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만순의 약이 되는 K-푸드...김장의 추억
어느새 김장의 계절이 다가오고 있다. 우리나라의 김치는 동서양의 식재가 어우러진 '위대한' 탄생이라 할 수 있다. 동양의 야채와 남미의 고추가 만나서 상생(相生)으로 이루어진 최고의 궁합이다. 보통 야채는 그 성질이 냉하지만, 고추는 뜨겁다.
한국에서 고추가 배추나 다른 야채와 함께 어울린 것은 불과 100여년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이런 고추를 활용해 야채를 절인 것은 선조들의 지혜가 축적된 약선이다.
그 이전에는 매운맛을 내는 제피나 회향 등을 활용하여 김치를 담갔다. 고추는 달랐다. 고추의 독특한 매운맛을 내는 성분은 캡사이신(capsaicin)이다.
중독성이 있지만 일종의 알칼로이드 화합물이다. 캡사이신은 신진대사를 활발하게 하고 혈류량을 증가시킨다. 뇌신경을 자극해 엔도르핀을 분비해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역할을 한다. 또 침샘을 자극해 식욕을 돋우고 위산 분비를 촉진해 소화를 돕는다.
발암 억제 효과도 있다. 산패를 막아주는 동시에 유산균 증식을 돕기도 한다. 비만 예방과 치료에 도움을 준다고 하며 체지방을 줄여 다이어트에 좋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아울러 고추는 영양의 보고(寶庫)다. 비타민, 단백질, 섬유질, 칼슘, 철분 등 각종 영양소가 풍부하게 들어 있다. 고추에 함유된 비타민 C는 감귤의 2배, 사과의 30배라고 한다.
고추의 비타민 C는 조리 과정에서 다른 채소류보다 손실량이 적다. 우리네 김치의 맛을 좌우한다.
배추와 무, 각종 야채, 젓갈류 등과 어울려 김치를 만든다. 2001년 미국의 건강 잡지 '헬스'는 우리나라의 배추김치를 세계 5대 건강 음식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2012년 5월에는 우리나라 배추가 ′김치 캐비지(Kimchi Cabbage)′로 국제 식품 분류에 정식 등재됐다.
필자는 1999년 늦가을 1950년에 설립된 중국 사천요리대학의 요청으로 교수 100여명과 학생이 모인 강당에서 우리나라의 요리와 김치의 약선에 대하여 특강을 했다. 당시만 해도 김치는 잘 알려지지 않았었다.
그 후 2009년에는 제4회 중화양생포럼에서 '당삼을 활용한 총각김치'를 이용한 신종플루 예방법을 발표했는데 중국, 미국 등 세계 347명의 학자와 전문가들에게 많은 관심을 받고 최우수 논문상을 받은 기억이 있다.
중화양생국제포럼 논문상 최만순 소장 제공 |
마침 그때가 세계적으로 신종플루가 유행하던 때였다. 손자병법에 나오는 '전력의 다섯 가지 조건'에서 네 번째가 장(將)이다.
손자에서 장군이란 슬기롭게 전략을 다룰 줄 알며 신용과 의리가 있고 남을 사랑할 줄 알며 용기가 있어야 한다. 또 어느 편에도 기울지 않고 엄격하고 완전한 지도자여야 한다고 했다.
음식에서 장(將)이란 어떤 개념일까?
장군은 조화를 말한다. 음식 구성의 원칙인 '군신좌사'(君臣佐使)의 개념이다.
일종의 역할 분담이다 군(君)은 음식 구성의 배합 중에서 장군(將軍)이 주인공으로 주어진 상황에 대하여 주요 작용을 하는 것이다.
불굴의 리더십으로 유명한 영국의 윈스턴 처칠을 예로 들 수 있다. 평범한 상원의원이었던 그가 2차 대전이라는 전쟁에서 국민을 결집하고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그가 미국에 지원을 요청할 때 한 말이다.
"우리를 믿어 주십시오. 우리에게 신뢰와 축복을 준다면 신의 섭리에 따라 만사형통할 것입니다. 우리는 결코 실패하거나 꺾이지 않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해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났을 때는 국민은 그를 필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전쟁과 위기 때만 리더십을 발휘한 지도자라는 것이다.
주된 원인은 주변 환경의 변화를 읽지 못해서다.
즉 군신좌사 중 장군을 보좌하는 '신'(臣)만 있었다. 장군을 협조하면서 부수적인 증상을 다스리거나 장군을 제어해 부작용을 방지하는 역할을 하는 '좌'(佐)가 없었다.
국민이 원하는 방향으로 끌고 가는 것을 등한시해 '사'(使)도 없었다.
하나의 음식 배합에서도 이처럼 군(君)의 역할이 중요하다.
그래서 우리는 군(君)이 배추면 배추김치, 부추면 부추김치, 무면 무김치, 갓이면 갓김치 등 이렇게 부르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김치의 종주국답게 200여 종의 김치를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김치가 왜 대단한 식품인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김치 하면 그저 발효식품이다. 유산균이 많은 식품이다. 하는 정도만 알 뿐 그게 왜 대단한 식품인지 잘 모르고 있는 것 같다.
