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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드]by 덴 매거진

역사를 알면 맥주 맛이 보인다

알수록 맛있다고 하지 않나. 맥주도 그렇다. 각국의 다양한 맥주에는 나름의 역사적 배경이 있다. 세계 역사 흐름 속에서 피어난 각국의 맥주 탄생 스토리. 이보다 좋은 맥주 안주가 있을까?

ⓒ shutterstock

맥주 맛은 재료가 아닌 역사에서 나온다


맥주는 크게 네 가지 원료를 사용해 여덟 단계를 거쳐 만든다. 재료 경작부터 숙성까지 인고의 시간을 지나야만 비로소 우리가 아는 맥주 맛이 탄생한다. 하지만 맛을 결정하는 데 재료와 과정보다 더 깊이 관여된 것이 바로 역사다.


수천 년 역사가 만들어낸 인류의 발자취는 오늘날 맥주 맛의 50%를 결정지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트에 놓인 이름 모를 세계 맥주의 맛이 궁금하다면 제조 국가의 역사를 알아보자.

EUROPE

유럽은 비교적 좁은 땅덩이에서 얽히고설킨 역사를 지녔다. 유럽 내에서도 맥주 맛이 다양한 이유다. 정치와 종교가 낳은 유러피안 맥주는 그 유구한 이야기만으로도 취할 정도.


독일


흔히 ‘청량감이 좋다’고 평하는 라거를 처음 만든 나라다. 독일식 라거는 대체로 보디감이 탄탄하고 향이 좋으며 전체적으로 품질이 뛰어나다. 또 바이젠(Weizen) 혹은 바이스비어(Weissbier)라 부르는 밀맥주는 풍부한 거품과 부드러운 목 넘김이 일품으로 라거보다 묵직하며 색이 탁하고 바나나 비슷한 향이 난다.

맥주 순수령 법안이 담긴 서적

역사상 최초의 ‘식품위생법’


독일 맥주 퀄리티가 우수한 데에는 수백 년 역사를 지닌 '맥주 순수령'이 자리 잡고 있다. 1516년, 바이에른 공작 빌헬름 4세는 ‘맥주는 오직 보리, 홉 그리고 물로만 만들어야 한다’라는 내용을 담은 맥주 순수령을 발표한다. 과거 독일은 소시지와 빵을 주식으로 먹으며 맥주를 물처럼 마셨다. 주로 밀맥주를 만들었는데, 맥주를 너무 많이 만들다 보니 빵을 만들 밀이 부족했다. 그래서 풀이나 향초 등 온갖 재료를 넣기 시작했다. 이렇게 ‘오염된 맥주’가 돌아다니자 빌헬름은 밀 사용량도 제한할 겸 맥주 순수령을 내린 것이다. 이 법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식품 관련 법안으로 독일 맥주 제조의 기준이 되었다.

파울러너 맥주를 마시는 독일 메르켈 전 총리

오랜 규제로 최고의 맛을 이끌다


과학 발전으로 효모가 발견되자 물, 보리, 홉 그리고 효모까지 사용하기로 법안이 개정되었다. 1871년에는 프로이센이 독일을 통일하자 바이에른공국의 맥주 순수령이 독일 전역에 적용되었다.


500년이 지난 맥주 순수령은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2016년 맥주 순수령 500주년 기념식에 메르켈 전 총리가 참석해 맥주 자부심을 드러냈다. 수백 년간 정해진 재료 안에서 최대한 맛을 끌어올리다 보니 맛이 없을 수 없는 경지에 오른 것이다.

Editor’s Pick : 바이엔슈테판 오리지널


1040년 문을 연 바이엔슈테판 양조장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양조장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되어 있다. 긴 역사만큼 맥주 맛도 뛰어난데, 많은 맥주 중 바이엔슈테판 오리지널을 추천한다. 밝은 황금색에 군더더기 없는 깔끔하고 부드러운 맛이 특징이다. 독일 맥주가 무엇인지 궁금하다면 바이엔슈테판으로 모든 답변이 가능하다.

