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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캠핑에 빠질 수밖에 없는 이유

『나의 캠핑 아지트』 서승범 저자 인터뷰

저만의 ‘캠핑 스타일’을 갖추는 데 10년 정도 걸렸지만 ‘답’이라면 아직도 구하는 중이에요. 나이나 시기에 따라 그 답은 달라질 테니까요, 마치 사랑처럼요. (2021.01.20)


글ㆍ사진 | 출판사 제공

장비를 지고 물가를 건너는 서승범 작가 ⓒ김해진

야외 취침을 벌칙으로 내건 TV 예능 프로그램을 볼 때마다 고개를 갸웃거리는 이가 있다. 수년 간의 캠핑 방랑기를 엮은 『나의 캠핑 아지트』(나의 캠핑 생활 시리즈 제4권)의 서승범 작가다. 그는 자연 속에서 잠을 청하는 일이라면 언제나 기꺼운 사람이다. 들에서든, 계곡에서든, 모래사장에서든, 때로는 산골짝 마을 평상 위에서든. 그의 관심사는 주가 그래프 변화가 아니라 시시각각 변화하는 나뭇잎의 빛깔, 바람의 온기와 표정에 있다. 대학원 논문 패스 기념으로 술 마시겠다고 홍천에 놀러 갔던 걸 계기로 캠핑에 입문, 틈만 나면 강화 함허동천으로 ‘퇴근박’을 떠났다가 산 잡지 기자 시절엔 설악산 장수대를 집처럼 드나들었고, 호젓한 캠프 사이트를 찾아 춘천의 외딴 마을을 전전했으며, 어느샌가 캠핑 잡지 편집장이 되어 미국 옐로스톤 국립공원으로 백패킹을 다녀왔다. 


캠핑의 산전수전을 모두 겪었을 그는 섣불리 ‘캠핑이란 이런 것’이라 정의 내리기보다는 에둘러 ‘캠핑에 모범 답안은 없다’며, ‘자신만의 캠핑 스타일을 찾는 것이 우선’이라 일갈한다. 결국 『나의 캠핑 아지트』는 캠핑의 이모저모를 소상히 알려주는 가이드북이라기보다, 한 캠퍼가 오랜 세월 벼려온 취향과 그만의 기준을 엿볼 수 있는 ‘캠핑 일기’에 가까운 책이다. 

도발적으로 느껴지는 문장들이 있습니다. 이를테면, ‘그래서 뭐! 캠핑은 어떻게 하라는 이야기냐. 나는 그 답을 말할 수 없다. 어렵게 찾은 나의 답이기 때문이다.’와 같은. 작가님은 답을 구하기까지 얼마의 세월이 걸렸나요? 그리고 ‘이게 답이구나’하는 마음의 소리를 들었던 첫 순간이 궁금합니다.


나름 장비를 갖추어 휴양림에서 캠핑을 하고 내려오는데 작은 덱에 빛바랜 텐트 치고 구식 코펠과 버너만 두고서 낚시 의자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먼 산을 보는 초로의 캠퍼를 마주쳤어요. 수많은 오디오 기기를 섭렵한 노인이 굳이 지지직거리는 라디오를 찾아 듣는 것처럼 보였는데, 그게 답이라기보다는 어떤 ‘지향점’ 같았어요. 저만의 캠핑 스타일을 갖추는 데 10년 정도 걸렸지만 ‘답’이라면 아직도 구하는 중이에요. 나이나 시기에 따라 그 답은 달라질 테니까요, 마치 사랑처럼요. 풋풋하고 두근거리는 설렘의 시기는 지났고, 말없이 나란히 앉아있어도 편안한 단계 같아요. 좀 더 지나면 눈곱도 떼어주고 머리맡의 흰 머리카락을 조용히 훔치는 것 같은 날도 오겠죠.


작가님은 여행에 단 하나의 준비물만 챙겨야 한다면 ‘유머’를 챙기겠다고 했습니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그 말이 진심이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모기떼의 텐트 습격을 회고하면서도 ‘담배라도 젖지 않아 다행이라며 낄낄댔다’고 쓸 수 있는 유머와 영감의 원천은 무엇인가요?


