 처분을 분열의 씨앗으로 보는 경우도 적지 않다. 중앙일보에 류 의원이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을 저격하듯 기고한 글도 논란이 됐다. 민주노총은 '조선·중앙·동아'를 취재 금지 매체로 두고 있다.


-'지금 정의당의 위기는 류호정, 장혜영 두 의원 때문'이라는 당내 비판 여론도 만만치 않아요.


"당내 좋지 않은 일들에 대해서 '청년이 문제다'라는 식으로 귀결하는 분이 있기는 해요. 그러나 저나 장 의원은 전국위원회에서 청년 할당 방침을 의결, 그 안에서 경쟁해 선출된 우리 당의 의원이거든요. 성장 중이기에, 지켜봐 주시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지지해주시는 선배 당원이 더 많다고 생각해요."


-중앙일보에 기고한 글도 화제가 됐죠. 어떻게 보수 일간지에 기고를 하느냐는 건데요.


"심상정 전 대표가 대통령이 된다면, 취재 매체를 지정할 것이 아니잖아요. 정의당은 조합이나 시민단체가 아니기에 구분해서 생각을 해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큰 지면에서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가 흔치 않아요. '좀 더 잘 쓰면 좋겠다'라는 생각은 하고 있어요."


-임기 1년을 맞이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그동안 받은 악플을 전시한 것도 인상적이었어요.


"언젠가 악플을 모아 전시회를 열고, 가능하다면 평론가를 섭외해 코멘트를 한번 받아보고 싶어요. 그런 행위를 하는 사람들이 부끄러움을 느끼게요."


-공격이 몰릴 때 위축되거나 조금 괴로운 마음이 들 때는 없나요.


"악플을 보다 보면 속이 꽉 막히죠. 근데 결론적으로 더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다 생각하고, 털고 일어나요. 멈춰서 있는 게 답은 아닐 테니까."


-극복 방식이 있다면요.


"가끔씩 저희 심 전 대표 페이스북이나 유튜브를 봅니다. 저는 고작 2년 동안 악플을 받았을 뿐인데, 20여 년간 악플을 받았을 심 전 대표의 SNS를 보면서 '그래 나는 아직 쪼랩(게임을 갓 시작한 낮은 레벨의 캐릭터)이야'라 생각해요."


-과한 악플을 다는 분들에게 한마디를 한다면요.


"제가 더 열심히 하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달고 계신 악플은 많은 사람이 함께 보고 있습니다. 자중을 부탁드립니다."

2. "MZ세대도 연대할 줄 압니다."

한국일보

매 순간 화석화된 국회에 균열을 일으키면서 '여자를 돕는 여자' 류 의원. 그런 그를 도운 여자는 누구였을까. 류 의원은 게임회사 재직 시절 성희롱 피해 증인 요청을 했던 한 후배를 떠올렸다. 한지은 인턴기자

악플을 다는 이들에게 ‘자중’을 요청하는 당당한 성격은 ‘K-장녀’가 놓였던 척박한 성장 환경에 기인한 걸까. 아버지에 의한 가정폭력 피해자였고, 동시에 이혼 가정에서 두 남동생과 어머니를 지키기 위한 장녀였다. 대학을 졸업하니 학자금 2,000만 원이 빚으로 덩그라니 남겨져 있었다.


-아버지와는 연락을 하시나요.


"저는 연을 끊었어요. 가정 폭력에 대해서 종종 생각을 하는데요. 학교 폭력 상황에서 피해자에게 '친구들이랑 잘 지내봐'라고 해봐야 가해자가 멈추지 않으면 끝이 나지 않는 거잖아요. 가정 폭력도 비슷한 게 아닌가 싶어요."


-가난한 청년으로 버텨야 했던 순간이 많았는데, 그러한 경험이 지금 정치를 하는 데 자양분이 됐을까요.


