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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하면 그제야 빚어 튀기는 만두… 꽃잎처럼 입안에서 바스러지네

[아무튼, 주말]

[정동현의 Pick] 군만두

조선일보

서울 마포구 아현시장 '개담'의 군만두(앞)와 접시만두./이경호 영상미디어 기자

군만두라는 단어에서 영화 ‘올드보이’가 생각난다면 당신은 옛날 사람이다. ‘군만두=서비스’라는 공식이 여전히 머릿속에 맴돈다면 당신이 꼰대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몇 년 사이 공장제 만두의 질이 올라갔다. 직접 만든 것보다 오히려 낫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많다. 에어프라이어 덕에 집에서 군만두 먹기도 쉬워졌다. 그와 반대로 몇 년 사이 급격하게 올라간 인건비 덕에 손으로 만든 만두는 귀해졌다. 굳이 외식하며 공장제 만두를 먹고 싶지는 않은 것이 요즘 사람들의 마음이다. 조금 값을 치르더라도 하나하나 손으로 빚어 노릇하게 지지듯 굽거나 바삭하게 튀긴 통통한 군만두에 열광하는 시대가 왔다.


서울 강남 대치동에 가면 ‘속이 꽉 찬 만두 99.9′라는 이름을 가진 작은 식당이 있다. 내부는 테이블 대여섯개가 겨우 들어갈 정도로 좁았다. 주방은 바로 홀을 내다볼 수 있을 만큼 가까웠다. 이 동네 점심 시간은 오전 11시 30분 정도에 일찍 시작했다. 과장 조금 보태 31분이 되자 식당이 가득 찼고, 35분부터는 밖으로 줄이 생겼다. 찬으로 깔린 열무김치 맛을 봤을 때 사람들이 줄을 서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새큼하고 시원하며 씁쓸한 맛이 서로 힘을 겨루며 생생한 맛을 이뤘다. 흑미밥 위에 듬뿍 올린 제육볶음은 단맛으로 범벅이 된 분식집 느낌이 아니었다. 칼칼하고 간간한 맛이 물리지 않았고, 씹히는 고기의 양도 양이거니와 억세거나 냄새가 나는 조각이 없었다.


순한 맛과 매운맛으로 나뉜 만두는 알이 컸다. 당면과 고기, 채소로 만든 소와 만두피 사이에는 빈틈이 없었다. 지지듯 구운 쪽은 노릇하고 바삭했으며 다른 쪽은 병아리 솜털처럼 부드러웠다. 매운 만두는 매콤한 맛이 입안 뒤쪽에서 은근히 치고 올라왔다. 직원들은 허겁지겁 밥 먹는 이들에게 “모자란 것 없냐”고 돌아가며 질문했다. 이곳에서 밥 먹은 이들은 곧 다시 올 날을 정하리란 확신이 들었다.


넓은 중화냄비 웍(wok)에서 찰랑찰랑 흔들어 가며 구운 군만두가 먹고 싶다면 지금 서울에서는 ‘서교동진향’이 최선이다. 짜장면과 만두, 이 두 개에만 집중하는 이 집은 어른을 위한 동화 같은 곳이다. 어릴 적 먹던 짜장면과 만두의 추억이 가스불 앞에서 웍을 돌리는 사부의 굵은 팔뚝으로 현실이 된다. 빠르게 볶아 물기를 뺀 간짜장 위에는 역시 튀기듯 구운 달걀프라이가 올라갔다. 노른자를 터뜨려 비비자 간짜장과 면발이 더욱 강하게 달라붙었다. 윤이 나는 양파는 불에 익은 단맛이 7할, 매콤한 기운이 3할 정도였다. 절제된 단맛, 춘장에서 비롯된 구수한 향과 끝에서 향기롭게 마무리되는 고소한 맛이 상하고저 리듬감을 이루며 맛에 운율을 더했다.


군만두는 한 면을 지져 바삭하고 부드럽고 또 쫄깃했다. 소로 쓴 고기, 애호박, 부추 등은 아낌이 없었다. 군만두를 한입 베어 물자 입안에서 뜨거운 기운이 쭉 뿜어져 나왔다. 도톰한 피와 그 안에 가득한 소는 팽팽한 긴장감을 자아내며 군만두라는 음식의 어떤 전형을 보여줬다. 오전 11시부터 오후 2시까지만 문 연다.


마포구 아현시장에 가면 ‘개담’이라는 집이 있다. ‘개운하고 담백하다’는 뜻을 지닌 상호는 추구하는 맛을 보여준다. 아버지가 주방을 맡고 아들이 홀을 책임지는 이곳은 그다지 욕심이 많아 보이지 않았다. 접시만두는 주문이 들어오면 그제야 뜨거운 물에 데쳤다. 준비하겠다는 생각은 아예 없는 듯했다. 숙주와 돼지고기, 두부를 쓴 만두는 어른 손바닥 반만 한 크기였다. 한입 물면 별것없는 온화한 맛이 천천히 혀에 올라탔다. 자극적으로 혀를 잡아당기는 맛은 분명 아니었다. 그럼에도 한입이 그 다음 한입을 부르고 결국에는 만두 한 판을 쉽게 비우고 말았다.


군만두는 한술 더 떴다. 주인장은 주문이 들어오면 그제야 만두를 빚기 시작했다. 이유를 물으니 당연하다는 듯 답했다. “미리 빚어 놓으면 글루텐이 살아나서 만두피가 질겨지거든요.” 오랜만에 듣는 설명이었다. 한 김 식힌 후 담아낸 군만두를 입에 넣으니 뜨거운 기운이 느껴졌다. 깨끗한 기름에 튀겼다는 부연 설명이 필요 없었다. 만두피는 질긴 느낌 없이 동백꽃잎이 떨어지듯 툭툭 부서졌다. 그 안에서 펼쳐지는 것은 과장이 없고 거짓말이 없었다. 아마 10년 전에도, 20년 전에도 이 군만두 맛은 지금과 같았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런 맛을 알기 위해 시간이 필요하다면 옛날 사람이 된다 해도 좋을 것 같았다.


# 속이꽉찬만두99.9: 찐만두 8000원, 군만두 9000원, 제육덮밥 9000원. (02)6015-9919


# 서교동진향: 삼선간짜장 1만2000원, 군만두 8000원. (0507)1418-8888


# 개담: 접시만두 1만2000원, 군만두 1만2000원. (0507)1385-3350


[정동현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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