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에서 발언하는, 일상의실천 Everyday practice
『작업으로 말하는 사람들』
디자이너의 사회적 역할. 얼핏 거창하기 짝이 없는 이 단어들이 낯간지럽게 들릴 때가 있다. ‘디자이너’와 ‘사회’와 ‘역할’이라는, 당최 체감되지 않는 두루뭉술한 단어들은 보잘것없는 평범한 일상과 마주 섰을 때, 마치 중력이 다른 두 개의 우주가 맞선 듯한 묘한 괴리감을 건네기도 한다. 일상의실천은 권준호, 김경철, 김어진이 만든 디자인스튜디오이다. 한국 사회에서 좁고 납작하게 다뤄졌던 디자이너의 역할에 대한 고민과 그로부터 디자이너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함께 고민하는 소규모 공동체이기도 하다. 요컨대, 이들에게 실천의 의미는 ‘디자이너의 사회적 역할’이 아닌 ‘사회 안에서 역할을 찾는 디자이너’를 가리킨다. 그들이 찾는 역할이 무엇인지 가파른 오르막길 주택가에 위치한 이태원동 작업실에서 들어보기로 했다.
Ⅰ. 다시 모인 친구들
일상의실천은 어떻게 만들어졌나요?
준호 : 일상의실천은 2001년 중앙대학교에서 만난 동기 세 명이 함께 만든 스튜디오예요. 당시에는 디자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라기보다는 가까운 친구 사이였고, 언젠가 디자인 회사를 함께 해 보자는 이야기를 막연하게 나눴던 것 같아요. 대학을 졸업하고 각자 성향도 조금씩 바뀌게 됐죠. 2008년부터 서로 다른 길을 걷기 시작했어요. 경철이는 디자인 에이전시에서 실무를 익혔고, 저는 5년 동안 영국 유학생활을 보낸 후에 2013년 4월 귀국하면서 ‘일상의실천’을 시작하게 됐어요.
경철 : 저는 2009년부터 2012년까지 어진 형과 함께 ‘핸드프린트’ 라는 스튜디오를 운영했어요. 그전에는 각자 디자인 에이전시에서 근무했는데, 디자인의 한계와 사회적 책임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었죠. 둘이 함께하면서 크고 작은 시민단체, 환경단체와 작업할 기회가 생겼고 자리를 잡아가던 중에 준호 형이 귀국하면서 일상의실천이란 이름으로 활동하기 시작했죠.
경철 씨는 디자인 에이전시 경험이 있으신데, 회사 생활이 작업실 운영에 실질적인 도움으로 이어졌나요?
경철 : 도움이 됐죠. 저는 브랜드 에이전시를 다녔어요. 사실 브랜드 디자인 분야를 잘 모르는 사람은 그 분야를 좁게 보는데, 브랜드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분야를 섭렵해야 하더라고요. 그런 시스템을 배웠어요. 클라이언트를 직접 상대할 일이 많지는 않았지만 회사 생활을 통해 클라이언트를 대하는 방식이나 디자이너의 역할이 어디까지인지 많이 배웠던 것 같아요. 하지만 그 안에서도 부족한 점들을 많이 느꼈고, 결국 디자인스튜디오를 차리게 됐어요.
‘일상의실천’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핸드프린트’는 지금과 어떤 점이 가장 달랐나요?
경철 : 일단 지금은 규모가 커졌고 일의 양도 많아졌죠. 그때는 먹고 살기 힘들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돈을 벌기 위한 일을 병행했어요. 지금은 대부분 가치에 동의하고 저희가 하고 싶은 작업을 진행하면서도 작업실이 운영될 수 있다는 게 가장 다른 점이라 생각해요.
준호 씨는 어떤 계기로 영국 유학을 결심하게 됐나요?
