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스타는 왜 그 카페에 갔을까
바리스타가 인정한 서울 도쿄 홍콩 카페 27
episode. 에픽 에스프레소 더 커피 바 : 한적한 동네에서 좀 더 특별한 커피를 느끼다
서울 북동쪽의 왕십리 주변은 카페 세계에서 아직 변두리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카페가 모여 있지는 않다. ‘핫한’ 카페의 미개척지라고나 할까. 나도 바쁘다는 핑계로 더는 굳이 애써서 찾아보려고 생각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동네에 유명한 ‘카페’는 없어도 유명한 ‘맛집’은 있는 법. 왕십리에는 바닷가재를 넣어 라면을 끓여주는 집이 있는데 평소 그곳을 너무 좋아했던 나는 여느 때와 같이 식사를 마치고 나서 맛있는 커피 한 잔을 먹고 싶다는 생각에 주변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발견한 굉장한 카페. WBC 국가대표 선발전 라떼 아트 부문 파이널리스트인 전경은 바리스타 부부가 심혈을 기울여 오픈했다는 ‘에픽 에스프레소 더 커피 바’였다. 맛있는 커피라는 소문이 돌면 꼭 직접 찾아가 마셔봐야 직성이 풀리는 나이기에 이곳을 놓칠 리 없었다. 사실 다른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시는 일은 나 자신도 직업의 연장선으로써 여길 때가 있지만, 이곳은 그렇지 않았다. 그저 같은 바리스타로서, 세계적인 바리스타 대회에 한국 대표로 나가 결승전까지 오른 가게는 과연 어떨지 너무너무 궁금해 발걸음을 재촉할 수밖에 없었다. 멀리서 보이는 카페. 밖에서 바라보는 에픽 에스프레소 커피 바는 그냥 일반 아파트 단지 내 상가에 자리 잡은 자그마한 가게였다. 간결한 로고에서 느껴지는 특별함 그리고 통유리 사이로 비치는 가게 내부의 흰색 톤이 깔끔하다는 인상을 주고 있었다.
에픽 에스프레소의 오픈 바 전경 |
콜드 브루를 직접 매장에서 내리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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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이란 것은 늘 사람을 두근거리게 하는 것 같단 생각을 종종 한다. 이 카페 역시 그랬다. 처음 보는 사람이 처음 듣는 목소리로 처음 보는 표정을 지으며 인사를 하고, 나 역시 활짝 웃는 얼굴로 사람 좋은 모습으로 인사하게 되는 것. 이 카페에서는 어떤 이야기를 만나게 될까? 사장님에게서, 손님들에게서, 또 새로운 공간에서 과연 어떤 특별함을 마주하게 될까? 설레는 마음을 가지고 주문하는 곳으로 다가갔다.
— 안녕하세요?
아직도 기억에 선명한 장면은 처음 방문하는 손님이든 아니든, 바리스타만의 친절함과 따뜻한 온기가 느껴지는 인사였다. 처음 온 나도 이 가게의 단골이 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 실례지만, 이 가게에 단골들이 자주 드시는 메뉴를 알 수 있을까요?
— 글쎄요. 단골 분들은 꼭 한 가지 음료만 드시는 게 아니라서……. 혹시 커피를 좋아하시는 분이시라면 에스프레소를 드시는 건 어떠세요?
— 에스프레소라고요?
— 네. 매일 드시러 오시는 분도 있으신 걸요?
— 아, 매일요…….
대답을 듣는 순간 머리가 띵 하고 울렸다. 이토록 자신 있게 에스프레소를 권하는 것. 또, 매일 에스프레소를 마시러 오는 사람이 있다는 것. 대화 몇 마디만으로도 이 카페의 맛이 머릿속에 저절로 그려지고 있었다.
