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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zine] 느린 여행, 쉬어가는 간이역 ③ 남이섬 백패킹

경춘선 타고 메타세쿼이아 숲에서 즐기는 아날로그 여행


1980∼1990년대 MT나 데이트로 설레던 청춘을 실어 나르던 경춘선. 1980년대 발표된 노래 '춘천 가는 기차'도 경춘선을 낭만 여행의 대명사로 만드는 데 큰 몫을 했다.


최근 경춘선 가평역에는 백팩에 텐트를 짊어진 여행자들이 적지 않다. 예전 방식으로 즐기는 느린 여행, 남이섬 백패킹을 떠나봤다.

'Feels so Good'이 어울리는 숲

연합뉴스

모닥불을 피우며 망중한을 즐기는 백패킹족들 [사진/성연재 기자]

대낮의 떠들썩한 행락객들이 모두 사라진 남이섬의 메타세쿼이아 숲. 어둠이 짙게 내린 초겨울의 숲에서 텐트를 펴고 모닥불을 지폈다.


미국의 트럼펫 주자 척 맨지오니(Chuck Mangione)의 '필스 소 굿'(Feels So Good)'이 스마트폰을 통해 흘러나온다.


추억을 부르는 플루겔혼 소리가 메타세쿼이아 숲을 갈랐다. 트럼펫과 비슷하게 생긴 플루겔혼은 트럼펫보다 풍성하고 서정적인 음색을 낸다.


모닥불이 타는 소리가 타닥타닥 배경음으로 깔렸다. 장작이 약간 덜 마른 탓에 매캐한 연기가 올라왔지만, 더없이 완벽한 시간이다.


고가의 스피커가 아니라 휴대전화 순정 스피커였지만, 숲속 모닥불과 함께 감성을 흔들기에 충분했다. 그야말로 'Feels So Good'이었다.


최근 남이섬은 주말에 백패킹 캠핑을 받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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텐트를 설치하는 모습 [사진/성연재 기자]

드라마 '겨울 연가'로 유명한 남이섬이었지만, 아웃도어 마니아들에게는 그동안 금지된 정원 같은 존재였다. 남이섬은 캠핑을 비롯한 어떤 개인적인 아웃도어 액티비티도 허용되지 않는 곳이었다.


그러던 이곳이 최근 외국인 관광객이 줄어들자 아웃도어 도입을 허용한 것이다.


집채만큼 큰 텐트로 캠핑하는 오토캠핑은 받지 않고, 캠핑 장비를 등짐에 진 채 이동하는 백패킹만을 허용하기로 했다.


남이섬의 고즈넉함을 즐기려는 사람들을 불러올 수 있고, 한편으론 아날로그적이면서도 느린 여행 방법인 만큼 남이섬의 분위기에 적합하다는 판단에서다.


40년 만에 재개된 남이섬 백패킹이 어떨지 가보기로 했다. 때마침 해외 백패킹 여행자 김소정 씨 일행이 움직인다고 해서 함께 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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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춘선 가평역에 내린 백패킹족들 [사진/성연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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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평역과 아날로그 여행

가평역으로 향하는 ITX 청춘 열차에는 여러 명의 백패킹족들이 눈에 띄었다.


신축한 가평역은 예전 느낌은 아니었지만, 백팩을 등에 진 채 남이섬으로 이동하는 기분이야말로 아날로그적인 여행의 참맛이었다.


남이섬 선착장까지 시내버스로 간 뒤 이곳에서 배를 타고 10분 정도면 남이섬에 도착할 수 있다.


백패킹은 독특한 매력이 있다. 많게는 20㎏에 육박하는 등짐을 진 채 이동해야 하는 고단함이 있다. 그러나 그 열매는 달콤하다. 다른 사람들이 갈 수 없는 곳을 갈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최소 1∼2시간 높은 산을 오른 뒤 아무도 없는 곳에서 텐트를 펼 때, 눈 앞에 펼쳐진 대자연이 나의 정원으로 다가오는 특별함을 맛볼 수 있다.