"저 정도 궁핍함은 우리 세대 평균 아닌가 생각해요. 요즘 세상에 집 한 채씩 턱턱 해줄 수 있는 부모님이 어디 있어요. 대학 가면 어느 정도 학자금 대출은 다 생기는 거고, 아르바이트도 해야 하는 거고, 앞날 계속 걱정하면서 살아야 되고 그렇잖아요. '먹고사니즘'에 대해 고민했던 것들을 정치하면서 잊지 않으려 해요."


-여의도에서 논의되는 청년 담론이 공허하게 느껴지는 지점도 있겠어요.


"가끔 여의도가 이상하다고 느낄 때가 있어요. 예를 들면 해외 매체를 만날 때 당연히 인터뷰를 할 정도로 영어 스피킹이 된다고 가정하더라고요. 평균에서 많이 먼 곳이구나 느꼈어요."


-류 의원이 생각하는 평균적 감성은요.


"월급날이 다가올 때 가장 궁핍하잖아요. 갑자기 통장에서 돈이 너무 빠져나가면 안 되니까 몇 만 원 정도를 미리 인출해 놓곤 했었어요. 600원과 650원짜리 컵라면이 있을 때, 그 50원 사이에서 고민을 한 적도 있어요. 제가 보기엔 세상엔 그런 사람이 더 많은 것 같거든요. 여의도에는 그런 평균적 감성을 가진 분들이 좀 드문 것 아닌가 싶어요. 아등바등 경쟁을 치열하게 해서 그 승자에게 뭘 줄 수 있을지 고민하는 정치보다, 특별한 재능 없는 시민이 평범하게 노력해서 얻을 수 있는 게 무엇인가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90년대생의 대학 캠퍼스는 이미 탈정치화한 지 오래죠. 대학 시절은 어땠나요.


"전 소위 말하는 운동권 출신은 아니었어요. 그냥 대학 다니다가 취업했죠."


-사회 변화 운동에 참여하진 않았나요.


"게임, 볼링, 포켓볼 동아리 같은 것을 했었는데요. 사회학과 학생회 공동대표를 하긴 했지만 과 친구들을 사귀고 싶어서였지 사회 운동을 하겠다는 생각을 갖진 않았어요."


-한창 캠퍼스에서 등록금 투쟁이 있던 시기였어요.


"반값등록금 집회에 나오라고 하더라고요. '가야 되는구나' 하고 그냥 갔어요. 그때 집회를 처음 간 제가 나중에 노조를 만들 거라고는 꿈도 못 꿨죠."


게임을 좋아해서, 돈을 빨리 벌어야 해서, 빚을 갚아야 해서 취직한 첫 직장이었다. 하지만 그곳에서 노동자들은 게임 출시를 앞두고 '크런치 모드'라 불리는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프로젝트 전후 권고사직을 당했다. 단 한 번도 스스로 '운동권'으로 규정하지 않았으나, '이래서는 안 된다'는 생각으로 노조 설립을 준비했다. 출범 직전 권고사직됐다.


-지금 생각해도 '노조를 만든다'라는 해결책을 떠올리긴 쉽지 않았을 듯한데요.


"파리바게뜨 노조 같은 경우에는 젊은 조합원이 많아서 인스타그램으로 소통을 해요. 네이버 노조는 노조 조끼 대신에 초록색 후드를 입고요. 그렇게 위화감이 들진 않았어요."


-요즘 MZ세대를 중심으로 제3의 노조를 만드는 움직임이 있는데요. 양대 노총에 소속되지 않고 새로운 노조 활동을 하겠다는 흐름이 여러 기업에서 감지되고 있어요.


"노조 조직은 우리에게 주어진 권리이기 때문에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고, 만들어지는 건 좋은 일이라고 생각해요. 노조가 유별난 게 아니라 일상이 됐으면 좋겠어요. 다만 회사 안에만 갇히지 않고 노동권 향상을 위해 다 같이 힘을 합치는 것에 대해서도 생각해주었으면 좋겠어요. 기업별 노조로 안에만 있다 보면 위기가 닥쳤을 때 같이 힘을 합칠 사람이 주변에 없지 않을까요."


-MZ세대가 연대 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뜻인가요.


