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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패삼겹살, 백종원이 개발한 것이 맞을까?

삼겹살

돼지의 갈비에 붙어 있는 살. 비계와 살이 세 겹으로 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고기이다.≒세겹살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Comment.

•지난 금요일은 삼겹살 데이였습니다만 요즘도 삼겹살 데이를 많이들 챙기는지 모르겠네요. 제가 마지막으로 삼겹살 데이를 챙긴 것은 7년전 쯤에 백종원의 새마을 식당에서 삼겹살데이에 할인했을 때였습니다. 요즘은 삼겹살데이 행사가 딱히 눈에 띄는 게 없네요. 사람들이 삼겹살 데이가 아니어도 삼겹살을 자주 먹기 때문일까요?


•삼겹살의 역사를 찾으며 가장 큰 도움받았던 책은 <삼겹살의 시작>인데요. 이 책이 쓰이게 된 계기가 재미있습니다. 몇 년 전 방송에 많이 나왔던 황** 맛 칼럼니스트가 돼지고기에 대해 잘못된 정보를 말하고 다니는 것을 보고 책을 쓰기 시작했다고 하네요.


•<삼겹살의 시작>은 자료도 많고 상세합니다. 다만 자료를 너무 많이 찾아서 버리지 못한 느낌이 조금 듭니다. 자료에 매몰되어 다른 길로 새다가 다시 주제로 돌아오는 경우가 종종 있거든요. 예를 들면 이런 식입니다. <사소한 것들의 역사>는 역사를 다루는 뉴스레터이다. 그런데 뉴스레터라는 것은 00년대에 시작되어서 현재는 사용자는 00이다. 아무튼 <사소한 것들의 역사>는 훌륭한 뉴스레터이다.


•그걸 보면서 자료의 양과 질도 중요하지만, 자료들을 잘 정돈하고 재밌게 구성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물론 남 일이 아닙니다. <사소한 것들의 역사>도 정보에만 매몰되지 않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Fig.1 삼겹살 이전에는 방자고기가 있었다

삼겹살을 정확히 언제부터 먹었는지 알아내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삼겹살이라는 명칭이 생긴 건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인데요. 다만 돼지고기를 구이용으로 먹기 시작한 시점을 찾음으로써 간접적으로 삼겹살을 먹은 시기를 유추해볼 수는 있습니다.


삼겹살을 먹은 것으로 유추할 수 있는 기록은 고려시대에 쓰인 <고려도경> 등장하는 방자고기에서부터입니다. 고을 원님 밑에서 잔심부름하는 하인인 방자는 윗사람이 먹다 남긴 고기 찌꺼기를 집에 가지고 가곤 했는데, 이들이 고기를 소금만 뿌려 구워 먹어 방자고기라는 명칭이 붙었다고 합니다. 이처럼 방자고기는 특정 부위가 아니고 구워 먹는방식을 의미하는데요. 이때 틀림없이 삼겹살 부위도 먹었겠죠?​

Fig.2 삼겹살? 세겹살?

삼겹살이라는 부위 1930년대로 세겹살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합니다. 1931년 출판된 방신영의 조선요리제법에 세겹살은 배에 있는 고기로 돈육 중 제일 맛있다고 소개되어 있죠. 


1934년 동아일보에도 뒤넓적다리와 배 사이에 있는 세겹살이 제일 맛이 있다라는 이야기가 실려있는데요. 이를 통해 현대 삼겹살의 부위인 뒷다리 앞쪽부터 5~6번 갈비뼈까지와 세겹살 부위가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죠.

세겹살이 삼겹살로 바뀌게 된 것은 1959년에서부터인데요. 경향신문의 한 칼럼에서 돼지고기와 무를 볶은 후 물을 졸여 만드는 요리를 소개하며 삼겹살이라는 명칭을 씁니다.​

Fig.3 원래는 인기없었던 삼겹살 

삼겹살이 알음알음 소개되고 있긴 했지만 사실 1970년대까지 사람들은 돼지고기를 구워 먹는 것을 그리 선호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돼지를 사육할 때는 사료가 아닌 짬밥이나 구정물로 키우는 곳이 대부분이었기에 돼지고기에서 냄새가 심했거든요. 그래서 돼지고기는 주로 제육볶음이나 두루치기, 김치찌개처럼 양념이 강한 음식으로 해 먹었죠.


게다가 부패의 문제도 있었습니다. 돼지고기는 소고기보다 부패가 빨랐고, 냉장•냉동 시설이 발달하지 않았기에 돼지고기 식중독 사고도 잦았거든요. 그래서 서울에 돼지고기를 공급할 때는 돼지를 산 채로 데려와 마장동 혹은 가락시장 도축장에서 도축해 서울 지역에 유통했죠.

