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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기처럼 찾아오는 무기력과 공존하기

『게으른 게 아니라 충전 중입니다』 댄싱스네일 인터뷰

감기처럼 찾아오는 무기력과 공존하기

『게으른 게 아니라 충전 중입니다』는 타고난 ‘그림 실력’과 ‘공감 능력’으로 많은 베스트셀러를 만들어 낸 베일에 싸인 일러스트레이터 ‘댄싱스네일’의 첫 번째 에세이다.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그냥 흘러넘쳐도 좋아요』『혼자 있고 싶은데 외로운 건 싫어』등 마치 보고만 있어도 위로가 되는 그림으로 수많은 독자들의 찬사를 받았던 작가가 처음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오랜 시간 무기력증과 우울증을 겪으며 상담을 받아 온 작가는 무기력과 우울은 병이 아니라고, 특별한 게 아니라고 말한다. 감기에 걸렸을 때 몸을 돌보는 것처럼, 무기력증이 찾아왔을 때 역시 마음을 보살피면 된다고 이야기하며 경험에서 체득한 ‘마음 충전법’을 전한다.

 

“아무것도 안 하는 게 도움이 된다”는 작가의 말처럼 이 책에 실린 마음 충전법은 결코 거창하지 않다. 작고 시시하고 보잘것없어 보이지만, 때로는 쓸데없는 생각과 일상 속 소소한 행동들이 생각지도 못한 위로와 즐거움이 된다고 작가는 말한다. 그리고 묻는다.

“텅 빈 마음을 빵빵하게 채워 줄 당신만의 작은 의식은 무엇인가요?”

베일에 싸인 일러스트레이터계의 치트키, 댄싱스네일 작가님! 이름이 인상 깊은데요, 어떤 뜻인지 궁금합니다.

 

살아오면서 늘 발목을 잡은 게 ‘느리다는 것’이었어요. 학교에서 밥 먹을 때도 항상 반에서 꼴찌였고, 말도 느릿느릿하고, 이해도 느리고, 글을 읽거나 그림을 그리는 것도 느렸어요. 심지어 친구들과 대화할 때도 남들 다 웃고 나면 나중에 혼자 웃어요. 그런 제가 ‘달팽이’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우리나라에서 ‘느린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유지하며 사는 건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에요. 마음속으로는 늘 조급함을 안고 살 수밖에 없죠. 그럴 때 느린 것들을 보면 친구 같고 마음이 편안해지며 위안이 됐어요. 나 혼자만 그런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사람들은 달팽이가 느리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달팽이는 자신의 속도에 딱 맞게 살고 있어요. 저도 그렇게 살고 싶어서 '스네일'이라고 필명을 지었고, 비록 느리더라도 삶을 춤추듯이 흥겹게 살고 싶다는 마음으로 춤추는 달팽이, '댄싱스네일'이라는 아이덴티티를 만들었습니다.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부터 2018년 독자들이 사랑한 책엔 언제나 작가님의 그림과 함께였던 것 같아요. 그런데 이번 책의 그림은 어쩐지 조금 다른 느낌입니다!

 

저는 대체로 모든 면에서 느린 사람인데요. 느리다고 하면 왠지 진중하고 한 가지에 골몰할 것 같지만 그와는 별개로 산만하기도 하고 모든 것에 빨리 질리는 편이에요. 그림을 그릴 때도 같은 재료나 기법을 반복하는 걸 힘들어 하는 편이죠. 그래서 여러 재료를 돌려 사용하며 작업해요. 어느 날은 물감을 칠했다가 어느 날은 색연필을 들고, 또 어느 날은 오일파스텔로 끄적여요. 지금까지 북커버 작업을 할 때는 발색이 좀 더 강한 물감을 주로 사용했는데, 이번 책에서 컷 일러스트로 스토리를 풀어 갈 때는 따뜻한 느낌의 색연필이 더 편안했어요. 가장 큰 이유는 많은 컷을 그리기에 색연필이 좀 더 빠르고 사용하기 간편한 재료이기 때문이에요. 책에 담긴 컷 일러스트들에 색을 칠하지 않은 빈 공간을 많이 남기는 라인드로잉 방식을 고수한 것도 실은 빠르게 그리기 위해서였어요. 색을 다 칠해 가며 모든 스토리를 그리기에는 제 손이 너무 느리거든요.

