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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The Road

사진으로 보는 세상이야기

길을 걸으며 많은 이들을 만나고 많은 이야기를 듣는다. 그들의 웃음 속에서 내 부모님의 미소를, 조카의 호기심을 보며 여인의 수줍음을 발견했다. 때론 스쳐 지나간 이름 모를 이들의 뒷모습에서 인생을 배우기도 한다. 그 배움이 나를 채우고 넘치게 한다.

On The Road

ⓒ 유별남

16시간을 달려야 끝나는 카라코람 하이웨이는 쏟아지는 폭설과 무너지는 절벽 길로 인해 평소보다 두 배의 여정을 요구했다. 결국 버스와 트럭, 자가용 등 수십 대의 차가 한 계곡에 갇혀 밤을 지새우게 되었다.

 

시커먼 먹지를 도배한 방 안에 들어앉은 것처럼 세상은 암흑천지 였고 몰아치는 눈보라로 차 안에 갇힌 사람들의 어스름한 얼굴만이 헤드라이트 불빛에 어른거렸다. 우르릉 쾅쾅, 보이지는 않지만 집채만 한 바위들이 굴러떨어지는 천둥 같은 소리에 놀란 아기들의 울음소리가 들릴 뿐이었다. 그곳에 갇힌 우리는 그렇게 긴 밤을 지새웠다.

On The Road

ⓒ 유별남

On The Road

ⓒ 유별남

높은 산에 둘러싸인 우리에게 새벽 여명은 한참 뒤에야 찾아왔다. 덜커덩거리며 나타난 중장비가 길에 쌓인 바윗덩어리를 치우는 소리, 사람들의 웅성거림으로 아침이 열렸다. 굳은 몸은 쉬 움직이지 않았고 창밖의 눈 부신 햇살에 나는 이맛살을 찌푸렸다. 그런데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 그리고 누군가 쑥 내미는 찻주전자의 뜨거운 김이 난로에서 나오는 열기처럼 차 안의 찬 공기를 데워주었다. 무언가로 보답하려 주머니를 만지작거리는 나에게, 사내는 씩 웃으며 “Good morning” 한마디 하고 다음 차로 갔다.

On The Road

ⓒ 유별남

몇 잔의 차는 굳었던 엔진을 돌게 하는 엔진오일처럼 몸의 혈관을 타고 돌며 또 다른 욕망을 일깨웠다. 몇 알 남은 말린 살구를 찾아 가방을 뒤적거리는데 불쑥 차 안으로 손이 들어왔다. 쌀과 콩으로 만든 산속의 밥이었다. 그리고 다시 던져지는 한마디, “No problem.”


유유히 멀어져 가는 사내의 뒷모습을 좇아 바라보니 한 가족이 바위 턱에 큰 솥을 걸고 지나가는 이들에게 차와 음식을 내주고 있었다. 노부와 젊은 부부는 분주히 음식을 떠주고 아이들은 옆에서 아침 햇살에 녹기 시작한 눈으로 눈싸움을 하고 있었다. 참 부지런한 사람들이었다. 가만히 보니 음식을 건네주는 손만 있지 돈을 건네는 손은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기쁜 나눔으로 사람들의 아침을 열어주었다. 막혔던 산길의 아침은 그렇게 열렸다. 

 

엔진 시동 거는 소리, 액셀 밟는 소리와 함께 겨울잠에서 깨어난 뱀처럼 긴 차량 행렬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맨 앞의 불도저가 막힌 길을 뚫으면서 차들은 각자 다른 목적지를 향해 길을 가고 있었다.

On The Road

ⓒ 유별남

“아까 그 사람들 그냥 공짜로 아침을 지어 준 거야?” 내가 묻자 나시르가 답했다. “그저께 산사태 때문에 벼랑을 걸어서 건널 때 한 외국인이 도와주어서 무사히 건넜대. 그 감사로 거기 있던 행렬에 아침 식사를 대접한 거래.”

 

“아, 그런 거였어?” 

 

뜨거운 솥 옆에서 유난히 눈싸움을 잘하던 꼬맹이의 얼굴이 다시 떠올랐다. ‘벼랑길이 무서워 그리 울던 녀석이 눈싸움은 씩씩하게 잘하네…’

 

그 아침을 받은 이들은 다른 장소에서 다른 시간에 또 다른 감사를 할 것이고, 나 또한 그럴 것이다. 길은 목적지가 있어 길이지만, 뒤에 남겨지는 추억이 있기에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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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찾지 않는 곳에서 세상의 조각들을 자신만의 시선으로 담는 작업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