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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래그십 전기차' 손색없다…기아 자신감 반영된 EV9

전비·동력·승차감·운전자 지원기능 등 전반적 탁월

전례 없는 '3열 대형 전기 SUV'…가격대가 최대 변수일 듯


"차가 이렇게 좋으면 곤란한데…하하."

지난 13일 기아 EV9 미디어 시승 행사에서 만난 모 매체 기자로부터 들은 말이다. 기아의 두 번째 전용 전기차 EV9은 전동화와 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SDV) 시대를 선도하겠다는 목표와 함께 기아가 최신 기술력을 총 집약해 내놓은 대형 스포츠유틸리티차(SUV)다.


19일 첫 고객 인도가 시작되기 약 일주일 전 EV9 실제 양산차를 미리 경험할 기회가 주어졌다. 경기도 하남에서 충남 아산을 거쳐 부여에 이르는 약 200㎞ 구간을 주행하며 기아가 중점적으로 홍보해 온 동력 성능, 운전자 보조 시스템(ADAS), 각종 편의 기능 등을 전반적으로 살펴봤다.


탑승한 모델은 어스 4WD 트림에 21인치 휠, 최대 토크를 높이는 부스트(boost), 빌트인 캠, 2열 스위블·릴렉션 시트 등이 적용된 풀옵션 차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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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 EV9 [기아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시동을 걸고 주차장을 빠져나와 본격적으로 시내 도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전기차 특유의 반응성과 정숙함 등은 웬만큼 익숙했던 터라 '안정적이구나'라는 것 외에는 특별한 느낌은 없었다. 고속도로에 진입한 이후부터 EV9의 진가가 본격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중부고속도로에 들어서자마자 스마트 크루즈 컨트롤(SCC) 기능을 작동했다. 운전대에서 완전히 손을 떼고도 시속 80㎞로 주행 가능한 조건부 레벨3 수준의 고속도로 부분 자율주행(HDP) 기능은 상위 트림인 GT-라인부터 적용돼 이날 경험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기본 적용된 고속도로 주행 보조2(HDA2)만으로도 기아의 운전자 보조 시스템 기술이 뚜렷이 진일보했음을 느끼기에는 충분했다. 운행 도중 정체가 발생해 앞차와 간격이 갑자기 줄어들 때 처음에는 행여 추돌사고를 내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있었지만, 생각보다 감속이 훨씬 여유롭고 부드러워 나중에는 마음이 편해졌다.


고속도로 진출입 등 곡선도로 환경에서도 반자율주행 기능은 우수한 편이었다. 내비게이션 기반 크루즈 컨트롤은 램프에 진입하기 전 시속 60㎞대까지 스스로 충분히 속도를 줄였고, 이어지는 급커브에서도 도로 가장자리로 차가 밀리는 현상 없이 안정적으로 움직임을 조절했다.


예전에 다른 차종을 몰면서 커브길 반자율주행 기능을 시험하다 차량이 길 가장자리로 쏠려 화들짝 놀란 일이 여러 번 있는 탓에 처음에는 정자세로 운전대에 손을 올려두기도 했다. 그러나 차로 중앙을 유지하느라 약간의 뒤뚱거림이 있었던 것 외에는 특별히 직접 조향에 개입할 일이 없었다.


HDA2에는 방향지시등 작동만으로 알아서 차로를 변경하는 기능도 포함돼 있다. 실제로 기능을 사용해 보니 매우 '교과서적'인 차로 변경을 수행했다.


방향지시등을 켜자마자 운전대를 꺾어 바로 다른 차로로 넘어가야 하는 성미 급한 운전자라면 다소 답답하게 느낄 수도 있겠다. 그러나 뒤차와 거리가 충분한 상태가 확보된 뒤에야 완만하게 가속하며 차로를 옮기는 것이 '모범운전자' 스타일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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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 EV9 [기아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부스트 옵션이 적용된 차량이기는 하나 동력 성능도 탁월했다. 가속 페달을 조금만 깊게 밟으면 공차 중량이 2.6t 가까운 큰 덩치가 아무렇지 않게 '휙휙' 움직이는 느낌이다. 차체와 휠 등에 공기 저항을 줄이는 기술을 대거 투입한 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전비 테스트를 위해 주행 모드를 주로 에코(Eco) 모드로 두고 운행했음에도 전방 차량 추월 등 가속 상황에서 전혀 힘이 달리지 않았다. 노멀(Normal), 스포츠(Sport)로 주행 모드를 바꾸면 배터리 소모량이 늘면서 가속과 제동 등의 반응성도 그에 맞춰 뚜렷이 향상된다.


