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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경차, 어쩌다 찬밥이 됐을까요

#저를 아시나요? 저는 작지만 알찬 차의 대명사, 경차(輕車)예요. 배기량 1000cc 미만, 크기는 길이 3600mm, 넓이 1600mm, 높이 2000mm를 넘지 않는 차죠. 우리나라 자동차관리법에 그렇게 돼 있어요. 작다고 무시하지 마세요. 한때 '국민차'라고 불렸던 저라고요. 몇 년 전만 해도 한 달 2만대씩 팔릴 정도로 인기도 좋았어요.


그런데 요즘 왜 이러죠. 사람들이 저를 잘 쳐다보지 않아요. 매장에 나온 지 꽤 됐지만 저 말고 덩치 큰 차들에만 눈길을 주네요. 방금 저 젊은 커플도 그래요. 저를 흘끔 보더니 금세 외면하네요. 예전에는 저런 친구들은 대부분 저에게 사랑스러운 눈길을 보내며 발을 동동 구르곤 했는데…. 저, 어쩌다 이렇게 찬밥이 됐을까요? 이제 퇴물이 된 걸까요?

내 이름은 경차, 어쩌다 찬밥이 됐을

▲ 2001년 단종된 대우국민차 티코/사진=인터넷 티코 동호회

#이런 분위기는 판매량으로 나타나요. 예전과 달리 점점 안 팔리고 있어요. 승용 경차 판매량은 2012년에는 20만대도 넘겼죠.(20만2844대, 한국자동차산업협회 통계) 2014년까지 연 18만대를 유지했고요. 

 

하지만 2015년부터 17만대 수준으로 줄어들더니 작년에는 13만8895대, 올해는 11만5852대(11월 말까지)로 줄었어요. 연말까지 13만대를 채운다고 해도 6년 전과 비교하면 36%나 줄어든 거예요.

 

영세 자영업자들에게 높은 연비와 뛰어난 실용성으로 인정을 받은 경상용차도 안 팔리는 건 마찬가지예요. 상용차는 트럭, 승합차 같은 영업용 차량을 말해요. 

 

경상용차 판매량은 2013년이 최대였어요. 경형 승합차는 2013년 처음 1만대 넘겨 1만969대를 찍었죠. 경형 트럭도 9693대로 1만대에 육박했고요. 하지만 그 이후론 점점 줄어 이제는 둘 다 연 3000~4000대 정도가 전부에요.

내 이름은 경차, 어쩌다 찬밥이 됐을

#제가 잘 팔렸던 건 정말 실속 있었기 때문일 거예요. 조금 좁을지 몰라도 어른 넷 너끈히(?) 태울 수 있고 기름도 큰 차보다 훨씬 덜 먹는 저잖아요. 가격이 싼 데다 혜택도 많죠. 각종 세제혜택에 통행료나 공영주차장 할인 등 경제적인 면이 많아서 인기가 하늘을 찔렀어요.


일단 매년 내야 하는 자동차세는 cc당 80원이 적용돼 1000cc 이하인 저는 일반 자동차와 비교하면 상당히 저렴해요. 취·등록세도 면제돼요. 일반 승용차는 등록세 5%와 취득세 2%로, 총 7%에 해당하는 세금을 납부해야 하죠.


고속도로 통행료도 50%나 할인돼요. 고속도로를 많이 이용하는 주인이라면 비용 차이가 크겠죠. 또 서울시 등 지방자치단체에서 시행하는 자동차 10부제에도 제외돼요. 차를 두고 나갈 일 없이 매일 쓸 수 있는 게 저죠.


주차료 할인도 받을 수 있어요. 공영주차장 이용 시 50%, 지하철 환승 주차장 이용 시엔 80%나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어요. 또 1000cc미만의 자동차의 유류에 붙는 세금 중 일부를 환급해주는 유류세 환급 혜택도 있어요. 연간 12만원 정도 되는데 저한테는 한두 달 치 기름값이죠.

