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 가면 좀 다르지 않을까요?
『시골은 좀 다를 것 같죠』 기낙경 저자
우리는 한 번쯤 시골에서 사는 삶을 꿈꾼다. 시골에 가면 좀 다르지 않을까? 답 안 나오는 도시생활에 지쳐 한숨짓다 보면 그런 생각이 들지 않는 게 이상한 일일지도 모른다. 『시골은 좀 다를 것 같죠』는 도시에서 패션지 기자로 살던 기낙경 작가가 브로콜리 농부와 결혼해 충주 공이리에서 보낸 3년의 시간을 기록한 에세이다. 그리고 이 에세이에는 작가가 경험한 시골생활의 민낯이 가감 없이 담겨 있다. 도시의 삶에 지쳐 시골은 좀 다를 것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기낙경 작가의 이야기를 통해 산과 나무가 드리우는 그늘의 자리까지 더듬어보는 건 어떨까.
실제 경험한 시골생활에 대해 듣기 좋은 얘기만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 책을 내는 데는 용기가 필요했을 것 같습니다. 『시골은 좀 다를 것 같죠』를 책으로 내야겠다고 결심한 이유가 있을까요?
듣기 좋은 이야기는 어떤 목적을 갖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일 거예요. 진실을 담보하지도 않고요. 그렇다고 제 이야기가 시골의 진실을 담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다만 나름의 지향을 갖고 시골에 들어간 누군가의 구체적인 생활이죠. 그 생활의 이면이 자연스레 다양한 생각과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고요. 물론 저의 시골생활기는 엄연히 아픈 부분이 있고, 가난한 흔적이, 실패의 여운이 있습니다. 이 이야기가 ‘시골’에 대한 자신만의 이야기를 상상하는 이들에게 닿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도시에서 패션지 기자로 생활하면서 농부와 연애하다니, 작가님 이야기처럼 정말 ‘작전’이 아니고서야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 같아요. 시골에 살고 싶었던 건 오랜 시간 품어온 열망이라고도 하셨는데, 그 열망은 어디서 비롯된 거라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77년생, 대학에 들어가선 학생운동사의 막바지를 지켜봤고 닥쳐온 자본주의의 한가운데를 지나왔습니다. 취향의 시대, 각종 라이프스타일들의 전성시대를 지켜보고 있고요. 시대의 세례를 비켜났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주변인의 기질이 강해서인지 나름 붙잡고 버텨낸 것들이 있습니다. 요즘 말로 ‘1987 시대’의 꼬리를 부여잡으면서는 나만의 정의를, 자본주의의 흐름 속에선 일말의 단순함, 노동, 자연 같은 말들을 거둬들였지요. 그걸 뿌리로 ‘농촌 속으로’, ‘전원 속으로’를 외친 저만의 취향과 라이프스타일을 꿈꿨던 것 같습니다. 살면서 주머니에 넣어둔 소소한 원칙이나 즐거움의 풍경들이 시골에서라면 실현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 그런 그림을 그렸던 것 같아요.
도시로 돌아와 다시 '빡세게' 적응 중이라고 들었어요. 원래 하던 도시생활이긴 하지만, 그래도 시골생활을 하다 돌아오면 이전과는 다르게 보이는 것들이 있을 것 같아요. 달라진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임신을 하고서 농촌의 여름을 날 때였어요. 어느 날 밤 하루 종일 제가 마주친 사람들을 세어봤더니 10명이 채 안 되더군요. 산책 삼아 언덕도 오르고 이 밭 저 밭 밭마실을 다녀왔는데도 그렇더라고요. 그냥 스쳐 지나간 사람들도 포함한 숫자예요. 다시 서울로 왔을 때, 이른 아침 부산하게 지하철 계단을 내려가는데 문득 그날의 셈이 떠오르더라고요. 얼핏 지금 눈앞을 둘러싸고 있는 사람만 해도 50명은 넘는 것 같고, 집 앞을 나선 순간부터 세보자면 100명도 넘겠더군요. 사람에 둘러싸여 있다는 것, 달라진 점이라기 보단 알아채고 나니 새삼스러웠어요. 스치고 부딪히는 에너지들, 가까이 있지만 생전 처음 보는 타인들 틈에 위치만 바꿔가며 끼여 있다는 무존재감, 그런 것들이 하루의 끝에서 저를 피곤하게 만드는 요소가 아닌가 싶었어요. 깊은 잠을 못 자고 뭐 그런 것들요. 또 분명히 달라진 게 있다면 아파트나 오피스텔 등 굉장히 많은 고층 건물이 들어섰다는 거예요. 거리 풍경이 확실히 수직적이고 대형화된 건 맞는 것 같아요.
