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릴라 글래스6 시대 유리를 만지는 인류의 10년
지하철에서는 유독 깨진 스마트폰이 많이 눈에 띈다. 늘 손에 들고 다니는 만큼 손에서 떨어뜨릴 확률도 높아서다. 어느 개인 사물보다도 낙하 확률이 높은 물체를 유리로 만들다니, 왜 그랬을까?
2007년 아이폰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화면은 유리가 아니었다. PDA나 초기의 스마트폰은 모두 플라스틱이었다. 손가락으로 만지는 대신 스타일러스라는 플라스틱 막대기로 꾹꾹 눌렀다. 플라스틱은 약간씩 휘며 압력을 감지했다. 아이폰이 유행시킨 정전(靜電)식 감응은 손가락이 화면에 닿아서 약해진 전기장을 파악해내니, 딱딱한 강화 유리라도 상관없었다. 차가운 유리를 손끝으로 쓰다듬는 촉감은 플라스틱을 긁는 것과는 다른 쾌감이었다.
아이폰 등장 불과 6개월 전, 잡스는 당시 코닝사의 CEO에게 연락한다. 플라스틱이 전면을 덮은 시제품을 잡스가 받아 들고 표정이 변한 직후였다. 흠집과 파손으로부터 강한 강화 유리의 가능성을 직접 묻고 싶어서였다. 코닝에게 주어진 준비 기간은 겨우 6개월. 왜 그렇게 급했냐면, MP3 플레이어 아이팟의 성공을 전 세계의 폰 메이커들이 다 따라 하려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다행히 코닝에게는 이미 60년대부터 준비해온 그럴듯한 유리들이 있었다. (지금은 매각해버렸지만) “깨지지 않는 아름다움” 코렐 그릇은 물론 아폴로에서 우주왕복선까지 우주선 창문을 만들어 온 회사다웠다. 우주선의 유리창이 깨지면 어찌 되는 것인지 생각하면 경이로운 기술이다.
바로 이어진 아이폰의 대성공은 코닝의 켄터키 공장을 되살려낼 정도였다. 5년 뒤인 2012년 코닝은 2세대 고릴라 글래스를 20% 더 얇아진 두께와 20% 더 강해진 강성으로 업그레이드한다. 그리고 매년, 때로는 격년으로 업그레이드해 오고 있는데 이번에 선보인 고릴라 글래스6는 1미터 높이에서 15번쯤 떨어져도 버틸 수 있을 정도라니, 전작에 비하면 두 배의 생존율이다.
고릴라 글래스가 설치된 기기는 어느새 60억대. 하지만 경쟁은 피할 수 없어서, 드래곤테일 등 무시무시한 이름의 경쟁자들도 등장하니 기분은 특촬물 같다. 무겁고 비싸서 아이폰의 카메라 덮개 정도에서 머물고 말았지만, 심지어 인공 사파이어를 만들어 쓰려는 시도도 있었다.
마치 커튼월 고층 빌딩의 외벽처럼 우리들의 스마트기기는 유리로 뒤덮이고 있다. 골조가 강해져야 유리 외벽이 가능하듯, 스마트폰의 골조도 금속이 된 지 오래다. 이제는 심지어 폰 뒷면도 무선 충전 등을 이유로 유리가 되면서 고릴라 글래스와 같은 강화 유리의 수요는 늘어만 간다. 그래서인지 10여 년 전에 대한 감사의 마음인지 애플은 (트럼프의 압박 때문에 미국 기업을 위해 애플이 조성한 1조원 펀드 중) 2000여 억원을 코닝에 투자한다.
물류비용 때문에 당연히 코닝의 공장도 해외로 많이 옮겨갔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아시아 생산량의 상당 부분이 일본에서 충남 아산으로 이전하여 생산되고 있다. 아무래도 대규모 액정 제조사들이 한국에 포진하고 있어서다. 유리를 옮기는 일이란 힘든 일이다. 그렇게 아이폰의 혁신은 돌고 돌아 한국에도 일자리를 만들고 있다.
나는 이 고릴라 글래스에 대해 일종의 예의를 지킨다는 의미에서 요즈음은 액정보호지나 강화유리는 붙이지 않는다. 플라스틱이나 더 열등한 유리로 유리 기술의 결정체를 지키는 것이 무슨 의미인가 생각이 들어서다. 어느 순간 후회할지도 모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