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감 천재 한국인 최고의 발명품, 아귀찜
홍신애의 이달의 식재료 아귀
아귀찜. 게티이미지뱅크 |
대학생 때 서울 중구 충무로 대한극장 근처의 요리학원에 등록했다. 첫날 메뉴는 아귀찜. 맨날 요리된 살 부위를 먹어만 봤지, 실물 민낯을 처음 접한 아귀는 그야말로 못생김의 대명사 같았다. 몸의 절반이 입이고 뾰족한 이빨이 있고 몸통은 물컹하다. 나름 귀여운 두 눈은 살짝 몰려 있는 게 착해 보이는 인상이었다. 이걸 어떻게 요리하지? 선생님이 시범을 보이기 전까지 아귀는 도저히 못 먹을 것 같은 이상한 재료였다.
아귀의 다른 이름은 물텀벙이다. 예전에 그물에 아귀가 걸려 올라오면 재수 없다고 물에 던져버린 데서 비롯한 이름이다. 그물에서 떼어내기도 힘들어 바닷물에 바로 첨벙첨벙 던져버렸다고 해서 물텀벙.
그런데 이 천덕꾸러기가 어느샌가 식탁 위 고급 생선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아귀를 먹기 시작한 건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닌 것 같다. 아귀에 대한 기록은 많지 않고 일제시대 이후 ‘아구찜’(아귀찜)이라는 형태로만 주로 발견이 된다. ‘아구’는 아귀의 경상도 방언이다. 요리 이름이 아구찜이니 경상도 지역에서 이런 찜 요리를 만들어냈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경남 마산이 아귀찜의 원조 도시로 알려져 있고, 마산에 가면 말린아귀, 생아귀를 나눠서 여러 형태로 찜을 해 먹는다. 특히 아귀의 위와 간이 통채로 들어간 맑은 탕 형태의 생아귀찜은 콩나물과 빨간 양념 맛으로만 획일화된 기존의 아귀찜과 차별되는 별미다.
아귀 간으로 만든 요리, 안키모. 게티이미지뱅크 |
아귀는 얼핏 보면 먹을 수 없는 생선처럼 생겼다. 비늘이 없고 미끄덩거리면서 색도 거무튀튀하다. 해저를 기어다니면서 이것저것 먹어치우는 심해어라고 알려져 있다. 우리가 흔히 시장에서 보는 아귀의 모습은 허연 배가 하늘을 향한 채 간을 배 밖으로 꺼내놓은 형태다. 아귀가 대접을 받기 시작한 것은 바로 이 배 밖으로 나온 간 때문이다. 아귀 살은 흐물거리고 양도 적고 손질해 요리하기도 까다로운 편인데 비해 아귀 간은 크고 맛있어서 바다의 푸아그라라고 불리기도 한다. 일부 상인들은 살은 거의 사용하지 않고 간만 떼어낸 후 나머지는 버리기도 하는데, 아귀의 물텀벙 신세는 간을 내어주고도 계속되는 것 같다.
아귀 간은 청주를 탄 물을 끓여서 살짝 쪄내거나 버터를 둘러 팬에서 살살 익혀 먹으면 그 부드러운 맛이 최고다. 입안에서 혀를 타고 부드럽게 부서지며 흘러내리는 그 느낌이 마치 고급 버터를 녹여 먹는 것과 같아서 미식가들에게 인기가 많다. 일본에서는 술에 찐 아귀 간을 ‘안키모’라고 부르고 이걸 초밥이나 다른 고급 요리에 종종 응용한다. 서양에서도 아귀 간을 고급 식재료로 여기고 다양한 요리에 활용한다. 축구선수 출신의 영국 스타 요리사 고든 램지도 아귀와 아귀 간을 이용한 특별한 요리를 만들어 인기를 얻기도 했다.
아귀의 살은 생물일 때 물컹하지만 익히고 나면 보드랍고 쫄깃하기까지 하다. 아귀는 껍질과 내장도 모두 족발의 껍질 부분처럼 쫄깃하면서도 달달한 맛과 식감이 있어서 좋다. 콩나물과 미더덕을 넣고 빨간 양념을 한 아귀찜 요리는 식감을 중히 여기는 ‘식감 천재’ 한국인의 최고 발명품이다. 보드랍지만 다소 뻑뻑한 아귀의 흰 살과 함께 아삭한 콩나물, 톡 터지는 미더덕 혹은 오만둥이에 접착제 같은 역할을 하는 빨간 양념. 최고의 궁합이 아닐 수 없다.
홍신애 요리연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