벨기에


에일, 라거, 람빅, 트라피스트 등 다양한 스타일의 맥주를 제조한다. 종류에 따라 복잡하고 독특한 향이 나는 것으로 유명한데 고수나 오렌지 껍질, 생강 등 온갖 향신료와 첨가물을 사용해 맥주마다 독특한 캐릭터를 부여한다.

에두아르트 폰 그뤼츠너, ‘식사 상에 모인 3명의 수도승 (Drei Mönche bei der Brotzeit,1885)’

식수 대신 맥주


벨기에 맥주는 9세기 수도원에서 만들어졌다. 수도원은 예나 지금이나 외부와 소통이 적었던 터라 자급자족을 위해 다양한 식품을 자체적으로 만들었다. 수도원에선 물 대신 맥주를 식수로 사용했다. 당시에는 수질 관리가 전혀 되지 않아 오염된 물을 마시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는데, 맥주는 직접 끓여 만들기 때문에 물보다 위생적이고 안전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렇게 탄생한 맥주를 수도원에서 시작했다고 해 ‘트라피스트 맥주’라 부른다.

국제트라피스트협회

다채로운 맛과 향


맥주는 일종의 에너지 음료 역할도 했다. 수도사들은 소량의 음식만 먹으며 수행의 길을 걸었기에 영양을 보충하기 위해 맥주에 과일, 커피, 초콜릿 등 다양한 식재료를 넣었다. 덕분에 트라피스트 맥주는 다른 벨기에 맥주에 비해 맛과 향이 화려하다. 당시의 레시피는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으며, 수도원들이 국제트라피스트협회에서 엄격한 제조 관리 아래 트라피스트 맥주를 생산하고 있다.

Editor’s Pick : 오르발


‘트라피스트 맥주의 여왕’이라 불리는 오르발 수도원산 맥주. 약간의 쓴맛과 함께 시트러스와 허브 향을 느낄 수 있다. 오르발 맥주는 시간이 지나면 맛이 점차 변한다. 제조일에 가까운 맥주는 신선하며 화려한 풍미를 자랑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묵직하고 복잡한 맛을 낸다.

ASIA

아시아 맥주가 거기서 거기라는 생각은 구시대적 발상이 된 지 오래다. 숱한 침략과 급속한 경제성장은 아시아에 천차만별 다양한 맥주를 선물했다.


일본


소규모 크래프트 맥주 문화가 확고히 자리 잡았다. 특히 20세기 말에 접어들며 일본 내에 수제 맥주 붐이 일어 맥주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지역별로 자리한 양조장 개수만큼 맥주 종류도 셀 수 없이 다양하다.

일본 맥주의 시작인 삿포로 맥주 박물관

나카가와 세이베이

한 명이 바꾼 일본 맥주의 운명


삿포로 맥주는 1876년 세워진 일본 최초의 맥주 양조장이다. 독일식 맥주를 표방한 만큼 풍미가 예술이다. 당시 근대화에 앞장섰던 일본은 맥주 양조 기술을 도입하기 위해 독일로 국비 유학생을 보낸다. 나카가와 세이베이는 1872년 베를린에서 맥주 유학 후 삿포로로 돌아와 국영기업 ‘개척사 맥주양조소’에서 본격적으로 맥주를 양조하기 시작했다. 독일과 기후가 비슷했던 삿포로는 양질의 재료를 재배하기에 알맞았고, 덕분에 일본에 독일식 라거가 만들어졌다. 이후 독일에서 들여온 홉 씨앗을 키워 일본인이 좋아할 만한 맛이 나는 종자만 골라 재배했고, 재료부터 공법까지 고스란히 들여온 독일식 라거는 일본 맥주의 기틀이 되었다.

삿포로 맥주 박물관에 전시된 초창기 삿포로 맥주

규제 철폐로 일궈낸 또 한 번의 도약


일본 맥주는 1994년을 기점으로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1994년 일본 정부는 맥주 양조에 필요한 규제를 없앤다. 이전에는 맥주 양조장이 연간 최소 2,000킬로리터의 맥주를 생산해야 했지만, 규제 완화 덕분에 최소 생산량이 60킬로리터로 대폭 낮아졌다. 덕분에 소규모 양조장이 만들어질 수 있었다.


