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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처]by 조선일보

"조계종 서열 3위보다 山中 독박수행이 더 행복"

장적 스님… 사판의 핵심서 돌연 두문불출, 북한산 일선사서 혼자 수행 생활

쌀·반찬·식재료 지게로 나르고 도량 청소·법회 준비 혼자 도맡아

 

"조계종 서열 3위보다 山中 독박수행

"거기부터 제 걸음으로 40분 정도 걸립니다. 마음 편하게 먹고 천~천히 오세요."


지난 20일 오전 서울 평창동 북한산 등산로 입구에서 전화를 걸자 장적(61) 스님이 말했다. 그는 지난 5년간 '잠적' 상태였다. 전주 출신인 그는 중·고교 때 불교 동아리 '룸비니' 활동을 하다 고교 졸업 후 해인사로 출가했다. 동국대를 나와 대구불교방송 사장과 중앙종회 의원을 지냈고, 조계종 총무원 재무부장과 서열 3위인 기획실장을 지냈다. 행정을 맡은 스님을 일컫는 '사판(事判)'의 핵심이었다.


그러던 그가 어느 날 '사라졌다'. '북한산 어느 절에 있다더라'는 말만 돌 뿐, 스님들 모임에도 일절 얼굴을 내비치지 않는다고 했다. 두문불출하던 그가 다시 나타난 건 작년 7월, 페이스북을 통해서였다. 북한산 보현봉 바로 아래 일선사(一禪寺)가 그의 거처. 그의 페이스북은 절에서 보이는 풍경을 찍은 사진과 곰삭은 수행의 맛을 보여주는 잔칫상이다.


37년 전 들었던 탄허 스님 강의 노트를 다시 펼쳐 한 문장씩 곱씹고, 밥 해주는 공양주도 없이 혼자 도량 청소부터 법회 준비까지 도맡아 하고, 목사님 책을 읽고는 "결론적으로 (목사님이) 중[僧]보다 훨씬 치열하게 생활한다"며 스스로를 돌아본다. 출가 40년이 넘은 스님의 글에서 출가 당시의 초심(初心)을 찾으려는 노력이 느껴진다. 어떤 글은 생전의 법정 스님이 강원도 오두막에서 쓴 수필을 연상케 한다.

"조계종 서열 3위보다 山中 독박수행

장적 스님이 반려견 ‘습득’이와 함께 북한산 일선사 옆 ‘무학굴’ 앞에 섰다. 무학 대사가 수행한 장소로 알려진 곳이다. 스님은 “저와 인연 있는 모든 분들의 행복과 즐거움을 위해 수행하겠다”고 말했다. /김한수 기자

그는 북한산으로 들어온 이유를 "재밌고, 편안하고, 행복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출가 후 제 나름대로는 불교와 종단을 위해 이런저런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돌아보니 나이는 50대 중반인데, 출가 수행자로서 내 또래 일반인들보다 나은 게 무엇인가? 나은 점이 있기는 한가? 하는 반성이 들었습니다. 저부터 재밌고 편안하고 행복해야 신도들께도 그 기운을 나눠 드릴 수 있지 않을까요?" 큰 절 주지 자리 이야기도 나왔지만 그는 보현봉을 택했다.


해발 600m, 시내도 아니고 적막강산도 아닌 중간 지대 일선사에서 혼자 꾸리는 생활은 '독박'이다. 쌀, 반찬, 식재료 모두 1~2주에 한 번씩 지게로 날라야 한다. 일요일 법회를 전후해선 하루 이틀씩 준비하고 치워야 한다. 초반엔 식수가 부족해 고생했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이 생활을 즐기고 감사하게 됐다. 그는 "지게 지고 올라오는 1시간이 내겐 선방(禪房)의 참선 못지않게 소중하다"며 "길에 떨어진 낙엽도 어제 떨어진 건지, 방금 떨어진 건지 바로 알아차리게 된다"고 했다. 1년에 200권씩 책을 읽고 매일 일기를 쓰게 됐다. 퇴직한 옛 친구들이 찾아오면 "30년 동안 아내에게 밥 얻어먹었으니 이젠 밥도 하고 설거지도 해보라" "스스로를 사랑하라"고 권한다. 스님과 함께 밥 짓고 설거지하고 청소하면서 하룻밤 자고 나면 한결 밝은 얼굴로 돌아간다. 상좌(제자)들에게 챙기는 화두(話頭)도 "너 중[僧] 생활 재밌냐? 편안하냐?"다. 스님은 이런 생활과 생각을 글로 정리 중이다. 언젠가 책으로 낼 생각이지만 서두르지 않는다.


스님은 황구 한 마리와 함께 산다. 이름이 '습득'이라 했다. 무슨 깊은 뜻이 있는 줄 알았더니 북한산 들개가 어느 날 절에 갖다 놓은 새끼를 거둬 키운다 해서 습득(拾得)이란다. 힘주지 않고 물 흐르듯 살아가는 그의 요즘 삶이 개 이름까지 닿아 있었다. 그렇게 봐서 그런지 습득이 표정도 편안했다. 하산하는 길, 습득이가 앞장섰다. 초행자는 헷갈리기 쉬운 갈림길을 척척 안내하면서 등산로 입구까지 배웅하고 돌아갔다.


김한수 종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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