설악산 서북주릉 취재를 가는데 제 첫 설악산이었어요. 코스를 물어보니 십이선녀탕계곡으로 올라간대요. 계곡은 샌들 아니겠습니까. 그 몇 달 전 지른 샌들을 신고 의기양양하게 갔죠. 일행들 물 피해 갈 때 혼자 첨벙첨벙 시원하게. 계곡이 끝나는 지점에서 선배 사진기자가 “계곡 끝났어, 이제 갈아 신어” 하는데 “이게 단데요?” 했어요. 잠시 정적이 흘렀죠. 군대 철야행군 때보다 더 많이 까졌어요. 등산양말을 빌려 신었는데 피와 살과 양말이 혼연일체를 이루었더라고요. 대청봉을 앞두고 선배가 그랬어요. “다 왔어. 곧 대청이야. 조금만 참어. 아, 내려가는 길도 한참이네, 하하하하” 다 같이 왁자지껄 웃었어요. 그때였던 거 같아요. 체력보다 유머가 중요하고, 유머엔 좋은 동료가 있어야 한다는 걸 깨우친 게. 채플린 형이 그랬잖아요.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고. 내가 내 상황을 텔레비전으로 보고 있다고 생각하면 웃기잖아요. 역설적이지만, 아웃도어에서는 쓸모없어 보이는 유머야말로 가장 실용적이더라고요. 


책 속에는 ‘참 좋았는데’ 하며 떠올리는 캠핑의 동행들이 등장합니다. 눈에 익은 이름도 더러 있습니다. 영화 <낮술>의 배우 송재하(송삼동)라든가, <은밀하게 위대하게>의 감독 장철수라든가. 이즈음 문득 그리워지는 캠핑의 동행이 있나요? 혹은, 영원히 잊지 못할 캠핑의 동행을 한 명만 꼽자면 누구인가요?


답보다 먼저, 재하한테 미안해요. 책에 ‘삼동아’ 하며 인사를 적어 보냈는데 개명했더라고요. 송재하. 어찌나 미안하던지. 이젠 배우 송재하로 기억해주세요. 음, 한 명을 꼽는다면 함께 가장 자주 다닌 해진으로 할게요. 김해진. 아웃도어 잡지에서 만나서 일로 놀이로 많이 다녔는데, 단순히 자주 다녀서는 아니고요. 촬영장비까지 무겁게 지고 묵묵히 앞으로 뒤로 다니며 촬영을 하죠. 그 힘든 상황에서도 남을 먼저 배려해요. 짐 가득한 자전거 끌고 욕을, 욕을 중얼거리며 이화령 고개에 올라서는데 코펠에 얼음 덩어리 동동 띄운 콜라를 건네더라고요. 그때부터 제가 콜라에 맛을 들여서 아직껏... 아, 아닙니다.

서승범 작가와 김해진 사진가가 함께했던 미국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 여행 ⓒ김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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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약 캠핑을 소개하는 글의 도입부에 아내들이 ‘누구 남편이 더 한심한가’를 겨뤘다는 이야기가 생각나 웃음이 터졌습니다. 이를테면 건담 만들기나, 모터사이클을 즐기는 남편들이 지탄의 대상이 됐는데요. 작가님이 자랑스레 꼽는, 생애 가장 한심한 캠핑의 추억을 듣고 싶습니다.


예전엔 춘천 중도에 캠핑장이 있었고, 배를 타고 들어가야만 했어요. 1월 초에 막배에 승용차를 싣고 갔죠. 매점 주인장은 그 배를 타고 퇴근을 했고요. 저흰 몰랐지만. 눈은 엄청 내렸고, 장작은 구할 데가 없고, 어둑한 중도의 눈길을 승용차로 돌면서 죽은 나무들을 모았어요. 승용차라 차에 실을 수가 없어서 차에 얹고 창문을 열어 손을 뻗어 잡고 다녔죠. 조금만 오래 돌아다녔거나 조금만 더 추웠더라면 지금 제 손은 의수였을 겁니다. 그런데 오랜 시간 눈 속에 파묻혀 있던 나무들이 잘 탈 리가 없잖아요. 토치로 30분을 ‘지져도’ 나이테 사이로 물거품만 뽀글거리죠. 매캐한 푸른 연기는 덤이었고요. 두 시간 고생하다가 포기하고 소주 마시고 잤어요. 냄새가 배서 문이란 문은 활짝 열어놓고 말이죠. 그땐 그래도 재밌었어요. 첫사랑은 실수투성이여도 풋풋하잖아요.


오늘 아침 기온이 영하 17도였습니다. 눈발 흩날리는 김포평야를 바라보며 영화 <노킹 온 더 헤븐스 도어>의 얼간이들처럼 침낭을 뒤집어썼다는 일화를 읽으면서 혹한의 캠핑을 상상해봤습니다. 겨울 캠핑의 마음가짐이란 어떤 것이어야 할까요.


