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역거부와 평화운동을 둘러싼 생생한 경험담
『병역거부의 질문들』 이용석 저자 인터뷰
이용석 저자 |
군대도, 전쟁도 당연하지 않다고 말하는 책, 『병역거부의 질문들』이 출간됐다. 1939년부터 현재까지, 군대 아니면 감옥이라는 선택지 앞에서 수많은 병역거부자가 옥살이도 감수하며 한국 사회에 던지고자 했던 질문들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2020년 대체복무제 시행을 이끌어낸 평화운동단체 전쟁없는세상에서 19년째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저자 이용석이 병역거부와 평화운동을 둘러싼 이야기를 생생한 경험담으로 전한다.
어떤 계기로 『병역거부의 질문들』을 쓰게 되었나요?
동료 활동가들에게 경험과 생각을 꼭 글로 쓰라고 말합니다. 두 가지 이유 때문인데요. 하나는 사회 변화와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사회운동의 속성상 활동가의 경험은 개인의 고유한 경험인 동시에 사회의 공공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글을 쓰면서 생각과 논리를 발전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 또한 이 두 가지 이유로 병역거부운동에 대한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고맙게도 오월의봄 출판사에서 먼저 책을 내자고 제안해주어서 쓰게 되었습니다.
‘양심적 병역거부’라는 말이 널리 쓰이고 있지만, 정확히 ‘양심’이 무엇인지는 어렵게 느껴지는 듯해요. 도대체 양심이 무엇인가요?
어렵게 느껴지는 게 당연합니다. 양심은 눈에 보이지 않고, 평소에는 양심이 있다는 걸 깨닫지 못하니까요. 양심은 침해당할 때에야 그 존재를 알아차리게 됩니다. 양심의 자유는 헌법상의 권리이지만 한국 사회에서 제대로 가르치거나 공론장에서 논의되지 않아요. 그러다 보니 단어는 익숙한데 개념은 어렵고 생소한 것이 되어버린 것 같아요. 스스로 판단하기에 납득할 수 없는 일을 강요받을 때의 불편한 마음, 그 마음이 바로 양심입니다. 병역거부자나 비전향장기수처럼 감옥을 감수하는 마음만이 양심이 아니라, 직장에서 상사의 부당한 업무 지시를 이행할 때 느끼는 불편한 마음, 학교에서 잘못한 일이 없는데도 반성문 쓰기를 강요받을 때 “잘못했습니다" 한마디만 쓰면 귀찮은 일 없는데도 도저히 쓸 수 없는 그 마음처럼 누구에게나 존재하는 것이 양심입니다.
2006년 직접 병역거부를 하기도 하셨죠. 책에서는 “평화주의자여서 병역거부를 했다기보다는, 병역거부운동을 하다 보니 자연스레 평화에 대해 생각하고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는 게 사실에 가깝다”고 하셨는데요. 병역거부를 결심했던 배경에 대해 좀 더 자세한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저 또한 대한민국의 무수한 남자들처럼 군대 가기 싫어하는 대학생이었어요. 친구들과 떨어지는 게 싫었고 군대의 폭력적인 상명하복 문화 같은 것도 싫었고요. 대학생 때 학생운동을 열심히 했는데 제가 속한 학생운동 단체가 병역거부운동을 하게 되었어요. 그러면서 병역거부자를 만나고 평화활동가들을 만나 같이 병역거부운동을 하면서 아주 자연스럽게 병역거부를 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됐어요. 그때만 해도 뭐 아주 깊고 큰 고민이었다기보다는, 어쨌든 군대 문제는 해결해야 하는데 언제까지 미룰 수 있는 것도 아니니, 병역거부자들의 주장에도 공감이 가고 군대 가긴 싫으니까 일단 병역거부를 하자고 생각한 거예요. 학생운동 선배 나동혁이 병역거부선언을 할 때 저도 다른 동료들과 함께 예비병역거부선언을 했어요. 그러고 나니 병역거부자로서 부끄러운 말과 행동을 하면 안 되겠다 싶어서 평화에 대해 고민하고 생각하고 공부를 하게 되었죠.
전쟁 없는 세상은 병역거부운동 외에도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들을 펼치고 있나요?
