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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인 사유리 “인생에는 여러 선택지가 있다”

『아내 대신 엄마가 되었습니다』

“한 아들의 엄마가 되었습니다.” 

지난해 11월, 방송인 사유리가 비혼 출산 소식을 밝혔다. 아이를 갖고 싶지만 결혼할 남자는 만나지 못해서, 그녀는 정자 기증을 받아 엄마가 되기로 ‘선택’했다. 세상은 그의 출산을 두고 ‘정상가족 이데올로기의 해체’나 ‘자발적 비혼모의 용기’를 말하지만, 사유리는 에세이 『아내 대신 엄마가 되었습니다』를 통해 ‘내가 원하는 행복을 스스로 찾아가는 길’을 이야기한다. 


엄마가 된 사유리는 인터뷰에서 ‘두려움’에 대해 여러 번 말했다. 한 번은 “너무 큰 행복과 함께 찾아온 두려움”을 고백했고, 다음에는 “그 무엇도 겁나지 않는 용감한 마음”을 말했다. 모두 아이를 낳기 전의 사유리에게는 없었던 것이다. 두렵지만, 두려울 것 없다는 그녀의 모순은 목숨을 바쳐서라도 지키고 싶은 존재가 생긴 사람의 모습이었다.

사명감으로 한 일도 아닌데 젠 덕분에 나만 기분 내는 것 같아 괜스레 민망해지기도 한다. 지금의 벅차오르는 감정을 잊지 말고 젠이 자라면 꼭 이야기해줘야겠다. 엄마가 젠을 가져서 사람들이 조금 더 행복해졌다고. 엄마가 네 덕분에 좋은 사람이 되었다고. 정말 고마워, 젠. (223쪽) 

결혼 대신 출산을 선택했다 

책을 쓴 계기는? 


아이를 낳기까지의 과정을 기록하고 싶었다. 젠이 커서 한글을 이해할 수 있는 나이가 되면 책을 읽고 자연스레 엄마가 어떤 마음으로 자신을 세상에 태어나게 했는지 알게 될 테니까. 젠에게 쓰는 책이었다. 


젠의 이야기를 담은 책을 펴낸 소감은 어떤가.


1년 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책을 내는 것뿐 아니라 방송 활동을 계속 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사람들에게 욕을 아주 많이 먹거나, 방송국에서 사유리 출연 금지를 시켜서 아예 TV에 나오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다면 다른 일을 알아봐야지’ 싶었는데, 젠의 이야기로 책을 낼 수 있는 기회가 오다니 정말 신기하다.


다른 일을 알아봐야 한다는 생각까지 했을 줄은 몰랐다. 출산 소식이 전해진 이후, 걱정과 달리 대부분 사유리의 선택을 지지하고 응원했다. 


예상치 못했던 반응이다. 사람들이 나에게 “정말 용기 있다”고 하는데, 사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무슨 용기가 있지?’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아이가 없는 삶을 포기할 용기가 없었을 뿐이다. 아이가 너무 가지고 싶었다.  


사유리의 삶에서 아이를 갖는다는 게 어떤 의미였기에? 


아이를 낳는 건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옛날부터 아이를 갖고 싶었고,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낳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생리불순으로 찾은 산부인과에서 내 난소 나이가 48세라는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 난소가 노화되어 임신이 안 되거나, 임신을 해도 유산율이 높을 거라고 했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계속 ‘빨리 아이를 가져야 한다’는 생각만 머리에 가득했다. 


비혼 출산을 선택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은 무엇인가? 


조급한 마음. 어쩌면 영영 아이를 못 가질 수도 있다고 하니까 뭐든 빨리 해봐야겠다고 생각한 거다. 그렇다고 소개팅을 해서 결혼까지 가기에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지 않나. 만나자마자 결혼하자고 할 수는 없으니까(웃음). 지금껏 수십 년을 살면서도 결혼할 남자를 만나지 못했는데, 몇 개월 안에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을 품는 건 어리석은 일 같았다. 그래서 다른 방법(비혼 출산)을 선택했다.

행복과 두려움이 번갈아 나를 찾아왔다 

유튜브 채널 <사유리 TV>에서 임신테스트를 하기 전, 긴장하며 울먹이는 모습이 뭉클했다. 처음 시도한 인공수정에 성공했는데, 테스트기의 두 줄을 확인하고 어땠나. 


행복이나 성공이 바로 눈앞에 오면 기쁨보다 두려움을 먼저 느끼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언젠가 그 말을 듣고 ‘행복하면 좋지, 무슨 두려움이 있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임신을 확인하려고 하니 두려웠다. 임신테스트기에 두 줄이 뜬 것을 보자 머리가 하얘지면서 두려움이 더 커졌다. 시간이 지날수록 ‘지켜야겠다’는 생각과 유산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동시에 들었던 것 같다. 임신 기간 내내 행복과 두려움이 번갈아 나를 찾아왔다. 


