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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서부의 숨은 보물 브르타뉴

프랑스 서부 해안에서 몽생미셸까지

프랑스 서부 해안지역은 토착어인 브르타뉴어를 쓰는 사람들이 남아 있을 정도로 지역색이 짙은 고장이다. 해적의 도시 생말로와 천연 소금을 생산하는 게랑드 등 독특한 매력으로 유럽에서는 손꼽히는 여행지가 된 곳들이 많다. 해안 도시를 둘러본 뒤에는 주도 렌을 거쳐 몽생미셸에서 여행을 마치는 일정이 편리하다. 몽생미셸은 고전영화 라스트 콘서트의 배경이 된 곳이기도 하다. 다녀보면 이 지역이 왜 수많은 영화의 배경이 됐는지를 잘 알게 된다.

◇ 셀럽들의 휴양지 라 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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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볼 해변의 석양 [사진/성연재 기자]

브르타뉴의 해안 도시 라 볼은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다. 그러나 고전영화 셀라비의 배경이 된 곳이라면 누구나 무릎을 치게 된다. 라 볼은 떠들썩하지 않은 휴가를 보내려는 셀럽들이 많이 찾는 휴양지다. 쥘리에트 비노슈 등 유명 배우들도 심심찮게 평상복 차림으로 길거리를 활보한다.


그렇지만 좀처럼 달려들어 사진을 찍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이곳에 긴 초승달 모양의 해변 앞에는 남부 니스와 비슷하게 높은 빌딩들이 자리 잡고 있지만, 그 뒤쪽에는 고풍스러운 고급 주택들이 즐비하다. 때마침 황혼 녘이라 해변이 붉게 물들었다. 해변을 조깅하는 사람들도, 한적하게 거니는 사람들도 모두 평화롭게 보였다.


최근에는 팬데믹 영향으로 이곳을 찾는 내국인들이 급증해 물가도 많이 올랐다. 이곳을 안내해 준 가이드 잉그리드 페레 씨는 "부유층들이 티 내지 않고 찾는 고장으로 유명하다"면서 "특히 인근 게랑드 염전에서 만든 맛난 소금으로 조리한 음식은 무척이나 맛있다"고 말했다.

◇ 바람과 해가 만드는 천연 소금 게랑드 염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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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색상의 게랑드 염전 [사진/성연재 기자]

다음날은 오전 일찍 '염전 일꾼의 집'으로 향했다. 게랑드 소금을 만들어내는 염전 한가운데 있다. 이곳에서는 게랑드 소금의 역사와 가치, 소금 제조 방법 등을 설명해 준다. 바다와 햇볕, 바람이 만든 게랑드 소금(Sel de Guerande)은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소금 가운데 하나다. 염전의 일꾼들은 오랜 비법에 따라 손으로 직접 소금을 만든다. 하늘에 드론을 띄워보니 각기 다른 색깔의 염전이 즐비하다.


게랑드 소금의 역사는 오래전부터 시작됐다. 켈트족들이 국가를 세운 철기시대부터 게랑드 소금은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게랑드 반도는 바다에서 분리되면서 형성된 자연 호수인 석호가 됐고 소금 생산에 최적지로 자리매김했다. 게랑드 소금은 100% 수작업으로 만들어진다. 특히 '꽃소금'은 인기가 많아 꽤 비싸다. 프랑스어로 '플뢰르 드 셀'(fleur de sel)로 불리는 꽃소금은 유명 셰프들이 즐겨 사용하는 소금이다. 요리를 끝낸 뒤 서빙 직전에 뿌려 맛을 돋우는 목적으로 쓴다.


올해는 특히 기록적인 폭염 덕분에 게랑드 소금이 예년보다 3배나 많이 수확됐다. 비가 많이 오는 악천후에 대비해 이곳 게랑드 사람들은 무척이나 열심히 소금을 생산했다고 한다.

◇ 생말로, 해적 본거지가 관광도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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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벽으로 둘러싸인 도시 생말로 [사진/성연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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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말로는 거센 바닷가에 세워진 성곽 도시다. 이곳은 유럽에서 가장 거센 조류가 흐르는 곳 중 하나다. 만조와 간조 사이 해수면 높이 차이가 최대 13m까지 나기도 한다. 바람도 거세기 짝이 없고 일 년 내내 거센 파도도 함께 치는 곳이다. 이런 척박한 생말로가 최근 관광지로 크게 부각됐다. 이곳 역시 국내에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아름다운 성곽과 독특한 매력을 지닌 도시 모습으로 유럽에서는 매우 유명한 관광지다.


생말로를 찾은 날 또한 역시 거센 바람이 불고 있었다. 생말로 사람들은 특유의 자존심을 가진 것으로 유명하다. 이곳 사람들은 프랑스인이나 브르타뉴인으로 불리기보다 생말로인으로 불리길 원한다. 시내 곳곳에서는 프랑스 국기보다 높은 곳에 생말로 깃발이 휘날리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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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적깃발이 인상적인 생말로 [사진/성연재 기자]

생말로 깃발 이외에 자주 보이는 것이 검은색 해적 깃발이다. 생말로는 역사적으로 왕으로부터 외국 배들의 공격을 허락받은 프랑스 해적의 본거지였다. 영불 해협을 통과하는 영국과 미국 캐나다 선박들을 약탈해 많은 재산을 모았다.


둘레에는 외부 방어를 위해 세운 총 길이 1천754m나 되는 성벽이 자리 잡고 있다. 성벽 가운데 가장 오래된 부분인 프티 뮈르(Petit Murs)를 걸었다. 이곳에서는 저 멀리 요새로 쓰이던 크고 작은 섬이 보인다. 섬들은 물이 들어오면 섬으로 변하지만, 물이 빠지면 접근이 가능하다.


