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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 볼 때, 좋은 위로

이기주의 「언어의 온도」

노비문장(노안 이후 비로소 보이는 문장)

 

위로의 표현은 잘 익은 언어를 적정한 온도로 전달할 때 효능을 발휘한다. 짧은 생각과 설익은 말로 건네는 위로는 필시 부작용을 낳는다.

 

“힘 좀 내”라는 말만 해도 그렇다. 이런 멘트에 기운을 얻는 이도 있을 테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힘낼 기력조차 없는 사람 입장에선 “ 기운 내” 라는 말처럼 공허한 것도 없다. 정말 힘든 사람에게 분발을 종용하는 건 위로일까, 아니면 강요일까.

 

『언어의 온도』, 이기주 지음, 69 쪽

위로 볼 때, 좋은 위로

[도서상세정보]

서점에서 펼쳐 든 『언어의 온도』는 선 채로 반을 읽고 산 채로 반을 읽은 책이다. 나머지 반의 궁금함만큼, 급하게 읽은 반이 아쉬워서 샀다.

 

300개가 넘는 에피소드는 짧았고 읽히는 속도는 빨랐으나, 아가의 겨드랑이에 넣었다가 빼낸 체온계처럼 문장은 따뜻했고 잔향은 짙었다. ‘감각적’이라는 수사를 이 책에 대입하는 것이 얼핏 부적절해 보이지만 나는 이 책의 온도와 정서와 분량과 속도가, 저마다의 결핍과 외로움과 정서적 결핍을 가진 대개의 독자들(나를 포함)에게 대단히 감각적인 책으로 다가오겠다고 생각했다. 자극적이지 않으면서도 감각적인 글을 쓴다는 것은 온전히 작가의 재능이다.

 

지하철과 버스와 거리에서 스쳐갔던 사람들의 혼잣말과 대화와 통화 내용을 작가는 글로 복기시키고 그것들의 온도를 독자에게 전달한다. 세상과 사람에 대한 관심이 남다르니 관찰도 세심하다. 말 한마디, 글 한 줄, 행동 하나가 사람에게 어떻게 상처를 주고 어떻게 구원을 주는지를 생활밀착형 에피소드를 통해 보여준다.

 

그 중에 나는 일본영화 <심야식당>의 마스터를 등장시킨 위로 관련 글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작가는 말한다. 영화 속 마스터처럼 깊은 상처가 있을 법한 사람들은 타인을 향해 섣부른 위로를 하지 않는 듯하다고. 그들을 위로를 정제하고, 위로의 말에서 불순물을 걸러 내는 듯하다고.

위로 볼 때, 좋은 위로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보다, 위로, 참 어려운 것이라는 움츠림이 먼저 들었다. 나에게 위로는 늘 힘든 것이었다. 사직서를 제출하며 우는 여직원 앞에서 나는 더 당황했고, 딸의 최근 고민을 들으며 어쩔 줄 몰라 했으며, 관계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후배를 향해 도대체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를 몰라 전전긍긍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언제나 나는 고민을 토로하는 사람에게 무언가를 해줘야 한다는 강박이 있는 것 같다. 단박에 그들의 눈물과 한숨을 멈추게 할 강력한 조언과 해결책을 주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한 것 같다. 물론 경험상 그러한 내 강박과 희망사항은 늘 묘한 찝찝함으로 마무리 되었다. 뭔가 많은 말을 한 것 같은데, 겉돌고 있었다는 느낌이 식은 차를 목에 넘길 때처럼 선명하게 뒤끝으로 남고는 했다.

 

그 어려운 위로를 생각하다, 그렇다면 내 인생 최고의 위로는 무엇이었을까를 떠올렸다. 최근에는 한 선배가 일이 잘 안 풀린다고 낙담하는 나에게 “내일 도대체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는 것이 인생이에요”라는 말을 해줬고, 신앙심 깊은 후배는 “내가 기도해줄게요”라고 했으며, 내 직원은 느닷없이 “뭔가 참 잘될 것 같아요. 요즘 기분이 아주 좋아요”라는 덕담 같은 말을 던졌다. 이 모든 것들이 모두 나에게 힘을 줬던 위로의 언어였던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내 인생 최고의 위로로 생각해 낸 두 가지는 모두 오래 전 어머니에게 받은 것이었다.

