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자가 김혜자 했다” 감탄 나온 이 드라마
청춘의 설렘과 풋풋함이 가득했던 JTBC <눈이 부시게>가 너무도 슬퍼졌다. 혜자(한지민)와 준하(남주혁) 앞에 놓인 시간은 가혹하기만 했다. 결국 시계를 거꾸로 돌린 건 혜자였다. 그의 인생에 크나큰 불행이 닥쳤기 때문이다. 혜자는 교통사고를 당한 아빠(안내상)을 살리기 위해 준하에게 줬던 시계를 되찾아와 시간을 되돌린다. 과연 오랫동안 봉인해뒀던 시계가 제대로 작동할까? 다행히 상상하고 싶지 않은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혜자는 아빠가 교통사고를 당하기 직전으로 돌아가는 데 성공했다. 이제 아빠를 살리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과거를 바꾼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잠에서 깬 혜자가 숨도 쉬지 않고 뛰쳐나갔지만, 아빠의 택시(혜자의 아빠는 택시기사다)는 그보다 매번 빨랐다. 실패는 반복됐다. 시간을 거스르는 혜자의 도전도 계속됐다. 이번에는 길가에 세워진 자전거를 타고 내달린다. 그래도 부족하다. 혜자는 아빠의 죽음을 막을 수 없었다.
“꼭 구해야 되는 사람이야. 어떻게든 꼭 구해야 하는 사람이야. 근데, 구할 수가 없어. 몇천 번 같은 상황이 반복되는데도 도저히 구할 수가 없어.”“그래도 구해야지. 혜자야, 네가 얘기했잖아. 어떻게든 구해야 하는 사람이라고. 그래야 하는 사람이면 몇억 번을 시도해서라도 구할 거야, 난.”
낙심하고 있던 혜자는 준하의 진심이 담긴 위로와 응원에 힘입어 다시 과거로 돌아간다. 몇 억 번을 시도해서라도 반드시 구해내기로 한 것이다. 결국 혜자는 무수한 반복에 힘입어 아빠의 운명을 바꾸는 데 성공했다. 그런데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시간을 거꾸로 돌리는 대가, 그러니까 되돌린 시간만큼 나이를 먹어버린 것이다. 스물다섯 살의 혜자가 일흔 살의 혜자가 됐다.
그렇게 (극 중) 김혜자는 (배우) 김혜자가 됐다. 가족들은 너무도 늙어버린 혜자를 낯설게 바라봤다. 당황스럽긴 혜자 본인도 마찬가지였다. 소중한 사람을 구해냈지만, 소중한 시간을 모두 잃었다. 꿈 많았던 청춘, 설렘 가득했던 젊음은 몽땅 사라졌다. 갑자기 할머니가 돼버린 혜자는 모든 것이 당혹스럽기만 하다. 그 현실이 쉽사리 받아들여질 리가 없다. 절망감이 온몸에 스며들어 혜자를 잠식해 들어갔다.
이 전개(한지민→김혜자)는 예고된 것이었기 때문에 적당히 이해하긴 했지만, 솔직히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긴 했다. 우선, 혜자가 왜 계속 잠에서 깨어나는 시점으로 돌아가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잠들기 전으로 돌아가면 깔끔하게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까? 간단한 결론은 시계를 돌렸을 때 돌아가는 시점이 정해져 있고 한번 세팅된 시점은 변경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아빠의 죽음을 막으려는 혜자의 노력에도 아쉬움이 남았다. 자전거를 타고 쫓아갈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차라리 전화하는 편이 낫지 않았을까? 아니면 길가의 돌을 집어서 택시를 향해 던지는 게 성공률 면에서 좀 더 높지 않았을까? 물론, <눈이 부시게>의 경우 타임 리프를 비교적 '가볍게 활용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설정의 문제를 깊이 파고들 필요까진 없을 것이다. 핵심은 스물다섯 혜자가 늙어버려야 한다는 것이니까.
무엇보다 이런 부정한 의문에 빠져들기에 <눈이 부시게>의 배우들이 보여준 연기는 너무도 탁월했다. 물오른 연기력을 발휘하고 있는 한지민은 스물다섯 혜자를 이질감 없이 완벽하게 표현해냈다. 1회에선 현실의 높은 벽을 체감한 청춘의 좌절을 절절하게 그려냈고 2회에선 아빠를 살리기 위해 죽을힘을 다하는 딸의 절박한 심정을 실감 나게 연기해 시청자들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남주혁도 자신의 몫을 충실히 해냈다. 1회에서 어려운 현실 가운데 자신의 꿈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는 청춘의 풋풋함과 강인함을 그려냈다면 2회에선 가정폭력을 일삼는 아빠의 등장과 유일하게 의지했던 할머니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무너져 내린 청춘을 연기했다. 남주혁은 준하의 절망적인 상황과 감정들을 과하지 않게 연기하면서 시청자들이 자연스레 몰입할 수 있게 했다.
이렇듯 한지민과 남주혁의 열연(과 슬프고 무거운 분위기를 한순간에 반전시키는 손호준의 코믹 연기)도 훌륭했지만, 역시 김혜자의 연기는 특별했다. 그의 연기를 보고 있노라면 설명하기 어려운 묘한 감정들에 휩싸인다. 연기인 듯 연기가 아닌, 그의 연기 앞에 할 말을 잃게 된다. 한순간에 늙어버린 낯선 모습에 혼란스러워하는 혜자를 표현하는 그의 표정, 몸짓, 말투 모든 것이 놀라웠다.
특히 “아직도 내가 엄마 아빠 딸인 거 모르겠어?”라며 오열하는 장면과 가족에게 편지를 남긴 채 준하와 함께 야경을 바라봤던 원룸 옥상에 오르는 장면은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2회에서도 김혜자의 분량은 많지 않았지만, 감상평을 이야기하라면 “김혜자가 김혜자 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만큼 김혜자의 존재감은 강렬했고 앞으로 그의 연기가 더욱 기대됐다.
<눈이 부시게> 2회는 시청률 3.188%를 기록(1회 3.185%)하며 기존의 시청자들을 지켜내는 데 성공했다. 또, 명품 드라마라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향후 시청률 상승의 문도 열려 있는 상황이다. 게다가 이야기가 어떻게 진행될지 예측하기가 어렵다는 점도 흥미로운 요소다.
직썰 필진 버락킴너의길을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