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코로나 시대의 메타버스를 이야기하자
졸저 「웹2.0 경제학」에서 세계를 현실계, 이상계, 환상계로 나눈 적이 있다. 디지털 세계라도 현실 그대로를 충실히 옮겨 놓는 SI의 현실계, 현실의 대안을 마련해 기존 질서를 붕괴시키는 이상계, 그리고 게임과 같이 현실과 완전히 유리된 세계인 환상계로 구분할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근 15년이 지난 지금, 이 3계는 그 경계가 흐트러지고 있다. 현실계는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T, DX) 열풍과 스마트폰 혁명으로 이상계에 적극적으로 흡수 통합되고 있고, BTS는 포트나이트에서 신곡을 발표하고 조 바이든은 동물의 숲에 선거 캠프를 차리며 환상계와 이상계도 뒤엉키고 있다.
최근 메타버스(Metaverse)라는 용어가 자주 들린다. 「레디 플레이어 원」 등 SF에서 빌려왔으니 실은 오래된 말이다. 세간의 용례와는 달리 그저 VR 공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고 굳이 뜻을 풀자면 가상화된 현실 세계와 현실적인 가상 세계가 융합된 공간을 의미한다. 바야흐로 3계가 통합된 초세계(超世界)가 도래한다는 이야기 같다.
이미 이럴 가능성을 예측한 페이스북은 VR 설비 투자를 위해 오큘러스를 거액을 들여 인수해 발전시켰고, 페이스북 호라이즌(Horizon)이란 가상 세계도 만들고 있다. 포트나이트와 동물의 숲이 범벅된 느낌이다.
하지만 메타버스의 시사점은 그저 게임 같은 가상 공간이 세련되어지는 데 있지 않고, 그 공간이 얼마나 현실을 대체할 수 있는지에 있다. 더 나아가서는 현실을 재구성하는 역할에 의미가 있다. 즉 현실의 여러 요소 중 하나둘을 치환함으로써 훌륭한 메타버스가 완성될 수도 있다. 그 요소 중 대표적인 것은 바로 위치와 시간이다.
예컨대 이미 디지털로 수집된 현실은 시차를 두고 메타버스로 만들어질 수 있다. 지금은 당연해 보이는 풍경도 미래의 어느 날 바라본다면 신기한 가상 세계처럼 보일 터다. 실은 지금처럼 현실이 약해지고 꺼지려 하는 코로나 19 칩거기, 현실은 벌써 그리워지고 있다. 실제로 나조차도 나도 모르게 가보고 싶은 곳의 풍경을 스트리트 뷰로 훑어 보고 있었던 적이 있다. 현실을 분실한 모든 이들에게 재생 가능한 현실은 대체재가 된다.
유럽의 스타트업 메모라이드는 양로원을 위한 실내 자전거를 만들었다. 젊었던 날들에 어디 좀 뛰어놀았던 바로 그 추억의 장소로 자전거를 타고 갈 수 있어서다. 모션 센서와 구글 스트리트 뷰가 연동되는 방식이다. VR을 쓰고 실내 자전거를 타게 하는 VZFit이라는 업체도 있다. 현실은 방구석이지만 눈앞에 펼쳐지는 세상은 코로나 없는 이탈리아 돌로미티 트래킹 코스다.
디지털의 장점은 위치 정보도 시간도 얼마든지 지정할 수 있다는 점, 이제 현실은 가장 강력한 환상이 되려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