준호 : 사실 대학교 1학년 때에는 디자인이 뭔지 잘 모른 채 놀면서 지나갔어요. 군대를 제대하고 디자인을 진지하게 생각하면서 괴리감이 찾아왔죠. 제가 도서관에서 찾아보던 레퍼런스는 다양한 도구와 방식으로 구현된 신선하고 재미있는 이미지였어요. 그런 방식의 작업을 수업시간에 구현하려고 노력했는데, 돌아오는 반응은 “너 예술하냐”는 식에 비아냥이었죠. 굉장히 혼란스러웠어요. ‘내가 하고 싶은 것이 예술일까’라는 고민이 들기도 했어요. 하지만 제가 봤던 이미지는 분명 디자이너의 작업이었고, 그렇다면 그 간극은 도대체 무엇일까 고민하게 됐어요. 나중에 깨달은 거지만, 당시 저희 학교 커리큘럼 대부분은 광고, 브랜딩, 마케팅에 치중돼 있었어요. 제가 구현하고 싶은 표현 방식을 받아줄 환경이 아니었던 거죠. 그러면서 내가 이상하다기보다 내가 속한 집단이 편협한 기준에 사로잡혀 있다는 확신이 들었고, 그 확신을 증명해 보이고 싶었어요. 대학 시절 저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 디자인 그룹 ‘와이낫 어소시에이츠 Why not associates’, ‘토마토 Tomato’, ‘조나단 반브룩 Jonathan Barnbrook’은 우연찮게 영국 출신이 많았어요. 영국이라는 나라에서 작업한다면 한국에서 마주쳤던 그런 반응은 없을 거라 막연하게 생각했죠. 특히 유학을 통해 나라는 사람이 디자이너로서 시도할 수 있는 표현의 한계는 어느 정도인지 시험해 보고 싶기도 했어요.
영국에서 귀국했을 때 혼자 작업실을 만들 수도 있었을텐데, 그러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요?
준호 : 영국에서 아르바이트로 아이덴티티, 웹사이트, 보고서 작업을 해보니 제가 아직 타이포그래피 같은 디자인의 실질적인 능력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유학을 선택한 이유도 기존의 디자인 형식을 벗어나기 위한 거였고, 그렇기 때문에 실무에서 익힐 수 있는 디자인의 기술적인 면들이 부족하다고 느꼈어요. 결정적으로 조나단 반브룩 스튜디오에서 일할 때 조나단에게 부족한 타이포그래피 때문에 엄청나게 혼난 경험이 있는데, 그때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었죠. 제가 디자인을 계속할거라면 굉장히 큰 약점이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면에서 함께 작업실을 시작한 것은 현실적인 선택이라고 봐요. 한편으로 다른 친구들이 핸드프린트에서 하지 못했던 작업에 대한 갈증을 저로 인해 채울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물론 대학교 1학년 때 셋이서 술자리에서 이야기했던 막연한 기억 때문에 계속 함께하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어요. 제가 ‘일상의실천’에서 처음 맡았던 녹색연합의 「울진‐삼척 산양활동보고서」작업을 진행하면서, 함께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많이 들더라고요. 생각보다 정말 어려웠어요.
일상의실천, 「울진‐삼척 산양활동보고서」, 2013 |
Ⅱ. 실천의 기준
일상의실천은 어떤 기준으로 업무를 분담하시나요?
준호 : 일상의실천이 만들어지고 난 뒤 1년 반 정도 지나면서 업무가 자연스럽게 나뉘었어요. 경철이는 웹 개발이나 디자인에 집중하고 저는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데에 집중하고 있어요. 그렇지만 그런 구분을 정하다 보면 너무 명확한 경계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서로의 역할을 넘나들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작업을 진행하면서 반드시 지키거나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원칙은 무엇인가요?
경철 : 어떤 프로젝트를 시작하기에 앞서 그것이 갖는 의미에 대해 고민해요. 사회적이든 예술적이든 저희가 동의할 수 있는 부분이 없다면 정중하게 거절하는 편이죠. 적은 예산이라도 동의할 수 있는 작업이 마음도 편하고 좋은 결과물로 이어진다고 생각해요.
준호 : 제가 디자이너라는 사실을 상기시키려고 노력해요. 모든 작업을 개인 작업인 것처럼 애정을 쏟다 보면 객관적인 시각을 잃어버리기 쉬울 것 같아요. 클라이언트가 원하는 것을 반영하는 것과 동시에 디자이너로서 성공적인 프로젝트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작업과 나 사이에 적당한 거리 두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내 작업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을 때, 아집에서 벗어나 클라이언트의 의견을 받아들일 수 있는 거죠. 그것이 예술가와 디자이너의 차이라고 믿어요.
