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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군산엔 빨간 국물이 흐른다

이우석의 밥방곡곡

한겨레

서원반점의 짬뽕. 사진 이우석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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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에두르고 휘돌아 멀리 흘러온 물이, 마침내 황해 바다에다가 깨어진 꿈이고 무엇이고 탁류째 얼러 좌르르 쏟아져 버리면서 강은 다하고, 강이 다하는 남쪽 언덕으로 대처(大處) 하나가 올라앉았다. 이것이 군산이라는 항구요, 이야기는 예서부터 실마리가 풀린다.’


채만식은 소설 탁류(濁流) 들머리에 이렇게 썼다. 시대적 공간적 배경은 일제강점기 수탈지인 군산, 탁류는 금강(錦江)이었다. 80여년 세월이 흘러 지금 군산에는 홍류(紅流), 붉은 짬뽕 국물이 흐르고 있다. 군산만 가면 그렇게들 짬뽕을 찾아댄다.


지난달 7~22일에는 군산시가 ‘2020 온라인 군산짬뽕페스티벌’까지 열었다. 얼마 전에는 ‘군산짬뽕라면’을 개발해 한 백화점에 판매용으로 출시하기도 했다. 지난 8월 기준 군산시에는 짬뽕을 파는 중국집이 무려 167개다. 인구에 견줘 엄청난 숫자의 중국집이 붉은 대결을 펼치고 있다.


군산과 짬뽕 사이에는 어떤 역사적 사실이 숨어있을까. 군산의 역사부터 알아야 한다. 일제강점기 군산은 170가구 588명(1899년)이 살던 작은 어촌마을이었다. 그러다 일제가 호남·호서평야의 쌀을 수탈하기 위해 군산을 개항했다. 철도가 놓이고 세관과 은행이 들어섰다. 대략 10년 후인 1910년 일제는 조선총독부령 제7호를 통해 조선 12개 도시지역을 부(府)로 지정했는데, 군산이 여기에 이름을 올릴 정도로 성장했다.


미두장(쌀을 현물처럼 팔고 사는 곳)이 들어서고 항만이 번성하니 돈을 좇아 일을 따라 군산에 몰려드는 이가 많았다. 그중에는 중국인도 있었다. 지금의 군산 짬뽕 시대를 연 군산 화교의 시초다. 부자들이 가던 청요리집부터 간이음식점까지 다양하게 생겨났다. 화교들의 솜씨가 군산의 풍부한 해산물, 농산물과 만났다. 여기다 전라도 특유의 입맛과 손맛이 더해졌다. 산둥반도에서 건너온 중국음식 초마면은 1960년대 고춧가루가 더해지고 이후 짬뽕이 되었다. 돼지고기와 채소, 간단한 조개류와 갑오징어, 주꾸미를 넣은 짬뽕이 그 맛을 유지하며 21세기에 이르니 곧 군산의 명물로 자리매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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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반점의 잡채밥. 사진 이우석 제공

군산에는 수많은 짬뽕 명가가 있지만 짬뽕 특화 거리에 위치한 서원반점을 소개하려고 한다. 잡채밥으로 유명한 이 집 짬뽕은 옛날식이다. 채 썬 양배추와 오징어, 칵테일 깡통 새우 등 재료의 면면은 특별할 게 없다. 하지만 주문과 함께 바로 센 불에 볶아내 재료 각각이 씹는 맛이 살아있다. 국물도 허투루 낸 게 아니다. 그리 진하지 않은 붉은 맛이 시원하게 식도를 타고 흘러든다. ‘시원하면서도 어디서 이런 구수한 맛이 들었나’ 하며 몇 번 뒤척여보게 된다. 면을 주섬주섬 집어다가 입에 한 보따리 넣어 씹고 국물을 들이켜면 온몸에 온기가 돌아 ‘체온 측정’에 걸릴까 걱정될 정도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잡채밥도 좋다. 전국 최강급으로 꼽는 이도 더러 있다. 흰밥 아닌 볶음밥에 얹은 잡채는 갓 볶아낸 그 뜨거운 열기를 입술에 전한다. 센 불에 태운 간장과 기름의 고소함이 그저 스쳐 지나는 게 아니라 마지막 입 닦는 냅킨까지, 여운을 남긴다.


짬뽕 얘길 듣고 왔는데 정작 식당에 들어서면 모두 잡채밥을 먹고 있어 분명히 망설여질 테다. 아! 잡채밥을 주문하면 짬뽕 국물을 주긴 한다.


이우석(놀고먹기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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