"MZ세대라고 해서 연대를 모르는 건 아니에요. 지금 민주노총 산하 산업별 노조 안에 있는 IT 업계 노조도 꽤 젊은 편이거든요. 다 같이 연대를 많이 하고요. 넥슨에서 200여 명이 고용 불안에 처해 집회가 열린 적이 있어요. 스마일게이트든 카카오든 판교에서 다 같이 일을 하잖아요. 그러니까 점심시간에 그냥 함께 외치러 가는 거예요."

3. "저는 '쇼한다'는 말을 들어도 좋아요."

한국일보

류 의원은 지난해 12월 경기 성남시 분당에 자신의 지역사무실을 개소했다.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했지만, 다음 단계를 위해 지역에 터를 닦기 시작한 것. 이따금 지역에서 듣는 그의 별명은 '아기 의원님'이다. 호감의 표시이기는 하지만, 그가 젊은 여성이 아니었다면 듣지 않아도 됐을 호칭이다. 한지은 인턴기자

젠더 이슈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정치인이지만, 그가 처음부터 페미니즘을 깊이 이해했던 것은 아니다. 2016년 넥슨에서 페미니즘 사상 검증으로 계약 해지된 김자연 성우 사건 등 게임 업계에서 겪은 크고 작은 사건을 계기로 한국 사회의 성차별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게임 노동자로 일하다 노조를 만들던 도중 권고사직을 당했죠.


"학교 다닐 때는 '세상은 점점 나아지고 있고, 열심히 살면 되는데, 여성운동하시는 분들을 보면서 왜 저렇게 피곤하게 살까' 생각도 했거든요. 막상 취업을 해서 겪어보니 '침묵하면 아무것도 안 바뀌는구나' 싶었어요."


-예를 들면요.


"회사에서 신입사원들을 모아 놓고선 반장은 남자로, 부반장은 여자로 정하래요. 그런 걸로 화내기도 유치하지만 기분이 나쁘더라고요. 결국 그때 서울대 나온 남자가 반장을 했거든요. '이게 진짜 사회구나' 싶었죠."


-다니던 회사에서 성희롱 피해를 입었죠.


"저는 그때 침묵했었어요. 그런데 저보다 늦게 입사한 친구가 갑질과 성희롱을 겪고는 침묵하지 않기로 한 거예요. 어느 날 제게 연락이 왔는데 증인이 되어 달라고 했어요. 미안하더라고요. 제가 1년 전 문제 제기를 했다면, 뒤에 입사한 사람은 겪지 않아도 될 일이잖아요. '내가 침묵해서 그런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부터 좀 더 목소리를 낸 것 같아요."


-그런데 왜 정치여야 했나요.


"노조에 몸담았을 땐 '노조가 생기면 많이 바뀔 것'이라 생각했어요. 실제 바뀐 것도 많지만, 노조가 없는 사업장이 훨씬 더 많고 작은 곳은 노조를 만들 엄두도 못 내잖아요. 몇 년 전 탄력근로제와 관련해 국회 앞에서 집회를 했던 날이었어요. 사람들과 모여 구호를 외치고 있는데, '과연 우리의 목소리가 국회 안으로 들어가고 있나?' 하는 의문이 들었고, 내가 저 안에서 목소리를 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들어오니 어떤가요. 늘 ‘퍼포먼스 정치인’이라는 비판이 따라붙습니다.


"큰 두 당은 가만히 있어도 카메라가 가요. 무엇을 하고 있는지 국민들께 자연스럽게 알릴 수 있어요. 정의당은 그렇지 않아요. 제가 타투업법을 위한 퍼포먼스를 했을 때 굉장히 화제였잖아요. 그런데 사실 기자회견 장소에 기자가 한 분도 안 오셨어요. 그 모든 건 나 자신을 유명하게 하고자 하는 게 아니라 정의당에 찾아온 분들의 목소리를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알릴 수 있을까 고민한 결과로 하는 거거든요. 저는 그래서 ‘쇼한다’는 말을 들어도 좋습니다."