간혹 디자인 프로세스나 디자이너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클라이언트도 있을 텐데, 이런 부분은 어떤 과정으로 설득하시나요?
경철 : 먼저 클라이언트의 이야기를 충분히 들어요. 그런 다음 제 생각을 설명하죠. 하지만 간혹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디자인 프로세스까지 설명해야 하는 클라이언트가 있어요. 그럴 때는 디자이너의 역할과 기획자의 역할이 어디까지인지 명확하게 설명해 드리는 편이에요. 그것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결과물이 좋지 않은 방향으로 갈 거라는 말씀도 드리죠. 물론 설득이 안 될 때도 있지만.
준호 : 개인 작업이라 생각하면 다른 사람의 의견은 상관없잖아요. 그렇지만 클라이언트와의 작업은 그들의 시각을 반영해야 하기 때문에 거리 두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물론 단순히 돈을 받고 하는 일이기 때문에 그들의 의견을 아무 비판 없이 수렴하는 건 아니겠죠. 사실 제가 진행한 작업이기 때문에 애착이 가고, 무턱대고 수정 사항이 들어오면 기분이 좋지만은 않아요. 하지만 그 작업이 다른 디자이너의 작업이라고 생각하면 조금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죠. 클라이언트가 요구하는 수정 사항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를 설명할 때에도 사용자 입장에서 냉정하게 설득하게 돼요.
「2014 창원조각비엔날레」나 「아시아나 국제단편영화제」 작업처럼 물성을 활용한 작업이 주를 이루는데, 앞으로 구상하고 계신 또 다른 표현 방식은 어떤 것이 있나요?
경철 : 구성원 모두 컴퓨터 앞에서만 이뤄지는 작업보다 손으로 만드는 것을 좋아해요. 프로젝트에 적합한 재료를 찾다 보니 자연스럽게 물성을 활용한 작업이 나오는 것 같아요. 반면에 저는 앞으로 적합한 프로젝트를 만나게 되면 손으로는 만들어 낼 수 없는 가장 디지털적인 이미지도 만들어보고 싶어요.
준호 : 어릴 적부터 평범함에 대한 열등감이 심했어요. 뭔가 새롭고 평범하지 않은 것들을 해보고 싶은데, 생각보다 디자인에는 지켜야 할 규칙이나 유행이 분명 존재하더라고요. 그런 규칙에 익숙해지다 보니, 학부 수업 중 본인 마음대로 디자인해보는 과제가 있었는데 오히려 무서워서 잘하지 못했던 기억이 있어요. 특히 타이포그래피를 배우면서 표현이나 장식에 대한 두려움이 생겼던 것 같아요. 대학교 3학년 수업시간에 기능적인 타이포그래피를 기반으로 서식 디자인 작업을 한 적 있는데, 교수님께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저는 솔직히 제가 만들어낸 결과물이 다른 학생들과 무슨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더라고요. 물론 지금은 그 차이를 발견했지만, 그때는 그것만으로 남들과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저는 진짜 다른 것을 하고 싶었어요. 그런 고민 끝에 손으로 만든 작업은 남들과 비슷해질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죠. 아마도 그런 수작업이 남들과 달라 보였던 이유는 제가 만들어 냈던 것들이 어설펐기 때문이었을 거예요. 저는 오히려 그런 미숙함이 보여주는 차별성에서 만족감을 느꼈던 것 같아요. 그런 시행착오를 계속 겪다 보니 그게 오히려 저만의 특징이 돼 버린 거예요. 「저기 사람이 있다」같은 경우도 목탄으로 글자를 그리면서 만들어진 손가락 지문이나 글자의 번짐은 의도한 부분이 아니었어요. 때로는 그런 우연적인 요소들이 흥미로운 결과물을 보여주더라고요.
일상의실천, 「2014창원조각비엔날레」 2014 |
Ⅲ. 역할 찾기
일상의실천은 내부 프로젝트로 사회를 향한 디자인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어요. 내부 프로젝트의 주제를 선정하는 기준은 무엇인가요?