그중 가장 큰 섬은 그랑베섬으로, 생말로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긴 정치가이자 소설가 샤토브리앙의 묘지가 있다. 때마침 만조라 그랑베섬으로 가지는 못했지만, 그 풍경 또한 아름다웠다. 풍성한 해산물은 이곳의 자랑이다. 굴과 대구 등 싱싱한 해산물을 활용한 요리가 맛난 곳이기도 하다.

◇ 갈레트와 시드르의 조합은 찰떡궁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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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메밀전병과 비슷한 느낌의 갈레트 [사진/성연재 기자]

브르타뉴는 메밀을 소재로 한 갈레트로 유명하다. 원래 브르타뉴를 대표하는 먹거리로는 크레이프가 유명하지만, 갈레트는 이와 다르다. 크레이프는 밀가루, 우유, 달걀이 주재료이지만 갈레트는 물과 메밀가루로 만들어 우리나라의 메밀전병과 매우 흡사하다.


식사 대용으로도 먹을 수 있다. 메밀을 갈아 반죽으로 만든 뒤 동그란 불판에 올려 구운 뒤 여러 가지를 넣어 만드는 음식이다. 밀가루로 만드는 크레이프보다는 맛이 더 구수하다. 크레이프나 갈레트도 브르타뉴식 시드르(사과로 만든 술)와 함께 먹으면 잘 어울린다.


생말로에서는 갈레트의 진수를 보여주는 레스토랑을 만날 수 있다. 생말로 항구에 있는 '크레이프 아틀리에'(Atelier de la Crepe)는 브르타뉴의 음식 문화유산의 진수를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이다. 이곳에서는 오픈 부엌에서 일하는 요리사들의 모습을 직접 볼 수 있다. 특히 10여 명의 요리 교습생들이 숙련된 요리사의 명령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갈레트를 만드는 과정을 생생하게 지켜볼 수 있다. 달걀과 베이컨을 활용한 전통적인 갈레트 이외에도 연어 등 다양한 재료를 넣은 갈레트를 시드르와 함께 맛볼 수 있다.

◇ 목골 구조 가옥 즐비한 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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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울어진 렌의 목골 구조 가옥들 [사진/성연재 기자]

생말로 여행을 마쳤다면 브르타뉴의 주도 렌으로 향할 시간이다. 렌에는 고색창연한 목골 구조 가옥이 즐비하다. '매종 아 콜롱바주'(maison a colombages)라고 불리는 이 가옥들은 비스듬히 기운 채 오랜 세월을 견뎌왔다. 쓰러질 듯하지만 쓰러지지 않은 채 서 있는 모습이 브르타뉴의 기개를 보여주는 듯하다. 400∼600년 전 지어진 건물들이 대부분으로, 현재 렌에는 대략 850채에 달하는 목골 구조 가옥들이 남아 있다.


보통 목재를 사용해서 만든 가옥들은 목조주택이라고 부르지만. 이곳은 생선의 뼈대처럼 촘촘하게 버팀목들이 건물을 지탱하고 있다. 브르타뉴에서 목골 구조 가옥이 가장 많은 곳이 렌이다. 도심에 있는 브르타뉴 의회는 브르타뉴의 상징성을 띤 곳이다. 건물 내부에는 황금빛 목재 프레임과 회화 작품으로 완성된 프랑스식 천장이 의회의 위용을 보여준다.


그중에서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문양이 장식된 본회의장은 범접하기 힘든 아름다움을 지녔다. 프랑스에 합병된 후에도 브르타뉴 의회는 프랑스 중앙 정부가 내린 판결을 거부할 수 있는 권한이 있었다고 한다. 그만큼 브르타뉴 사람들은 독립적인 문화를 발전시켜왔다.

◇ 천공의 성 몽생미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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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내리는 몽생미셸 [사진/성연재 기자]

생말로 여행을 마쳤다면 이제 몽생미셸로 향할 시간이다. 해안가를 따라가는 도중 비를 만났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는 한국 속담이 딱 들어맞는 날이었다. 무척이나 기대했던 몽생미셸 투어였는데, 운이 나쁨을 한탄하며 취재에 임했다.


몽생미셸 아래에는 바다 농경 간척지가 있다. 몽생미셸과 인근 만(灣)의 모습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도 등재돼 있다. 가장 특징적인 공간은 수도원 아래쪽의 회랑이다. 서쪽 회랑으로 나 있는 커다란 세 개의 유리창을 통해 수도원 밖의 장엄한 풍경이 펼쳐진다. 마치 공중에 떠 있는 듯한 느낌을 선사한다.


몽생미셸은 특히 일출이나 일몰 시각에 방문하면, 영적인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장대한 바닷가 한가운데 천공의 섬처럼 떠 있는 수도원을 보는 것만으로도 큰 감동이 다가온다. 만조가 되면 몽생미셸은 주변이 바닷물로 가득 찬 섬이 되고 만다. 나오는 길에 못내 아쉬워 뒤를 돌아봤다. 마침 황혼 무렵이었지만, 몽생미셸은 내리는 비 때문에 흐릿하게 형체만 보였다. 그때 2명의 자전거를 탄 여행자가 다가왔고, 본능적으로 셔터를 눌렀다. 못내 아쉬웠던 몽생미셸 투어였지만 그나마 몽환적인 느낌의 사진을 찍을 수 있었던 것에 만족하기로 했다.


​(렌·라볼·몽생미셸·생말로=연합뉴스) 성연재 기자 = ​polpor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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