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에 가기 좋은 꽃섬, 여수 하화도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결항이다. 이른 아침, 전 해상에 내려진 풍랑주의보 때문이다. 오랜만에 개도를 거쳐 하화도, 사도, 낭도까지 여행하려던 계획은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여수시, 푸르스름한 아침 바다에 너울거리는 아파트 불빛. 오랜만의 풍경조차 감상할 겨를 없이 플랜 B를 짜내야 했다.
●아하, 평수구역이 있었지
여수 시내에서 차를 빌렸다. 플랜 B는 다리가 놓인 몇몇 섬들을 돌아보는 것이었다. 2020년 고흥에서 여수 사이에 4개의 다리가 이어지면서 적금도, 낭도, 둔병도, 조발도는 차량으로 접근할 수 있는 섬이 되었다. 스스로의 순발력에 감탄하면서도 바다 너머로의 아쉬움은 가시지 않았다. 그런데 낭도로 향하던 도중, 또 하나의 방법이 떠올랐다.
이른 아침 여수항에서 바라본 아파트와 거북선대교 |
선박이 운항되는 바다를 항행구역이라 하는데, 그중 ‘평수구역’이란 게 있다. 비교적 작은 섬들이 밀집되어 먼바다의 너울이 내만까지 밀려들어 올 가능성이 적은 해역을 뜻한다. 기상청의 해상특보가 발효되어도 이 평수구역에 들어가는 경우 여객선이 정상적으로 운항했던 기억이 스친 것이다.
여객선사 태평양해운으로 전화를 넣었다. 기대했던 대로다. 백야도항의 여객선은 정상적으로 운항 중이라 했다. 백야도 앞바다가 평수구역인 데다 섬까지 거리가 짧으니 풍랑주의보의 영향을 받지 않았던 것이다. 한참 떨어졌던 섬 여행의 감각이 비로소 되살아나는 듯했다. 부랴부랴 백야도항으로 달려서 섬으로 가는 배 앞에 섰다.
●하화도 섬 밥상에 든든해진 오후
여객선은 개도를 경유해서 하화도까지 간다. 하지만 시간이 지체된 탓에 개도는 다음번을 기약하기로 했다. 목적지는 하화도다.
하화도로는 여수항과 화정면 백야도에서 여객선이 다닌다 |
백야도항을 떠나고 정확히 45분 후 하화도항에 도착했다. 바람이 세게 부는 평일의 섬은 예상대로 한적했다. 선착장에서 멀지 않은 애림민야생화공원에 바닥이 없는 미드 텐트로 설영했다. 간단하게 매트리스를 깔고 침낭을 펼치면 그것으로 끝이다. 캠핑이 여행의 영역으로 들어서면서부터 장비는 점점 더 간편하고 가벼워지고 있다.
섬을 걷고 난 후의 출출함까지 채워 주는 하화도 식당들 |
시장기가 몰려왔다. 식사를 위해 취사 대신 식당을 찾았다. 선착장에 있는 와쏘식당은 오래전 개업 때부터 익히 봐 왔던 곳이다. 사장님은 여행객이 많지 않은 평일에는 투잡을 뛰고 있다고 했다. 방금 선착장에서 일을 마치고 온 터라 손놀림이 급하게 움직였다. 1인 1만3,000원의 서대회백반은 기대했던 것만큼 푸짐했다. 톳, 미역, 고사리, 시금치, 냉이 등 섬과 바다에서 나고 자란 제철 식재료는 건강했고, 서대무침은 개도막걸리와 궁합이 잘 맞았다.
식사는 물론 막걸리 안주로도 좋은 와쏘식당의 서대회정식 |
든든한 한 끼를 채운 후 사이트로 돌아오니 해가 뉘엿거리고 있었다. 지난번 여행만큼의 장관은 아니지만, 하루 끝은 여전히 고흥 팔영산 위로 저물고 섬 저녁은 호젓하게 다가왔다.
