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를 세계화 시킨 숨은 공로자, CJ그룹 ‘이미경 부회장’
영화 ‘기생충’ 성공의 숨은 공로자?
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4관왕을 차지하며 덩달아 CJ그룹 이미경 부회장도 주목받았다. 기생충 책임 프로듀서로 이름을 올린 그는 무대에서 "영화에 대해 주저하지 않고 말씀해주신 한국 관객 덕분에 이 자리에 설 수 있었다"라며 소감을 전했다. 한편, 일본의 일부 관람객과 전문가들은 기생충을 두고 ‘대기업의 후원 하에 제작된 한국적인 영화’라고 폄하하고 있다. 실제로 일본 아사히신문은 “기생충의 오스카 선전 뒤에는 한국 대기업이 있다”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바로 ‘CJ’를 두고 하는 말이다.
이와 같은 평가는 우리나라 입장에서 기분 나쁘게 읽힐 수도 있지만, 뒤집어서 이야기하면 그만큼 국내외로 CJ의 문화적 영향력이 크다는 것을 반증하는 일화라고도 할 수 있다. 문화계에서의 영향력을 이 정도로 끌어올린 이미경 부회장은 어떤 인물일까?
어릴 때부터 문화산업 전반에 관심이 깊었던
CJ그룹의 문화사업을 책임지고 있는 인물, 이미경 부회장 |
2019년 기준 재계서열 13위를 차지하고 있는 CJ그룹은 범 삼성가로 분류할 수 있다. 고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원래 후계자였던 장남 고 이맹희 명예회장이 제일제당을 물려받았으며, 1993년부터는 삼성그룹에서 정식으로 계열분리한 그룹사가 바로 현재의 CJ그룹이다. 현재 CJ그룹의 총수를 맡고 있는 인물은 이병철 창업주의 장손이자 이맹희 회장의 장손인 이재현 CJ그룹 회장이다. 그리고 이재현 회장의 친누나인 이미경과 친동생 이재환이 현재 그룹 부회장직을 맡고 있다.
이미경은 1958년 4월 8일 이맹희 명예회장의 장녀로 태어났다. 그녀는 학창시절부터 대중문화 전반에 관심이 깊었던 인물로 회자되고 있다. 음악을 좋아해 어릴 때부터 음반 수집이 취미였던 것으로 전해지는데, 주로 명동이나 동대문, 미8군에서 흘러나온 불법복제 음반을 사서 모으며 음악을 들었다고 한다. 실제로 그녀는 지금도 노래를 듣는 것은 물론 직접 부르는 것도 즐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세계에 한국을 알리고자 다짐한
드림웍스 영화의 아시아 배급권 획득으로 CJ그룹의 미디어 사업이 힘을 얻다 |
이미경은 서울대학교 가정관리학과를 졸업하고 유학을 떠나 젊은 시절을 주로 해외에서 보냈다. 미국 하버드대학교 대학원에서 동아시아 지역연구학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중국 푸단대학교 대학원에서 역사교육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유학 당시 그녀는 일주일에 한 번 영화를 보는 것이 가장 큰 낙이었다고 회고하고 있다. 이후 그녀는 삼성전자의 미국 현지법인인 삼성아메리카의 이사로 재직하면서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미국에서 생활하며 그녀는 한국에 대한 외국인들의 열악한 인식을 처음으로 접했다. 이는 평소 문화산업 전반에 관심이 많았던 그녀에게 ‘한국의 훌륭한 문화를 바탕으로 외국 사람들에게 한국을 제대로 알리고 싶다’라는 바람을 심어주게 된다. 1995년에는 제일제당으로 거처를 옮기고 드림웍스의 설립 투자 협상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내게 되는데, 이때 드림웍스 자본금의 30%에 해당하는 3억 달러를 제일제당이 투자한 것이다. 드림웍스는 당초 삼성그룹의 자본 투자를 원했으나, 경영권 보장의 측면에서 협상이 깨지면서 제일제당이 이를 대체하는 투자자로 등장한 것이다. 이 투자를 기반으로 제일제당은 드림웍스 영화의 아시아 배급권을 얻게 되며, 이를 계기로 CJ그룹의 콘텐츠 사업에 점차 힘이 실리게 된다.
CJ그룹 문화사업 전반을 진두지휘한
CJENM의 ‘K-CON’도 그녀의 작품으로 이야기된다 |
제일제당은 삼성그룹에서 분리된 이후 엔터테인먼트사업부문을 구축하는 데 이미경의 역할은 절대적이었다. 제일제당은 영화 제작 회사인 제이콤을 설립하며 영화산업 진출을 선언했으며, 1996년에는 제일제당 엔터테인먼트 사업부로 이름을 바꾼 후 본격적으로 영화의 수입, 배급사업을 시작했다. 1997년 8월에는 엔터테인먼트사업부문을 담당하는 ‘CJ엔터테인먼트’가 설립됐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을 이미경이 진두지휘했다.