내 이름은 경차, 어쩌다 찬밥이 됐을

▲ 기아차 더 뉴 레이/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요즘 들어 저에 대한 관심이 줄어든 이유요? 사실 짐작 가는 거는 있어요. 요 몇 년 사이 제 판매가격이 점점 오르고, 안전하지 못하다는 인식이 커지면서죠.


요즘 저희 몸값이 어느 정도냐면요. 한국GM의 쉐보레 '스파크'는 972만~1508만원, 기아차 '모닝' 945만~1544만원, '2018 레이' 1210만~1670만원, '2018 다마스' 988만~1028만원 등이에요. 어쩌다 보니 1500만원을 넘는 수준까지 왔네요.


그러다 보니 100만~200만원 정도 더 주고 소형이나 준중형을 사는 게 낫다고 판단하는 소비자들이 많아진 거 같아요. 전에도 전시장에서 누가 절보더니 그러더라고요. "1500만씩이나 주고 경차를 사는 사람도 있어?"라고요.


제가 안전하지 못하다는 인식도 속상해요. 차가 작고 가볍다 보니 혹시라도 사고가 나면 인명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걱정이 큰 거죠. 저를 만드는 완성차 업체들은 이 때문에 안전 사양을 높이고 있는데요. 그러다보니 또 가격이 오를 수밖에 없어요. 악순환인 거죠.


게다가 우리나라에서는 선택할 수 있는 경차도 몇 개 없어요. 다른 차급에 비해 선택지가 적죠. 옆나라 일본은 경차 차종도 많고 베스트셀러도 대부분이 경차예요. 신차 판매시장 점유율도 40%나 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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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차 뉴 모닝/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요즘엔 특히 친환경차 관심이 커지면서 더 그런거 같아요. 전기차, 하이브리드차 같은 녀석들 말예요. 정부에서도 저한테만 주던 혜택을 친환경차에게도 듬뿍듬뿍 주고 있잖아요. 예전에는 기름 덜 먹는 제가 바로 친환경차였는데 말이죠.


연비나, 각종 혜택 등에서 경차에 못지 않고 몸집도 저보다 커 안전한 느낌까지 주니 저보다 나아보이나봐요. 그러다 보니 제 자리를 친환경 차에 빼앗기는 느낌이에요.


국산 친환경차는 올해 8만대가 팔릴 걸로 예상된다고 하는데요.(11월말 현재 7만4006대) 이는 2012년 친환경차 판매량 2만2972대와 비교하면 3배 넘게 늘어난 거죠. 그야말로 격세지감이에요.


반면 경차는 내년부터는 취·등록세 면제 혜택이 사라진대요. 당장은 차 값 1230만원을 넘는 부분에만 세금을 적용해 큰 부담이 없긴 하다지만 아예 안내던 것과는 느낌부터 다르죠. 이미 찬밥인데 저에 대한 관심이 더 줄어들까봐 걱정이에요.

내 이름은 경차, 어쩌다 찬밥이 됐을


#하지만 제 장점, 여전히 있잖아요. 작은 만큼 도로의 차선 폭 안에서 운전하기도, 주차 칸 안에 넣기도 쉽죠. 초보운전자가 운전에 익숙해지기에 좋은 조건이고 첫 차로 사기에 여전히 저렴하기도 하고요.


그래서 저에 대한 기준을 좀 완화해보는 건 어떨까 하는 분들도 있더라고요. 맨 앞에서 말한 우리나라 경차 규격 때문에 많은 유럽의 소형(A 세그먼트) 차들이 국내에 들어오면 경차 혜택을 못 받는데요. 누구는 5mm, 많아야 100mm 정도 차이로요.


이제는 제 맏형 급인 '그랜저'가 국민차로 불리는 시대라고 하네요. 하지만 다양한 경차가 들어오고, 또 국내에서도 활발히 개발될 수 있게 정책을 조금은 완화하는 건 어떨까요? 다시 예전 인기 많았던 저로 돌아가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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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GM 쉐보레 더 뉴 스파크/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윤다혜 기자 ydh@bizwatch.co.kr / 윤도진 기자 spoon504@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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