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을 부탁해·지리산아 부탁해 ①
백두대간 종착지 지리산과 화엄사
노고단과 화엄사 계곡 운무[사진/백승렬 기자] |
조선의 진정한 선비였던 남명 조식(南冥 曺植 1501∼1572년)은 지리산(일명 두류산)을 두고 하늘이 울어도 울지 않을 산이라고 했다. 퇴계 이황과 동시대를 살았던 조식은 학문과 덕망이 뛰어났으나 중앙 정계의 부패에 염증을 느껴 관직을 마다했다. 실천주의자였던 그는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약했던 곽재우, 정인홍, 김우옹, 정구 등 많은 인물을 제자로 길러냈다.
◇ 하늘이 울어도 울지 않을 지리산
남명은 명종이 벼슬을 내리자 조정의 무능을 질타하면서 명종을 철부지 고아, 수렴청정했던 문정왕후를 일개 과부로 비판하는 과감한 사직소를 올려 세상을 놀라게 했다. "자전께서 생각이 깊으시다고 해도 깊숙한 궁중의 한 과부일 뿐이고, 전하께서는 나이 어려서 선왕의 고아일 뿐입니다. 천 가지, 백 가지나 되는 천재(天災), 억만 갈래의 인심을 대체 무엇으로 감당하고 무엇으로 수습하시렵니까" 당시 사직소의 일부이다.
그는 지리산을 사랑했고 지리산은 그에게 사상적, 학문적 영감을 불어넣었다. 나이 환갑에 이르자 그는 지리산 최고봉인 천왕봉이 올려다보이는 산청 덕천강변에 산천재라는 집을 짓고 은둔했다. 그는 지리산 견문록인 '유두류록'에 지리산을 다섯 방향으로 열한 번 올랐다고 썼다. '쟁사두류산 천명유불명'(爭似頭流山 天鳴猶不鳴 어떻게 하면 두류산처럼 하늘이 울어도 울지 않을 수 있을까)이라고 한 남명의 시 '천석종(千石鐘)'에는 지리산의 담대함과 웅혼함을 닮고 싶다는 소망과 의지가 담겼다.
화엄사 사사자 석탑과 뒤로 보이는 노고단[사진/백승렬 기자] |
지리산은 높이가 1,915m로 남한 육지에서 가장 높고, 산역의 둘레가 800여 리에 이른다. 남한에서 면적이 가장 큰 산이다. 하늘이 울어도 울지 않는 담대함은 이 장중함에서 나올 것이다. 지리산은 백두산(2,744m)에서 시작하는, 한반도의 가장 크고 긴 산줄기이자 한국 땅의 근골을 이루는 백두대간의 끝 점이다. 지리산 명찰 화엄사에는 궁궐을 제외한 전각 중에서 가장 큰 목조건물인 각황전이 있다. 각황전 뒤 석축이 백두대간 종착지라는 시각이 있다.
남한의 양대 명산인 지리산과 설악산은 몇 가지 대비를 이룬다. 숱한 기암괴석이 자태를 뽐내는 설악이 화려하다면 지리산은 어머니 품처럼 넉넉하고 소박하다. 설악은 바위산(악산), 지리산은 흙산(육산)으로 일컬어진다. 한반도 산하가 가장 아름답게 물드는 단풍철이 곧 시작된다. 험한 산세가 절경을 연출하는 설악이 등산객의 눈을 즐겁게 한다면 걷기가 상대적으로 수월한 지리산은 산꾼의 몸을 기쁘게 한다.
지리산의 면모 중 으뜸은 산자락에 사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역사와 문화이다. 지리산은 전라 남·북도, 경상남도 등 3도에 걸쳐져 있다. 전북 남원시, 전남 구례군, 경남의 하동·산청·함양군 등 1개 시, 4개 군이 지리산 자락에 포진해 있다. 이들 시군은 예부터 '방귀깨나 뀌던', 행세하던 고을들이다.
물이 풍부하고 토질이 좋아 골짜기마다 마을이 발달한 지리산은 3도의 경계를 형성했으나 그 경계는 단절이 아니라 소통의 지점이었다. 지리산이 영호남의 지붕이라 불리는 이유이다. 주 능선 상에 있는 화개재, 장터목 등은 삼국시대부터 물물교환의 장이 섰던 곳이다. 골짜기마다 사람을 품어주고 임진왜란, 일제 강점기, 한국전쟁 때는 피난처를 제공했으며 동학혁명, 농민반란 때는 항쟁 거점이었던 지리산은 치열한 삶의 현장이었다.
