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거리의 악동, 석촌호수에 '휴식'을 띄우다
뉴욕 광고판 그림 비틀어 명성얻은 미국 팝아티스트 카우스
한국서 첫 공공미술 작품 설치… 물에 떠 유유자적 쉬는 '컴패니언'
세로 28m, 가로 25m, 높이 5m 크기의 회백색 인간 형상이 서울 잠실 석촌호수 위에 누워 하늘을 보고 있다. 몸을 잔잔한 물결에 맡긴 채 두둥실 떠다닌다. 미키마우스와 비슷한 복장을 한 이 형상은 해골 모양 머리에 눈 대신 엑스(X) 자가 그려져 있다. 이름은 컴패니언(Companion). 눈을 감은 채 유유자적 휴식을 즐기는 중이다.
미국 팝아티스트 카우스(KAWS·44)의 신작 '카우스:홀리데이'가 다음 달 19일까지 석촌호수에 머무른다. '러버덕'(2014년), '슈퍼문'(2016년), '스위트 스완'(2017년)에 이어 석촌호수에서 진행되는 네 번째 공공미술 프로젝트. 작품 설치를 위해 한국을 찾은 카우스는 19일 기자간담회에서 "휴식 관련 프로젝트를 제안받고 여러 상상을 해봤다. 물에 뜬 채 하늘을 향해 누워 있는 모습이 휴식과 가장 잘 맞아떨어졌다"고 했다.작품을 닮아 악동일 줄 알았는데 말수가 적었다. 인터뷰를 하지 않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본명은 브라이언 도넬리. 미국 뉴저지에서 자랄 때부터 벽에다 그라피티를 그렸다. 작품엔 'KAWS'란 서명을 남겼다.
19일 ‘카우스:홀리데이’가 설치된 서울 잠실 석촌호수를 찾은 카우스는 “휴식 시간이 부족한 현대인의 바쁘고 고된 삶을 위로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작은 사진은 세로 28m, 가로 25m 규모의 ‘카우스:홀리데이’. 그의 뒤에 그려진 캐릭터 ‘컴패니언’은 해골모양의 얼굴에 X자 눈이 그려져있다. /이진한 기자·김연정 객원기자 |
1990년대 초 '스쿨 오브 비주얼 아트'(SVA)에서 학사를 하기 위해 뉴욕에 갔을 때 그라피티보다 더 재미있는 것에 눈떴다. 공중전화 박스나 버스 정류장 광고 위에 그림을 그려서 원래의 이미지를 살짝 비트는 서브버타이징(subvertising)을 시작했다. 서브버타이징은 아류를 의미하는 서브타입(subtype)과 광고(advertising)의 합성어. 광고주들은 골치가 아팠고, 카우스는 뉴욕 거리의 유명인이 됐다.
대학 졸업 후 프리랜서로 애니메이션 작업을 하다가 1990년대 후반 일본 도쿄로 건너갔다. 그의 명성을 잘 알고 있던 일본의 패션 브랜드 베이프는 카우스와 손잡고 피규어와 패션 상품을 내놨다. 대표 캐릭터 '컴패니언'은 미키마우스뿐만 아니라 스펀지밥, 스머프, 스누피 등 대중과 친숙한 만화 주인공을 패러디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언제나 눈이 X 자 모양으로 그려졌다는 것. 스케이트보드와 힙합을 즐기는 젊은이들이 카우스와 컴패니언에 열광했다.
카우스의 작품은 퍼렐 윌리엄스나 카니에 웨스트 같은 힙합 가수가 소장해 더 유명해졌다. 최근에는 크리스천 디올 남성복과도 협업했다. 하지만 그의 작품이 진가를 발휘하는 것은 공공장소에 선보일 때다. 카우스 개인전을 열었던 미국 올드리치 미술관의 해리 필브릭 관장은 "카우스는 앤디 워홀, 마르셀 뒤샹의 계보를 잇는 예술가다. 그는 미술을 미술관 밖으로 끌어내 더 큰 세상과 연결시킨다"고 평했다.
카우스는 "대중과의 소통, 대화를 중요하게 여긴다. 갤러리나 미술관에서의 예술이 아니라, 대중에게 항상 살아 있는 예술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석촌호수에 떠 있는 작품이 사람 형상을 한 데다 눈이 X 자를 하고 있어서 "익사체를 연상케 한다"는 의견도 있다. 카우스는 "무슨 의견이든 다 받아들인다. 하지만 컴패니언은 수영을 잘한다"며 웃었다. 이 작품의 주제는 "물속에서 하늘을 바라보며 주변의 세상과 떨어져 취하는 휴식"이란다. "여러분도 지금 여기 있을 것이 아니라 휴식을 취해야 하지 않나요?"
변희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