-홍준표 국민의힘 의원이 공동발의자로 참여해 화제가 됐어요.


"발의를 하려면 10명이 필요한데, 몸에 타투 하나쯤 있는 분은 편견이 좀 덜하지 않을까 싶었어요. 그중 제일 유명한 분은 홍준표 의원님! 처음으로 전화로 인사드렸는데 '으하하하' 웃으며 해주셨어요. 이번에 제 상임위인 산자위로 사보임해오셨는데, 자꾸 제 옆에서 졸거나 출석을 잘 안 하셔서 보기 힘들어요. 기본은 하셨으면 좋겠어요."


-이후 진척은요.


"보건복지부 소관인데 부처 공무원과도 회의를 했고, 다 긍정적이에요. 이제 국감이 끝났으니 상임위에서 토론을 해서 통과시키기만 하면 되는 상태인데 복지위에 정의당 의원이 없어요. 틈틈이 보건복지위원들께 연락을 드리고 있어요."


-소속 의원이 6명뿐이라 한계를 느끼겠어요.


"일하다 보면 의원 수 적은 게 너무 아쉬워요. 상임위가 18개인데 의원이 6명이니, 저희가 복수전공에 부전공까지 해서 3개씩 담당해야 해요."


-특히 국감 때 그렇지요.


"거의 모든 순간에 느껴요. 쟁점이 되는 사안인 경우 법안 발의를 위해 열 명 모으는 것도 너무 힘들거든요. 지난해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법사위에 있을 때나, 타투업법이 보건복지위에 있을 때 해당 상임위에 우리 당 의원이 없어 발만 동동 구르는데 너무 아쉬워요."


-올해 국감에는 태블릿에 '일합시다'를 적어 내걸었죠.


"이번 국감은 대장동 국감이었어요. 대선을 앞두고 모든 이슈가 그쪽으로 빨려 들어갔죠. 제 상임위는 대장동 이슈나 곽상도 전 의원과 별로 관련이 없어요. 그런데도 첫날부터 두 당 의원님들께서 관련 피켓팅을 하면서 40분가량 일정을 지연시키더라고요. 저는 그런 게 쇼라고 생각해요. 민생에 도움이 안 되는 쇼!"

4. "자신을 갉아먹으면서 싸울 필요는 없어요."

한국일보

류 의원이 노란 우산을 펼쳐들었다. 좋은 정치는 비바람을 멈추게 하는 것일까, 함께 우산을 쓰고 서 있는 것일까. 한지은 인턴기자

거침없는 표현과 허스키한 목소리, 그리고 거대 양당을 향해 목소리를 낼 수밖에 없는 위치 탓에 류 의원은 늘 분노하고 투쟁하는 모습으로 미디어에서 그려진다. 시끄럽게 소리 내며 기득권에 저항하는 여성을 향한 흔한 프레이밍이다.


-언론에 그려지는 본인 모습은 어때요.


"실제로 저는 장난기가 많은 편이고 주변에서 ‘아가저씨(아가씨+아저씨)’라고 부를 정도로 털털해요. 앞으로는 평소 모습을 많이 보여 드리고 싶은데 쉽지 않네요."


-남은 임기 내 '내가 이것만큼은 진심을 다했지'라고 기억되고 싶은 의제가 있다면요.


"형법 32장 개정, ‘비동의강간죄’ 통과를 꼭 이루고 싶어요. 각종 성폭력 사건에 공분할 때마다 특별법 같은 것만 고치거든요. 지금 강간죄의 구성 요건은 폭행 또는 협박으로 간음했을 때예요. 그런데 위계ㆍ위력에 의할 때라든가, 폭행이나 협박이 없는 경우도 있다는 걸 우리 모두 알잖아요. 구성 요건 자체가 바뀌지 않으면 사회가 바뀌기 힘들다고 생각해요. 이번 임기 내에 꼭 통과시키고 싶어요."


