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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by 조선일보

보디빌더 선수 출신 의사… "운동도 공부도 반칙 쓰면 대가 치르죠"

아무튼, 주말

이색 처방, 이색 인생 재활 전문의 김원걸

"'중량 못 친다(근력 운동할 때 무거운 무게를 못 든다는 의미)'며 혼내는 의사 양반이 있다."

최근 인터넷에서 화제가 된 얘기다. 한 헬스 마니아가 진료를 받았다. 140㎏짜리 바벨로 벤치프레스(누워서 바벨을 들어 올리는 가슴운동) 한다니 의사가 말했다. "어깨뼈 고정은 잘했나요? 나이, 몸무게 보면 170㎏은 들어야 해요." 운동 자세 교정까지 해줬단다. 아파서 병원 가면 "당분간 운동 끊어라"는 말만 듣던 헬스인들에겐 희소식이었다. '헬스 마니아들의 성지'로 알려졌다.


이 일로 김원걸(43) 자세본재활의학과의원 원장은 하루아침에 유명인사가 됐다. 이 원장은 국내 최초 보디빌더 선수 출신 재활의학과 전문의. 전 넥센 히어로즈·KLPGA(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빙상연맹 팀닥터, 평창 동계올림픽 스피드 스케이팅 의료책임자 등을 지낸 스포츠의학 전문가다. 최근 서울 하왕십리동에 있는 병원에서 만난 그는 소문대로 전완근(아래팔 근육)이 장딴지만 했다.

조선일보

의사인가 보디빌더인가. 김원걸 원장이 서울 성동구 자세본재활의학과 운동치료실에서 알통을 드러냈다. 국내 최초 보디빌더 선수 출신 재활의학과 전문의인 그는 “운동과 공부는 노력한 만큼 정직하게 결과가 나온다”고 말했다./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터미네이터를 꿈꿨던 소년

―하루아침에 유명인사가 됐는데요.


"무서웠어요. 환자가 늘어서 좋지만 한순간의 실수로 잘못될 수도 있으니까요."


―보디빌더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요?


"중학교 2학년 때 영화 터미네이터를 보고 아널드 슈워제네거 몸에 반해 시작하게 됐어요. 그때는 유도, 철봉, 평행봉 운동으로 몸을 만들었어요. 의대(중앙대 의대) 본과 3학년 때 보디빌더 선수로 등록하고 미스터코리아 대회에 출전하며 본격적으로 경력 쌓았어요."


―어릴 때 꿈이 보디빌더나 의사였나요?


"군인이었어요(웃음). 아버지가 군인이었어요. 고3 때 육군사관학교나 공군사관학교 시험을 치려고 했는데 몸무게 때문에 떨어지겠더라고요. 키 170㎝에 몸무게 100㎏가 넘었거든요. 과체중이었죠. 한 달 굶으면서 땀복 입고 뛰었어요. 그랬더니 살은 빠졌는데 시력이 1.5에서 0.1 이하로 떨어졌어요. 결국 시력 때문에 진학을 못 했어요. 굶으면서 다이어트 하면 포도당 공급이 제대로 안 돼 시력이 떨어진다는 걸 몰랐던 거죠. 그래서 수능 성적에 맞춰 공대 전자전기과에 진학했어요."


―공대 공부는 안 맞았나요?


"움직이고 사람 만나는 거 좋아하는데 거기 공부는 컴퓨터 앞에서만 앉아 있는 일이에요. IMF 외환위기로 전망도 안 좋아 보였고요. 대학교 3학년 때 아버지에게 '의사가 되고 싶다'고 말씀드렸어요."


―아버지 반응은요?


"'헛소리하지 말고 군대나 가라'. 그래서 정말 자퇴하고 군대에 갔어요. 군 생활하며 수능 두 번 쳐 의대에 지원했다가 떨어지고, 제대한 해에 또 떨어졌죠. 결국 그 이듬해인 27살에 합격했어요. 사수 만에 된 거죠."


―의대 다니면 밥 먹을 시간도 없다고 하던데요.


"다 핑계예요. 아무리 바빠도 운동할 한두 시간은 있어요. 전 점심때 운동했어요. 점심은 도시락 싸들고 다니며 틈틈이 먹었고요. 하루 계란 한 판, 닭가슴살 1㎏, 고구마를 먹었어요."


―선수까지 할 필요가 있었을까요?


"시험이 공부하는 원동력이듯 대회가 몸 만드는 원동력이었어요. 대회 나가 보니 제 몸이 다른 사람하고는 비교도 안 되게 초라해 겸손해지더라고요."

과시에 중독된 사회

헬스 마니아 사이에선 멋진 몸 만드는 것뿐 아니라 무거운 무게 드는 것도 과시 대상이다. 이른바 '3대 운동(데드리프트, 스쿼트, 벤치프레스)' 총 무게가 500㎏를 넘지 못하면 '언더아머'를 입지 못한다는 우스개까지 나온다. 언더아머는 1996년 미식축구 선수 출신인 케빈 플랭크가 설립한 미국 인기 스포츠의류 브랜드로 몸 좋은 남자들이 즐겨 입는 걸로 유명하다.