1997년 이미경은 다보스 세계경제포럼 차세대 리더 100인에 선정됐으며 1998년에는 제일제당 멀티미디어사업부 이사를 담당, 이듬해에는 제일제당 상무이사로 승진했다. 이 과정에서 국내 최초의 멀티플렉스 극장인 CGV강변이 설립됐으며, CJ엔터테인먼트는 2000년 독립기업으로 재탄생했다. 1993년 9월 방송채널사용사업자인 ‘뮤직네트워크’라는 기업이 설립됐다. 이 회사는 케이블 TV에서 두 번째로 많은 채널을 서비스하는 기업이었는데, 2002년 8월에는 ‘CJ미디어’로 상호를 변경하게 된다. 그리고 이후 2005년 이미경은 CJ미디어의 부회장을 맡아, 이 회사의 성장을 다시 한번 견인하게 된다.
직접 콘텐츠를 챙기며 성장을 이끌다
주변의 반대를 무릎 쓰고 론칭해 성공한 프로젝트 ‘슈퍼스타K’ |
오리온그룹의 ‘온미디어’와 함께 케이블 TV시장을 양분하고 있던 CJ미디어는 2009년 12월 24일 전격적인 합병을 발표했다. CJ미디어가 온미디어를 흡수하는 형태였다. 온미디어와 CJ미디어가 합쳐지면서 이 기업은 다시 한번 상호를 변경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CJE&M’이다. CJE&M은 설립 이후 CJ그룹의 모든 엔터테인먼트 콘텐츠 사업을 총괄하는 역할을 담당했으며, 이미경은 이 과정에서 직접 콘텐츠를 검수하고 관리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큰 성공을 거둔 ‘슈퍼스타K’는 주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미경이 강력하게 추진해 성공을 거둔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CJE&M은 종합편성 채널 이상의 매체력을 가진 대형 방송사로 성장했으며, 특히 드라마 제작 부문에서는 절대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영화산업에서의 CJE&M의 영향력도 강력한데, 기생충의 성공을 예고한 작품이었던 ‘설국열차’의 제작에도 이미경은 직접 관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매번 성공만 거둔 것은 아니었다. 강제규 감독의 ‘마이웨이’는 그녀가 직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직접 투자를 추진했으나, 결과적으로는 흥행에 실패를 거둔 사례로 기록돼 있다.
악재가 겹치면서 경영 일선에서 손을 떼다
박근혜 정부에 들어서 CJ그룹의 엔터테인먼트 사업은 크게 위축된 바 있다 |
2013년 5월 검찰은 횡령, 배임, 조세 포탈의 혐의로 이재현 CJ그룹 회장을 겨냥해 수사에 착수했고, 그해 7월에는 구속에 이르렀다. 이재현 회장이 구속으로 인해 부재중인 때 이미경은 엔터테인먼트사업을 넘어 그룹사의 경영에 참여하며 경영공백을 메웠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여러 불미스러운 일이 그녀를 덮치게 된다. 그룹사 내에서는 그녀 중심의 조직개편으로 인해 혼란스러운 와중에 갈등이 깊어졌다는 평가가 나왔으며, 외적으로는 박근혜 정부의 퇴진압력이 더해졌다.
지난 2018년 10월 25일, 대법원에서는 조원동 전 수석이 박근혜 전 대통령과 공모해 이미경의 퇴진을 강요했다가 미수에 그친 혐의에 대해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의 원심판결을 확정한 바 있다. 조원동 전 수석은 2013년 7월 CJ그룹에 연락해 ‘대통령의 뜻’이라며 이미경의 퇴진을 강요했다가 미수에 그친 것으로 전해진다. 여러 일들이 겹치면서 이미경은 CJ그룹 경영에서 손을 떼고, 2014년 10월에는 건강상의 이유로 미국 하와이로 출국한 바 있다.
다시금 전면에 나서기 시작한
고양시에 들어설 예정인 ‘K컬처밸리’에 CJ그룹의 자체 브랜드 호텔이 들어설 것으로 알려져 있다 |
하와이로 출국한 이후 이미경은 지금까지 경영 일선에 복귀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작년을 기점으로 조금씩 그녀에 대한 시장에서의 언급이 많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영화 ‘기생충’의 후원자로 그녀의 이름이 거론되기 시작했으며, 지난 11월에는 오스카상을 주관하는 미국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의 ‘아카데미 영화박물관’의 7명의 이사진 중 한 명으로 선임되기도 했다. 여러 움직임에 대해 CJ그룹은 공식적으로 그녀의 복귀에 대해 경영에서 완전히 물러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경영복귀’라는 표현은 맞지 않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진다.
실제로 이에 대해 시장에서는 박근혜 정부 시절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으며,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이후 경영에 복귀해 있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아직 전면에 그녀가 나서고 있지는 않으나 CJ그룹이 올해 론칭할 예정인 ‘5성급 자체 브랜드 호텔’의 사업에 그녀가 깊숙이 관련해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전 세계적으로 문화산업 전반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이미경이 앞으로 어떤 행보를 보이게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최덕수 press@dail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