임신을 확인한 날은 반려견 모모코가 하늘로 떠난 지 1년된 날이었다고. 


그렇다. 모모코는 내가 한국에 왔을 때 처음으로 가족이 되어 준 강아지였다. KBS <미녀들의 수다>에 출연했던 시절, 무척 외롭고 힘들었는데 모모코가 늘 내 옆에 있어 줬다. 개의 수명이 인간보다 짧다는 것을 알지만, 그럼에도 언제나 나와 함께할 거라고 생각한 가족이었다. 모모코가 떠나고 한동안 힘들었는데 정확히 1년 뒤 임신을 확인했다. 테스트기에 두 줄이 뜨자마자 모모코가 돌아왔다고 생각했다. 


책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문장은 “그렇게 우리는 매일 다른 사랑을 한다(114쪽)”였다. 


젠을 처음 봤을 때보다 지금이 훨씬 더 예쁘다. 보자마자 첫눈에 이만큼 사랑에 빠지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 당시에는 ‘정말 이 아이가 내 뱃속에 있었나’ 싶어서 신기한 마음이 더 컸다. 그런데 요즘은 젠이 너무 예뻐서 겁이 날 때가 있다. ‘이렇게 사랑하는 사람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어쩌지?’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마치 내 심장을 밖으로 꺼내서 들고 다니는 것 같다. ‘누가 이 심장을 만지거나, 다치게 하면 안 되는데…’ 하고 걱정하며 보여주고 있는 느낌이다.


정자 기증자를 “기프트(gift)”라고 칭하는 대목도 기억에 남는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을 아빠라고 할 수는 없으니까 ‘기프트’라고 이름을 붙였다. 나중에 젠이 기프트를 떠올릴 때 ‘나를 세상에 태어나게 해 준 고마운 사람’이라고 생각해줬으면 좋겠다. 세상에 태어나서 행복하고, 태어나길 잘했다고 느끼게 하고 싶다. 


“나는 젠이 ‘비겁하지 않은 사람’으로 자랐으면 좋겠다.(136쪽)”고 했다. 사유리가 생각하는 비겁함이란 무엇인가. 


나는 친구와 만나서 10만 원어치 음식을 먹었을 때, 내가 5만 5천 원을 내고 친구에게 4만 5천 원만 내라고 할 수 있는 인생을 살고 싶다. 젠도 마찬가지다. 남을 위해 약간의 손해를 볼 줄 아는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반대로 몇 퍼센트도 손해 보기 싫어서 머리를 굴리고, 어떻게든 자기의 이익을 챙기려고 욕심부리는 건 비겁한 사람이다. 


“’아이가 받을 차별이 걱정이다’라는 말에는 젠이 떠올라 조금 신경이 쓰였지만 적어도 그런 걱정을 해주는 사람들은 젠을 차별하지 않을 테니까. 걱정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앞으로도 차별을 없애는 데 힘써주세요. 마음속으로 속삭였다.(165쪽)”는 부분도 좋았다. 사유리는 마음이 단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젠이 차별당하면 어쩌지’라는 걱정보다, ‘다른 사람을 차별하는 사람으로 크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더 크다. 차별을 당한 사람은 그 경험에서 많은 걸 배우기도 한다. 누구도 차별하면 안 된다는 걸 알고, 다른 사람의 아픔을 같이 느낄 수도 있게 되는 것이다. 물론 그 상처가 혼자서는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클 수 있지만, 그때는 내가 옆에서 함께 생각하고 아파하면서 지켜주면 된다. 그래서 차별을 당하는 것보다, 차별하는 사람이 될까 봐 두렵다.


하루 중 가장 행복한 순간은? 


젠이 막 잠들었을 때(웃음). 젠이 자면 밥 먹을 수 있어서 너무 행복하다.

인생을 자기 마음대로 살았으면 좋겠다 

딸의 결정을 무조건 지지하는 부모님의 모습이 감동적이었다. 어린 시절, 부모님에 대한 인상적인 기억이 있나. 


우리 반에 아버지가 안 계신 친구가 있었는데, 한 친구가 그 아이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 엄마가 아빠 없는 너랑은 놀지 말래.” 그 말을 들은 친구가 교실에서 혼자 울고 있었고, 나는 그 모습을 보고 무례한 친구에게 “말이 너무 심한 거 아니냐”고 다그쳤다. 그러자 그 친구가 이번에는 나에게도 비슷한 말을 했다. “사유리 너랑도 못 놀아. 우리 엄마가 바보랑 놀면 바보가 옮는대”라고. 속상한 마음에 친구와 손을 잡고 울면서 집에 갔는데, 엄마가 내 이야기를 듣더니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래? 그럼 엄마도 바보니까 같이 울어버리자!” 그리고 함께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웃었다. 나의 긍정적인 태도는 부모님에게 배운 것이다. 돌이켜보면 그날의 피해자는 우리가 아니라, 그런 말을 했던 친구였다.  