마음 같아선 유머라고 하고 싶지만, 겨울에는 유머만으론 부족해요. 안전이 맨 앞이에요. 옛날엔 너무 추워서 사고가 났고, 요즘엔 난로 때문에 사고가 나죠. 오들오들 떨면서 캠핑할 순 없지만 반팔을 입을 정도로 난방을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즐길 수 있을 정도의 추위까지 녹여버리진 말자고요. 그러고 나면 겨울 아니면 느낄 수 없는 풍경이 들어와요. 풍경이야 계절마다 고유하지만, 소리는 다른 세 계절과 다른 겨울만의 소리가 있어요. 침묵에 가까운 고요함과 가끔 쌓인 눈을 휘젓는 스산한 바람 소리. 언젠가 ‘눈 내리는 소리가 있다’는 말을 전설처럼 듣긴 했지만 아직 경험하진 못했습니다.

캠핑의 즐거움을 이야기하는 에세이 시리즈 나의 캠핑 생활(전4권)

횡성 병지방계곡 근방의 외딴 공터에 ‘한숨’이라 이름 붙인 나만의 박지가 있다고 썼습니다. 그 풍경을 무릉도원처럼 묘사하셨는데요. '한숨'만큼이나 아끼는 오지의 박지가 또 있나요? 그런 박지에 어떤 이름들을 붙이셨는지 채널예스 독자들에게만 살짝 귀띔해 주세요.


우선 씨에프. 동해안 해파랑길을 걷다가 발견했습니다. 고성에서 산마루를 넘어가다가 뒤를 돌아보는데 저 아래로 절벽과 바다 사이 국도 옆으로 공간이 있더라고요. 캠핑 트레일러 두 대가 있었습니다. 나름 명당이었던 거죠. 아, 이름. 자동차 광고 같다고 생각했어요. 자전거와 카약을 차에 얹고 우리나라 곳곳을 여행하다가 그 스폿을 발견하고 하룻밤 머물고 가는 여행자, 그 곁을 지키는 차. 소백산자락길에는 ‘산적’, 충주호변에는 ‘소낙비’, 봉화에는 ‘농활’이란 이름의 박지가 있어요. 산적이 나올 법한 혹은 산적이 나오지 않을까 가슴을 졸이다가 산적을 만나거나 안도의 한숨을 내쉴 오솔길 모퉁이였고, 억수로 내리는 비에 몇 시간 동안 커피와 맥주를 번갈아 마시며 호수에 비가 듣는 풍경을 보고 있었고, 대학 때 농촌봉사활동으로 갔던 곳을 출장길에 찾아가 봤다가 기억 속 장소는 찾지 못하고 대신 만났어요. 저마다 각자의 스토리와 취향이 담긴 리스트를 만들면 꽤 재미난 추억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야외 활동에 대해 이야기하기가 조심스러운 시절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연친화적인 비대면 여행의 방식으로 캠핑이 주목 받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지속 가능한 캠핑 문화가 정착되기 위해 캠퍼들이, 여행자들이 지켜야 할 덕목이 있다면 무엇이 있을지 작가님의 의견을 나누어 주세요.


자연을 최대한 그대로 두었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자연 속으로 들어가는 거잖아요. 우리가 없던 상태의 자연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는 거죠. 잠시 빌리어 쓰는 거니까요. 쓰레기를 버리지 않는다거나 나무나 자연을 훼손하지 않는 건 아주 기본이고, 조명도 캠핑의 일상을 유지할 수 있는 최소한으로, 소리도 소통은 하되 그 이상의 소리는 되도록 자제했으면 좋겠어요. 그게 함께 캠핑하는 이웃에 대한 예의이기도 하고 자연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해요. 중요한 건 이게 자연을 위해서 불편을 참자는 게 아니라, 새로운 즐거움을 느껴보자는 거예요. 적어도 자연을 느끼고 싶어서 밖으로 나온 거라면요.

*서승범

캠핑을 유난히 좋아하는 건 마음이 자연에 있어서다. 자연을 벗하면 좀 닮을 수 있을까, 하고. 10년, 20년 후의 캠핑은 어떨지 상상하며 캠핑을 즐긴다. 캠핑을 비롯해 다양한 형태의 여행을 즐기고 상상하고 도모한다. 그리고 글을 쓴다. 월간 <캠핑>, <아웃도어>의 편집장을 지냈고 여행 테마 무크지 <스루 Thru>를 펴냈다. 저서로는 『캠핑 주말여행 코스북』(길벗), 『나의 올레는 어디인가』(자연과생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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