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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가 된 스타 셰프… “내 요리는 도마 아닌 땅에서 시작된다”

[아무튼, 주말]

멜론·땅콩·고구마까지… ‘스타 셰프’ 강레오의 변신


요리사 강레오(45)는 ‘스타 셰프’의 원조로 꼽힌다. 요리 서바이벌 프로그램 ‘마스터셰프 코리아’ 등 다양한 방송에 출연해 연예인 뺨치는 인지도와 인기를 얻었다. 그러나 그는 요즘 셰프보다 ‘농부’로 불리기를 희망한다. 얼마 전 그를 만난 곳도 레스토랑이 아닌 전남 곡성에 있는 멜론 재배 하우스 시설이었다. 오전 10시, 실내 온도가 이미 섭씨 50도에 육박하는 하우스 안에서 ‘강 농부’는 땀을 뻘뻘 흘리며 멜론을 돌보고 있었다. 그는 “내 요리는 도마가 아니라 땅에서 시작된다”고 했다.


◇내 핏속에 농사 DNA가 있다


-요리하다 말고 웬 농사인가.


“오래전부터 지으려고 했다. 지금은 도시화가 되면서 아버지도 그만두셨지만, 1804년 경기도 남양주에 터 잡고 6대째 농업을 하던 집안이다. 나 어릴 적만 해도 벼농사도 짓고 과수원도 하고 소·돼지도 키웠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농사에 관심을 가졌다. ‘농업 DNA’가 핏속에 있는 것 같다(웃음).”


-무슨 농사를 얼마나 짓나.


“강화도에서는 친환경 유기농 쌀과 고구마, 충남 금산에서는 산야초, 전북 고창에서는 땅콩 농사를 짓고 있다. 경기도 광주 분원에서는 조선 시대 유명했던 ‘분원리 배추’를 되살려 재배하기도 했다. 곡성에서는 멜론뿐 아니라 와사비(고추냉이)도 키울 예정이다. 중국이 원산지인 ‘칠자화(七子花) 나무’가 있는데, 꿀·차를 얻을 수 있고 빨간 꽃을 3개월이나 볼 수도 있어 지역 여행·관광 활성화도 가능하다. 이 칠자화로 충남 서산에서 ‘경관(景觀) 농업’을 시도한다. 전남 해남에서는 민물 장어, 통영에서는 ‘삼배체굴’이라고 여름에도 먹을 수 있는 굴 등 수산물 양식 계획도 있다.”


-서울에 있을 시간이 없겠다.


목요일 밤부터 일요일까지 나흘 동안 그때그때 급한 데부터 다닌다. 롯데마트에서 델리 메뉴와 PB(자체 브랜드) 상품을 개발하는 푸드이노베이션 센터장(임원)을 맡고 있어서 월~수요일 사흘은 서울에 있어야 하는데, 내년에는 이틀로 줄이려 한다. 작물이 늘어나니 주 5일은 농사지어야겠더라.”


-집안에서도 접은 농사를 왜 굳이 다시 하나.


“해외 식당에서 일할 때 보니, 고든 램지 등 훌륭한 요리사에게는 모두 훌륭한 농부·어부 친구가 있더라. 좋은 재료 없이 좋은 요리는 불가능하다.”


-요리는 그만두는 건가.


“사실 요리는 재료가 다 한다. 체험해보니 농업 자체가 요리더라. 요리가 농사 현장에서 다 끝난다. 훌륭한 식재료가 들어오면 솔직히 주방에서 해야 할 게 없다. 뛰어난 식재료 그 자체를 즐기도록 간단한 처리만 해서 그릇에 담아 손님상에 내면 끝이다. 내 요리는 도마가 아니라 땅에서 시작된다는 생각으로 농사짓고 있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강레오를 검색하면 여전히 ‘요리 전문가’로 나온다.


“네이버 직업 분류에 농부가 없다고 한다. 만들어 달라고 해도 지금껏 안 해준다. 우리나라에 농부가 250만명이 있고, 제일 큰 은행이 농협은행인데도 이렇다.”


◇전국 돌며 특산물 농사


-한 지역이 아니라 홍길동처럼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전국에서 농사짓는 이유는 뭔가.


“농사를 제대로 하려고 2015~2018년 한국벤처농업대학과 한국수산벤처대학에서 공부했다. 이때 만난 ‘스승님’이 농림부 1차관과 농촌진흥청장을 지낸 민승규 박사다. 민 박사께서 ‘전국 161개 시군을 모두 돌고 오라’고 하셨다. 학교 다니며 틈나는 대로 시군을 방문해 농업 현장을 직접 보고 경험했고, 지역 최고 고수(高手)들과 만나 이야기 듣고 배웠다. 161개 시군을 다 방문한 뒤 민 박사를 찾아뵈니 ‘무엇을 하겠냐’고 물으셨고, ‘시군을 다니면서 특산물 농사를 지어 보겠다’고 말씀 드렸다. 지금까지 13가지 특산물을 했고, 앞으로 더 많이 할 계획이다.”


강레오가 말하는 특산물 농사란 농수산물에 부가 가치를 부여하는 일이다. 도시 소비자 입맛을 아는 요리사의 시각으로 상품 가치가 있는 특산물을 발굴해 고부가 가치 농수산품으로 개발한다. 그가 재배하는 신품종 멜론 ‘레오’가 대표적이다.


일반 멜론보다 식감이 단단하고 당도가 높은 레오는 지난해 백화점에서 개당 10만원에 팔려 화제를 모았다. 멜론이 보통 개당 7000~8000원이니까 10배 이상 비싸다. 그는 “일본에서는 프리미엄 멜론이 개당 30만원에 거래되고, 최고의 멜론은 2550만원에 낙찰되기도 했다”며 “프리미엄 농산물 시장은 한국도 점점 커질 거라고 전망한다”고 했다.