준호 : 클라이언트와 작업할 때 거리 두기를 통해 객관적인 관점을 유지한다면, 내부 프로젝트는 아주 주관적인 관점부터 시작해요. 그 작업이 누군가에게 어떻게 보이느냐도 중요하겠지만, 우리가 이 작업을 끝까지 밀어붙일 의향이 있는가에 더 중요한 기준이 있는 것 같아요. 사실 디자이너로서, 사회적 발언을 하는 단체와 협업한다 해도 저희가 발언의 주체는 아니잖아요. 반면 내부 프로젝트는 저희가 주제 선정과 메시지 전달 방식까지 ‘발언’에 방점을 찍는다는 의미에서 주체가 될 수 있는 거죠.
경철 : 「그런 배를 탔다는 이유로 죽어야 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작업을 하기 전까지는 현재 일어나고 있는 사건에 대해 접근하기 어려운 면이 있었어요. 자칫 시류에 편승하는 인상을 줄 수 있기에 조심스럽기도 했죠. 하지만 세월호 작업 이후 생각이 바뀐 것 같아요. 우리에게는 그 사건이 현재의 일이지만 관심 없는 사람들에게는 전혀 별개의 사건이잖아요. 저희 관점에서 더욱 적극적인 태도로 발언한다면 조금이나마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봐요.
준호 : 그런 의미로 보자면, 작업의 소재가 지금 이 사회에서 어떤 의미를 갖느냐가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저희가 ‘독립’이라는 주제로 작업한다면 우리나라는 이미 역사적인 맥락에서 독립했기 때문에 지금에 와서는 의미가 없을 거예요. 하지만 ‘용산’이라는 주제는 6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비슷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어서 사회적으로 유의미한 주제라고 할 수 있겠죠.
내부 프로젝트마다 접근 방식이 다른데, 어떤 과정으로 접근 방식을 결정하시나요?
준호 : 작업의 맥락과 맞는지가 중요해요. 「끝나지 않은, 강정」 역시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한 명이 아닌 다섯 명의 얼굴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던 거예요. 빛을 활용한 것도 암울한 상황에서 보이는 희망을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작업의 도구를 선택할 때에도 그것이 단지 멋을 부리기 위한 선택에 머무르지 않기 위해 고민해요. 「그런 배를 탔다는 이유로 죽어야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에서 쓰인 펜스도 상징적인 의미를 담고 있어요. 철조망처럼 보이는 펜스는 국가가 세월호 유가족분들을 광장에 격리하고 있다는 의미를 지녀요. 더 직접적인 의미로 실제 노란 리본이 펜스에 묶여 추모한다는 의미도 담겨 있죠. 펜스만 보더라도 이 작업이 갖는 의미를 전달할 수 있어야 하고, 그것이 작업의 소재와 방식을 선택하는 기준이에요.
일상의실천, 「그런 배를 탔다는 이유로 죽어야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2015 |
글자를 활용한 작업을 주로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준호 : 글자는 솔직하고 효과적인 매체라 생각해요. 내부 프로젝트를 예술가의 태도로 접근한다고 하지만, 예술가 흉내를 내고 싶은 건 아니에요. 그런 측면에서 글자를 활용하는 것은 저희가 디자이너라는 입장을 분명하게 드러낼 수 있는 도구라고 생각해요. 어떤 민감한 발언을 할 때 소위 예술가들의 작업 중에는 도무지 이해가 안 가는 작업들도 많잖아요. 그런 식의 작업은 하고 싶지 않아요. 멋진 작업도 중요하지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은지 명확하게 인식되면 좋겠어요. 「살려야 한다」 같은 경우, ‘살려야 한다’라는 문장 자체가 지시하는 막중하고 무거운 의미가 값싼 정치적 수사로 변질하는 것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어요. 특히 어처구니없는 사고로 수백 명이 목숨을 잃은 대한민국에서 저 문장의 의미는 더욱 특별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어요. 저희는 작업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을 굳이 ‘추상적인 표현’ 뒤에 숨겨두고 싶지는 않아요. 오히려 그 반대로 어떻게 하면 더 명확하게 표현해서 조금이라도 더 많은 사람에게 전달할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하고 있어요.
일상의실천, 「살려야 한다」, 2015 |
디자인으로 발언한다 해도, 아직까지는 디자이너들 사이에서 머무르고 있다는 점이 아쉬워요. 사회적 발언이라는 측면에서, 단순한 발언을 넘어 소통에 대한 다양한 방식도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요?