수제 베이커리와 카페라떼 |
입구 앞에 있는 작은 테이블 위에 여러 소품이 올려져 있다. |
추천대로 에스프레소를 주문하고 자리에 앉아 버릇처럼 커피 머신과 그라인더를 보았다. 나도 바리스타이다보니 이런 부분들을 더 놓칠 수 없다는 마음에서였다. 커피 머신은 라마르조꼬 fb80. 가게와 너무 잘 어울리는 흰색이었다. 한때 하이엔드 커피 머신이 내가 카페에 방문하는 기준점이었던 적이 있었다. 좋은 머신을 들여놓았다는 건 커피에 그만큼 가치를 두고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과거의 나는 그저 짧은 견해로 ‘라마르조꼬면 다 좋아’라고 생각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1년 365일 커피를 맛보고 매년 하나하나 더 배우면서, 이제는 단순히 커피 머신의 이름값으로 카페에 대해 논하지는 않는다. 커피 추출에는 많은 변수가 있고 바리스타의 역량에 따라 차이가 난다는 것을 이제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바리스타의 역량이 뛰어난 상태에서 좋은 머신을 쓴다면 그건 네임밸류를 쫓아 카페를 가는 길임을 부정할 수 없다. 세계 최초 수평형 에스프레소 머신을 만들고 듀얼보일러 시스템으로 커피 추출 온도의 안정화를 이루어낸 회사, 라마르조꼬. 그 안에서도 상급 머신 중 하나로 평가받는 fb80을 이곳에서 쓴다는 것은 커피 추출에도 꽤 신경을 쓴다는 것과 같다. 수평형 에스프레소 머신은 전동 펌프를 실용화했고 작은 버튼으로 추출하여 에스프레소의 품질이 안정적이기 때문이다. 커피 머신 옆에는 수제로 만든 쿠키와 각종 베이커리 류가 있었는데 모두 아내분께서 만드시는 것 같았다. 홈 테이블처럼 오픈된 주방의 모습은 언제나 청결한 모습을 유지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지만, 이곳을 방문하는 손님들에겐 신뢰감을 주었다. 부부가 함께 만들어가는 가게. 이 부부의 집에 초대되어 대접을 받는 듯한 느낌이었다.
내가 카페에 도착한 시간이 낮 3시쯤이어서 앉을 수 있는 자리는 거의 없었다. 테이크아웃을 하면 잠깐 앉아서 기다릴 수 있는 벤치에서 카페 전경과 손님들을 구경했다. 하얀 벽에 어두운 나무 바닥, 편안한 소파 의자와 테이블. 저마다의 일에 몰두하거나 잔잔하게 대화하는 손님들. 아파트 단지 상가에 위치해서인지 연인끼리, 가족끼리, 또 혼자서 작업하는 공간으로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모여 조금은 신기했다.
이윽고 내가 주문한 에스프레소가 나왔다. 스틸 쟁반에 담긴 정갈한 에스프레소 잔과 쿠키, 설탕과 플레인 워터. 에스프레소는 정말이지 바리스타의 추천대로 모난 곳 없이 딱 떨어지는 맛이었다. 이 당시에 빈은 스티머스 커피 팩토리의 레트로 블렌드를 사용하고 있었는데 많은 카페에서 이 스티머스 커피 팩토리의 블렌드를 사용하고 있지만, 너무 화려하지 않으며 진중하고 준수한 느낌을 잘 표현하는 곳을 찾긴 쉽지 않았다. 커피를 마시면 보통 ‘좋은 맛’, 내가 좋아하고 느껴보고 싶은 맛을 우선하여 살피지만, 나는 커피의 나쁜 맛에 집중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 맛있는 맛은 나오되 나쁜 맛이 함께한다면 그 커피는 더는 찾지 않는다.