소규모 양조장은 전통적인 라거부터 에일, 스타우트, IPA(India Pale Ale)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맥주를 생산했다. 심지어 유자, 매실, 녹차 등 일본 고유의 재료를 활용한 실험적인 맥주까지 등장했다. 오늘날 일본의 소규모 맥주 양조장은 530여 곳에 달하며, 이곳에서 나온 맥주 종류만 수천 가지가 넘는다.

Editor’s Pick : 히타치노 네스트 화이트 에일


이바라키현 기우치 양조장에서 만든 맥주로 오렌지 껍질과 고수씨를 사용해 만든 벨기에 스타일의 밀맥주. 약간의 새콤한 과일 향이 특징이며,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절제된 밸런스가 매우 뛰어나다.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전 세계 맥주 대회에서 수상한 내공 있는 맥주다.

필리핀


1년 내내 무더운 동남아시아 지역은 가볍고 시원하며 탄산이 강한 라거가 인기다. 여기에 지역별 특성을 살려 약간의 과일 맛이 나는 맥주도 종종 만날 수 있다.

설립 당시 산미겔 회사 전경

식민지 시절이 남긴 맥주 문화


필리핀은 약 300년간 스페인의 식민 지배를 받았다. 필리핀이라는 국명 자체가 스페인 국왕 펠리페 2세에서 따올 만큼 스페인 문화가 깊이 자리했다. 16세기 초 상류층 백인들이 마시기 위해 유럽에서 수입한 맥주가 필리핀 맥주 역사의 시작이다.


19세기 후반에 들어서자 스페인 사업가 돈 엔리케 바레토가 동남아시아 최초의 맥주 회사 ‘산미구엘’을 설립한다. 산미구엘은 가톨릭의 성 미카엘에서 따온 이름으로 미카엘 축일에 맞춰 회사를 열었다.

산미겔을 설립한 스페인 사업가 돈 엔리케 바레토

산업화의 물결로 성장하는 산미구엘


한여름이면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스페인은 가벼운 라거 스타일이 대세였고, 이는 필리핀에서도 잘 먹혔다. 하지만 산미구엘이 설립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필리핀은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한다. 곧이어 미국의 식민 지배를 받지만 자본주의 경제 모델과 산업화 덕분에 필리핀의 맥주 생산량과 소비량도 증가했다. 이때 산미구엘이 크게 성장하며 미국 수출은 물론 설립 20여 년 만에 해외 공장을 설립할 정도로 성장했다.

Editor’s Pick : 산미구엘 페일 필센


필리핀 맥주 시장의 95%가량을 차지하는 산미구엘의 대표 맥주. 깔끔하고 상쾌한 맛이 특징이다. 보디감도 가볍고 달달한 맥아 풍미가 느껴져 웬만한 음식과 모두 잘 어울린다. 매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맥주 중 하나로 꼽힌다.

AMERICA

북미 대륙의 맥주 스타일은 동떨어진 지정학적 특징처럼 독보적 매력을 지닌다. 유럽으로부터 맥주 독립을 이루어낸 북미야말로 맥주 역사를 새로이 써 내려가는 중이다.


미국


미국 맥주를 한 문장으로 정리하는 것은 마치 세상 사람이 다 똑같이 생겼다는 말과 같다. 미국 내 양조장이 900곳이 훌쩍 넘고, 맥주 종류도 수만 가지에 이른다. 단순히 서부와 동부를 비교하면 서부 해안은 쓴맛이 강한 IPA와 개성 넘치는 크래프트 맥주의 성지이고, 동부 해안은 전통적인 유럽 스타일의 맥주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금주령 기간에 술 을 버리는 미국인

이주민을 중심으로 성장하는 맥주 산업, 그리고 금주령


미국 맥주 문화가 다양해진 것은 금주령 덕분이다. 금주령 이전 미국은 서부 개척과 도시화로 이민자가 늘면서 독일 이주민을 중심으로 맥주 산업이 발전했다. 그러나 1920년, 미국은 사회 개선과 도덕 재건을 이유로 금주령이 내려졌다. 금주령 이전에는 수천 곳의 양조장이 있었지만 이 기간에 대부분 폐업했다.

