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아들이는 힘은 세상을 새롭게 그려 낸다
『새로운 생각은 받아들이는 힘에서 온다』
나는 섬진강변 작은 마을에 태어나 자라, 그 작은 마을에 있는 작은 초등학교에서 평생을 살았습니다. 아니 평생이 아니라 내 나이 60세 되던 해에 그 학교를 퇴직했습니다. 퇴직한 지 벌써 8년이 되어 갑니다.
학교에서 퇴직하고 그 이튿날 유럽을 여행하게 되어 공항에 갔습니다. 서류를 작성하는데, 직업란에 쓸 내 직업이 하루 만에 사라져 버렸습니다. 정말 놀랐습니다. 충격이었지요. 그때 잠깐 아득했던 그 캄캄함이 지금도 나를 놀라게 합니다.
여행을 갔다 와서 강연을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나를 찾는 곳이 그렇게 많다니, 정말 감당하기 어려웠습니다. 몇 가옥 안 되는 작은 마을에 태어나 그곳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이웃에 있는 순창에서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나와 내가 다녔던 초등학교 선생이 되어 주로 2학년 몇 명하고 평생을 살았는데, 사람들이 나를 찾았습니다. 학교에 근무할 때보다 훨씬 바쁜 생활을 하며 나는 삽니다. 바쁜 것이 다 꼭 좋은 것은 아니지만 말입니다.
내가 강연을 다니며 주로 하는 이야기는 농부들이 나에게 가르쳐 준 이야기와 아이들이 나에게 가르쳐 준 이야기들입니다. 우리 마을 농부들은 학교를 다닌 사람이 몇 분 되지 않았습니다. 평소에 책도 안 보고 우리가 생각하는 학교 공부도 따로 안 합니다. 그런데 내가 사는 작은 마을에서 살아가는 데 아무 지장이 없습니다. 농부들은 자연이 하는 말을 잘 듣고 자연이 시키는 일을 잘 따르며 살았습니다. 자연의 생태와 순환 속에서 살아가는 이치를 배우고 따르며 살았던 것이지요. 나는 그런 농부들의 삶을 배웠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살면서 내가 평생 의문을 품었던 것이, ‘공부란 무엇일까’, ‘공부는 왜 하는 것일까’, ‘공부를 해서 어디다가 써먹을까’였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학교, 우리가 생각하는 공부, 우리가 생각하는 잘 산다는 것들을 생각하게 되었지요.
나는 초등학교 2학년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아이들에게 정직과 진실을 배웠습니다. 진심으로 살고 싶은 삶의 태도를 배웠습니다. 정직과 진실을 알아 가면 두려움도, 부러움도 사라집니다. 얻고 싶고, 되고 싶고, 이루고 싶은 것도 그리 많지 않습니다. 사는 것이 좋지요. 내가 하는 일이 좋지요. 늘 지금이 좋습니다. 아이들은 그렇게 살지요. 정직하고 진실하게 진심으로 살려고 노력하면 삶이 진지하고 진정성을 따르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세상의 모든 것들이 늘 새롭지요. 눈부시지요. 신비롭지요. 찬란해요. 모든 것들이 새롭고 신비로우니, 삶이 감동적일 수밖에요. 감동은 느끼고 스며들어 생각을 바꾸고 행동을 바꾸어 나를 바꾸는 힘을 발휘하게 됩니다. 나는 초등학교 2학년에게 그렇게 많은 것들을 배웠습니다.
나의 강연은 농부들이 가르쳐 준 것들, 초등학교 2학년 아이들이 가르쳐 준 것들을 잘 전해 줄 뿐입니다. 나의 글도 농부들이 자연을 보고 하는 말과 아이들이 사는 모양을 받아 적었을 뿐입니다. 내가 사는 강변 작은 마을의 그 모든 것이 다 내 책이었습니다. 공부하는 학교였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이 곧 글이 되었습니다.
이 책은 그동안 했던 강연을 녹취해서 다음 세대에 맞게 다듬고 보충한 것입니다. 한 권의 책으로 정리해 놓고 보니 그동안 내가 써놓았던 글들을 다시 정리한 셈이 되었습니다.
우리들은 이제 오래 삽니다. 우리들은 이제 두 번 살아야 합니다. 공부하고 취직해서 60세까지 살고 퇴직해서 도로 그만큼을 살아야 합니다. 농부들과 아이들이 나에게 가르쳐 준 것들이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과 딱 맞아떨어지는 공부입니다. 공부 잘하는 것도 좋지만,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야 합니다. 좋아하면 열심히 하고 열심히 하면 잘하게 됩니다. 오래 살기 때문에 자기가 좋아하고 잘하는 것을 평생 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이상한 말 같지만, 우린 공부를 너무 많이 합니다. 아는 게 너무 많아요. 아는 것을 써먹기도 전에 다른 것을 알아야 합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몰라서 힘이 드는 게 아니라 아는 것을 써먹지 못해 힘들어 합니다. 나는 아는 것을 써먹고 우리가 어떻게 살고 있는가를 전해 주러 다닙니다.
나는 나무를 좋아합니다. 강물을, 바다를, 비가 오고 눈이 오는 것을 바라보는 일을 좋아합니다. 나무는 정면이 없습니다. 경계를 하지 않습니다. 나무는 늘 완성되어 있고, 볼 때마다 다릅니다. 왜 그럴까요. 왜 늘 완성되어 있는데, 왜 늘 달라 보일까요. 나무는 바라보는 쪽이 정면이고, 볼 때마다 다르기 때문입니다.
볼 때마다 다르다는 말은 자기에게 오는 모든 것들을 다 받아들인다는 말입니다. 나무는 햇빛과 바람과 물을 받아들여 자기를 늘 새롭게 그립니다. 눈이 오면 눈을 받아 들고 새로운 모습을 우리들에게 보여 주지요.
받아 드는 힘, 그 힘이 세상을 새롭게 창조하는 힘입니다. 공부란 실은 세상에서 일어났던 일과 일어나고 있는 일과 일어날 일을 받아들여 세상을 새롭게 그려 내는 힘입니다.
나는 몇 년간 전주에서 살았습니다. 새해엔 내가 태어나 살던 집으로 돌아갑니다. 많은 분들이 나를 도와주었습니다. 또 다른 삶이 나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나는 이제 새로운 삶에 도착하였습니다.
2015년 11월
김용택
김용택 저 | 샘터
《새로운 생각은 받아들이는 힘에서 온다》는 섬진강변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자라고, 그곳에 있는 작은 초등학교에서 31년간 아이들을 가르친 김용택 시인이 평생을 통해 깨달은 ‘생각과 창조’에 대한 지혜를 담고 있다. 이 책에서 시인은 ‘공부 따로 삶 따로’가 아닌 사는 것이 공부고 예술이 되는 새로운 삶의 방향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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