위로 볼 때, 좋은 위로

뭉크, 「위로」

군대를 제대하고 복학한 대학시절, 집안 형편이 어려워 나는 학교의 교수실에서 도둑잠을 자며 생활했는데, 공장을 다니셨던 어머니께서 어느 일요일 누이 집으로 보신용 고기를 잡아 오셨다. 어머니는 국을 끓이고 상을 차리셨는데 어머니와 누이를 오랜 만에 봐서인지, 공부는 잘 되냐는 누이의 말에 그만 울음이 터져버렸다. 아이처럼 소리 내서 엉엉 울었고 눈물은 폭포처럼 쏟아지는데 노구의 어머니는 그저 아무 말씀 없이 그 울음을 다 받아내고, 늦둥이 막내 아들 밥 위에 고기 한 점을 얹어주셨다. 설움과 불안과 고단함의 모든 눈물을 다 쏟아내서였던가, 나는 여전히 훌쩍이면서도 너무나 개운하게 어머니의 고기를 다 받아 먹었던 것 같다. 대학을 졸업하고 비슷한 일이 한 번 더 있었는데, 정말로 간절히 원했던 시험에 떨어지고 나서 세상의 모든 것을 내려놓은 듯 낙담했던 나에게 어머니는 소주 두 병을 사가지고 오셔서 아무 말씀 없이 소박한 술 상을 봐주셨다. 그때도 나는 대성통곡을 하며 소주를 마셨던 것 같은데, 술에 취해 쓰러져 잠이 들었고 잠에서 깨어난 아침에 나는 거짓말처럼 시험에 대한 모든 미련을 다 털어낼 수 있었다.

 

말 한마디 없는 위로, 언어가 없으니 정제할 것도 분쇄할 것도 없었던 어머니의 무언(無言), 그럼에도 용광로처럼 뜨거운 온도로 사람을 살려냈던 어머니의 위로가 내 인생 최고의 위로였다.

위로 볼 때, 좋은 위로

'식객'10화- 고구마

공교롭게도 위로를 많이 생각해냈던 그날 밤, 초등학교 동창에게 카톡이 왔다. 카톡을 할 시간이 되는지, 상담을 좀 해줄 수 있는 여유가 있는지를 조심스럽게 물어왔고 나는 편안하게 말을 하라고 했다. 유학을 보내 놓은 딸이 갑자기 중간에 귀국해서 집안에 틀어박혀있다고 한숨을 쉬었다. 적성에 맞지 않는다고 다니던 학교를 그만 둔 딸은 자신이 도대체 뭘 하고 싶은지 모르겠다고 자책을 하며 몇 달을 아무것도 안 한 채 자고 먹고만 한다는 것이다. 서른이 내일 모래인 딸을 바라보고 있으면, 안스러움과 불안감과 짜증이 뒤 섞여서 올라오니 이를 어쩌면 좋겠는지를 친구는 물었다. 은둔형 아들과 관련된 책까지 썼으니, 친구는 자신의 상담자로 자연스럽게 나를 떠올린 것 같았다.

 

나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냥 더 시간을 두고 무관심한 듯 지켜봐 주는 것이 어떨까?“

 

친구가 답했다.

 

“일단 스스로 나올 때까지 그냥 기다리는 게 상책이겠지?”

 

그런데, 하고 친구가 말을 덧붙였다.

 

“혹시 극단적인 선택이라도 하면 어떨까 싶어서 ‘괜찮아’, ‘용기 내’라는 위로를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

 

나는 이기주의 『언어의 온도』와 내 어머니가 내게 해 준 최고의 위로를 떠올리며 친구에게 살금살금 말했다.

 

“내가 오늘 든 생각인데, 위로라는 건, 사람을 위로 보는 마음일 때 좋은 위로가 나오는 것 같아. 이 사람이 나보다 더 많은 삶의 지혜를 가진 내 윗사람이다라고 생각하면, 아무래도 말을 아끼게 되는데, 그 아낌이 오히려 더 진짜 위로가 되겠다고 생각했어.”

 

글 | 윤용인(<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저자, 노매드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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