반야봉 야생화[사진/백승렬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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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에는 해발 1,500m 이상의 봉우리가 20여 개에 이르며 피아골, 뱀사골, 대원사 계곡, 칠선 계곡, 한신 계곡, 화엄사 계곡 등 골짜기들은 매우 깊어서 그 길이가 10㎞를 넘는다. 지리산의 상징인 노고단의 '노고'(老姑)는 할머니를 뜻한다. 지리산이 어머니 산으로 불리는 이유 중 하나다. 노년기 지형의 고원 초지가 아름답게 펼쳐지는 노고단은 '구름 위 꽃밭'이라 할 정도로 봄부터 가을까지 야생화가 융단처럼 깔린다.
지리산 3대 봉우리는 노고단(1,507m), 반야봉(1,732m), 천왕봉(1,915m)이다. 지리산 제2봉인 중봉(1,874m) 등 더 높은 봉우리들을 제치고 반야봉이 3대 봉우리로 간주되는 것은 이 봉우리에서 노고단, 성삼재를 바라보는 전망이 시원스럽고 아름답기 때문이다.
남한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약수터인 임걸령(1,320m) 샘터에서 1.7㎞쯤 가면 노루목에 도달한다. 노루목 삼거리에서 가파른 오르막을 1㎞가량 올라가면 반야봉이다. 노루목에서 천왕봉 쪽 능선을 따라 20∼30분 더 가면 삼도봉이다. 전라남·북도, 경상남도 등 3도 땅이 만나는 곳이다. 이곳에는 삼각뿔 형태의 금속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삼각뿔을 중심에 두고 한 바퀴 돌면 축지법을 쓰지 않고도 3도 땅을 눈 깜짝할 사이에 밟게 된다.
◇ 화엄사의 보물들
부처의 가르침을 깨달으면 너와 내가 차별 없이 하나로 융화된다는 화엄사상은 모든 존재를 존중하고 긍정한다. 지리산의 기상이 노고단에서 흘러내려 모인 곳에 화엄사상 종찰인 화엄사가 자리 잡고 있다. 화엄사에 있는 문화재들은 특별하다. 국보와 보물이 많고 그 품격이 놀랍다.
각황전과 뒤쪽 석축[사진/백승렬 기자] |
국보는 각황전, 사사자 3층 석탑, 각황전 앞 석등, 영산회 괘불탱, 목조 비로자나삼불상 등 5건에 이른다. 보물은 대웅전, 석가여래삼불좌상 및 사보살입상, 대웅전삼신탱화, 서오층석탑 사리장엄구, 화엄석경, 원통전사자탑, 서오층석탑, 동오층석탑 등 8건이다. 구층암 들매, 지장암 올벚나무는 천연기념물이다.
국보나 천연기념물보다 더 사랑받는 문화재와 나무도 있다. 한국 특유의 건축 기법인 그랭이 공법으로 지어진 보제루이다. 법요식을 거행하거나 방문객이 쉴 수 있는 누각인 보제루는 기둥을 주춧돌에 박지 않고 그냥 얹어 놓은 구조이다.
기둥 밑면을 주춧돌의 울퉁불퉁한 표면 모양과 잘 맞도록 깎아 서로 꽉 맞물리도록 한 그랭이 기둥은 땅속 깊숙이 박은 기둥보다 지진에 잘 견딘다. 자연미를 극적으로 드러내는 그랭이 공법은 한국 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각황전 홍매화는 화엄사를 상징할 정도로 대중에 알려졌다. 이 붉은 매화는 역광을 받으면 검은빛을 띠기도 하는데 흑매화라는 별칭의 유래이다. 봄이면 사진작가들이 이 나무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전국에서 몰려든다.
화엄사 홍매화 사진 콘테스트[연합뉴스 자료사진] |
각황전은 고색창연한 멋과 웅장한 규모로 방문객을 압도한다. 원래 각황전 자리에는 높이 4.8m의 부처님 입상을 모셨던 장육전이 있었으나 임진왜란 때 왜군에 의해 불탔다. 각황전은 외관상 2층이나 내부는 1, 2층이 따로 없는 통층이어서 천정이 매우 높다.
화엄석경은 돌에 새긴 화엄경전이다. 돌에 새긴 화엄경전으로는 국내는 물론 세계에서도 유일하다. 가로 65㎝, 세로 52㎝ 크기의 석판들에 새긴 뒤 장육전 벽면을 장식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장육전이 불탈 때 산산조각 나 지금은 1만4천여 개의 작은 조각으로 남아 있다. 화엄사는 석경 연구를 위해 연구관을 별도로 건립했다.
사사자 3층 석탑은 석경과 더불어 화엄사의 유구한 역사를 대변하는 현전 최고(最古)의 시각 문화재이다. 7세기 혹은 8세기 중반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며 각황전 남서쪽 '효대'(孝臺)라고 불리는 고지대에 있다.
