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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지에 짜장면까지…한끼도 타협하기 싫다면 이곳으로 [ES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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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끼 식사라도 제대로 먹겠다는 미식이 대세인 시대다. 식사 시간이 4~5시간을 넘는 파인다이닝(고급 정찬)이나 ‘푸드 페어링’(음식과 술의 조화)도 이젠 생소한 식문화가 아니다. 바야흐로 미식은 우리 일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 된 것이다. 덩달아 미식 여행도 인기다. 지난 6월 코레일관광개발이 내놓은 ‘고메트레인 특별 기차여행’은 출시하자마자 여행객들의 호응이 컸다. ‘고메’는 미식가를 뜻한다. 열차를 타고 충북 제천·단양, 경북 영주에 내려 지역 음식을 맛보는 상품이다. 눈으로 즐기는 여행과는 그 결이 다르다. 지역 농부들의 삶과 지역민들의 식습관, 자연환경, 역사 등이 한 접시에 담겼다. 이런 이유로 미식 여행은 ‘맛 체험’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가을이 깊어간다. 이 계절에 떠나볼 만한 미식 여행지는 어디일까? 미식가들이 1순위로 꼽는 곳은 남도의 신안과 목포다. 지난 5일부터 이틀간 이 지역을 다녀왔다.





금어기 끝난 가을낙지가 제맛





“이게 힘이 좋으면서도 너무 부드럽죠.” 지난 5일 ‘천사신안아구찜’에서 만난 신안군청 식문화팀 강선희 팀장은 ‘신안 뻘낙지’ 자랑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신안의 자랑거리는 갯벌이죠. 영양분이 많은 뻘에서 잡은 낙지는 타우린 함량도 높아요. 지금부터 겨울 초입까지 딱 제철이네요.” 신안군 갯벌은 전국 최대 규모다. 국내 연간 낙지 총생산량도 신안을 포함한 전남 해역이 70~80%를 차지한다. 여름 금어기가 끝난 지금 잡히는 낙지가 유독 맛이 좋다.



돌 틈이나 갯벌에 서식하는 연체동물 낙지는 양식이 쉽지 않다. 낙지의 수명은 대략 1년인데, 암컷은 알을 낳은 뒤 서너달을 돌보다가 알이 깨어나면 생을 마감한다. 해야 할 도리를 다했다고 판단한 것일까. 낙지가 속한 문어과 동물들의 지능이 높다는 건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수컷도 교미가 끝나면 죽는다. 미스터리한 습성이다. 이 번식법을 연구하는 연구소가 있을 정도다. 이렇다 보니 낙지의 먹이인 게나 새우류, 조개류 등이 넘쳐나도 양식은 꿈도 못 꾼다. 고작 인공 산란장인 ‘낙지 목장’을 만들어 어미를 보호하는 정도에 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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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천사신안아구찜’(신안군 압해읍 무지개길 321/061-261-7718)에 낙지 한상이 차려졌다. 낙지탕탕이(산낙지를 탕탕거리며 잘게 다져 육회·달걀노른자와 먹는 음식), 낙지초무침(각각 ‘중’짜 4만5천원), 연포탕(2만원) 등이 차례로 나왔다. 3년 전 문을 연 ‘천사신안아구찜’은 목포에도 식당이 있는 강공주(49)씨가 주인이다. 그가 산낙지를 선보였다. 꿈틀거리는 모양새가 허점만 보이면 그 틈을 노려 튈 태세다. “요놈 좀 보소. 세죠. 이걸 탕 끓이면 담백한 맛에 완전 보약이랑께요.” 주인 칭찬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낙지는 제 갈 길을 가려고 한다. 미끈하고 반들거리는 몸통이 스테인리스 그릇 위로 튀어 오른다. 손가락 두개를 붙여놓은 크기의 몸통은 힘이 세다. 8개의 팔이 그릇 바닥에 빨판을 단단하게 붙이고 있다. 낙지는 몸통·머리·팔 세 부분으로 돼 있는데, 우리가 흔히 머리로 착각하는 몸통에는 심장·위·간 등의 내장이 있다. 주인이 급하게 양손으로 잡아도 역부족이다. 사생결단이라도 할 태세다. 온 힘을 다해 주인의 두툼한 손을 세차게 감는다. “신안 갯벌 낙지가 이만큼 싱싱해요. 요 꼬라지 좀 보소.” 주인은 공연 커튼콜 마치듯 이 말을 남기고 방을 나갔다.