●야생화와 백패킹의 섬
느지막한 아침 바람은 한결 보드라워졌다. 영락없는 봄 날씨다. 하화도는 하이힐을 닮은 0.7km2 크기의 자그마한 섬이다. 예로부터 다양한 야생화가 피고 지는 하화도를 사람들은 ‘꽃섬’이라 불렀다. 해안선 길이가 6.4km인 섬에는 5.7km의 걷기 길이 놓여 있다. 꽃섬길은 해안절벽 위를 지나고 구름다리를 건너며 짜릿한 기분을 느끼게 하지만 누구나 산책하듯 쉽게 걸을 수 있다.
백패킹은 섬의 오롯한 하루를 경험할 수 있는 멋진 취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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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화도는 백패킹의 섬으로도 유명하다. 그런 배경에는 주민들의 배려가 있었다. 애림민야생화공원은 오래전부터 백패커들이 알음알음 찾아와 캠핑을 즐겼던 장소다. 주민들은 오히려 그들을 위해 공간을 단장하고 화장실과 수도시설도 만들어 줬다. 현재 애림민야생화공원은 캠핑러들은 물론, 탐방객들의 휴식 장소로도 환영받고 있다.
봄이면 마을 뒤편 시짓골을 온통 노랗게 물들이는 유채꽃 |
커피를 한잔 내려 마시고 꽃섬길로 나섰다. 다행히 진달래와 유채꽃이 반긴다. 큰산전망대에 오르니 개도와 금오도가 손에 닿을 듯 가깝다. 이럴 때마다 섬마다 쌓인 여행의 추억이 새삼스럽다. 생각해 보면 섬만큼 변함없는 여행지도 없는 듯하다. 조형물과 포토존 몇 군데가 생긴 것을 제외하면 하화도 역시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계절마다 각기 다른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는 꽃섬 트레킹 |
마을에는 조막손과 같은 작은 밭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틀림없는 소불밭이다. 소불은 부추를 뜻하는 사투리다. 하화도 소불은 맛있기로 소문나 있다. 가격도 한 단에 1만원씩으로 비싸게 팔린다. 소불전이나 먹어 볼 요량으로 마을회관 식당에 들렀다. 막걸리 한잔 하기 딱 좋은 날이다.
▶여객선
여수 연안여객선터미널 → 하화도
1일 1회(1시간 30분 소요)
백야도항 → 하화도
1일 3회(45분 소요)
▶트레킹
하화도 꽃섬길(5.7km, 약 3시간 소요)
아름다운 해안 풍광과 곳곳에 피어난 야생화를 즐기며 섬을 한 바퀴 도는 코스다. 남녀노소 누구나 가벼운 차림으로 쉽게 걸을 수 있다.
코스
선착장 → 낭끝전망대 → 시짓골전망대 → 휴게정자2 → 순넘밭넘 구절초공원→ 큰산전망대 → 깻넘전망대 → 꽃섬다리 → 막산전망대 → 큰굴삼거리→ 애림민야생화공원 → 선착장
▶SPOTS
하화도 제1명소, 꽃섬다리
해안절벽 사이의 협곡에 설치된 길이 100m의 출렁다리로 2017년 개통되었다. 하화도 제1의 명소로 알려진 꽃섬다리는 그 모습 자체로도 아름답지만, 다리 중간 지점에서 보는 풍경도 환상적이다. 아찔한 절벽 아래 숨겨진 큰 굴과 바다 건너 상화도의 오롯한 자태를 감상할 수 있다.
돛단배 포토존, 화정호
여수시 이순신광장의 거북선을 제작한 김용배 장인의 작품이다. 여수시가 의뢰해서 하화도에 기증했다. 화정호는 삼판(杉板)을 물고기 비늘처럼 겹친 후, 나무못으로 봉합해 건조한 전통 목선이다. 현재는 섬의 대표적인 포토존으로 인기몰이 중이다.
글·사진 김민수(아볼타) 에디터 곽서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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