-실패한 작물은 없나.


“많다. 경기도 광주 분원에서 생산되던 ‘분원리 배추’는 2년간 재배를 시도했지만 결국 성공하지 못했다. 조선 시대 궁궐에 들어갈 정도로 위상이 높았던 배추다. 도시화와 함께 사라졌던 분원리 배추를 지역 농가들과 다시 재배했지만, 토양이나 기후가 배추 재배에 적합하지 않게 바뀐 모양이다. 올해는 전남 해남으로 옮겨 배추를 재배할 예정이다.”


-요리와 농사 중 뭐가 더 어렵나.


“농사다. 농사는 요리보다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요소가 훨씬 더 많다.”


◇독설가라 욕한다? 신경 안 쓴다


강레오 농부·셰프는 2007년부터 방송에 출연하며 ‘까칠한 독설가’ 이미지로 명성을 얻었다. 그가 본격적으로 알려진 건 지난 2012년 처음 방영된 ‘마스터셰프 코리아’에 심사위원으로 나오면서부터다. 그는 사실상 메인 MC로 활동하며 참가자를 무섭게 압박하는 진행으로 화제가 됐고, 시청률을 끌어올리는 데 크게 기여했다. 여기에 훤칠한 외모와 예능감까지 더해지면서 인기를 얻었지만 동시에 논란이 되기도 했다.


-냉혹한 이미지로 욕을 많이 먹었다.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겠네’ ‘비인간적이다’ 등 갖은 욕을 다 들었다. 난 뭘 해도 욕먹는 존재인 것 같다(웃음).”


-본래 성격인가, 연출인가.


“연기는 못 한다. 당시 PD가 요구한 건 ‘한국에서 하는 것처럼 안 했으면 좋겠다, 해외에서 셰프들이 평가하는 것처럼 하면 좋겠다’였다. 런던 레스토랑에서 헤드셰프가 하는 것처럼, 옛날 생각 하면서 했다. 그런데 참가자에게 잘해주면 그건 전부 편집돼 버리더라(웃음). 나중엔 내 캐릭터를 아예 그렇게 잡은 듯하다.”


-‘최현석 셰프 디스 논란’도 구설에 올랐다.


“요리사가 더 멋있게 보여줬으면 좋겠다는 의도였는데, 결과적으로는 비하하는 게 됐다. 당시 그 기사가 330만 뷰 나왔다고 한다. 욕을 욕을…. 죽을 때까지 들을 욕을 다 먹었다.”


지난 2015년 강레오는 한 매체 인터뷰에서 “요리사가 단순히 재미만을 위해 방송에 출연하면 요리사는 다 저렇게 소금만 뿌리면 웃겨주는 사람이 될 것이다”라는 발언으로 논란이 됐다. 소금 뿌리기는 또 다른 스타 셰프 최현석씨의 트레이드마크. 강레오는 이후 “누구를 저격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었다. 다만 요리사가 보여주고 싶은 모습을 제대로 보여줄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얘기였다”며 예능 프로에서 웃음을 위해 소비되는 요리사 이미지에 대한 우려를 표현하려 했다고 해명 인터뷰도 했다. 하지만 후폭풍은 컸고, 그의 소속사 대표가 나서서 공식 사과까지 하고야 진정됐다.


-남의 시선이나 평가를 의식해 언행을 삼가진 않는 것 같다.


“남이 뭐라 건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내 것만 제대로 하기도 정신없고 벅찬데….”


◇딸에게 농업 권하지만… 아내가 싫어해


강레오는 2012년 가수이자 보컬트레이너인 박선주(50)와 결혼해 딸 에이미(9)를 낳았다. 박선주는 TV조선 ‘내일은 미스트롯 2’의 ‘독설’ 심사위원으로 화제를 모았다.


-아내가 남편과 성격이 비슷한가 보다. ‘미스트롯 2’에서 날카로운 심사평과 짠 점수로 인기도 얻고 논란도 됐다.


“방송을 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다. 얘기하는 걸 들어보니 살짝 멘붕도 왔고, 힘들어하더라. 하지만 워낙 멘털이 센 사람이라 금방 일어나더라.”


-이혼설도 들리던데.


“이혼했으면 좋겠나 보다(웃음). 아내는 딸과 제주도에 살고, 나는 전국을 다니며 농사지으니 그런 말이 나온다. 둘 다 스트레스 받지 않는다. 서로 뭘 하는지 잘 모른다. 애기(딸)가 뭐 하는지는 공유하지만, 각자가 뭐 하고 사는지는 모른다. 강레오·박선주라는 사람을 보고 결혼한 거니까 나머지는 별 신경 쓰지 않는다, 범죄만 저지르지 않으면(웃음).”


-서울 갈 시간도 없던데, 가족과 만날 시간은 있나.


“내가 시간 될 때 하루 정도 제주에 갔다 오기도 하고, 아내와 딸이 이쪽(농사짓고 있는 곳)으로 오기도 한다. 에이미가 여기 와서 땅 파며 노는 걸 좋아한다.”


-딸에게 미래 직업으로 농부를 권하겠나.


“농업을 딸에게 추천하는데, 에이미 엄마가 되게 싫어한다(웃음).”


-많은 청소년이 당신을 롤 모델로 삼고 셰프를 꿈꿨다. 이제 와서 농부가 된다면 배신 아닌가.


“요리를 한다고 농업을 몰라도 되는 게 아니고, 농업을 한다고 요리를 몰라도 되는 게 아니다. 둘 다 알면 훨씬 경쟁력 있는 요리사 또는 농부가 되지 않을까.”


[곡성=김성윤 음식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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