'석탑의 나라'라고 불리는 한국에 있는 대부분의 석탑과 비교하면 이 석탑은 모양이 특별하다. 불국사 다보탑과 함께 '이형 석탑'의 백미로 평가된다. 4마리의 사자가 탑신을 떠받치고, 탑 중심에는 인물상이 서 있다. 탑 앞쪽에 있는 석등 중앙에도 인물상이 있다. 두 인물상을 연기조사의 어머니와, 어머니를 향해 공경을 표하는 연기조사라고 보는 시각이 있다. 스승과 제자라는 설 등 다양한 해석이 흥미롭다.
이 석탑은 10년 가까운 보수 작업을 거쳐 얼마 전에 재개방됐다. 효대에 서면 지리산과 화엄사의 웅장한 풍광이 사방으로
각황전 내부[사진/백승렬 기자] |
각황전 앞 석등은 한국에서 가장 큰 석등으로 높이가 6.36m에 이른다. 신라 문무왕 17년(677) 의상 조사가 조성했다. 상층부는 보존 작업을 위해 다른 곳으로 옮겨져 있었다.
구례에서 방문객이 가장 많은 곳 1∼3위를 꼽자면 화엄사, 천은사, 사성암 순이다. 천은사와 사성암은 화엄사 소속 말사 혹은 암자이다. 화엄사, 하동 쌍계사와 함께 지리산 3대 사찰로 꼽히는 천은사는 지리산 입장료처럼 여겨지던 문화재 관람료를 선도적으로 없애 전국의 사찰 문화재 관람료 폐지 움직임에 불을 댕겼다.
사성암은 해발 531m인 오산의 정상부에 위치한 암자로, 백제 성왕 22년(544년) 연기조사가 창건했다. 섬진강을 사이에 두고 지리산을 마주 보는 사성암의 전각들은 깎아지른 절벽 위에 아슬아슬하게 서 있다. 사성암에 오르면 지리산 연봉과 섬진강, 구례 들판이 시원스럽게 펼쳐진다. 벼가 누렇게 익어가는 가을날 사성암에서 내려다보는 들녘의 황금빛은 한국의 가을을 대표하는 색이 아닐 수 없다. 사성암은 일찍부터 작은 금강산, 즉 소금강이라 불렸다. 의상, 원효, 도선, 진각 등 고승 4명이 이곳에서 수도한 데서 암자 이름이 유래한다.
사성암 전경[사진/백승렬 기자] |
야생차도 빼놓을 수 없는 보물이다. 화엄사의 야생 차나무는 주로 짙은 대나무 숲속 그늘진 곳에서 자라기 때문에 차 맛이 부드럽다. 특히 떫은맛이 거의 나지 않아 많이 마셔도 속이 거북하지 않은데 연중 찻잎을 따는 횟수가 몇 번 안 되기 때문이다. 찻잎을 자주 따면 차 나무가 스트레스를 받아 떫은맛을 내는 성분이 많이 만들어진다고 한다.
◇ 절간처럼 조용하다?…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화엄사를 방문하는 불자와 관광객은 연중 끊이지 않는다. 템플 스테이에 호기심을 갖고 찾아오는 내외국인도 적지 않다. 학자인 듯한 60대 서양인 노부부는 공양간에서 식사하면서 동행인들에게 한반도 정세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펼쳐 보였다. 30대 초반의 서구 여성은 함께 온 1인 가이드와 함께 전각을 돌아보면서 문화유산에 관한 설명을 열정적으로 경청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중생을 구제하는 대승불교의 대표 사상인 화엄종이 봄날 홍매화처럼 사랑받길 바라는 화엄사는 대중에게 가까이 다가가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홍매화 사진 콘테스트, 요가 대축제, 여름 모기장 음악회를 열고 매년 10월에는 화엄음악제를 개최한다. 지난 8월 1일부터는 야간에도 산문을 개방해 불자들이 경내의 거룩함을 밤에도 느껴볼 수 있게 했다.
보제루[사진/백승렬 기자] |
화엄사 공양간의 밥은 맛있기로 소문나 있다. 스님들이 이 밥맛을 잊지 못해 다른 절로 가지 못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다. 화엄사는 재료를 조화롭게 자비로운 마음으로 담아내는 요리 수행을 연중 2차례 강의한다.
화엄사는 번잡스럽지 않다. 그러나 '절간처럼 조용하다'는 말이 지금은 맞지 않는, 대중에게 친근한 사찰임이 분명하다.
현경숙 기자 ksh@yna.co.kr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3년 10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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