젠을 대할 때, 어린 시절에 본 부모님의 모습을 떠올리게 될 것 같다. 


나에게는 지도가 하나 있다. 젠을 키우면서 우리 엄마가 그려 놓은 지도를 읽어 나가는 느낌이 든다. 아마 사람들은 누구나 그런 지도를 하나씩 가지고 있을 것이다. 어린시절, 자기 부모의 모습이 담긴 지도 말이다. 만약 부모님이 나쁜 사람이었다면 ‘이렇게 하지 말아야지’ 라고 생각하는 지도일 테고, 좋은 사람이었다면 ‘이대로 살아야지’ 라고 생각하는 지도일 테다. 나는 엄마가 지도에 그려준 길 그대로 살아야겠다고 생각한다. 


KBS <슈퍼맨이 돌아왔다>에 출연하고 있다. 아이와의 사생활을 노출해야 한다는 부담은 없었나. 


부모님이 일본에 계시기 때문에 손자를 TV로 보게 될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너무 좋았다. 부모님을 위해서라도 출연하길 잘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내가 워킹맘이다 보니 일을 할 때는 젠과 떨어져 있어야 하는데 <슈퍼맨이 돌아왔다>는 아이와 같이 할 수 있는 일이라서 너무 감사하다. 다만 젠이 더 커서 방송 촬영이라는 걸 알고, 연기를 하기 시작하면 그땐 바로 그만둬야 한다고 생각한다. 


워킹맘으로 사는 것은 어떤가. 


재미있다. 우리 가족의 인생을 내가 책임지고 있다고 생각하니까 뿌듯하다. 다만 주말에 젠과 함께 여기저기 나들이를 다니고 싶은데 아직 차가 없어서 그러지 못하는 게 아쉽다. 빨리 운전면허부터 따야 한다. 


아이를 키우면서 달라진 생각, 삶의 철학 등이 있나?


나는 모든 걸 귀찮아 하는 사람인데 아이와 관련된 일은 전혀 귀찮지 않다. 다른 사람이 보면 예민하다고 생각할 정도로 위생적인 부분을 챙기려고 노력한다. 내 목숨보다 소중한 존재를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 때문이다. 그리고 태어나 처음으로 내 머리가 안 좋은 걸 후회했다. 머리가 좋아서 소아과 의사가 됐다면 젠을 잘 봐줄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웃음). 


“젠이 태어난 후에 나에 대해서도 자주 생각하게 된다”고. 


아이를 키우면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되는 것 같다. ‘내가 이렇게 겁이 많았구나, 걱정이 많았구나, 나에게도 이렇게 예민한 부분이 있었네, 앞서 상상하고 슬퍼하는 모습도 가지고 있다니’ 같은 생각을 자주 한다. 


젠이 엄마의 어떤 점을 닮았으면 좋겠나.


사람을 대할 때 계산하지 않는 것. 나는 ‘이 사람이 뭘 가지고 있으니까 나에게 도움이 되겠지’ 같은 생각을 하지 않는다. 좋아하면 좋아하고, 싫어하면 싫어한다. 젠이 그런 점을 닮았으면 좋겠다. 


비혼 출산을 선택할 때, 타인의 시선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부터 생각했다는 내용의 ‘행복은 셀프’ 부분은 남녀노소 누구나 위안을 얻을 만한 이야기였다. 


출산 사실을 공개한 뒤, 수많은 사람들이 인스타그램으로 DM을 보냈다. 특히 성소수자들에게 고맙다는 메시지를 많이 받았다. 처음에는 나의 개인적인 결정을 보고 힘을 내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너무 의외였는데, 생각해보니 눈치보지 않고 하고 싶은 대로 내 삶을 선택한 모습에 용기를 얻은 것 같다. 내가 용감한 사람이어서 그런 선택을 했다는 생각은 정말 오해이지만, 그래도 나로 인해 누군가가 힘을 얻었다니 뿌듯했다. 모든 사람들이 인생을 자기 마음대로 살았으면 좋겠다. 


그럼 사유리가 지금까지 한 선택 중, 최고는 단연 출산인가? 


그렇다. 나는 지금껏 성공한 게 하나도 없다. 운전면허도 두 번 떨어지고, 시험도 다 떨어졌다. 뭐든 중간에 그만둘 때가 많았다. 하지만 ‘젠’만큼은 포기하지 않았다. 앞으로도 내 삶에는 젠을 낳았다는 자신감이 계속 남아있을 것이다.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본인이 살고 싶은 인생이 있는데 사회의 시선, 부모님의 반대 등으로 꿈을 포기하려는 사람들에게 다른 선택도 할 수 있다는 말을 해주고 싶다. 하고 싶은 걸 못하면 평생 한이 된다. 정말 원하는 게 있다면,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해야 한다. 우리는 나쁜 짓만 빼고, 무엇이든 선택해도 된다(웃음). 이 책을 읽고 인생에는 여러가지 선택지가 있다는 걸 아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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