그럼에도 1979년 동아일보 칼럼에 ‘우후죽순처럼 주점가에 늘어가던 삼겹살집에도 여름이 시작되면서 사람의 발길이 눈에 띄게 뜸해졌다’이라고 쓰여있는 것을 보아, 부패가 심한 여름철에는 힘들긴 했지만, 삼겹살집이 많이 생긴 것을 알 수 있죠.

​Fig.4 삼겹살이 유행하게 된 80년대 

8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돼지고기의 전성시대가 열립니다. 이는 품질개선, 냉장 시설 보급, 부루스타 개발, 3저 호황 등 여러요인이 잘 맞춰주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었죠.


품질은 수출과 관련이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1960년대 홍콩으로 살아있는 돼지를 수출했지만, 중국이 홍콩에 돼지고기를 저렴하게 팔면서 경쟁력을 잃게 되는데요. 그래서 1971년부터는 일본에 돈육 수출을 시작하죠.

돈육을 수출하는 과정에서 돼지 사육이 집에서 키우는 것이 아니라 양돈산업으로 발전하기 시작합니다. 이때 삼성 이병철 회장도 자연농원(현 에버랜드) 내에 대규모 양돈장을 만들어 양돈산업에 뛰어들었고 돼지품종 개량에 앞장섭니다. 이처럼 돼지 품종이 개량되고 사료를 이용한 사육이 정착되면서 돼지고기의 맛이 좋아지고 품질도 균일화되죠.


​1980년대에는 냉장고가 보급된 시기이고 합니다. 이로 인해 삼겹살이 냉동으로 유통되기 시작하죠. 이 냉동 삼겹살은 4~5cm 길이의 얇은 모양으로 썰어서 판매되었습니다. 이 냉동 삼겹살을 쇠로 만든 불판, 돌, 석면 슬레이트 등에 올려 산과 계곡, 해변 등에서 구워 먹는 것이 유행이었죠.


특히 석면 슬레이트는 얇으면서도 불에 타지 않고 열전도율이 높아 고기 굽기에 적합했고, 1970년대 새마을운동으로 농촌지역의 지붕 자재로 쓰이면서 구하기도 쉬웠죠. 물론 석면이 1급 발암물질이라는 것이 2000년대 이후에 알려져 이제는 볼 수 없는 풍경이 되었습니다.


1980년에 국내에 시판되기 시작한 휴대용 가스버너, 부루스타 역시 삼겹살 유행의 일등 공신이었습니다. (참고로 부루스타는 한국후지카공업에서 국내 최초로 출시한 휴대용 가스버너의 상표명입니다.) 부루스타의 등장으로 간편하게 삼겹살을 구울 수 있게 되면서 일반 식당에서도 불판과 휴대용 가스레인지를 갖추고 삼겹살을 판매하기 시작했죠.


그리고 1978년에 있었던 육류 파동으로 쇠고기와 돼지고기 가격이 급등하자 정부에서 돼지고기의 일본 수출을 막으면서 상당한 물량의 돼지고기가 1980년대 국내에 풀리면서 돼지고기 가격이 저렴해집니다. 게다가 3저 호황으로 국민소득이 오르고 통행금지 해제와 88 서울 올림픽을 기점으로 외식산업이 발달하게 된 것도 삼겹살 수요 증가에 큰 몫을 하게 되었죠. 수치로 보자면 1970년 국민 1인당 돼지고기 소비량은 2.6kg에서 1980년 6.3kg으로 급증하였습니다.​

Fig.5 대패삼겹살, 백종원이 개발한 것이 맞을까?

대패삼겹살은 80년대에 처음 등장했습니다. 당시 대패삼겹살은 오늘날처럼 말려서 나온 모양이 아닌 한입 크기의 얇은 정사각형 모양의 냉동 삼겹살이었고, 이 대패삼겹살을 알루미늄 포일 위에서 구워 먹었죠.


오늘날과 같은 대패삼겹살은 1992년에 백종원에 의해 개발됩니다. 고깃집을 차렸는데 실수로 고기를 써는 기계가 아닌 햄 써는 기계를 사버려 얇게 썰린 고기를 그대로 팔기 시작한 것이 시초라고 하죠. 백종원은 1997년 대패삼겹살에 대해 특허를 내기도 합니다.

정리해보자면 대패삼겹살이라는 것은 이미 80년대에 있었지만, 오늘날 우리가 아는 모습과는 달랐고,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대패삼겹살은 백종원이 1992년에 개발했다고 할 수 있겠죠. 다만 아직도 백종원이 대패삼겹살을 처음으로 개발한 것이 맞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되는 것 같습니다.