드라이한 거품이 수북이 올라간 카푸치노 역시 기본에 충실한 느낌이다. |
나쁜 맛이라는 건 주관적이지만, 바리스타인 내 입장에서 보기엔 과하게 한 가지 맛이 튀어나오면 그게 나쁜 맛이라고 본다. 맛이 나쁘면 쓴맛, 신맛 등 한 가지 맛이 너무 튀어 고형물을 마시는 듯한 까끌까끌한 느낌이 들게 되면 마시기 편하지 않아서 그렇다. 이곳의 에스프레소는 단맛과 진한 풍미 그리고 에스프레소 특유의 질감까지 모두 고르게 균형을 갖추었다. 쉽게 말해 목 넘김이 좋은, 마시기 편한 맛이었다. 이렇게 깔끔한 에스프레소를 얼마 만에 마시는지 괜히 아메리카노까지 한 잔 더 마시고 싶어졌다. 입안에 남는 맛이 일품이어서 왜 매일 이 커피를 즐기는 손님이 있는지 알 것 같았다. 사진으로 남겨두면 더 좋았을 걸, 빨리 맛보고 싶은 마음에 이때 마신 에스프레소를 찍어두지 않아서 공개하지 못하는 점이 조금 아쉽다. 수제 쿠키도 맛있었다. 겉보기에는 바삭하고 여차하면 잘게 부서질 것 같았는데 실제로는 촉촉하게 감기는 맛이었다. 다시 이곳에 찾아갔을 때는 스트롱홀드 로스터기를 사용해 에픽 만의 블렌드를 사용하고 있었다. 새로운 커피 역시 맛있어서 만족스러웠다.
따로 판매하지는 않지만, 메탈릭 소재 통에 에픽 에스프레소의 이름을 붙여 콜드 브루를 담아 홍보하는 것이 감각적으로 느껴졌다. |
사람들에게 공간과 음료, 음식을 제공하며 그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의 친절함, 따뜻한 말 한마디가 만들고 있는 분위기. 최상의 커피 맛을 위해 여러모로 고민한 흔적이 보이는 커피 머신들. 단골 카페라는 말이 찰떡같이 어울리는 카페 위치까지. ‘내 집 앞에 이런 카페가 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드는 곳이었다.
추천메뉴
- 시즌 음료
여름에 한정으로 판매되었던 무화과 에이드는 비주얼과 맛 어느 하나 놓칠 수 없었다. 생딸기를 갈아서 만드는 주스는 딸기가 반 팩이나 들어갈 정도로 인심이 후하게 느껴지는 주스다. 메로나떼 역시 멜론과 라떼라는 색다른 조합이 눈길을 끌었다.- 카페라떼
고소한 에스프레소와 우유의 조화가 딱 알맞다. 개인적으로 플랫화이트보다 카페라떼를 추천한다. 덤으로 라떼아트 파이널리스트인 사장님의 라떼아트도 볼 수 있다.
에픽 에스프레소 더 커피 바 INFO
- 홈페이지: www.facebook.com/epicespressothecoffeebar
- 주소: 서울특별시 성동구 하왕십리 530번지 텐즈힐 1구역상가 152동(아파트 117동) 105호
- 연락처: 010-2543-7787
- 영업시간: 08:00~22:00
- 휴무일: SNS 등으로 공지
- 위 글은 책 『바리스타는 왜 그 카페에 갔을까』에서 발췌하였습니다.
저자 소개
강가람
CAFÉ MULE ROASTERY의 오너 바리스타이자 로스터. '월간 커피'에서 홍콩 카페 탐방기 기고, 커피 전문 출판사 아이비라인의 도서에 커피 레시피 및 사진을 기고하는 등 커피와 관련된 책에 참여했으며, 현재 일산 스페셜티 커피 연합 멤버로 활동하고 있다. 사람들에게 커피에 관련된 교육을 하고, 행사에 재능기부를 하는 오너 바리스타로 현재 1년에 2~3번 정도 해외를 떠돌아다니며, 글을 쓰고 사진을 찍는 방랑 바리스타이다.
글. 강가람
정리. 이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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