남이섬 백패킹도 그런 독특한 만족감을 줬다. 오가는 사람들이 모두 사라진 남이섬의 숲과 별빛에 반짝이는 북한강이 오롯이 나의 것으로 남게 되는 특별함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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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팩을 한 채 남이섬을 걷는 백패커들 [사진/성연재 기자]

다양한 액티비티들

남이섬에는 백패킹족을 위한 다양한 액티비티가 기다리고 있었다.


특히 새로 도입한 숲속 체험 프로그램은 사람들을 매료시키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


인상적인 것은 프랑스에서 도입한 '트리 코스터'(Tree Coaster)였다.


고정 장구를 몸에 찬 뒤 레일에 매달려 미끄러지는 기구였는데, 커브를 틀 때마다 몸이 90도 각도로 사정없이 흔들려 박진감을 줬다.


30초 정도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짜릿함을 만끽할 수 있었다. 내리고 나니 다리가 후들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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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장치를 한 뒤 나무와 나무 사이를 연결한 로프를 걷는 트리 고(Tree Go) [사진/성연재 기자]

안전장치를 한 뒤 나무와 나무 사이를 연결한 로프 위를 걷는 '트리 고'(Tree Go)도 매력적이었다.


20대 여성들이 나무 위를 훌쩍훌쩍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니 젊음이 부럽기도 했다.


짚라인도 한 번쯤 해볼 만하다. 짚라인을 타기 위해서는 일단 배를 타고 다시 섬 바깥 선착장으로 나가야 한다.


선착장 앞에 있는 짚라인 타워에 올랐는데, 다리가 후들거릴 만큼 높았다. 짚라인을 타면 남이섬으로 바로 착륙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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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착장에서 남이섬으로 향하는 짚라인 [사진/성연재 기자]

남이섬의 진면목

당일 여행객들이 돌아가는 저녁 시간에 텐트를 설치했다. 인적이 드문 시간이 됐지만, 남이섬의 진면목은 지금부터라는 생각이 들었다.


뉘엿뉘엿 넘어가는 해를 보면서 요리를 시작했다. 남이섬에서 백패킹족들을 위해 준비한 요리 상품이다.


메뉴는 춘천식 닭갈비였다. 3웨이 버너에 넣고 함께 볶은 뒤 각자의 식기에 나눠먹었다.


숲속에서의 시간은 왜 이렇게 빨리 지나가는 것일까. 자정이 훌쩍 넘었지만 아무도 텐트로 들어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꿈같은 모닥불 앞에서의 시간이 지나고 이제 내일을 위해 숙면에 들어야 한다.


캠핑을 시작한 이후 숙박한 날짜를 헤아려보니 700일이 훌쩍 넘는다. 2년 가까운 시간을 바깥에서 잠을 잔 셈인데, 이처럼 숲과 모닥불, 음악이 완벽한 조화를 이룬 적은 손에 꼽을 정도다.


다음 날 아침, 화사한 햇살에 눈을 떴다. 텐트 바깥에는 메타세쿼이아 숲길 위로 해가 떠오르고 있다.


하얀 입김과 함께 코끝에 전해진 커피 향이 더없이 진하고 감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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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이섬 메타세콰이어숲의 아침 [사진/성연재 기자]

순간 메타세쿼이아 숲길 아래로 검은 물체가 스윽 지나간다. '뭐지?' 카메라를 챙겨 조심스레 다가갔더니 공작 무리가 먹이를 찾아 나섰다.


동물원에서나 만날 수 있었던 공작 떼들이 주위를 돌아다니다니…


카메라를 맨 중년들이 한둘 늘어나기 시작한다. 다시 한낮의 떠들썩함이 시작되고 있었다.


남이섬에서는 주말 백패킹 체험 상품을 판매한다. 백패킹 장비가 없는 사람들을 위해서는 블랙야크 텐트와 침낭 등 장비 일체도 빌려준다.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0년 12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춘천=연합뉴스) 성연재 기자 = ​polpor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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