9000곳이 넘는 소규모 브루어리는 미국 맥주의 상징이 되었다.

못 먹게 하면 더 먹고 싶은 법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은 것이 사람의 심리. 미국인들이 본격적으로 집에서 자가 양조를 시도하면서 다양한 품질의 맥주가 탄생했다. 당시 홈 브루잉 맥주를 즐기는 문화가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금주령은 제조, 운반, 판매는 불법이지만 음주 자체는 불법이 아니었기 때문.


1933년 금주령이 폐지되고, 1978년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가정에서 맥주를 양조하는 홈 브루잉을 전격 허용한다. 지역별 스타일을 담은 소규모 양조장이 주류 시장에 진출하며 본격적으로 맥주 문화가 성장되기 시작했다.

Editor’s Pick : 시에라 네바다 페일 에일


골프는 타이거 우즈, 농구는 마이클 조던, 맥주는 시에라 네바다. 미국 크래프트 비어의 조상이자 영웅이다. 라거 맥주가 판치던 1980년, 묵직하고 진한 페일 에일의 부활을 위해 탄생했다. 쓴맛이 강한 미국산 홉을 사용해 조금 밍밍한 영국식 페일 에일과 노선을 달리했으며 미국식 페일 에일의 교과서라 할 수 있다. 마트에서 발견하면 무조건 맛봐야 하는 맥주 중 하나.

멕시코


맥주 수출량 1위 국가인 만큼 맥주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 나라. 깔끔한 페일 라거와 묵직하고 고소한 향이 느껴지는 앰버 라거, 캐러멜 맛이 특징인 둔켈 등 그 종류도 다양하다.

모델로네그라

독일 이민자가 남긴 맥주 유산


19세기 중반 라거 맥주 양조 기술은 최신식이었다. 해당 기술을 가진 독일과 오스트리아 이민자들이 멕시코로 이주하며 라거 제조법을 전파했다. 날씨가 더운 멕시코에서 가볍고 청량한 라거 맥주는 최고의 궁합으로 꼽히며 인기를 끌었했다.


독일 이민자가 남긴 맥주가 또 있다. 바로 멕시코식 둔켈이다. 둔켈(Dunkel)은 독일어로 '어둡다'는 뜻으로 꼭 흑맥주가 아니어도 어두운색 맥주를 둔켈이라 한다. 유럽에서 맛보는 둔켈은 무거운 보디감과 적은 탄산이 특징으로, 맛과 향이 짙다. 반면 멕시코식 둔켈은 가벼운 데다 탄산이 강하다. 그 특유의 맛으로 자국 내 열렬한 마니아층을 형성했다.

맥시코에 정착한 초창기 독일 이주민

Editor’s Pick : 네그라 모델로


멕시코의 대표적인 둔켈 맥주로 1925년부터 생산된 100년 역사를 지닌 맥주다. 전통 둔켈 맥주보단 약간 달달해 오스트리아식 비엔나 맥주와 독일식 둔켈 맥주 그 사이에 있다. 캐러멜과 견과류 향이 매력적으로 멕시코 음식과 페어링이 아주 좋으니 타코에 꼭 곁들여 마셔보길 바란다.

‘코로나’를 라임과 함께 먹는 이유


멕시코의 대표 맥주 코로나. 맥주병 입구에 라임을 끼워 먹는 것이 특징인데,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1. 라임 특유의 상큼함이 맥주 맛을 높인다.

2. 맥주에 벌레가 들어가는 것을 막는다. 멕시코는 모기가 많아 종종 맥주에 벌레가 들어가기 때문.

3. 위생 관리 목적이다. 맥주병 입구를 라임으로 문지르면 소독 효과가 있다.

사진출처 Bayerisches, Weihenstephan, Orval, International Trappist Association, Sapporo Breweries, Nagaoka City, Japan Experience, Sapporo Beer Museum, Britanica, Sierra Nevada, Gruporeforma, Mode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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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제(객원 에디터) denmagazine@mcircle.bi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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