예부터 낙지 중 세발낙지를 으뜸으로 쳤다. 발이 세개라서 세발낙지가 아니다. 발, 정확히는 팔 부분이 가늘어서 그 뜻인 ‘세’(細) 자가 붙은 것이다. 1970년대부터 불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목포에선 그 모양새가 너무 예뻐 ‘꽃낙지’라고도 불렸다.



선조들의 낙지 사랑은 여러 문헌에서 확인된다. ‘자산어보’(정약전, 1814년)엔 “말라빠진 소에게 낙지 서너마리 먹이면 곧 강한 힘을 갖게 된다”고 적혀 있으며 ‘주촌신방’(조선 후기 학자 신만이 쓴 의서)에는 “혈액을 보충하고 기를 돋운다”고 기록돼 있다. 이것뿐인가. 다양한 낙지 조리법도 전해진다. ‘산림경제’(조선 후기 실학자 홍만선이 쓴 농업·가정생활 책), ‘주방문’(조선시대 편찬된 것으로 추정되는 한글 요리책), ‘시의전서’(조선 후기 쓰인 요리책)에는 낙지를 볶고 써는 법이 등장한다.





“김대중 선생 고향 가는 길에서 낙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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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식 여행 일정을 잡을 때 가장 고민되는 점은 아침 식사다. 이른 아침에 문 여는 식당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저 공복을 채우자는 심산으로 식당을 고를 수는 없다. 진정한 미식가라면 한끼도 타협하지 않는 법이다. 그런 점에서 신안군 압해읍 송공여객선터미널 앞에 있는 ‘정자네 횟집’(신안군 압해읍 압해로 1852-5/061-271-6994)은 반가운 곳이다. 새벽 4시께 문 여는 이 집을 지난 6일 아침 8시께 찾았다. 주인 김정자(61)씨는 “단체 관광객 맞으려면 일찍 열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 집엔 다른 식당에도 없고 심지어 차림표에도 없는 특이한 낙지 요리가 있다. 주인 김씨는 “우리 손님들은 ‘물김연포탕’(4인분 5만2천원) 주라 해요. 바다에서 채취한 물김으로 만든 연포탕이제.”



물김은 우리가 먹는 마른 김의 재료다. 김씨가 동갑내기 남편 정진영씨와 함께 개발했다. “어느 날 물김 넣고 (남편한테) 낙지 끓여주니 맛있다 하데요.” 가족이 맛있다고 하니 지인들에게도 선보였다. “다들 맛있대요. 팔아도 되겠다 싶었지요.” 손가락 세개 크기의 전복까지 떡하니 올라가니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돈다. 바다의 맛이 큰 냄비 안에 가득하다. 흐물흐물 부드러운 김과 탱탱한 낙지는 이질적인 질감이다. 하지만 구수한 육수 안에서 화합하며 결국은 한 몸이 되고 만다.