Fig.6 오겹살의 등장

제주도의 돼지고기는 일본 시장에 많이 수출하고 있었는데요. 1990년대 중반 일본이 덴마크, 네덜란드 등에서 돼지고기 수입을 시작하면서 제주도의 돼지고기가 경쟁에 밀리기 시작합니다. 그러자 1995년부터는 일본에 수출되지 못한 제주도의 돼지고기가 서울 경기 지역에 풀리기 시작하죠. 


당시까지 서울 경기지역에서는 정부가 정책적으로 껍질을 벗긴 돼지고기만 유통시켰는데요. 반면 제주 흑돼지는 껍질을 벗기지 않은 상태로 먹는 것이 특징이었죠. 껍질이 있어 꼬들꼬들한 식감을 가지고 있었고, 삼겹살에 껍질층이 더 있기에 오겹살이라고 불렀죠.

​Fig.7 삼겹살 데이의 시작

1980년대부터 삼겹살이 유행하지만 주로 일반 음식점에서 함께 판매하는 경우가 많았고 삼겹살 전문 음식점은 찾기 어려웠는데요. IMF 이후 삼겹살 전문점이 대거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소고기 가격이 급등했고, 상대적으로 쉽게 장사를 할 수 있었던 삼겹살집에 실직자들이 몰린 것이었죠. 메뉴도 초저가 삼겹살이 유행합니다.


1994년에는 냉장돼지고기 수입이 개방되는데요. 수입산 돼지고기에 대응하기 위해 많은 곳에서 브랜드화 전략을 취합니다. 도드람포크, 하이포크, 선진크린포크 등이 이때 설립된 브랜드들이죠. 이렇게 고급화된 돼지고기는 백화점에서 판매됩니다. 

이렇게 수요도 공급도 늘어나던 시기였지만 1999년 벨기에산 닭과 돼지고기에서 허용치가 넘는 다이옥신이 검출된 다이옥신 파동이 일어납니다. 이에 따라 정부는 벨기에와 프랑스, 네덜란드에서 수입한 돼지고기의 판매를 금지합니다. 하지만 이미 돼지고기에 대한 불안감은 확산하였고, 소비가 급감하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000년대 초반에는 구제역 파동이 일어납니다.

이렇게 축산양돈농가의 피해가 커지자 지역 축협에서 돼지고기 판매촉진을 위해 2003년부터 3월 3일을 삼겹살 데이로 지정하게 됩니다. 그리고 삼겹살데이는 오늘날에도 이어오고 있죠.​


2000년대 들어서는 녹차삼겹살, 와인삼겹살 등이 반짝 유행하고, 이후에는 고기를 숙성시킨 에이징 삼겹살이 인기를 끌었죠. 그리고 최근에는 1980년대 유행했던 냉동 삼겹살이 다시 주목받기도 했는데요. 2018년 합정동에 <행진>이라는 냉동 삼겹살 전문점이 오픈해 큰 인기를 끌었고요. 1976년에 오픈해 아직도 냉동 삼겹살을 판매하고 있는 종로 3가의 <한도삼겹살>도 인기를 끌고 있죠.


Insight.

저는 삼겹살의 역사를 보면서 개인의 성공 신화로 바꾸어 봐도 비슷한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처음에는 소고기에 가려 주목받지 못하고, 냄새가 나 양념을 더해야만 소수의 사람이 소비(인정)합니다. 그러다가 홍콩 수출이 막히는 위기를 맞게 되고, 이 위기를 극복하고자 본인(돼지고기)을 개선하죠. 그제야 비로소 온전히 자기 자신(구이)으로 인정받고 성공합니다.


성공에는 개인의 노력뿐만 아니라 운도 따라주어야 하죠. 삼겹살의 경우도 경제 상황, 기술의 발전 등의 외부요인도 크게 작용하여 성공하게 됩니다. 그리고 다양한 시도(대패삼겹살, 오겹살, 삼겹살데이, 냉동 삼겹살)를 통해 그 성공을 유지하죠.


삼겹살도 성공하기 위해서 노력하는데 저도 열심히 살아야겠습니다. 삼겹살을 본받기 위해 오늘 저녁은 삼겹살 먹겠습니다.​

<참고문헌> 

​•김태경. 연승우. (2019). 삼겹살의 시작. 팜커뮤니케이션.

•대세, 뉴트로(New-tro) 떴다, 냉삼(냉동삼겹살), 누들푸드 [Website]. (2023년 3월 5일). URL: http://www.noodlefoodle.com/foodnculture/show_food_story?gubun=tr&id=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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