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을 의지의 문제로 봐서는 안되는 이유
『우울할 땐 뇌과학』
정신질환으로 우울증은 뇌의 시스템적 기능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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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한 우울증상으로 진료실을 찾은 환자를 치료를 시작하고 몇 주가 지나면 한 번은 마주치게 되는 일이 있다. 바로 친구나 보호자의 염려를 환자가 전하는 것이다.
“선생님, 우울증은 마음의 병이 맞죠?”
“네”
“집에서 내가 병원다닌다고 했더니 이건 마음의 병이고, 의지가 약해서 그런 것이니 마음만 굳세게 먹으면 되는데 왜 다니냐고 해요. 친구들도 그러고요.”
“수민 씨가 지금 얼마나 힘들게 사는지 잘 몰라서 그렇죠.”
“자기들도 다 우울해봐서 안다고 해요. 약을 먹기 시작하면 평생 먹는다고. 진짜 그런가요?”
우울증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이 병원을 찾는 것은 그만큼 진짜 힘들고 어렵기 때문이다. 얼마나 망설이다가 오게 된 것인지, 정신과의사인 나는 잘 안다. 특이한 이름이라 초진 예약자 명단에서 눈에 띄던 환자 한 명이 기억난다. 몇 번이나 명단에 있다가 당일에 없어지는 걸 반복하다 방문을 했다. 망설이고 망설이다가 병원에 왔다는 뜻이다. 남들의 시선이나 편견도 고민이 되었지만 너무 힘들고 정상적 생활이 어려워서 올 수 밖에 없었다.
이건 경우는 ‘우울한 느낌’과 정신질환으로 ‘우울증’을 혼동하고, 또 충분히 치료 가능한 우울증과 난치성 정신질환인 ‘정신증’을 ‘정신병’ 전체로 오인해서 벌어진 일이다. 우울한 기분은 정상심리의 하나다. 누구나 살짝 우울해질 수 있다. 꽃가루가 날리면 이물질이 몸에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재채기를 하고, 콧물이 나오듯이 힘든 상황이나 마음이 지쳤을 때 에너지를 보존하기 위해 우울한 기분을 갖는 것은 나를 보호하기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다.
그렇지만 집중력 저하, 우울한 사고방식에 갇히는 것, 불면과 식욕저하, 몸과 마음이 내 의지대로 따라와주지 않는 정신운동 지체가 생활을 현저하게 방해할 정도로 2주 이상 지속되는 상태라면 그때는 단순한 ‘우울한 기분’이 아니라 ‘우울증’에 걸렸다고 봐야한다. 이를 의지박약의 문제로만 평가하고 ‘나도 우울해봐서 아는데”라는 식으로 보려는 것은 무책임할 뿐 아니라 위험한 일이다. 왜냐하면 정신질환으로 우울증은 뇌의 시스템적 기능 이상이 온 것으로 봐야하고, 원인과 증상 평가, 치료적 접근도 이런 측면에서 해야만 가능한 수준의 우울증 환자가 매우 많기 때문이다.
뇌과학을 최대한 이해하기 쉽게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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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을 다룬 책은 참 많다. 소설가 윌리엄 스타이런이 자신의 우울증 경험을 회고담으로 쓴 『보이는 어둠』 이 유명하고, 최근에는 일본 만화가 타나케 케이이치가 역시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우울증에 대한 내용을 만화로 그린 『우울증 탈출』 이 출간되었다. 정신과 의사나 심리학자도 우울증이나 우울함을 이해하고 치료에 도움이 되는 내용을 담은 책을 많이 썼다. 물론 이런 책에서도 생물학적 기전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하지만, 항상 읽다보면 조금 아쉬운 면이 없지 않다. 프로이트가 우울증을 정신분석적 관점에서, 아론 벡이 인지왜곡의 관점에서 파고들었듯이 깊게 한 번 들어가는 공부를 하고 싶은 마음도 있으니 말이다. 최근 이런 요구에 딱 들어맞는 책이 발간되었다. 우울증을 연구하는 신경과학자로 UCLA 정신과에서 연구를 하는 앨릭스 코브 박사의 『우울할 땐 뇌과학』 이다.
이 책의 원제목이 ‘상승나선’인 이유는 우울증이 뇌와 마음이 합작해서 나를 바닥으로 떨어뜨리는 ‘하강나선(downward spiral)’이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우울증에는 세로토닌, 노르에피네프린, 도파민, 옥시토신 등 신경전달물질, 전전두엽, 섬엽, 편도체, 해마, 시상하부, 전방대상피질등 뇌의 각 부위의 기능의 이상에 의해 발생한다. 그렇다고 뇌종양이 발생한 것 같이 하드웨어적인 이상이 생긴 것은 아니다. 단순히 특정 신경회로들이 우울증 패턴으로 맞춰져서, 그 때문에 스트레스에 대한 대처, 계획 세우기, 나쁜 습관 빠지기, 의사결정과 같은 일에 총체적 어려움이 생긴다. 이 일들을 담당하는 회로 사이의 역동적 상호작용에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다. 단순히 ‘세로토닌이 부족해서 생긴 것’ 정도로 보던 단가아민이론으로는 우울증을 설명할 수 없는 훨씬 복잡한 문제라는 것을 20년의 뇌과학 발달은 밝히고 있다. 굉장히 복잡할 수 있는 뇌과학이라 벌써 머리가 지끈 해지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내가 보기에 이를 최대한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는 것이 이 책의 큰 장점이다.