낙지와 꽃게가 만나는 대파칼국수를 내는 식당도 있다. 신안군 자은도에 있는 ‘신진횟집’(신안군 자은면 두봉길 10-38/061-271-0008)은 개업 역사만도 33년이다. 지금의 주인 이영순(53)씨가 맡은 건 4년 전. 서울에 대파버거가 있다면 이곳엔 대파칼국수(1만2천원)가 있다. 칼국수 면에 대파즙을 섞어 만든 것이다. 여기에 살이 넉넉하게 오른 꽃게까지 덤으로 올라가 푸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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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에 있는 ‘신미정’(목포시 산정안로 24/061-277-5289)도 낙지 명가다. 식당 경력 45년째인 김옥순(73)씨와 남편 송신일(75)씨가 운영하는 이 집은 반찬에서 품위가 느껴진다. 본래 식당의 격은 반찬이 결정한다. 가지런히 나오는 반찬들은 만듦새와 맛이 정갈하다. 배가 들어간 신미정의 낙지초무침(4인분 6만원)은 단맛과 매운맛이 교차하며 혀를 사로잡았다. 바삭한 김 가루가 올라간 밥과 비벼 먹으면 호화로운 파인다이닝이 부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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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는 “배로 2시간 걸리는, 김대중 선생 고향 하의도 가는 길에 있는 옥도 낙지밖에 안 쓰제. 매일 배로 오제. 옥도 낙지를 젤로 치제”라고 자랑한다. 그는 식당 뒷마당으로 안내해 옥도 낙지를 보여줬다. 낙지는 수족관에서 힘차게 유영하고 있었다. “직접 만든 막걸리식초로 맛 내제.” 좋은 재료에 딱 맞는 양념이다. 일흔이 넘은 노구에서 배어나는 자신감에 고개가 숙여진다. ‘제일 좋은 낙지로 맛을 내자’란 원칙을 지켜내며 살아왔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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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장면 60원’이었던 노포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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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는 2019년 ‘맛의 도시’ 선포식을 할 정도로 미식이라면 자부심이 큰 곳이다. 짜장면조차 예사롭지 않다. 지난 6일 목포오거리에 있는 ‘중화루’(목포시 노적봉길 7-1/061-244-0774)에 들어서자 제일 먼저 눈에 띈 것은 1965년에 만든 차림표였다. “우동 60, 짜장 60, 간짜장 80, 군만두 120, 보꾼밥 100” 등이 적힌 누런 차림표가 액자에 걸려 있었다. 화교 출신인 주인 왕윤석(64)씨는 “아버지가 만든 것”이라고 했다. 1947년에 문을 연 노포의 흔적이다. 이곳에는 특별한 짜장면이 있다. 차림표에 ‘중깐’(7천원)이라고 적힌 것이다. “70년대엔 직원이 13~15명 될 정도로 잘되는 유명한 청요릿집이었죠. 손님들이 요리 다 드시고 마지막에 기스면이나 짜장면을 먹었는데, 양이 너무 많아 남기니까 아버지가 면을 가늘게 빼고 채소·고기 다져서 요만큼 후식 개념으로 주셨어요.” 해를 거듭할수록 요리보다 후식을 찾는 이가 많아졌다. 손님들은 이름 없는 이 음식을 두고 ‘중화식당(중화루의 옛 이름) 간(깐)짜장’이라 불렀다. ‘중깐’의 탄생 사연이다. ‘중깐’은 주변 중국집으로 퍼졌고, 2000년대 중반 당당히 차림표에 이름을 올렸다. 지난해엔 상표등록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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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루는 3대가 지켜온 76년 역사의 노포다. “중국 산둥성에 살던 작은할아버지와 우리 할아버지가 동학농민혁명 때 이곳으로 왔다”고 왕씨는 말한다. 작은할아버지가 문을 연 이 식당은, 인천에 거주하다가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목포로 피난 온 왕씨의 부친 왕서은(2006년 작고)씨가 1950년부터 맡았다. 윤석씨가 합류한 때는 1995년부터다.



‘중깐’은 신기한 면 요리다. 면을 즐기는 새 경지를 제시한다. ‘우동은 목으로 먹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부드러운 일본식 우동의 목넘김과 유사하면서도 이빨을 슬쩍 스쳐 가게 하는 장기를 펼친다. ‘고독한 미식가’가 이곳을 찾는다면 ‘이토록 부드러운 짜장면이 있다니’란 말을 하지 않을까. 돼지고기·생강·마늘·양파·양배추 등이 잘게 부서져 버무려진 소스는 달곰하다. 면이 가늘고 얇아 소스와의 밀착도가 높다. 이곳에선 탕수육도 특별하다. 도축한 지 이틀을 넘기지 않은 암퇘지 등심이 재료다.



1972년 문 연 노포 ‘해남해장국’(목포시 삼학로 18번길 2-2)의 ‘맑은뼈해장국’(1만원)도 ‘중깐’만큼 독특하다. 감자탕인데 국물이 맑다. 주인 조광문(47)씨는 “3시간 이상 끓인다”고 한다. 모친 김길란(75)씨가 문 열었을 때만 해도 “연탄불에 5시간 이상 끓였던” 감자탕이다. 고기가 넉넉히 들어간 뼈해장국은 국물에서 은은한 단맛이 난다. 조씨는 양파가 비결이라고 말하며 더는 설명하지 않는다. 그는 웃으면서 “어머니가 개발한 맛인데, 비밀”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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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식 여행의 마지막은 디저트다. 70여년 역사를 자랑하는 분식집 ‘쑥꿀레’(목포시 영산로59번길 43-1/061-244-7912)가 있다. 이곳에서 파는 ‘쑥꿀레’(6천원)는 쑥이 재료인 경단에 흰 팥앙금을 버무린 떡으로 조청 등을 부어 먹는 우리네 디저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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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미식가 기타오지 로산진은 ‘단 한번 주어진 인생을 아름답고 건강하고 자유롭게 사는 방법’을 “삼시 세끼 맛있는 음식만 먹고, 좋아하는 음식만 먹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굳이 고급 음식일 필요는 없다. 자신의 혀가 ‘승인’하는 음식이면 된다. 미식 여행은 ‘자신의 맛’을 찾아 떠나는 여행이다.



※참고 문헌 ‘누구나 알아두면 좋은 우리 생선 이야기’ ‘신안군 섬음식 백서’



신안·목포/글·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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