 

책에 소개돼 있는 '텅 빈 마음 충전하는 나만의 작은 의식'이 공감되고 재밌어요. 책에 나와 있는 것 말고도 요즘 작가님의 마음을 빵빵하게 채워 주는 충전법이 있다면요?

 

많은 분이 동의하실 거라 생각하는데 사실 만병의 근원이 '일'이잖아요. 일만 그만두면 모든 게 해결될 것 같은데, 저 역시 건물주가 아니라서 그럴 수가 없어요. 마음 충전에도, 몸 충전에도 쉬는 게 제일이란 걸 알지만 쉴 수 있는 절대적인 시간이 부족한 게 문제죠. 그렇기 때문에 자신에게 할당된 쉴 수 있는 시간들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관건인 것 같아요.

 

저에게 있어 가장 특효는 10여 년째 '방구석에서 혼자 미드 보기'인데요. 평소 생각이 많고 과민한 편이라 의식적으로 머리를 비워 주는 시간을 만들지 않으면 과부화가 걸려서 번 아웃이 금방 오는 것 같아요. 그래서 미드를 보더라도 새로운 걸 보지 않고 봤던 것을 또 보는 편이에요. 새로운 내용을 보게 되면 이해하기 위해 뇌가 활발히 운동을 하는데 아는 내용을 또 보면 뇌가 멍 때리며 쉴 수 있거든요. 미드로 영어 공부를 하는 것도 아니면서 봤던 걸 또 보는 게 시간 낭비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그렇게 충전하는 시간을 가져야만 또 다른 창작이 가능하더라고요. 같은 맥락으로 올해 새롭게 다짐한 일은 '싫은 사람 억지로 안 보기'인데요. 인간관계 미니멀리즘을 실천하려고 해요. 대인관계에서도 심리적 소진이 큰 편이라 의미 없는 관계를 억지로 유지하지 않음으로써 그 시간을 더 소중한 관계에 들여서 마음 충전을 하려고 합니다.

 

실제로 우울과 무기력으로 심리 상담과 치료를 받으셨다고요, 프롤로그에 팟캐스트를 듣고 책을 읽으며 위로를 받았다고 하셨는데, 무기력과 우울을 겪으며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콘텐츠가 있나요?

 

우선, 유튜브에서 가볍게 볼 수 있는 ‘세바시 성장문답’ 콘텐츠 시리즈를 추천해요. 특히 '윤대현 선생님'편 애정합니다. 저는 대인관계와 자기관리에 대해 라이프 코칭을 받기도 했는데요. 제게 많은 도움을 주신 코치님의 개인 유튜브 채널 ‘모두의 코칭’도 추천합니다. 무기력이 심할 때 도움이 됐던 책은 『문제는 무기력이다』라는 책이에요. 무기력에 대해 오래 연구하고 쓰신 책이라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해법이 많이 담겨 있어요. 팟빵 팟캐스트 ‘살려는 드릴게’를 통해서는 좀 더 내밀한 심리역동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팟캐스트를 선호하시는 분들은 네이버 오디오클립 ‘정신과 의사가 여러분의 고민을 들어드립니다’를 꼭 들어 보시길 바라요.

 

무기력이 실제로 생활에 불편을 일으키거나 우울증으로 가기 전 경계선상에 있는 분들,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의 우울을 겪고 계신 분들의 경우 가벼운 심리에세이 정도로는 실제적 변화를 기대하기가 힘들어요. 저 역시 가벼운 에세이보다는 심리학 인문서나 자기계발서를 많이 보는데요. 제 입으로 말하기엔 좀 부끄럽지만, 제가 추천한 콘텐츠들에서 중요한 내용들만 편집해 담은 게 『게으른 게 아니라 충전 중입니다』예요. 가볍게 볼 수 있으면서도 심리 전문 콘텐츠들을 통해 얻은 통찰을 그림과 글로 풀어 책에 담으려고 노력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무기력증이 심한 분들은 책이나 팟캐스트 등의 콘텐츠를 접하는 동시에 가능하면 실제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걸 병행하기를 꼭 권합니다. 혼자 극복하려고 하면 힘들지만 전문가의 도움이 있으면 훨씬 쉬워져요.