일명 ‘생각하는 뇌’로 뇌 앞부분의 1/3을 차지하는 전전두피질은 의사결정, 충동 억제, 계획을 세우는 일을 한다. 여기에 대척점에 있는 곳이 변연계로 흥분, 불안, 욕망, 기억을 관장하고 여기에 시상하부, 편도체, 해마, 대상피질이 포함된다. 시상하부는 스트레스를 통제하고, 편도체는 위험을 감지하고, 해마는 기억을, 대상피질은 집중과 주의통제를 담당한다. 우울증은 단순하게 보면 전전두엽이 제 기능을 못해 변연계를 적절히 통제를 하지 못하고, 변연계도 기능이 떨어져서 일상활동에 제 기능을 하지 못할 정도로 에너지와 주의집중 능력이 저하되면서 생기는 문제다. 우울증에 빠지면 스트레스에 대한 대처를 하는 시상하부가 비상경계모드로 돌입해 버리는데, 전전두엽이 이를 통제하지 못하니 상황이 진짜 위험하지 않다는 것이 분명해도 긴장을 풀지 못하고, 에너지만 소모되어 지쳐버린다. 한편 우울증에 걸리면 섬엽의 활동이 과하게 증가해서 우리 몸 안의 여러 신호에 민감해진다. 일상적 통증, 신체신호등에 극도로 민감해지는 일이 벌어지고 이를 과도하게 위험하게 해석하는 일이 발생한다. 그래서 우울증 환자는 두통, 복통, 생리통과 같은 신체증상에 매우 민감해진다.
저자는 뇌가 이런 비정상적 세팅으로 변경되는 원인으로 다섯 가지를 지목한다. 타고난 유전자로 세로토닌의 특정 변이는 우울증의 위험도를 높여서 우울증에 걸리기 쉽게 만든다. 두 번째는 생애 초기의 경험으로 뇌의 발달과정인 유아기나 청소년기의 심한 스트레스가 신경회로 발달에 영향을 준다. 세 번째는 현재 삶에서 느끼는 스트레스 수준의 뇌의 스트레스 회로를 발동시키셔 하강회로로 이끈다. 네 번째는 사회적 지원의 양으로 주변의 도움을 주고받을 관계망이 부족하면 위험하다. 다섯 번째는 의외로 ‘운’이다. 뇌는 매우 복잡한 시스템이라 아주 작은 변동에도 큰 영향을 받을 수 있는데 의외의 것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아 우울증 하강나선을 작동시킬 수 있다.
이와 같이 저자는 지금까지 밝혀진 최신 뇌과학의 결과물을 바탕으로 우울증 하나만 통합적으로 설명했다. 그리고 난 다음 지금까지 효과가 입증된 다양한 치료법도 그 근거를 뇌과학 기반으로 설명한다. 스트레스 대처법, 운동, 수면, 습관바꾸기, 바이오피드백, 관계를 유지해야할 이유, 심리치료와 항우울제의 치료효과 근거, 비약물적 생물학적 치료인 광치료/뇌자극기술의 근거를 중반이후 차근차근 소개하고 있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좋은 마음 갖고 감사한 태도로 살면 우울증이 좋아질 거야”라는 말이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는 걸 알게 된다. 틀린 반은 그저 심리적 문제, 의지의 문제로만 보면 안되기 때문이고, 맞는 반은 충분한 생물학적 치료들이 전제가 될 때에는 이런 삶의 태도를 갖는 것은 분명 도움이 되고, 재발을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는 뇌과학의 증거들이 있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많이 우울할 때는 책도 눈에 들어오지 않기 마련이다. 그러니, 이런 책은 심하게 우울해지기 전에 미리미리 봐둬야 할 것 같다. 그래야, 내가 행여 많이 우울해지거나 내 주변 사람이 힘든 상황이 왔을 때 적절하고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본인이 평소 이성적이고 근거에 입각한 합리적 결정을 내리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왔다면 더욱 더.
글 | 하지현(정신과 전문의)
앨릭스 코브 저/정지인 역 | 심심
뇌 과학이라는 최첨단 과학을 활용해 우울증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시작되는지, 결국은 우울증으로 치닫는 뇌 회로를 다시 돌려세울 방법이 무엇인지 등을 세심하면서도 낱낱이 살펴본다. [도서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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