준호 : 그런 면에서 「끝나지 않은, 강정」이 아쉬워요. 저희 작업이 실제 강정마을에 설치됐다면 다양한 사람들에게 정서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었을 텐데, 결국 내부적인 프로젝트에만 머물러 버렸어요. 저희가 게을렀던 점도 있다 보니 많이 아쉬워요.
경철 : 일상의실천에서 진행한 내부 프로젝트는 대부분 설치나 사진 작업인데, 즉흥적으로 이뤄졌던 부분이 아쉬웠어요. 오히려 작업을 마치고 나면 생각이 많아지죠. 차분하게 계획하고 어떤 방식으로 보여줄 것인가도 충분히 생각해야 할 것 같아요.
애착이 가는 내부 프로젝트는 무엇인가요?
경철 : 「끝나지 않은, 강정」이에요. 짧은 시간이었지만 모든 것을 제쳐두고 제주도까지 내려갔어요. 마치 저희끼리 홀로 투쟁하다 온 느낌이 들 정도로 고생을 많이 했죠. 기대했던 것보다 결과물이 좋아서 기억에 남아요. 「끝나지 않은, 강정」 이후부터 내부 프로젝트에 대한 자신감도 생긴 것 같아요.
준호 : 「끝나지 않은, 강정」은 그 당시 작업실에 일거리가 많이 없었기 때문에 제주도에서 4박 5일 동안 진행할 수 있었어요. 앞으로 어떤 내부 프로젝트를 진행할지 모르지만, 그 정도 투자는 좋다고 봐요. 저희에게도 기억에 남는 작업이 중요하죠. 기억에 남는다는 건 오랫동안 머리 싸매고 함께 작업했다는 의미도 되니까. 「눈먼 자들의 국가」 전시를 위해 구성원 각자가 작업했던 포스터도 의미 있는 작업이었어요. 세월호 참사에 관해 기술한 작가들의 글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이미지화했는데, 그 결과물에 일상의실천 구성원 각자의 특징이 잘 반영된 것 같아요.
일상의실천, 「끝나지 않은, 강정」 , 2015 |
내부 프로젝트를 통해 이루고 싶은 모습은 무엇인가요.
준호 : 저희에게 내부 프로젝트는 두 가지 의미로 나눌 수 있어요. 하나는 작업에 대한 표현의 자유예요. 특히 내부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에는 일상의실천을 하나의 ‘예술창작집단’으로 인식하고 작업에 임하는 편이에요. 그래서 실무 디자인에서 겪었던 현실적인 제약이나 보수, 클라이언트의 요구, 마감 시간 등으로 시도하지 못했던 시각 실험에 집중하게 돼요. 다른 하나는 작업을 통한 사회적 발언이에요. 디자인 혹은 예술은 사회 구조 안에서 일어나는 행위라고 생각하는데, 결국 사회 없이 존재할 수 없는 개념인 거죠. 하지만 굳이 저희 작업을 ‘사회적 발언’이라 부르는 이유가 있어요. 그 작업이 사회의 여러 단면을 옮겨내는 데에 그치는 게 아니라, 작업이 사회에 어떤 영향으로 작용하기를 원하기 때문이죠. 누군가는 선동이라 비난할 수 있을 거예요. 그렇지만 디자인이 소비를 촉진하는 현혹의 도구로 전락해 버린 시대에 작업을 통해 사회에 질문을 던진다는 것만으로 유의미한 행위가 될 수 있다고 믿어요.
글_김어진
인터뷰이_ 권준호(이하 준호), 김경철(이하 경철)
정리_ 김소영
저자소개 김어진 (블로그)
중앙대학교 산업디자인학과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했다. 디자인 에이전시에서 근무하면서 겪은 디자인의 수동적 역할을 바라보며 상업디자인의 한계를 느꼈다. 퇴사 후 디자인을 통한 사회 참여의 가능성을 고민하는 디자인스튜디오 ‘Handprint’를 김경철과 함께 운영했다. 2013년 4월 영국에서 귀국한 권준호가 합류하면서 디자인스튜디오 ‘일상의실천’을 현재까지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