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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RKS ON THE ROAD 길 위에서 만난 튀르키예 사람들

5:45 AM

택시의 시계 위로 숫자가 붉게 떠올랐다. 5:45 AM, 해 뜨는 시간. 호텔까진 10분이 남았다. 꼭두새벽부터 어딜 다녀오신 겁니까. 그가 묻는다. 아무도 없는 갈라타 타워를 보고 싶어서요. 내가 답한다. 아무도 없는 거리에 아무도 없는 시간, 아무도 없는 이스탄불. 그와 나만이 도로를 달렸다. 텅 빈 도시가 채워지기 전까지, 10분이 남았다.

 이스탄불 갈라타 다리 인근 Galata Koprusu, Istanbul

주전자

앙카라 성내에선 매일 두들기는 소리가 났다. 그는 주전자를 만든다고 했다. 낮이면 집을 나서 성으로 와 금속을 때리고 열을 가하고 광을 내고 칠을 한다고 했다. 그는 냄비도, 그릇도 아닌, 주전자를 만들었다. 담아 두기보다 따라내 버리는, 그래서 결국 비워지지만 이내 또 채워지고 마는, 주전자를.

앙카라 앙카라 성 Ankara Kalesi, Ankara

말 없는 호객

이스탄불에서 제일 참을 수 없는 한 가지가 있다면, 거리에 밴 케밥 냄새다. 양이며 소며 각종 기름진 고기들이 구워지면 부글부글 식욕이 들끓는다. 이스티클랄 거리의 케밥맨은 호객을 하지 않는다. 그저 냄새를 피울 뿐이다. 고기 탄내가 그 어떤 달콤한 말보다도 유혹적이란 사실을, 그도 내 배도 아는 것이다.

이스탄불 이스티클랄 거리 İstiklâl Caddesi, Istanbul

우리 곁을 지나가고 있어

블루 모스크의 오후. 턱 밑으로 끝없이 땀이 방울졌고, 이스탄불의 태양은 식는 법을 잊었다. 나의 육체는 너무나 육체였다. 체온이 오르고 액체가 흘렀다. 이럴 때면 육체가 육체인 것이 번번이 난감하고 미덥다. 그럼에도 그녀들은 지치는 법을 잊었다. 카메라에 서로를 담고 또 담고, 오후를 기록했다. 잊지 못할 순간이 지금 우리 곁을 지나가고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꼈던 걸까. 나도 덩달아 카메라를 들었다.

​이스탄불 술탄 아흐메트 모스크(블루 모스크) Sultan Ahmet Camii, Istanbul

친절의 가격

​앙카라에선 길을 잃었다. 몇 시간째 같은 가판대 앞을 지나치고 있었다. 보다 못한 그가 나섰다. “거길 가려면 트램을 타야 돼요. 내 버스 카드를 줄 테니 이걸 써요.” 낯선 곳에서의 이유 없는 호의엔 대가가 있겠지. 나는 여행 초보자가 아니었다. “Do I have to pay? (돈을 내야 하나요?)” 그가 크게 웃었다. 어금니가 번쩍였다. 5분 뒤에 트램이 오면 놓치지 말고 타요. 그건 거래가 아니었다. 그의 친절에 값을 매기고 말았던 날. 나는 여전히 여행 초보자였다.

앙카라 크즐라이 Kızılay, Ankara

기억을 먹고 자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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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는 덩치 큰 트램에 올라탔다. 손바닥만 한 햇빛을 받으며 두 눈으로 거리를 살폈다. 세상의 모든 냄새와 소리를 관찰하겠단 것처럼. 말리는 어른도, 주의 주는 어른도 없었다. 그는 이제 이스탄불의 기억을 먹고 자랄 것이다. 갈라타 타워의 벽돌과 아야 소피아 성당의 여름 공기와 시미트 빵의 온기가 그의 혈관을 타고 흘러 팔다리를 통통하게 살찌울 테다. 한 인간의 성장에 있어 여행이란 얼마만큼의 영향력을 가지는 걸까.

이스탄불 이스티클랄 거리 İstiklâl Caddesi, Istanbul

노을맛 안주

​이날 두 친구의 안주는 노을이었다. 앙카라 도심에 살구빛이 살금살금 내려앉자 그들은 마시기 시작했다. 맥주 한 모금에 노을 한 입. 안주가 좋으니 술도 달았던 모양이다. 맥주병은 금세 투명한 소리를 냈다. 병이 비워지자 하늘도 비워졌다. 태양이 저문 자리엔 달과 별이 떴다. 취하기 좋은 날이었다.

앙카라 앙카라 성 Ankara Kalesi, Ankara

보이지 않는 기록

보스포루스 해협을 건너던 배 위에서 그들은 소란스럽지 않았다. 남들처럼 셔터를 누르지도, 수다를 떠는 법도 없었다. 이따금 담배를 피우고, 같은 곳을 바라보는 것 외에는. 그렇게 그들은 바다를 마음에 새겼다. 기록이란 반드시 물리적 결과물이 있어야 되는 줄 알았는데. 보이지 않는 기록의 힘이 때론 더 세다.

이스탄불 보스포루스 해협 Boğaziçi, Istanbul

함께 흐르는 시간

그들이 나를 본다. 나의 카메라도 그들을 본다. 진한 눈 맞춤이 이어진다. 그들이 웃는다. 나는 찍는다. 부대끼는 일들은 잠시 젖혀 둔 채, 시간에 몸을 맡겼다. 늦은 오후, 앙카라 성. 우리의 시간은 따로가 아니라 함께 흐르고 있었다.

앙카라 앙카라 성 Ankara Kalesi, Ankara

달콤한 술래잡기

아이스크림이 도망친다. 위로 솟구쳤다 아래로 떨어진다. 왼쪽으로 왔다, 오른쪽으로 달린다. 실력 있는 술래다. 두 손이 헐떡인다. 바삐 쫓아가 봐도 잡히는 건 허공뿐. 결국 그녀가 시원한 웃음을 터뜨린다. 그도 말랑한 미소를 짓는다. 이윽고 술래가 잡혔다. 세상 가장 달콤한 보상이 주어졌다.

이스탄불 아야 소피아 성당 인근 Ayasofya, Istanbul

프레임을 채우다

구도를 잡는다는 것은 뭔가를 배제한다는 것이다. 어떤 것도 제외시키지 않고 한껏 욕심부리고 싶은 풍경을 만났다. 갈라타 타워 꼭대기 층. 이스탄불이 발아래 깔리고, 사람들은 이야기를 나눴다. 꽉 채운 프레임이 버겁지 않은 이유는 피사체를 향한 나의 마음이 가볍지가 않아서다.  

이스탄불 갈라타 타워 Galata Kulesi, Istanbul


글·사진 곽서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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