―어느 정도 드나요.


"3대 운동 합쳐서 600㎏ 정도요. 데드리프트 200㎏, 벤치는 160㎏로 4~5회. 스쿼트는 100㎏ 이상 조금씩 올리며 한 세트당 20개씩 해요."


―최근 무거운 무게 들기 경쟁이 과열돼 있어요.


"그러다 관절 나가요. 선수 아니면 무게 기록 경쟁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자기 몸보다 낮은 중량은 운동 효과가 작다지만, 과한 무게는 몸을 해칠 수 있어요."


―근육 운동 할 때 '자극'과 '통증'을 구분하기가 어려운데요.


"직접 운동 하고 선수들 치료하며 세운 세 가지 기준이 있어요. 첫째, 운동 끝나고 두 시간이 지나도 아프면 그건 통증입니다. 운동 강도를 줄여야 해요. 둘째, 운동 중 고통의 강도가 안 아픈 게 0이고 죽을 정도가 10이라 칩시다. 3 정도의 통증을 넘어가면 그 상태를 넘어서지 않는 게 좋아요. 셋째, 자려고 누웠는데도 계속 아프다면 무리하게 운동한 거예요."


―최근 보디빌더들의 '약투(약물+미투운동)'가 화제였습니다.


"약 쓰려는 사람들에게 한마디만 해요. 그러다 죽는다고. 심장 근육도 근육이에요. 몸 근육을 단련하기 위해 약을 먹으면 심장 근육도 같이 비대해져 심장마비로 죽어요."


―운동선수와 일반인을 진료할 때 차이점이 있나요?


"운동선수는 하는 운동에 맞게 몸이 변형돼요. 쇼트트랙 선수는 반시계방향으로 돌다 보니 그 방향으로 척추가 틀어져 있어요. 김연아 선수 같은 피겨스케이팅 선수도 마찬가지예요. 뼈가 틀어져 아프다고 교정해 버리면 퍼포먼스가 무너져요. 그러니 선수들은 뼈 교정을 하는 게 아니라 덜 아프도록 발목 근육을 강화하는 방식 등으로 치료합니다. 골프, 테니스 선수도 마찬가지예요. 박세리 선수나 타이거 우즈도 다 허리디스크 때문에 고생하잖아요. 이걸 바로잡으면 스윙이 흐트러져요. 일반인은 주말 운동 정도로 척추가 뒤틀리지 않아요. 너무 심한 사람은 '골프연습장이나 스크린 골프 하지 말고 필드만 나가세요'라고 조언해요. 연습장이나 스크린 골프는 단기간에 계속 스윙만 하니 몸에 무리를 주거든요."


―과거 넥센에서 메디컬 담당도 오래했던데요.


"현장에서 초음파 검사하고 치료하거나, 겨울 입단 테스트 때 메디컬테스트를 담당했어요. 야구 선수 대부분 손목, 발목, 허벅지, 어깨, 골반이 많이 아프다고 해요. 초음파 찍어보면 대부분 척추에 문제가 있어요. 환자들에게 운동 치료를 하는데 선수들에게도 하던 것들이에요."


―수술이나 주사보다 운동을 강조하네요.


"수련할 때 척추 수술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병이 재발해 또 수술하러 와요. 척추는 평소 자세가 좋지 않고 운동을 하지 않아 문제가 생기는데 수술 이후에도 똑같이 생활하니 문제가 재발하는 거지요. 열 살 이하 어린 환자에겐 주사를 안 놓습니다. 자세 교육만 하고 돌려보내요. 최근엔 유소년 선수가 아닌데도 앉아서 공부하고 휴대폰 하다 급성 장애가 와서 병원 찾는 10~14세 환자가 많아요."


―살면서 가장 뿌듯했던 순간은요.


"전 청소년 축구 국가대표 박정수 선수가 대회 3주 전 발목을 접질려 인대 3개 중 2개가 끊어졌어요. 대회를 포기해야 할 수도 있었는데 다행히 3주 입원 치료하고 우승까지 했어요. 그 친구가 트로피 사진 찍어 보내주며 '선생님 덕분에 우승했다'는 데 정말 뿌듯했어요. 사실 운동선수 치료는 돈이 거의 안 돼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거든요. 지금도 운동 치료를 많이 하다 보니 저를 물리치료사로 아는 사람도 많아요."


―운동과 의대 공부, 그 둘에서 얻은 삶의 철학은요.


"'노 페인, 노 게인(No pain, no gain)'. 고통 없이는 얻는 것도 없다. 공부와 운동처럼 노력한 만큼 결과가 정직하게 나오는 것도 드물어요. 둘 다 하다 보면 게을러지기도 하고 반칙도 쓰고 싶어요. 그런데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돼 있어요."


[이혜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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