감기처럼 찾아오는 무기력과 공존하기

이 책에서 가장 마음 가는 이야기가 있다면?

 

'사는 게 이렇게 지겨울 수가' 에피소드예요. 하나하나가 다 제 자식 같고 소중하지만 가장 아픈 손가락 같다고 해야 할까요. 이 에피소드는 다른 이야기들보다 다소 무거운 주제를 담고 있지만, 그 이야기가 정말 필요했을 누군가에게 가닿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넣었어요. 매일이 바쁘고 치열하면서도 사는 게 지겹다는 착각이 들 때가 있잖아요. 그 마음을 잘 들여다보면 무엇에서도 '의미'를 찾지 못하고 있는 상태인 거예요. 무기력이나 우울이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는 부분 중 가장 무서운 것도 '공허감‘, ’지루함'인 것 같아요. 의식주가 해결되고, 취미를 만들고, 친구와 가족과 애인이 있어도 우리는 '의미' 없이는 살아갈 수가 없어요. 끝없는 공허감에 시달리게 되죠.

 

그럴 때 삶과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는 시간도 중요하지만, 책에서 이야기하는 메시지처럼 의식적으로 몸과 마음을 가볍게 해 주는 게 생각보다 도움이 많이 돼요. 살아나갈 수 없을 정도로 큰일이 닥쳤다는 생각이 들 때에도 의외로 소중한 사람과 함께 웃어넘기면 별일 아니게 되기도 하거든요.

 

후기를 보면 ‘어머, 이거 딱 내 마음이야’라는 독자 평이 유난히 많은 것 같아요. 이 책이 어떤 사람들에게 어떤 책으로 다가가길 바라시나요?

 

무기력증을 겪는 사람들을 위해서 만든 책이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이 잡을 한 줄기 지푸라기 정도는 될 수 있는 책이 되길 바라요. 힘든 사람들에게 짧은 위로로 끝나는 의미 없는 책을 만들고 싶지 않았어요. 무겁고 어두운 이야기가 다수에게 공감받기에는 한계가 있을 수 있지만, 그럼에도 정말 힘든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이야기를 포기할 수 없었어요. 제가 삶을 포기하고 싶고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일 때 도움 주었던 사람들, 그들의 이야기들처럼 저도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어요. 이 책을 보며 가벼운 마음으로 공감해 주시는 분들에게도 정말 감사드리지만, 가장 중요한 건 책이 더 알려져서 정말 도움이 필요한 분들한테까지 전해질 수 있으면 좋겠어요.

 

인생 노잼 시기를 겪고 있는 독자에게 보내는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주세요.

 

인생 노잼 시기를 겪고 있다면 이 책으로 힐링하시면 좋겠어요. 노잼 시기가 꽤 오래가서 사는 게 너무 지겹고, 죽음에 대해 가끔 생각하는 분이라면 주위의 친밀한 누군가에게 꼭 알리고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세요. 에세이가 상담사나 병원을 대체할 수는 없으니까요.

 

글ㆍ사진 | 출판사 제공

 


 

감기처럼 찾아오는 무기력과 공존하기
게으른 게 아니라 충전 중입니다

댄싱스네일 저 | 허밍버드

 

오랜 시간 무기력증과 우울증을 겪으며 상담을 받아 온 작가는 감기에 걸렸을 때 몸을 돌보는 것처럼, 무기력증이 찾아왔을 때 역시 마음을 보살피면 된다고 이야기하며 경험에서 체득한 ‘마음 충전법’을 전한다. [도서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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