필자는 김치의 특장점을 8가지로 요약했다.
사랑의 김치 나누기 연합뉴스 자료사진 |
첫째, 김치는 냉장고가 발명되기 전까지 채소를 겨우내 싱싱한 상태로 저장 및 보존시켜주는 가장 뛰어난 방법이다. 사람은 생존 상 비타민C를 먹어야 하는데 주로 채소를 통해서 해결했다.
그런데 겨울엔 채소를 먹을 수 없어 인류는 많은 저장 방법을 고안했다. 많이 썼던 방법이 소금에 절이거나 말려서 보관하는 방법인데 이렇게 했다가 먹으면 아무래도 영양이 많이 파괴되고 맛이 없다.
둘째, 김치는 바로 이런 문제를 해결했다. 김칫독에 넣어서 보관하면 겨우내 채소의 신선함이 유지된다. 현재는 김치냉장고가 대신하는 경우가 많다.
셋째, 이 과정에서 소금물에 들어 있던 효소들이 야채의 섬유질과 화학반응을 하면서 발효를 시작하고 아미노산과 젖산이 생기며 김치의 독특한 발효 맛이 나게 된다.
넷째, 김치에 들어가는 고추, 마늘, 파, 젓갈, 오징어, 잣 등등 그야말로 다양한 양념이 들어가서 '군신좌사'를 이룬다.
다섯째, 양념은 소금 때문에 열려 있는 야채의 섬유질 구멍으로 들어가 엄청난 양의 유산균이 만들어진다. 이 균은 창자의 움직임을 활발하게 하고 다른 나쁜 균들이 번식하는 것을 막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여섯째, 김치는 카로틴, 식이섬유(dietary fiber), 페놀성 화합물과 같은 여러 가지 생리활성 물질들이 함유되어 있어서 항산화, 항암, 고혈압 예방 등 여러 가지 기능성을 나타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곱째, 김치는 러시아 의생물학연구소(IBMP)로부터 국제우주정거장에서 먹을 수 있는 '우주식품'으로 인증받았다.
여덟째, 김치의 발효 과정에서 생기는 유산균으로 인해 소화가 잘되고 장(腸)을 깨끗이 하는 정장 작용도 하게 된다. 현대영양학에서 잘 발효된 김치는 젖산과 유산균이 풍부하며 김치 1g에 유산균이 약 1억 마리 가량 함유돼 같은 무게의 요구르트보다 약 4배 많다.
또한 비타민 A와 C, 칼슘, 철, 인 등 무기질이 풍부해 몸에 좋다. 또한 배추와 무에 함유된 식이섬유는 변비와 대장암 예방에 좋다고 한다. 최근에는 김치가 적당히 숙성했을 때 항암 효과가 커진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마늘, 생강, 고춧가루, 파 등 다양한 양념이 들어간 김치를 적당히 익힌 뒤 위암 세포에 첨가했더니 발효시키지 않은 김치보다 암세포 성장 억제 효과가 4∼10% 높았다고 한다. 양념의 종류별로 암세포 성장 억제율은 고춧가루, 마늘 등의 순서로 나타났다.
김치가 위암, 대장암, 간암, 폐암, 방광암 등 다양한 암의 억제에 유익한 것은 김치의 속에 항암성분인 인돌-3-카비놀, 아이소사이오시아네이트, 알릴 설파이드, 캡사이신 등이 들어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비만치료제 '위고비'(Wegovy)'가 지난 15일 한국에 출시됐다.
미국에 이어 유럽에서도 선풍적인 인기를 끄는 살 빼는 주사약이다. 그렇지만 가격도 비싸고 약을 끊으면 다시 살이 찔 수 있다는 것이다.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가장 흔한 게 위장장애다. 메스꺼움, 구토 같은 증상 등이다.
음식이 위에서 소장으로 넘어가지 못하는 위 무력증 위험이 3배, 장폐색 위험은 4배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그리고 근육 손실은 비만치료제의 대표적인 부작용이다.
그렇지만 김치는 부작용이 없다. 단지 개인의 체질에 따른 배합이 필요하다.
필자는 지난 43년 동안 군신좌사 배합으로 김치를 만들어 왔다. 김치를 잘 관리하는 방법은 얼지 않도록 해야 한다. 5℃ 정도에서 보관하는 것이 좋다.
최만순 한국전통약선연구소장 |
최만순 음식 칼럼니스트.
▲ 한국약선요리 창시자. ▲ 한국전통약선연구소장. ▲ 중국약선요리 창시자 팽명천 교수 사사 후 한중일 약선협회장 역임.
[※ 편집자 주 = 한국국제교류재단(KF)의 2024년 발표에 따르면 세계 한류 팬은 약 2억2천5백만명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또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초월해 지구 반대편과 동시에 소통하는 '디지털 실크로드' 시대도 열리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한류 4.0'의 시대입니다. 이에 연합뉴스 K컬처 팀은 독자 제위께 새로운 시선의 한국 문화와 K컬처를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되고자 전문가 칼럼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시리즈는 매주 게재하며 K컬처 팀 영문 한류 뉴스 사이트 K 바이브에서도 영문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정리 : 이세영·성도현 기자> raphae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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