무기거래 감시 캠페인을 하고 있어요. 병역거부는 개인의 양심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전쟁없는세상이 생각하기에 병역거부는 전쟁을 막기 위해 개인이 할 수 있는 직접행동이고 시민불복종이에요. 전쟁을 가능하게 하는 여러 구조 가운데 징병제에 대한 저항이죠. 무기거래 감시 캠페인은 특히 현대의 전쟁을 떠받드는 군수산업체를 타깃으로 하는 캠페인이에요. 전쟁으로 돈을 버는 이들은 돈벌이를 위해 전쟁이나 군사분쟁을 부추기기도 합니다. 그래야 무기를 많이 팔 수 있으니까요. 군수산업은 특히 한국에서 첨단과학 혹은 외화벌이로 포장되고 있지만 그 실상은 전쟁산업이자 살인으로 돈을 버는 일이라는 사실을 사회에 알리고, 군수산업체들의 무기 생산과 판매가 쉽게 이뤄지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캠페인이에요. 실제로 바레인에서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시민 수십 명을 죽게 한 한국산 최루탄 수출을 막아낸 성과도 거뒀어요. 요즘은 한국 정부가 지원하는 동북아 최대 규모의 무기박람회 ‘서울아덱스’에 저항하는 활동과 한국이 수출한 무기가 그 지역에서 무엇을 파괴하는지를 파악하는 일을 하고 있어요.
19년 동안 평화운동을 하다 보면 번아웃이 오기도 했을 것 같아요.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언제이고, 어떻게 지나올 수 있었나요?
원래 스트레스를 잘 안 받는 편이에요. 무리해서 일하지 않는 성격이기도 해요. 그러다 보니 번아웃까지 잘 안 가게 되는 거 같아요. 운도 좋았다고 생각하고요. 한참 열심히 활동하다가 병역거부로 감옥에 가서 쉬기도 했고, 중간에 5년 정도 상근활동가를 그만두고 출판사에 다닌 적이 있는데 의도했던 건 아니지만 그 시간이 저에게는 어느 정도 활동의 휴식기가 됐어요. 물론 출판사 다니는 동안에도 전쟁없는세상 운영위원을 했지만, 아무래도 한 발짝 떨어져서 다른 세계에 몸담고 있다 보니 내가 머문 곳을 객관화해서 바라볼 수 있었죠. 우리(전쟁없는세상과 평화운동)가 부족한 점이 무엇인지, 그걸 채우려면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하고 나는 어떤 것을 할 수 있을지를 많이 생각했어요. 저는 좀 더 대중적인 언어로 평화운동의 주장을 재밌고 쉽게 전하는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책도 쓰게 됐고요. 해야 할 일, 하고 싶은 일이 명확하니 컨디션 조절만 잘하면 번아웃에 쉽게 빠질 것 같진 않아요.
『병역거부의 질문들』을 어떤 사람들이 읽으면 좋을까요?
우선은 입대를 앞두고 있는 분들이 읽으면 좋겠어요. 출판계에서는 20대 남성들이 책을 안 읽는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어쩌면 읽을 만한 책이 없어서 그럴지도 몰라요. 저는 이 책이 입대를 앞두고 고민이 많은 20대 남성 청년들에게 쓸모 있는 책이길 바랍니다. 꼭 병역거부를 고민하지 않더라도, 군생활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는 사람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입대를 하든 병역거부를 하든 그런 걸 떠나서 스스로의 삶과 세상에 대해 질문하는 사람들은 어디에서도 자기 삶을 살잖아요. 그런 면에서 보자면 스스로에게 혹은 이 세상에 질문을 던지는 모두가 이 책을 읽으면 좋겠다고도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자유롭게 해주세요.
김초엽 작가님과 홍세화 선생님 두 분께서 추천사를 써주셨는데요, 두 분의 마지막 문장이 묘하게 겹치는 게 저는 흥미로웠습니다. “평화를 향한 갈망과 의심을 동시에 품은(김초엽 추천사)”과 “회의(懷疑)하면서 전진하자(홍세화 추천사)”라는 각각의 구절이 책 제목의 “질문”과 맞닿아 있다고 느꼈거든요. 저는 독자들이 이 책을 읽고 질문과 회의가 많아지기를 바랍니다. 그러면서도 행동하고, 전진하고, 갈망할 수 있어요. 최고의 독서는 책이 몸을 통과하고 난 뒤 책 밖에서 일어난다고 생각합니다. 회의하고 질문하면서 평화를 위한 행동에 나설 때 이 책이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이용석
평화운동단체 전쟁없는세상 활동가. 병역거부자가 되기 위해 평화에 대해 공부하고 고민하다 보니 평화활동가가 되었다. 프로야구 기록지 살피기, 보드게임 하기, 라디오 듣기, 책 읽기, 그리고 평화운동을 할 때 신나고 재밌다.
「세상을 바꾸는 비폭력의 힘: 평화운동이 궁금한 시민들을 위한 안내서」(서울시NPO지원센터)를 썼으며, 평화교육 진행자를 위한 교안 시리즈 「배움의 공간에서 전쟁을 어떻게 다르게 기억하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와 「병역거부, 배움의 공간에서 어떻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피스모모·전쟁없는세상)의 기획 및 집필에 함께했다. 『대한민국 인권 근현대사』(국가인권위원회)와 『난민, 난민화되는 삶』에 공동 저자로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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