글 속에 시나 소설 작품에 대한 이야기가 꽤 많이 담겨 있어요. 특히 시골에서 지었던 첫 집이 불에 탔기 때문인지 『금각사』에 대한 이야기가 인상적인데요. 혹시 지금의 작가님에게 금각이 있다면 어디인가요?
결혼 전 시골을 드나들 때가 김영하 작가님의 팟캐스트를 한창 들을 때라 『금각사』를 사다 놓았었어요. 김어준의 『닥치고 정치』, 토드 셀비의 『우리 집, 구경할래?』와 함께 딱 세 권이 제가 가져간 책이었고 불과 함께 모두 재가 되었죠. 제대로 읽지도 못한 책들이었고 『금각사』는 나중에야 다시 읽었어요. 읽다 보니 책 속의 ‘금각’이 ‘가장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 아름답게 물들인 채 마음에 담아둔 무엇’으로 여겨지더군요. 어렴풋이 그 염원의 비극적 운명이 ‘불탄 금각’ 같다고 느꼈어요. 사실 지금의 저는 무엇을 크게 바라거나, 이상으로 다듬고 품는 무엇이 없어요. 모든 게 다만 그렇게 되어가는 것들로 여겨지거든요. 절실한 걸 따로 만들어두기보다 과정에서 열심히 하면 그뿐이 아닌가 생각해요.
진실에서 먼 소문과 그로 인해 불거진 지인과의 갈등이 작가님께 많은 상처가 되었을 거라고 느껴집니다. 책을 통해 그 상처를 꽤 많이 드러내신 것 같아요. 주저되는 부분도 있었을 것 같은데, 그런 상처를 드러낸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사실 대놓고 드러내지는 못했는데. (웃음) 관계에서 받은 상처라는 게 이쪽 저쪽의 입장이 있고 각자의 진실이 있잖아요. 다만 글에서는 제가 지닌 원칙에서 벗어난 행동, 옳지 않다고 느껴지는 분명한 것들만 조금 건드린 것 같아요. 그런 이야기를 한 건 저의 경험이 시골로 이주한 누구한테나 닥칠 수 있는 것들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에요. 이방인의 입장에서 가치가 무너지고, 혹은 무뎌지고, 발 디딘 공간의 습성에 물들고, 그러다 미끄러지고 상처입고 하는 지점들은 어디에나 있기 마련 아닐까요? 누구나 그런 상황에 처할 수 있다는 걸 알려주고는 싶었어요.
시골로 이주한 도시인의 경우 '이방인'으로서의 경험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3부에서 다양한 경험을 얘기하셨지만, 가장 힘든 건 무엇이었나요?
세대의 차이, 가치의 차이, 취향의 차이… 정말 다양한 차이 속에 몸을 던져야 한다는 지점이요. 책에도 언급했지만 시골에서는 완벽한 타인으로 있기가 힘들거든요. 오다가다 인사하고 같이 일하고 밥상머리에 둘러앉는 일도 허다해서 그야말로 차이 속에서의 24시간이죠. 처음엔 ‘차이’도 배울 지점으로 여겼었죠. 농사일에도 살림에도 ‘안사람의 역할’이라는 것에도, 잘되진 않았지만 어쩌면 을의 입장에서 고개를 숙이고 귀를 열었던 것 같아요. 한데 시간이 지나고 일의 앞뒤를 알게 되니까 아닌 건 아니더라고요. 땀 흘리는 노동에도 돈과 권력이 숨 쉬고 있고, 친절과 호의에도 암묵적인 대가가 끼어 있고요. 결국 관계 속에서 드러내고 감추는 것을 적절히 조율해야 했고 생활에도 어울림과 고독을 적절히 배치하는 기술이 필요했어요. 그 기술을 익히는 게 힘들긴 했어요.
시골생활의 본질은 관계가 아닌 '자기 충일감'에서 발견해야 한다는 것이 작가님께서 당도한 믿음이라고 하셨어요. '자기 충일감'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요?
스스로 세운 원칙을 흔들림 없이 지켜나가는 힘이 아닐까 싶어요. 손해를 봐도, 비난받아도, 불편해도 지킬 건 지키는 거죠. 그러기 위해선 먼저 자기의 원칙이 분명히 있어야 해요. 불편한 것들이 쌓이면 언젠가 문제가 터지고, 뭔가를 억지로 하게 되면 탈이 나잖아요? 자기 충일감은 결국 내가 뭘 해야 행복한가를 아는 거죠.
글ㆍ사진 | 출판사 제공
기낙경 저 | 아토포스
도시의 삶에 지쳐 시골은 좀 다를 것 같다고 생각하는 당신이라면 부디 이 이야기를 통해 산과 나무가 드리우는 그늘의 자리까지 더듬어볼 수 있기를. [도서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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