-동시대 다른 여성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저의 지지 않는 모습, 투쟁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왜 저렇게 못하지' 생각하는 분들이 있는데요. 전 지금 몇 년 전 고용을 걱정해야 했던 월급쟁이 게임 회사 직원이 아니잖아요. '내가 주저하면 다른 분들이 더 주저하지 않을까? 함께 연대하는 분들께 당신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라고 말하고 싶은데. 그러니까 나는 더 행동해야 해'라고 생각해요. 현장에서 '먹고사니즘'을 함께 해결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분들까지 그렇게 자기 자신을 갉아먹으면서 회사에서 잘려가면서 분투할 필요는 없어요."


-지금의 류호정을 만든 '나를 도운 여성' 한 명을 꼽는다면요.


"그때 제게 성희롱 증인을 요청했던 후배요."


-아직도 연락하시나요.


"지금은 연락이 잘 되진 않아요. 결국엔 피해자가 퇴사를 했거든요. 그 친구 덕분에 제가 행동하게 된 것 같아요. 가끔씩 그 후배가 보고 있다 생각하면서 의정활동을 할 때도 있어요. 또 그 후배 같은 사람들이 20, 30대 여성의 평균이라고도 생각하고요. 그 후배가 받아들일 수 있는 내용이라면 다른 여성들도 공감해 줄 수 있을 거라 생각하며 일합니다."


-허스토리 독자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릴게요.


"뭐가 됐든 여러분의 잘못은 아닙니다. 자기 검열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한국일보

허스토리 독자와 동시대 여성을 향한 메시지를 적어 달라는 요청에 류 의원은 언제나 당신의 편이라 남겼다. 한지은 인턴기자

문득 궁금해졌다. 류호정은 정말 '쇼만 하는 정치인'일까. 허스토리 인터뷰가 있었던 10월 25일부터 이달 17일까지 류 의원의 공식 일정(11일 기준)을 모조리 집계해봤다. 그는 약 3주 동안 의원총회, 본회의, 상임위, 토론회 등 국회 관련 일정 24건, 쿠팡 물류센터 산재 유가족 등 면담 6건, 언론 인터뷰 5건을 했다. 정의당 선거대책위원회 등 당 활동에서도 역할을 했다.


그리고 다음은 3주 동안 류 의원이 방문한 외부 장소 중 일부다. ①10월 30일, SPC의 파리바게뜨 노조 탄압을 규탄하는 핼러윈 집회에 참가했다. ②11월 1일, 낙태죄 폐지 관련 전시인 '몸이 선언이 될 때'의 토크 세션에 패널로 참석했다. ③4일, 발전소 비정규 노동자들의 노동 실태를 알리려 한국남부발전이 있는 부산으로 가 규탄 결의대회를 함께 했고 천막 농성장을 찾았다. ④8일, '차별금지법 연내 제정 쟁취 농성단'이 국회 정문 앞에 와서 차린 농성장을 찾았다. ⑤11일, 성소수자 부모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너에게 가는 길' 시사회에 참석했다.


'쇼만 하는 정치인'으로 분류되지만 같은 기간 쇼는 단 한 차례뿐이었다. 타투이스트를 국회로 초청해 연 타투 체험 행사가 바로 그것. '불법'이라는 그늘 아래 노동 착취와 성폭력 위험까지 상존하는 타투 노동자들을 위한 '쇼'였다. 그리고 포털 사이트에는 '류호정, 이번에는 국회에서 타투 체험 행사' 같은 제목을 단 기사들이 쏟아졌고 수백, 수천 개의 댓글이 달렸다.


각 기사에 달린 댓글 중 몇 개를 전시해본다. 상스러운 표현과 여성 비하 욕설이 대부분이라 지면에 옮길 수 있는 수준의 약한 악플을 인용했다. "어디서 애를 데려다가 두고 나랏일을 시켜?(yach****)" "철딱서니 없는 딸래미(kim3****)" "할 줄 아는 게 튀는 옷 입고 쇼하는 거냐(amur****)"


이혜미 기자 herstory@hankookilbo.com 영상=박고은 PD rhdm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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