최고급 세단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승차감 역시 꽤 준수한 수준이었다. 어느 정도 속도를 남겨둔 채 과속방지턱을 넘거나 도로 중간에 패인 부분을 일부러 밟고 지나가 보기도 했지만, 차체 움직임이 크게 거슬린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다. 플래그십임에도 가격 부담을 고려해 전자식 서스펜션은 적용하지 않았지만 전륜과 후륜에 차체 움직임을 제어하는 신기술을 탑재했다고 한다.


바람이 강하게 부는 날이어서인지 시승 당시에는 풍절음이 생각보다 크다고 생각했지만,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다른 내연기관 SUV를 이용하고서야 EV9이 얼마나 정숙했는지 새삼 느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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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 EV9 실내 [촬영 임기창]

시트에서도 운전자를 소소하게 배려한 여러 기능이 눈에 띄었다. 스포츠 모드로 설정하지 않아도 시속 130㎞가 넘으면 시트가 운전자 허리를 잡아 차량과 일체감을 높이면서 안정감을 제공했다. 앞서 제네시스 G70에 처음 적용된 기능이다.


운전 도중 일정 시간이 지나자 허리 지지대가 들어갔다 나오기를 반복해 '뭘 잘못 눌렀나' 싶어 당황하기도 했다. 알고 보니 에르고 모션 시트에 포함된 기능으로, 30분 또는 1시간 연속 주행하면 운전자 허리 보호를 위해 자동으로 작동한다고 한다.


1열 머리받이에 세계 최초로 적용했다는 메쉬 원단은 실제 머리를 대 보니 마치 냉감 셔츠를 입은 듯 시원하고 쾌적한 느낌이 들어 의외로 '깨알같이' 눈에 띄는 편의사양 중 하나였다.


출발지부터 중간 기착지인 아산까지 113.2㎞를 운행한 뒤 전비는 kWh당 5.2㎞, 이후 종착지인 부여까지 92㎞ 이동하고서는 5.1㎞의 전비가 나왔다. 해당 모델의 공인 복합연비(3.9㎞)보다 훨씬 나은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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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 EV9 [촬영 임기창]

EV9은 플래그십 전기차로서 손색없는 성능을 갖춘 것으로 평가되지만 문제는 가격이다. EV9은 긴 휠베이스(축간거리)를 기반으로 한 넓은 실내 공간, 3열 시트, 180도 회전 가능한 2열 스위블 시트 등 패밀리카 성격도 뚜렷하다.


그러나 동시에 긴 주행거리, 동력 성능, 승차감, 편의 기능 등 기술 측면 전반에 혁신적 변화를 주려다 보니 현대자동차그룹의 양산차 중에서는 상당히 높은 수준의 가격대가 매겨지게 됐다.


2WD와 4WD, GT-라인이 전기차 보조금을 절반가량 지원받을 수 있는 점을 감안해도 6인승 2열 스위블 시트(100만원), 릴렉션 시트(200만∼250만원), 부스트(100만원), GT-라인부터 선택 가능한 HDP(750만원) 등 이런저런 옵션을 선택하면 7천만원대에서 높게는 9천만원대 이상까지 가격이 올라간다.


기아는 주요 시장에서 호평받은 전작 EV6에 이어 EV9을 통해 전동화 브랜드로서 후광효과를 이어가야 하는 터라 EV9의 포지션을 단지 패밀리카로만 둘 수는 없는 입장이었다. 애초에 전기차 시장에서 3열 시트를 기본으로 갖춘 대형 전기 SUV 자체가 처음인지라 참고할 기준도 마땅치 않았다.


이 때문에 개발과 출시 과정에서 주요 고객층과 차량 정체성, 가격 등을 놓고 기아의 고민이 컸을 것으로 보인다. 본격 출시를 시작한 EV9이 향후 시장에서 '잘 만들었지만 좀 비싼 차'와 '좀 비싸지만 제값 하는 차' 중 어느 쪽에 무게가 실릴지에 벌써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임기창 기자 = ​puls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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